체포동의서도 제대로 안 읽고 이석기 체포동의안 통과

녹취록에 총·칼 제지 발언 있는데, 법무장관·김진태는 “없다”...“비이성적 야만 속전속결”


4일 오후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이적 행위 혐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길 전망이다. 제1야당 스스로도 이번 국정원발 내란 음모 사건이 신종 매카시즘을 빌미로 삼고 공안정국을 조성하려고 한다는 우려를 했지만, 여론 재판에 밀려 체포동의안 처리에 힘을 보태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체포동의안에 담긴 내란 혐의 증거가 지난 5월 12일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핵심 간부들을 상대로 한 정세강연 녹취록 뿐 인데다, 녹취록 내용에 상당수 왜곡이 있음이 드러난 상황이라 두고두고 역사적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체포동의안 처리가 얼마나 여론 재판에 밀려 처리됐는지는 본회의 안건 처리과정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황교안 법무부장관에게 질의를 하는 대목에서 두 사람 모두 체포동의안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


김진태 의원이 안건 질의를 통해 “피의자 이석기는 총기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총이나 칼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했다는데 녹취록에 그렇게 돼 있는가”라고 묻자, 황교안 장관은 “제가 알고 있는 내용과는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체포동의) 요청서에 나와 있는 그대로 이해해 달라”고 했다. 이어 김 의원의 “녹취록 내용 자체가 편집이나 짜깁기 됐느냐”는 질문에도 황 장관은 “편집이나 짜깁기 된 일이 없다고 분명히 보고를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황 장관이 편집하지 않았다고 밝힌 실제 체포동의서 상 녹취록엔 해당 발언이 그대로 담겨 있다. 체포동의요구서에 적시된 이 의원의 ‘구체적 범죄사실’ 녹취록을 보면 “몇몇 동지들은 이 싸움에 대해서 남부에 그 친구가 누군지는 알겠는데, 가방에 칼 가지고 다니지마. 대충 내가 누군지 알겠어. 내가 아는 사람 같은데 이젠 칼 가지고 다니지 마시라. 총? 총 가지고 다니지마”고 돼 있다.

이어 이 의원은 “핵폭탄 보다 무서운 게 사상의 무기야. 이 사상의 무기를 단단히 무장하면 아까 한 친구가 기껏 싸우는 게 하나 죽이고 가겠다고? 우리는 죽자고 싸우는 게 아니에요”라고 했다. 무기 등을 거론한 강연 참가자를 오히려 그러지 말라고 당부하는 내용이다.

체포동의서 녹취록은 또 고의적인 편집이 아니더라도 잘못된 워딩 가능성도 충분했지만, 이 같은 사실도 민의의 전당에선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연이 진행된 장소는 합정동 천주교 절두산 성지에 위치한 천주교 마리스타 교육관이다. 녹취록에 ‘결전 성지’로 된 워딩은 ‘절두산 성지’라고 발언한 것을 잘못 듣고 풀어 쓴 정황이 보인다.

이상규 의원은 “강연이 있던 장소인 ‘절두산 성지’라는 발언이 ‘결전 성지’로 둔갑시키고, ‘물질 기술적 준비’를 ‘물질 기술적, 총’으로 변조했다”며 “국정원의 선입견대로 풀어쓴 녹취록”이라고 지적했지만 대다수 여야 의원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황 법무장관은 이상규 의원이 질의한 지하비밀조직, 일명 ‘RO(혁명조직)’의 결성 시기, 결성 장소, 결성 인원 등에 대해 전혀 답변하지 못하고 “수사 중”이라고만 하다 “체포 동의 요청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지금 단계는 단체보다도 내란선동과 음모, 국가보안법 위반에 관해서 체포동의 요청을 했다”고 말을 돌렸다.

이렇게 체포동의안은 요청서를 낸 정부나 이 문제를 강하게 지적해온 여당 의원 모두 실질적인 검토도 제대로 안했다는 정황이 직접 나왔지만, 찬성 258표, 반대 14표, 기권 11표, 무효 6표로 가결됐다.



이석기, “자주와 평화로 가는 민족의 발걸음은 계속”

체포동의안 표결 직전 이석기 의원은 신상발언을 통해 “지난 8월 28일부터 꼬박 일주일 동안, 국가정보원은 저에게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혐의를 씌워놓고, 보수언론을 총동원해 중세기적인 마녀사냥을 벌였다”며 “저에 대한 혐의 입증 여부와 무관하게,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체포동의안 처리라는 비이성적 야만이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의원은 “국정원은 수사관 100여명을 투입해 꼬박 3일간에 걸쳐 제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지만, ‘내란음모’를 입증할 증거 한 조각 찾아내지 못했다”며 “국정원의 애초 목적은 내란음모 수사가 아니라 단 하나의 증거도 없는 혐의 조작과 여론재판이며,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현실이 놀랍고도 충격적”이라고 했다.

그는 “‘민족의 미래는 자주에 달렸다’ 이것은 정치인으로서 확고한 저의 소신”이라며 “잠시 동안 저를 가둘 수는 있지만, 자주와 평화로 나아가는 우리 민족의 발걸음은 결코 멈춰 세울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저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단지, 제 개인에 대한 박해가 결코 아니라 이 나라 정당정치와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체포동의안이며, 진보정치에 대한 체포동의안”이라며 “결코 있어서는 안 될 반민주 반역사적인 동의안”이라고 규정했다.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 의원단, 지도부는 체포동의안 가결 직후 국회 본청 앞에 모인 300여 당원들에게 지지의 환호를 받으며 입장을 발표했다. 이석기 의원은 자신을 연호하는 당원들에게 양팔로 하트 모양을 만들며 웃음과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김선동 원내 수석 부대표는 “오늘 불의한 국회 표결이 있었지만 양심을 가진 40여명의 국회의원이 있었다”며 “이 표결이 원천적으로 부당하다고 생각해 회의에 불참한 9명의 국회의원이 있었고 무효표가 6표였다. 국회의원이 할 표결이 아니라 생각해 기권한 분이 11분이었고, 마지막으로 국정원의 정치공작에 부화뇌동할 수 없고 도저히 내란음모조작에 놀아날 수 없어 반대표를 던진 국회의원이 14명”이라고 말했다.

이석기 의원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왜 내란음모를 합니까? 이 나라가 너무 좋아서 지리산 산자락만 봐도 가슴이 설레는데 말입니다”라며 “제 조국이 어디냐고 묻습니다. 제 조국은 여기입니다”고 했다.

이 의원은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역사는 없다”며 “한국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유신부활이 아니라 국정원의 공화국이 되고 있으며 여왕통치가 예상된다. 저는 국민을 믿고 진실을 확신하며 내일의 정의가 승리할 거라 믿는다”고 밝혔다.

입장 발표를 끝낸 후 이석기 의원은 당원들과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연호를 받으며 의원회관까지 함께 걸어갔다.


민주, “체포동의안 처리, 당의 새로운 면모 보여줬다”

한편 이날 체포동의안 통과를 두고 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내란음모사건과 관련해 국회가 감당해야 할 절차적 과정은 모두 마무리 되었다”며 “민주당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하는 어떠한 세력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 했고, 민주적 토론을 전제하되 일사불란한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정당정치의 기본을 확립해 나가는 당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체포동의안에 당론 찬성 결정을 내린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본회의에 앞서 “국정원이 제시하고 있는 불충분한 수사 내용으로는 내란음모죄 혐의를 확증할 수 없으며, 국정원의 여론몰이식 수사 역시 용납할 수 없다”면서도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의 해명 역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국민의 신뢰를 잃었으며, 오히려 녹취록 상의 대화가 실재하였다는 것만 분명해졌다”고 찬성 배경을 밝혔다.

심 원내대표는 “헌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국회의원이 헌법과 민주주의, 국민 상식으로부터 심각하게 일탈한 행위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체포동의안은 사법적 판단의 유무를 가리는 행위가 아니라 불체포특권을 해제해 수사가 진행되고 실체가 드러나도록 해야 된다는 점에서 찬성 당론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반면 원외정당인 노동당(구 진보신당)은 “이석기 의원 등이 포함된 통합진보당 내 일부 조직의 발상에 동의할 수 없다. 핵무기 개발을 찬양하고, 무력이 동원된 전쟁을 예비하며, 독선적이고 폐쇄적인 적대적 민족주의를 지상의 가치로 삼는 인식구조는 노동당의 가치와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면서도 “실체적 위험성을 인정하기 힘든 함량미달의 형법상 ‘내란음모’ 혐의, 더구나 체포동의안을 보고하는 과정에서 피의사실 일체가 공개되거나 영장발부 전 피의자 소환절차까지도 생략된 절차적 문제가 있다”며 체포동의안 처리를 반대했다.

노동당은 “특히 폐지되어야 할 국가보안법이 또다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반민주 세력에 대한 투쟁은 거리에서 천막을 쳐놓고만 하는 게 아니다. 원내 야당이라면 무엇보다 국회 안에서 광기와 기만으로부터 주도권을 빼앗아 논의의 틀을 새로 짤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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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합원

    노동당에 동의합니다.

  • ㅇㅇ

    설령 그런발언했다고 해도 그게 왜 문제가 되나??? 내란음모선동죄... 술먹다가 이놈의 세상 엎어버려야 한다 라고 말했다가 경찰에 끌려가는 코미디를 박근혜 치하에서 볼수있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