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자본축적의 실패와 디폴트의 정치경제학

[주례토론회] 경제위기와 디폴트


자본주의의 새로운 축적 전략의 등장

70년대 자본의 수익성 위기는 80년대를 지나면서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거듭 태어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150년 전, 자유방임형 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를 거쳐 국가독점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매번 위기를 겪었던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재림한 것이다. 그리고 매번 그랬듯 자본축적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들고 나왔다.

각종 통계를 보면 80년부터 가계부채를 포함하여 모든 부채규모가 가파르게 증가한다. 보통 빚은 상환 가능한 소득과 수입이 전제된 상태에서 얘기되기 마련인데 소득규모는 부채규모를 따라가지 못 한 채 지금도 횡보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상식적이지 못한 일이 벌어졌을까?

맑스가 자본론에서 분석한 가공자본(부채) 개념 뿐 만 아니라, 케인스가 일반이론에서 주장한 ‘저축의 역설’에서도 노동자들과 가계의 부채문제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버는 소득은 대부분은 소비된다고 가정하며, 투자를 위한 저축과 부채의 주체는 자본가들로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이자는 보통 산업자본가들이 노동자들로부터 착취한 초과잉여의 일부가 대부자본가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현재 우리 현실을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2000년대 주택버블의 주체는 가계였다. 이들이 부채를 일으키는 주체였고, 자산시장의 중요한 플레이어로 등장했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는 이들의 부채를 담보로 유동화시킨 각종 파생상품들이 가계의 동시다발적 채무불이행사태로 인해 부도나면서 폭발한 것이다. 그래서 맑스의 이론과 케인스의 이론만으론 현재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부채전쟁의 현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고 여겨진다.

물론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상에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더 깊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왜 주택버블이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요 국가들에서 발생하였는지, 그것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는지 의문이 든다. 미국의 신경제가 일으킨 IT버블붕괴 직후 2000년대 주택버블이 바로 그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의문이 든다. 이렇게 신자유주의가 설파한 부채-자산 경제와 이로 인한 과잉부채는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축적전략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번 주례토론회에서는 지난주에 이어 부채전쟁의 새로운 국면에 벌어지는 첨예한 갈등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신자유주의의 자본축적전략의 변화 속에서 과잉부채가 왜 발생했는지, 그리고 중요한 핵심 주체로 가계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위기가 폭발한 지금, 그 위기는 국가부채 위기로 전염되었고 자본주의의 위기관리를 위한 채찍이 되어 되돌아오고 있다. 그리고 그 채찍은 불평등한 권력관계 속에서 약자에게 더욱 집중되고 있다. 그리고 일국적 차원을 넘는 갈등을 불러오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부채전쟁이라 명명했다. 그 전쟁은 자본주의적 해결방법을 찾고자 하는 노력에서부터 새로운 사회변혁을 요구하는 투쟁까지 다양하게 표출된다. 이러한 시기에 그리스 채무위기 과정에서 논란이 된 디폴트 논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토론에서는 잘못 알려진 디폴트에 관한 관념을 걷어내고, 디폴트를 넘어선 사회화와 사회변혁전략이 왜 필요한지, 에콰도르와 아이슬란드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자산가격 상승과 이자량 증대를 통한 신자유주의 자본축적 전략

앞서 언급한 바처럼 신자유주의의 중요한 특징이 바로 과잉부채와 증권화이다. 쉽게 생각해보자. 누군가 집을 담보로 부채를 일으킨다. 이때 담보물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기본이 된다. 그리고 그 담보물에 비례해서 부채는 늘어날 수 있다. 만약 내 집이 가격이 두 배가 된다면 내가 빌릴 수 있는 부채의 양도 두 배가 된다. 돈을 빌려주는 은행은 담보물을 장부상에 적는다. 부채의 안정성과 위험성을 계산하여 만약에 있을지 모를 채무불이행을 위해 보험회사들이 발행하는 금융보험상품 CDS(신용부도스와프)에 가입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자산가격의 등급을 결정짓는 중요한 주체로서 신용평가사가 등장한다. 담보물이 정확한 계산에 의해 등급이 매겨지고 그에 따라 거래가 활발히 이뤄진다면, 돈을 빌려주는 주체도 빌리는 주체도 이제 경쟁적인 부채창조에 들어간다. 그 부채는 다시 자산이 되고 담보물의 가치를 끌어올리면서 새로운 부채를 창조하는 밑거름이 된다.

그러면 이러한 자산가격의 상승이 자본축적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자산가격의 상승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구매자가 있어야 하며 그 구매자는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래 그림에서 예로 든 미국의 경우, 80년대 중반 이후 부채는 폭증했지만, 국민소득은 부채의 증가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채 그 격차는 계속 벌어진다. 대부분의 나라들도 시차가 존재하지만 이러한 경향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결국 이런 부채상승이 자산가격을 밀어 올리는 근원적인 힘 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자산가격의 상승에 근거한 새로운 부채창조와 과잉소비가 신자유주의 부채-자산 경제의 진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렇게 부채가 창조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따라다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이자이다. 이자가 없는 부채는 존재할 수 없다. 있다면 개인들 간에 호의와 선의에 의해 빌려준 돈일뿐,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과정에서 이자는 필수적이다. 그리고 지난 번 토론회에서 언급한 바처럼 이자율을 결정짓는 과정과 주체들의 관계가 바로 부채-자산 경제의 권력관계를 표현한다.

부채의 증가는 그에 비례하여 이자량의 증대를 가져오고 이것이 자본 축적의 새로운 원천이 된다. 금융부문기업의 이윤율이 평균이윤율을 상회했던 통계자료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건 금융부문의 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비금융기업 즉 산업자본가들도 기업의 내부 혹은 자회사 형태로 금융부문을 특화시켰고, 실제 상당한 부문의 이윤이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에게 전기 가전회사로 잘 알려진 GE(제너럴 일렉트로닉스)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이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자의 원천이 그냥 숫자로 적힌 돈 일 뿐이라면, 금융위기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돈은 얼마든지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도장이 찍힌 돈에 들어가는 비용은 잉크값과 종이값 뿐이다. 돈은 어떤 실물적 가치와 연동될 때 안정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이자의 원천은 채무자의 미래소득이라 할 수 있다. 자본가가 노동자로부터 이전시킨 초과잉여의 일부이거나 노동자가 미래에 벌어들일 소득의 일부이다.

이처럼 이자Interest는 현재의 잉여가치를 표현하는 이윤Profit과 달리 미래 소득을 조직할 수 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극적으로 팽창했다. 각종 신용창조를 통해 노동자 가계에 더 많이 대출해주고 더 많은 이자 즉, 미래 잉여를 저당 잡는 것으로 부족한 이윤을 메워 왔다. 노동자 또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속에서 부족한 소득을 부채로 채웠기 때문에 노동자의 가계는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부채를 지고 더 가난해졌다. 이 과정은 1980년대 이후 미국의 가계, 기업, 정부의 이자 수입 및 부채 변화 양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비금융 부문에 비해 금융 부문의 자산과 이윤이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증가했고, 비금융 부문의 이윤 중 금융 활동에서 나오는 비중이 더 크게 증가했다. 여기서 금융 부문 이윤의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채권과 국채 수익률로 표시되는 ‘이자’ 수입이다. 은행 역시 가장 큰 수익이 이자 수입이다. 1986~2000년 금융 부문의 이윤율이 비금융 법인의 이윤율을 초월했다. 또한 비금융 부문 역시 금융자산/실물 자산 비율은 2000년 90%로 증가했다.

이러한 구조에 따라 부채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부채 총액은 1957년에 5조 달러에서 1977년에는 10조 달러로, 1997년 25조 달러에서 2007년에는 50조 달러로 10년 만에 두 배나 급증했다. 특히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전 세계를 지배하면서 빚의 증가 속도는 매우 빨라졌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1930년대 대공황 전후로 치솟았던 부채 비율은 1950~1970년대(케인스적 국가독점자본주의 시기) 하향 안정세를 거쳐 다시 1980년대 이후(신자유주의 시기)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국민소득 대비 부채도 1980년대부터 큰 폭의 증가 양상을 보여, 서브프라임 위기 직전인 2006년에는 국민소득의 5배에 가까운 부채를 짊어지게 되었다.

[출처: <부채전쟁>에서 재인용]

또한, 가계의 차입 경제도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는 1950~1960년대 케인스주의적인 노동 타협으로 형성된 복지와 임금을 공격해 노동 유연화를 확대하고 노동자의 임금을 끌어내렸다. 그러면서도 소비를 축소하지 않기 위해 부족한 노동자 가계의 소득을 부채 경제로 밀어 넣었다. 즉, 부족한 소득을 메워줄 대출을 통해 ‘부채 인간’을 양산했고 채권과 펀드, 주식시장으로 내몰아 노동자의 미래 소득을 전취한 것이다.

[출처: <부채전쟁>에서 재인용]

미국에서 1980년대 초부터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2001년 100%를 넘어섰고 금융 위기가 발생한 2008년까지 폭증했다. 2008년 이후 미국의 가계 부채는 부실 청산에 따라 점차 축소된다. 그 여파로 1천만 명이 집에서 쫓겨났고 3천7백만 명이 학자금 부채에 시달리고 있으며, 5천만 명이 빈곤층으로 추락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채 비율은 100%를 넘는다. 이는 미국의 가계가 평균 소득보다 더 많이 지출하고 있다는 것 즉, 계속 빚을 지고 더 많은 이자를 갚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채 경제와 차입 경제는 미국 내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 시기 제3세계 외채도 급증했다. 1970년 2천억 달러 수준에 불과하던 외채가 1970년대 후반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1996년에는 2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자의 원천과 형태 사이의 간극, 이것이 가져온 불확실성의 증대

그런데 현실에서 관찰되는 이자는 자신의 원천이 어디서 온 것이라 밝히지 않는다. 채권자에게 약속한 액면가가대로 숫자가 적힌 돈이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미래의 벌어들일 소득이 아니라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지급되는데 문제가 없다. 가령 투기를 통해서 생긴 거래차익의 일부일 지라도 채권-채무 관계를 청산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또 다른 제3자의 소득이나 자산을 이전시킨 것이라 해도 상관없는 셈이다.

그래서 이자의 원천과 이자의 형태 사이의 이런 간극이 부채-자산 경제의 버블을 추동하는 힘이자 동시에 불안정한 상태를 만들어내는 원인이 된다. 자신의 미래소득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 없어도, 이자지급은 다른 사람의 소득과 미래소득(부채)를 가져와 이전시키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플레이어가 이런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면, 이제 이자는 채무자의 소득과는 별개로서 취급될 수 있다.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새로운 부채 증식(차입경제) 지속되는 한 소득과 부채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그러나 이자의 원천이 변한 건 아니다. 산술적으로 생각해봐도 누군가의 소득에 근거해야 할 이자의 총량이 소득의 총량을 초과하면 이러한 시스템이 지속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소득을 몽땅 이자지급에만 쓸 수 없는 현실에선 실제 더 낮은 이자의 총량만으로도 채무위기사태는 벌어진다. 더구나 소득분포가 개인마다 차이가 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이보다도 훨씬 낮은 이자 수준으로도 채무위기사태는 벌어질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던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산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채무상환의 신뢰도가 가장 열악했던 사람들의 연쇄적인 채무위기가 2008년 경제위기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는 더 이상 이자수탈에 동원될 사람들마저 고갈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자량의 증대로 새로운 축적을 모색했던 자본주의도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 후 전 세계는 부채관리 또는 부채축소의 체계적 국면으로 전환되었고 자산가격 유지를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문제는 이 위기가 연쇄적인 위기로 전염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누군가의 부채는 누군가에게 이자소득을 가져다주는 채권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채무불이행은 동시에 다른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채권의 부실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 채권을 담보로 한 또 다른 채무관계의 불이행을 가져온다. 앞서 말했듯 2008년 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의 부도가 이에 연동된 각종 파생금융상품의 부도로 이어지면서 1년 반 만에 폭발한 것이다.

유럽의 국가채무위기사태도 마찬가지이다. 부동산을 비롯한 각종 자산버블 붕괴와 리만사태로 인한 금융상품의 연쇄부실 등이 민간채권시장과 은행위기로 전파되면서 이를 구제하고 보증했던 국가의 채무위기로 번진 것이다. 여기에 잘못된 처방이 사태를 더욱 곤란하게 만들었고, 그리스와 같은 약한 부분을 강타했다.

디폴트 정치경제학(1) - 디폴트는 경제문제인가, 정치문제인가?

이렇게 확대된 연쇄적인 채무위기는 구제금융을 책임지는 중앙은행과 재정부로 옮겨 붙게 된다. 그리고 곧 신흥국은 달러 고갈이라는 외환위기 형태로 드러난다. 또한 그리스처럼 화폐통합이 된 국가도 유로가 국외로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그런데 달러와 유로를 다시 얻기 위해 이들의 치러야 할 구제금융의 대가는 그들이 얻는 것보다 훨씬 크다. 각종 국유자산을 헐값에 매각해야 하고, 공공부문을 구조조정 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시장을 유연성을 높이고, 연금제도를 손질해야 한다. 세금도 올려야 한다.

한 국가가 디폴트를 선언하려 할 때마다 이른바 ‘디폴트 리스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디폴트를 하면 국가 경제가 혼란에 빠지고, 국민들은 오랜 시간 고통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사실일까?

IMF는 2008년 흥미로운 보고서를 하나 발표했다. IMF가 발표한 <국가 부도의 비용The Costs of Sovereign Default>이라는 보고서는 1824년~2004년 사이 발생한 257건의 국가 채무불이행 사태를 연구했다. (Borensztein, Eduardo and Ugo Panizza, , IMF Working Paper, 2008.)

이 보고서는 1970년부터 2002년 사이 채무 조정을 한 개도국을 대상으로 채무 조정이 GDP 성장률과 금리 스프레드에 끼친 영향을 조사했다. 일반적으로 디폴트를 하면 오랜 시간 경제성장률이 바닥을 치고, 국채를 발행하더라도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보고서의 결과는 사뭇 달랐다. GDP 성장률은 디폴트가 일어난 해에 평균 1.2%포인트 하락했지만, 1년이 지난 후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또한 리스크 프리미엄은 디폴트가 일어난 직후 1년간 4% 높아지고 그다음 해에 2.5% 높아졌지만, 2년이 지난 후에는 스프레드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즉, 디폴트를 하면 1년 정도 힘들지만, 2년 이후부터 시장에 큰 영향이 없었다는 것이다. 1999~2002년 사이의 신용 등급은 1995년 이후의 파산 선언에만 영향을 받았다.

또 다른 연구도 있다. IMF는 1970~2002년 중 부도가 발생한 47개국을 대상으로 부도 기간 전후의 변화를 조사했다. 국가 부도 이전보다 부도 전체 과정에서 경상수지 적자 비율은 오히려 줄었다(-4.3 → -1.3). 심지어 GDP 성장률은 지속해서 조금씩 상승했다(1.8 → 2.2). 디폴트로 일정한 충격이 있더라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경기하강 국면이 회복되지 않고 몇 년간 L자형을 그리며 침체가 계속되는 것과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것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IMF의 강력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이를 입증할 객관적 근거는 부족하다. 만약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IMF 구제금융을 받고 구조조정을 거친 국가들이 몇 년 후 다시 디폴트를 겪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IMF 보고서에 의하면 1980년 이후 2004년까지 두 번 이상 디폴트 위기에 빠진 국가는 25개국이 넘고, 이 중 상당수가 3번 이상 위기를 겪었다. 이 국가들은 대부분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따랐다. 오히려 1997년 한국이나 1998년 러시아처럼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 이후 경제가 일정하게 성장한 국가가 드물었다. 이 국가들은 ‘IMF의 모범생’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구제금융으로 들어온 자금 대부분이 돈을 빌려 준 국가로 다시 들어가고, 채무국은 긴축 등 각종 책임만 지기 때문이다. 채무국 경제가 발전해서 돈을 갚는 구조가 아닌 당장 파국을 모면하는 방식으로 구제금융을 지원한 후 이 돈을 채권국이 회수하고 다시 채무국 내부를 핍박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디폴트를 선언한 국가의 경기 회복 이유는 채권국들과 맺은 새로운 채무 조정 결과로 중장기적인 회복 조건을 마련한 것에서 찾아야 한다. 특히 부채 탕감이야말로 디폴트의 핵심적인 요소이며, 부채 탕감 없이 경기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이 여러 국가의 사례에서 나타난다. 1999년에서 2010년 사이 디폴트 국가의 부채 탕감 평균 비율은 44.2%에 달한다. 경기 회복 속도 역시 부채 탕감 비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빠르고, 낮을수록 늦다.

이처럼 디폴트는 선언만으로 끝나지 않으며 채무국은 채권단과 지속적으로 부채 조정을 협상한다. 피 말리는 정치 협상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대부분 1년 내외로 협상을 끝냈다. 예외적으로 2001년 아르헨티나가 무려 8년을 끌면서 지루한 부채 조정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3년간의 상환 중단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2005년에 민간 채권자를 대상으로 부채의 절반 이상을 줄일 수 있었다. 그 결과 2003~2010년 아르헨티나는 연평균 8% 이상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런데 문제는 디폴트에 대한 이해관계가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채무국 국민에게 디폴트야말로 가장 유리한 수단이며, 디폴트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모라토리엄이나 다른 채무 조정보다 더 심하지 않다. 그러나 채권국의 경우 채무국이 디폴트를 선언하면 자국의 경제도 위기가 올 수 있기 때문에 꺼리게 된다. 1980년대 중남미 외채 문제가 미국 은행의 부실을 낳게 한 것과 같다. 또한 디폴트는 전염 효과가 있다. 1997년 아시와 외환 위기와 같이 한 나라의 디폴트는 비슷한 경제 여건의 인근 국가로 전파된다. 이 때문에 채무국의 디폴트 선언은 주변국과 채권국들에 위협적인 요소가 되며 이들로서도 채무 조정의 필요성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누구보다 디폴트를 피하고 싶은 주체는 바로 채무국 정부다. 채무 위기를 겪는 국가의 정부는 대부분 고강도 긴축정책이나 민영화를 해서라도 빚을 갚으려 하고 디폴트 선언만은 피하려 한다. 채무 조정 기간도 길어지고 국민의 고통도 커지지만, 정부가 국민보다 채권국의 요구를 더 잘 들어주려는 행위에도 이유는 있다.

IMF 보고서에 의하면 1981년 이후 디폴트를 선언한 14개국 22건의 사례에서 절반 이상이 디폴트 선언 이후 1년 이내에 정권이 교체되거나 경제 장관이 경질됐다. 이러한 정치 변화의 가능성은 보통 시기보다 두 배 정도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알다시피 한국도 1997년 외환 위기와 IMF 구제금융의 여파로 정권이 바뀌었다. 2010년 이후 유럽에서도 국가 채무 위기가 발생하자 사실상 디폴트 상황까지 간 포르투갈과 그리스는 물론 스페인과 이탈리아, 넓게는 프랑스까지 정권이 교체됐다. 따라서 디폴트는 경제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리스크 때문에 회피된다고 볼 수 있다.

디폴트 정치경제학(2) - 그리스, 에콰도르

여기서 그리스의 사례를 들여다보자. 아시다시피 그리스는 구제금융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인 경제문제가 있다. 그로 인해 국가채무위기는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못했다. 결국 모두의 목줄을 죄고 있는 이 빚을 도대체 누가 갚아야 하는가를 둘러싼 심각한 분열이 벌어졌다. 그리고 2012년 총선에서 디폴트 논쟁과 유로탈퇴 논쟁으로 격화되었다.

그리스에서 제기된 디폴트 논쟁은 이미 영국 런던대 라차비차스 교수와 통화금융연구소(RMF)가 ‘채무자 주도의 디폴트’와 ‘유로존 탈퇴’, 그리고 ‘노동자 주도의 사회화’를 주장하면서 주목받았었다. 이후 시리자가 ‘채무자 주도의 디폴트’와 ‘노동자 주도의 사회화’ 전략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리스 구제금융의 목줄을 쥔 트로이카(유럽중앙은행-EU집행위-IMF)는 이들의 조치를 유로존 탈퇴로 간주하겠다며 총선에서 내정간섭에 가까운 초강수를 두었던 것이다. 결국 유로존 탈퇴 협박에 흔들린 유권자들은 이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던 신민당(구 집권세력 보수당)의 재집권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렇다면 그리스에서 제기된 디폴트 논쟁은 찻잔 속의 태풍처럼 해프닝으로 그치고 말 일일까? 아니다. 트로이카가 그런 상식이하의 행동을 버젓이 한 이유는 이것이 가져올 후폭풍이 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에서 목격했던 연쇄파산이 또 어떻게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그리스를 억누르고 상황을 잘 관리한(?) 트로이카를 칭찬할 일일까? 채권자와 채무자의 동등한 희생 없이 채무자에게 일방적으로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일까?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얽혀 있는 국제금융구조의 현실을 알 고 있기에, 뭐라 답하기 힘든 곤란함을 느낀다.

그래서 채권-채무 관계가 어떻게 성립되고 어떻게 유지되는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채권-채무 관계는 계약관계이다. 채권자의 입장에선 채무불이행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채무자에게 이자를 요구한다. 그리고 채무자는 약정한 이자를 지급한다. 그 위험성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채권자의 몫이다. 만약 그 위험성과 이자수익에 대한 판단이 서면 채무자와 계약을 맺게 된다. 개인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신용도에 따라 가산금리가 붙는 것처럼, 국채에도 CDS(신용부도스와프) 가산금리가 붙는다. CDS는 일종의 보험상품이다. 채권자는 채무자의 불이행을 염려해 원금에 대한 지급 보증을 해주기로 약속한 기관으로부터 이 보험상품을 살 수 있다. 그리고 보험료를 지불한다. 그리고 이 보험료에 해당하는 만큼 CDS 가산금리라는 명목으로 더 많은 이자를 요구한다. 이 모든 일들의 판단기준과 가격결정을 신용평가사들이 대신 해주는 것이다. 신용평가사들이 매번 공표하는 국가신용 평가라는 것은 바로 이런 채권금리를 결정하기 위해서일 뿐, 다른 이유가 없다.

그러면 이제 생각해보자. 채무자인 국가는 CDS 가산금리까지 줘가며 채권자가 요구한 위험성에 대해 성실히 보답했다. 만약 채권자는 자신이 감수하는 위험성에 비해 이자수익이 낮다고 판단하거나 채무자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채권거래 시장에 내다 팔면 그만이다. 채권거래 시장은 그러한 위험성을 교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심지어 부득불 채무자인 국가가 채무불이행 즉 디폴트를 하게 된다면, 채권자는 CDS 보험증서를 가지고 보험상품을 판매한 금융기관에게 찾아가 원금보장을 받으면 될 뿐이다. 어찌 보면 이것이 그들이 그토록 외쳤던 시장논리의 수순이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디폴트 가능성이 제기되면 천문학적인 CDS 보험금 지급 때문에 보험회사가 연쇄부도에 빠진다고 난리가 난다. 그러면서 지급불능사태로 인해 다시 2008년처럼 금융시장이 붕괴될 것이라 엄포를 놓는다. 디폴트를 절대 해선 안 된다고 협박한다. 채권자의 손해라는 건 전혀 감내될 수 없는 성역으로 관리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성역처럼 손도 못 대는 것이 현실일까?

여기서 좀 색다른 역사적 사건을 살펴보자. 바로 2008년 에콰도르 꼬레아 정부가 실시한 ‘공세적 디폴트’이다. 당시 에콰도르는 80년대 남미 외채위기에서 시작된 고통으로 인해 20년 넘게 경제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이전 부패한 정부가 저지른 외채문제로 인해 돈은 부패한 관료들이 다 빼먹고 민중들은 100억 달러에 달하는 빚더미만 짊어진 상태였다. 꼬레아 정부가 집권 후 맨 처음 한 일은 부정하게 차입된 외채 즉 ‘더러운 부채’를 가려내는 일이었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이 개념은 UN에서도 받아들이는 개념이다. 제3세계 국가들 중에서 독재정권과 결탁한 자금이 부패관료들의 비자금이 되고 그 빚은 국민들한테 떠넘겨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이를 막고자 국제적으로 이를 ‘더러운 부채’라 개념화 한 것이다.)

2008년 11월 ‘더러운 부채’를 조사했던 에콰도르의 국가부채심사위원회는 그 결과를 발표한다. 그리고 곧 12월 꼬레아 정부는 국제법에 근거해 ‘더러운 부채’에 대한 1차 디폴트를 단행한다. 그리고 다음 해 3월 2차 디폴트를 단행한다. 충격에 빠진 국제 채권단들은 앞 다퉈 국채를 투매했고, 꼬레아 정부는 채권거래시장에서 액면가의 20% 이하로 떨어진 국채를 모두 사들임으로서 외채문제를 말끔히 해소했다.

이 과정에서 꼬레아 정부가 법에 어긋나는 행동은 한 것은 하나도 없다. ‘더러운 부채’에 대한 디폴트는 모두 UN 헌장에 명시된 국제법에 근거한 행동이었고, 채권거래시장에서의 거래는 정당하게 지불하고 매입했다. 손실을 본 채권자의 입장에선 억울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들 자신들이 평소 그토록 외쳤듯 자유로운 금융시장에선 손실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법이다. 이 사례는 성역으로만 인식되었던 채권자의 이해와 디폴트에 대해서,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편향된 인식을 교정시켜준다.

디폴트의 정치경제학 (3) - 아이슬란드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혹한 국가부채의 문제에 대해서 디폴트는 언제나 경제회복을 보장해 주는가? 아니다. 디폴트는 부채의 악순환을 제거해주는 첫 단추가 될 순 있어도 불균형한 경제구조를 즉각적으로 바꿔주는 대안은 아니다. 즉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닌 것이다. 이에 대한 최근 사례로 아이슬란드를 살펴보자.

아이슬란드는 원래 어업과 관광업이 주된 산업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팽창한 금융업이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폭삭 망하고 만다. 그리고 GDP의 9배에 달하는 은행부실로 21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게 된다. 그런데 아이슬란드는 이 구제금융의 돈으로 은행을 구제한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파산하도록 내버려 뒀다. 은행파산으로 인한 손실은 은행에 투자했던 해외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당연히 해외 투자자들은 반발했고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온갖 수치와 사례를 들며 아이슬란드를 공격했다. 그러나 국민투표에 붙여진 은행 구제금융은 93%의 압도적인 반대로 부결되었고, 당시 18년 동안 장기 집권 중이었던 독립당을 끌어 내렸다. 그리고 새로 들어선 사민당 중심의 중도좌파 정부가 자본통제와 함께 채무자 주도의 부채청산을 진행했다. 그리고 해외 금융기관들의 악선전과 달리 2011년 3% 성장을 하면서 2년 만에 경제위기를 탈출했다. 심지어 IMF 관료조차 경제위기 극복사례로 아이슬란드를 치켜세웠다.

이에 반해 지리적으로 서로 가깝고 부동산 버블이라는 금융위기의 원인도 같았던 아일랜드는 은행구제를 위해 810억 달러를 투여했고, 이는 국가부채의 위기를 불러왔다. 그리고 구제금융과 함께 혹독한 긴축조치를 감내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아이슬란드와 달리 위기탈출의 실마리를 아직 찾지 못하고 있으며 긴축에 지친 민중들의 성난 목소리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물론 아일랜드의 이런 어려움은 유로라는 화폐통합에 의해 화폐주권의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초부터 ‘손실의 사회화’로 문제해결의 방향성으로만 잡고 ‘허리띠 졸라매기’에만 매달린 정책적 과오도 한몫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 볼 대목은 그 다음이다. 이렇게 경제위기를 극복한 듯 보였던 아이슬란드는 올해 4월 다시 독립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이유인즉슨 민중들의 삶이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중도좌파 정부는 국유화 된 은행을 다시 살리기 위해 재정을 투여하면서 긴축과 간접세를 포함한 세금인상이 단행했다. 그리고 자본통제로 인해 외국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1조원 자금(80억 크로나)이 부동산거품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재등장했다. 그리고 이에 편승한 부동산 버블로 인해 집값이 다시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다. 결국 경제성장률은 올라갔지만 국민의 생활수준은 30-40%정도 낮아졌으며, 빈곤율은 28%에서 34%로 상승하였다.

이로부터 우리가 짚어 볼 수 있는 교훈은 부채청산과 자본통제만으론 언제든지 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는 점이며, 진정한 사회재건과 경제구조재편을 위해선 노동자 중심의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그리스 디폴트 논쟁에서 라파비차스가 제기한 맥락과 같다.

이를 위해선 지난 20세기 현실사회주의와 국가독점자본주의 하에서, 국유화와 국영기업으로 상징되는 좁은 의미의 사회화를 넘어야 한다. 그리고 복지국가가 착목했던 재생산 영역과 은행을 중심으로 한 신용제도에서 더욱 진전된 사회화의 전략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 전략은 필시 국가권력의 영속적 민주화를 우회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이처럼 현재 국제적으로 논쟁이 되고 있는 디폴트와 사회화 전략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지난 97년 IMF 외환위기 시절, 눈뜨고 코 베어가듯 멍하니 당하고만 말았던 우리에게 과연 선택지는 IMF의 항복문서 밖에 없었는지 되새겨 보게 만든다. 왜냐하면 IMF 조기 졸업 우등생이라는 칭호만으로 위안을 삼기엔 이와 맞바꾼 한국사회의 고통이 심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복될지도 모를 미래의 어느 순간, 우리에게 다른 선택을 할 여지를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볼 때, 이 교훈은 매우 귀중하다고 할 수 있다.

사회화의 세 가지 영역과 민주적 통제

사회화는 모두 세 가지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생산 영역, 재생산 영역, 신용 제도의 부문이다. 이 세 영역은 빚을 유발하는 구조로 서로 얽혀 있다. 생산 영역에서의 낮은 임금이 발달한 신용 제도에서 주택 담보 대출과 빚으로 보완되는 식이다. 그러므로 세 영역에서 사회화가 이루어져야 부실 청산을 이루고 빚 없는 사회구조를 완성해 나갈 수 있다.

[출처: <부채전쟁>에서 재인용]

우선, 생산 영역에서 기업의 사회적 소유와 민주적 통제에 대한 기초는 이미 다양하게 확립되어 있다. 위기 상황에서의 국가 개입 확대도 그 근거가 되지만, 기업 공개 및 주식회사 제도의 확립도 소유의 사회적 성격이 보다 강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에너지, 교통, 통신 등 기간산업과 조선, 자동차, 반도체, 철강 등 대형 중화학공업의 경우 국가가 나서서 생산의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사적 자본이 감당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생산의 사회화 특히, 기간산업의 사회화는 현재에도 매우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특수한 경우 특별법을 통해 특정 산업과 기업을 보호하고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장기 불황이 심화되고 경제 위기가 일상화될수록 산업에 대한 국가 개입은 지속적으로 확대된다. 이때 손실의 사회화가 아닌 ‘소유와 통제의 사회화’가 이루어져 주요 산업, 기업에 대한 국가적, 국민적 차원의 민주적 통제를 확립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또한 주택과 교육, 의료 제도 및 국민연금 제도와 돌봄 노동 등은 노동력을 포함한 사회 재생산을 담당한다. 재생산 영역은 이미 국가 계획과 정책의 주요한 대상일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권리로 인식된다. 서구에서는 복지국가의 형태로 나타나 사회 재생산의 주요 영역들을 국가 책임 하에 두고 이를 사회화시켰다. 한편, 가부장제 중심의 성별 분업화 구조를 띠고 있는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은 사회적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 재생산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척되면서 점차 재사유화 과정을 겪었다. 특히 북반구의 복지국가에서는 국가 책임이던 사회 재생산을 시장에 넘겨주고, 남성 노동자의 낮은 임금을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로 보완했다. 그에 따라 여성들에게 임금노동과 가사 노동의 부담을 동시에 강화하는 한편 사회 재생산의 역할과 비용을 가족에게 부담시켜 왔다. 또한 복지 기반이 미약했던 남반구에선 사적인 영역으로 남아 있던 사회 재생산의 영역에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가 개입했다. 이 과정에서 개인 복지를 사회 발전과 결합시켜 사회 재생산의 위기를 일정 부분 상쇄시키기도 했지만, 기존의 여성과 가족의 역할을 변화시켜 성별 분업을 고착화하고 가사 노동 부담을 더 확대시켰다. 그 결과 출산율 저하, 여성 노동의 빈곤화, 가사 노동 분담 갈등 등 사회 재생산 영역에서의 위기가 확대 심화되었다.

따라서 재생산의 사회화는 재사유화, 시장화되고 있는 복지 영역을 다시 넓히는 것은 물론, 여성 및 가족의 역할 변화에 따른 사회보장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재생산 영역에서의 사회화’ 정책은 ‘생산의 사회화’와 함께 빚 없는 사회를 위해 필수적이다. 2011년 가계 금융 조사에 따르면 전체 담보대출 중 거주 주택 및 부동산 구입이 75%, 사업 자금 마련 대출이 28.4%로 나타났고, 신용 대출의 경우 사업 자금 대출이 31.9%, 주택 관련 대출은 19%였다. 여기서 보듯 가계 대출은 주택 문제를 해결하면 절반이 줄어든다.

신용 제도와 화폐제도의 발달은 전체적인 통화 공급의 불안정성을 야기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화폐 발행과 통화 공급의 진전된 사회화를 의미하기도 했다. 개인 간의 채권 채무였던 금융은 은행의 여신업무 제도화와 신용창조를 바탕으로 확장되기 시작했고, 법과 제도의 마련으로 금융업이 발달하면서 점차 사회적인 형태로 변화해 갔다. 사람들의 돈을 모아 연기금을 형성하고 이것이 다시 금융시장으로 환류되고 있으며, 국가의 채권 발행으로 채권시장을 형성해 나간 것도 금융의 사회적 성격을 더욱 확대시킨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사금융을 제도화하고 금융 리스크를 관리하는 가운데 금융의 사회적 성격은 더욱 확장되었다. 여기에 화폐의 발행과 공급 또한 금본위제에서 불태환 화폐(중앙은행권의 국가화폐)로, 다시 신용화폐로 확산되면서 사회화됐다. 신용화폐의 확산에 따라 이를 규율하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강화되고, 지속된 금융 불안으로 금융 규제와 감독이 확대되는 것도 사회적 개입의 필요성을 반증한다.

금융의 형태가 사회적 성격을 띠게 된 반면, 금융기관과 금융자본의 사적 성격은 더욱 심화되었다. 1970년대 들어 금융이 자유화되고 사유화되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신용창조가 일어났고 파생 금융 상품의 거래는 유례 없는 규모로 커졌다. 현재 전 세계 금융자산은 20조 달러가 넘고 파생 금융 상품의 거래 규모는 무려 1천200조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주도하는 헤지 펀드와 사모 펀드가 넘쳐나며, 몇몇 전통적 금융 그룹이 굴지의 투자은행들을 좌지우지하며 전 세계 곳곳에서 금융 불안과 거품을 양산하고 있다.

따라서 은행의 국유화 사회화와 함께 신용 제도의 사회적 통제를 확대해 나가는 것은 부채 경제의 확산 경향 속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치가 될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생산, 재생산, 신용 제도의 사회화에 있어서 국가권력의 민주화를 빼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국가의 역할을 배제하고는 사회화를 달성할 수 없다. 특히 경제 위기 상황에서 생산의 사회화를 이루고 제도적으로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의 민주화가 전제이자 필요조건이다.


* 이 글은 “부채전쟁”(홍석만 송명관 저, 나름북스, 2013.9.)의 일부 내용을 재편집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부채전쟁>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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