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신브레이크 해고 1000일, "우리가 희망 만들 것"

1000일 문화제 열려...사측의 탄압에도 현장 변화 움직임 일어나

“14년 9개월 22일을 일한 상신브레이크에서 내 발로 나온 게 아니라 쫓겨났다.
이후 상신 현장이 탄압을 당할 때마다 ‘너 똑바로 했으면’하는 말을 들었다.
상신 정도철 회장과 자본이 나를 역사의 죄인으로 만들었다.
민주노조를 지키지 못한 장본인이 됐다.
해고 이후 공장 앞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나는 다시 공장으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내가 살아 있다면, 상신 자본과 싸워 이길 수 있다면
해고자 4명을 복직시킬 수 있다면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
정도철, 네가 돈으로 노조를 무너뜨렸지만, 우리는 끝까지 싸우겠다”

2010년 12월 13일 파업 농성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이덕우 전 금속노조 상신브레이크지회장이 해고 1000일을 맞아 가슴에 담긴 한을 토해냈다. 이덕우 전 지회장을 포함한 해고자 5명은 해고 1000일 맞이 작은 문화제를 12일 저녁 7시 대구 수성구 범어동 수성하이츠 정도철 상신브레이크 회장 자택 앞에서 어깨 걸고 복직을 위한 재시동에 나섰다.

  상신브레이크 해고자이자 금속노조 상신브레이크지회 조합원 5명이 어깨 걸고 문화제 참가자들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노래를 부르고 있다. 왼쪽부터 이덕우, 김대용, 조정훈, 김동필, 정준효. [출처: 뉴스민]

국내 최대 브레이크 제조업체인 상신브레이크는 지난 2010년 임·단협 과정에서 타임오프 시행을 앞두고 갈등을 빚었고, 6월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회사는 8월 직장폐쇄로 대응했다.

직장폐쇄 상황에서도 관리직과 이탈조합원들을 통해 공장은 가동됐다. 조합원들에 대한 개별적 회유도 시작됐다. ‘불법파업 인정’, ‘배치전환 동의’, ‘파업 불참’이 담긴 서약서를 작성하면 현장에 복귀할 수 있었다.

2010년 10월 7일 문영희 현 상신브레이크노동조합 위원장이 228명의 조합원 연서명으로 총회소집을 요구했다. 18일 사측은 직장폐쇄를 풀었고, 21일 금속노조 탈퇴공약을 내건 집행부가 당선됐다. 당선된 집행부는 총회에서 금속노조 탈퇴를 결정했다. 이후 사측은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 5명을 해고했다.

이후 조직형태 변경 무효 판결, 부당노동행위 판결, 직장폐쇄 기간 임금 지급 판결 등 법의 무게추는 해고 노동자 쪽으로 기울었지만, 사측은 현재까지도 복지부동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벌써 1000일이 됐다.

[출처: 뉴스민]

조정훈 금속노조 상신브레이크 지회장은 “해고자가 된 지 1,005일, 입사해 해고 직전까지 3,865일, 정년까지 7774일 남았다. 아직 다녀야 할 날이 더 많다. 사측 탄압보다 무서운 것은 우리 안의 패배주의와 냉대였다.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이야기에 가슴 아프기도 했다”고 지난 1000일을 회고했다.

조정훈 지회장은 “사측은 계속 노동자를 뭉치지 못하게 한다. 현장 노동자가 해고자와 술 한 잔 먹는다는 이유로 감시 대상이 되고, 같이 축구 한다는 이유로 감시당했다”며 1000일이 가져다 준 시간의 무게보다 더 큰 아픔을 회고했다.

그래도 조정훈 지회장은 이내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노조가 깨지고,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로 1년, 그리고 다시 해고자 5명으로 금속노조 지회를 설립하고 꿋꿋하게 싸워 온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7월 26일 기업노조인 상신브레이크노조와 사측의 임단협 잠정합의안이 조합원의 투표에 부결됐고, 현장 조합원들이 직장폐쇄기간 체불임금 소송단 참여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조정훈 금속노조 상신브레이크지회 지회장 [출처: 뉴스민]

조정훈 지회장은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해고자 신분은 그대로다. 하지만 현장이 바뀌고 있다. 매주 화, 목요일 선전전 할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는 이들이 늘어났다”며 “희망은 누구도 대신 만들어주지 않는다. 우리가 희망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백창욱 성서공대위(성서지역 노동자 주민 기본권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곰이 사람 되기 위한 시간도 100일이면 되는데 한국은 노동자가 1000일을 싸워도 바뀌지 않는다. 상신 노동자의 노동을 비루하게 만드는 정도철 회장을 구속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백창욱 공동대표는 “오늘 송전탑 반대 싸움을 하고 있는 청도 삼평리에 재능교육 노동자들이 찾아왔다. 2000일이 넘는 싸움 끝에 투쟁에서 승리하고 연대 방문을 위해 찾은 것이다. 너무 감격스러웠다”며 “상신의 노동자들도 투쟁하며 살다 보면 좋은 일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용 해고자는 “상신브레이크는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며 민주노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96년까지 1년에 한번씩 위원장이 바뀌었다. 민주노조하면 바로 해고된 때문이다. 여태껏 해고노동자가 돌아온 적이 없다. 정도철 회장은 ‘파이를 키워야 나눠 먹을 거 아니냐’고 말했지만, 브레이크 업종 1위를 하고도 여태껏 복직된 해고자가 없다”고 정도철 회장의 경영 태도를 비판했다.

40명이 참석한 작은 문화제를 이어가던 중 정도철 회장 자택이 있는 아파트 주민으로부터 항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항의 차 문화제 장소를 찾은 주민은 정도철 회장은 나쁜 사람이 아니니 여기서 이러지 말고 법적으로 해결하라는 취지의 말을 이어갔다.

  금속노조 대구지부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정준효 해고자. 그는 '청년'이라는 노래에 해고 동료 이름을 넣어 부르며 동료와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는 뜻을 전했다. [출처: 뉴스민]

정준효 해고자는 “정도철 회장 자택 부근에서 투쟁을 벌이면, 지역 주민들은 다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부당해고, 직장폐쇄, 부당노동행위, 창조컨설팅과 결합한 노조파괴...법적 판결이 나도 그 어느 것 하나 지키지 않는다”며 “정도철 회장 개인이 나쁜 사람이라 그런 게 아니다. 우리가 정도철 회장을 구속하라는 것도 자본과 노동자의 불평등한 관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순규 통합진보당 대구시당 위원장도 “구의원이라 회사 사장들을 종종 만난다. 평소에는 매너 있고 좋은 사람들이 최저임금, 노동자 이야기만 나오면 변한다”면서 “법적으로 정당한 문제, 진보정치가 해야 할 역할이다. 그런 세상 만드는데 함께 하겠다”고 연대의 뜻을 전했다.

해고자들과 함께 연대하러 온 노동자들은 2시간 동안 열린 문화제에 마음과 마음을 함께 나눴다. 최근 들어 장기투쟁사업장이 많아졌다고 해서 1000일 이라는 시간이 무뎌지지는 않았으리라. 강금영 와룡배움터 교사, 신재화 대구노동세상 사무국장은 노래로 해고자의 마음을 어루만졌고, 대구일반노조는 해고자들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을 건네며 연대의 온기를 전했다.(기사제휴=뉴스민)
태그

상신브레이크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천용길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