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문 앞 1년 반, “언제까지 여기 계실 거예요?”

[대담] 장동훈 신부와 김득중 신임 쌍용차지부장

인천가톨릭대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는 장동훈 신부는 강의를 마친 후 매일 대한문을 향한다. 4월 8일부터 이어진 ‘쌍용차 문제의 조속한 해결과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서다. 미사는 9월 26일로 172일째를 맞았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대담 다음날인 27일, 단독 입후보한 김득중 수석부지부장은 99.1%의 찬성률로 지부장에 당선됐다)은 지난 9월 10일 대한문 앞에서 박근혜 정부에 국정조사 약속 이행과 쌍용자동차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면서 시민들, 노동조합 관계자들과 동조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 17일째. 13㎏이나 빠졌다. 건장했던 몸은 한눈에 보기에도 수척해졌고, 한결같이 단호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지만, 대화가 길어지면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172일째 인천에서 대한문으로 달려오는 장동훈 신부와 1년 6개월째 대한문을 집처럼 지키고 있는 김득중 지부장이 만났다.


  대한문 앞에서 장동훈 신부(오른쪽)와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출처: 지금여기]

장동훈 신부(이하 장) : 눈이 많이 충혈됐네. 상태가 안 좋아 보여요. 오늘이 17일차죠?

김득중 지부장(이하 김) : 네. 혈당이 떨어져서 효소를 조금씩 먹어요. 3일에 한번 ‘행동하는 의사회’에서 혈압, 혈당을 확인해주시거든요. 저는 단식하기 전에 만약을 대비해서 감식(減食)도 했어요. 아주 길어질 수도 있고 마지막에는 저 혼자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그래서인지 원래 단식 셋째 날이 제일 힘들다는데, 저는 첫째 날이 정말 힘들더라고요. 머리도 아프고.

: 지금은 배고픈 느낌도 지나가셨죠? 어떻게 한창 가족들이 모이는 추석 때 단식을 하셨네요.

: 단식을 고민하기 시작한 건 8.24 범국민대회 끝나고 나서였어요.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좀 더 힘 있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회사가 흑자로 전환되면서 정상화됐다는 발표도 있었고, 청와대든 국회든 이 문제에 대해 더 반응하도록 촉구해야 했고요. 추석 앞두고는 절박함도 있었어요. ‘이번 추석은 집에서 보내고 싶다’, 이런 절박함이랄까요.

: 그럼 추석 명절 때 가족들이 대한문에 오셨나요?

: 아니요. 전 아직 집에서 단식하는 거 몰라요. 단식하기 3일 전에 주말에 집에 가서 건강단식 한다고는 이야기했죠. 서울에서 투쟁하는 1년 6개월간 불규칙하게 생활한 탓에 몸이 많이 불었어요. 살을 빼야 하니까 건강단식을 하겠다고 했죠. 아내는 건강단식하는 줄 알 거예요. 명절에 같이 못간 게 해고된 후 다섯 번째인 것 같네요. 1년은 제가 구치소에 있었고, 나와서는 1년 6개월간 서울에서 투쟁하느라 3번 정도. 이번엔 아내가 서운함을 표현하더라고요. 그러니 여기에 나오고 싶겠어요?

분향소 철거 소식에 달려온 대한문, 가장 절박한 곳이라고 느껴

  장동훈 신부 [출처: 박상준]
: 참, 신부님, 대한문 앞 매일 미사는 언제 시작됐죠?

: 4월 8일에요. 4월 4일 분향소 철거된 소식을 듣고, 5일에 뛰어왔거든요. 5일, 6일, 7일 지켜봤어요. 6일 밤에 나승구 신부님(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은 여기서 주무셨고. 철거된 날부터 계속 지켜보면서 아, 이건 정말 아니구나 싶어 의논을 했어요. 급박하게 결정한 거죠. 4월 8일부터 대한문에서 미사를 시작한다고 전국에 사발통문을 돌렸죠.

: 신부님들 사이에서 여러 의견이 있지는 않으셨어요?

: 고민을 했지요. 그런데 처음에 미사 시작할 땐 탄압이 하도 심해서 여기 길바닥에 그냥 앉아있는 것조차 허용이 안됐잖아요. 제일 절박한 곳이었어요. 우리라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게다가 옥쇄파업 때 트라우마와 쌍용차 노동자 스물네 분의 죽음도 있었잖아요. 혹여 절박한 선택을 하는 상황으로 가는 건 아닌가. 그게 제일 걱정되었어요.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만 대한문 앞을 지키자 해서 시작된 거죠. 이렇게 오래 갈 줄은 몰랐고요.

: 애초 논의하고 결정하실 때, 잘 될 수 있을까 하는 걸 판단하지 않으신 거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미사에 힘이 모이고 있다고 느끼는데 신부님은 어떠세요?

: 미사를 시작할 때, 잘 된다 안 된다, 구심점이 된다 만다, 사람이 많이 모인다 안 모인다, 이런 걸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그냥 한 거죠. 현장에 제대를 차리면서 어떤 역할을 기대한다면 단 하나,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였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겉모양으로는 저희가 도움을 주는 건데, 사실 저희 자신도 이 과정을 통해 단련이 되고 있는 듯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내가 어떤 신부여야 하는구나’를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이 고민하고요. 많은 신부님과 신자들이 쌍용차 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것 같고요.

또 하나는 관계가 만들어진 거죠. 긴 싸움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친구로, 벗으로 인연이 만들어진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문양효숙 기자 [출처: 지금여기]

사제·수도자 5,146명이 참여한 쌍용차 문제 해결 촉구 성명 발표

: 신부님, 지난 8월 26일, 5,146명이나 되는 사제·수도자들이 쌍용차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셨잖아요. 한 사업장의 문제로 이렇게까지 하는 건 처음이라고 들었어요. 어떻게 계기를 만들었고 과정은 어땠는지요?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 대한문에 오는 신부들 중심으로 얘기가 시작됐어요. 미사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여기 오시는 신부님들이 그게 마음에 걸렸던 거죠. 그래서 최소한 교회 안에서만이라도 이 문제를 더 알리고 사회적 여론에 힘을 싣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쌍용차 문제는 노-사, 혹은 노-노의 문제를 넘어선 사회문제니까요. 한 사업장의 문제를 넘어섰죠. 종교인으로서는 생명 문제와 직결되고요.

정의구현사제단과 대한문 미사에 참여하는 신부들의 요청도 있었고, 각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들의 의견도 같았죠. 전부터 교구 정평위 차원에서 쌍용차 관련 모금활동을 벌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범교회적으로 서명을 받을 수 있었어요.

서명운동 진행하면서는 고마운 일들이 참 많았어요. 해외에서 광고비 보태고 싶다고 연락한 분들도 있었고, 평신도인데 참여할 수 없느냐는 문의도 있었어요. 서명운동 덕분에 처음으로 쌍용차 문제를 접하는 수도자들도 많았어요.

노동문제가 다른 사회문제들에 비해 예민하고 복잡한 문제잖아요. 시골에 있는 봉쇄수도회 수녀님들이 자료 요청을 해서 보내드리면 정혜신 박사의 동영상도 찾아보시면서 관심을 보내주셨어요. 마음을 담은 편지도 보내주시고 후원금도 보내주셨지요.

강도 만난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도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잖아요. 하지만 서로 그렇게 손을 내밀었죠. 서명운동 진행하면서 우리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참 많이 받았어요. 저나 대한문 미사에 오는 신부님들을 잘 알지 못해도 이곳의 소식과 안부를 묻고 쌍용차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참 큰 위로라는 생각이 들어요.

: 바보 같은 질문이긴 한데, 언제까지 하실 예정이에요?

: 답은 없어요.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다만 쌍용자동차 동지들이 대한문을 떠나지 않는 한 저희가 같이 있고 싶네요.

미사가 없었다면 이곳 지키기 어려웠을 것,
여기저기서 깨져도 미사 시작되는 6시 반은 평온함 느껴


  단식 중인 김득중 지부장 ⓒ문양효숙 기자 [출처: 지금여기]
: 미사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여기를 지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남대문경찰서, 중구청의 탄압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심했거든요. 그때마다 함께 싸워주셨죠. 미사가 우리에게 평온함을 찾게 해주었고 힘이 되어주었어요.

만약 미사가 짧게 끝났다면 쌍용차 동지들이 여기에 있기 어려웠을 거예요. 쌍용차 동지들이 있어서 미사가 이어진 게 아니라, 미사가 이어져서 동지들이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든든했어요. 낮에 여기서 깨지고 밤에 저기서 깨져도 (미사가 시작되는) 저녁 6시 반만 되면 그들이 우리를 건드리지 않겠구나, 대한문을 우리의 이야기로 채울 수 있겠구나, 우리가 평온하게 있을 수 있구나 싶었어요. 그런 시간이 어느덧 170일이 넘어갔네요.

: 힘든 마음은 똑같잖아요. 다들 희망하죠. 상처가 치유되고, 쌍용차 동지들이 일터로 돌아가고, 우리도 성당으로 가고. 저도 사실 50일 넘어갈 때까지는 빨리 안정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많이 했어요. 미사로 뭔가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상황이 안정되고 편해지면 좋겠다, 하면서요. 스스로 조급해졌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100일을 넘기면서 인간적 기대감을 내려놓고 맡기니까 저도 오히려 편해졌어요. 제 고해성사를 해주시는 신부님께 어느 날 밤에 문자를 보냈죠. ‘신부님, 저는 최소한 2013년은 대한문에 봉헌했어요’ 하고요. 개인적으로 계획이 있긴 했지만, 2013년은 쌍용차 분들과 함께 가려고요. 아마 여기 오는 신부님들도 비슷한 생각일 거예요.

악몽 같았던 77일간의 파업,
‘산 자’와 ‘죽은 자’의 대립은 큰 상처로 남았다


: 이런 이야기는 여태껏 한 번도 직접 물어본 적이 없는데, 지금까지 싸워 오시면서 제일 가슴 아픈 게 어떤 거예요?

: 가슴 아프다기보다 가장 아쉬운 건 역시 77일간의 파업이죠. 저뿐만 아니라 파업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77일의 시간이 정말 악몽이었어요.

: 고립감이었어요?

: 아니요. 분노였어요. 그게 참 묘한데요. 처음엔 경영진이랑 싸웠잖아요. 나중엔 동료들의 배신에 대한 분노가 컸어요.

문제는 망원경이었죠. 제가 파업 과정에서 공장별로 소통을 하는 역할을 했거든요. 도장공장 옥탑에서 상황을 무전기로 주고받거나 망원경으로 보거나 하면서요. 상황이 긴박해지기 전에는 하루에 두세 번씩 전체 집회를 하면서 상황도 전하고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했죠.

그런데 회사가 6월 말경에 ‘산 자’(비해고자)들에게 계속 고용불안을 가중시키면서 압박하고 그들을 동원했어요. 어느 순간 그들이 쇠파이프 들고 서 있는 걸 망원경으로 본 거예요. 현장 관리자들을 중심으로 맨 앞줄에 세워놓았죠. ‘함께 힘을 모으자’고 했던 동료들이었는데, 그 배신감, 정말 오래 갔어요. 평택 구치소에 들어간 다음 몇 달 동안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렸어요.

: 그분들한테도 그게 똑같이 상처로 남아있겠네요. 동료를 배신한 상처.

: 그렇죠. 구치소에서 1년 있다가 나와서 처음으로 간 곳이 회사 정문이에요. 며칠 동안 아침마다 거기서 출근하는 비해고자들을 안아줬어요. 잘 지냈냐고 인사하면서. 당당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땐 참 어색해했는데 지금은 정문에서 만나면 ‘득중아, 고생한다. 같이 일해야지’ 그래요. 2011년 정도 되니까 나중에 송년회다 뭐다 할 때 저를 부르더라고요. 저는 이제 마음을 열었는데 상대는 마음이 아직 불편한 거 같아요.

: 맞아요. 그분들은 부담이 더 클 거예요.

: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그렇게 말해요. ‘우리가 경제적으로는 궁핍하고 어렵지만, 양심이나 도덕적으로는 당당하다.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한테 뭐라 하지 마라. 그 사람들도 안됐다.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는 게 우리 역할이다’ 이렇게요.

  ⓒ문양효숙 기자 [출처: 지금여기]

‘단결하면 승리한다’는 말, 책임지고 싶다

: 참, 지부장 선거는 언제예요?

: 오늘 6시까지예요. 혼자 나왔는데 설마 떨어지기야 하겠어요.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 큰 거리낌은 없었어요. 노조 조직실장으로 교육을 할 때도 그랬고 77일 옥쇄파업 중에도 ‘노동조합으로 단결하면 반드시 우리는 승리한다’고 늘 말했거든요. 그 말에 책임을 지고 싶어요.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피하지 않으려고요.

: 앞으로의 계획이나 전망은요?

김 : 쌍용차 이야기가 몇 년간은 묻혀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끝난 이야기였죠. 2012년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대한문에서 사회적 힘이 모이면서 정치권도 관심을 가졌고, 청문회를 실시하고 국정감사 약속을 받아냈어요. 2012년 하반기였죠.

하지만 지금 국정조사 약속은 폐기됐고, 극단적 투쟁을 하지 않으면 언론은 쌍용차 문제를 거론하지도 않아요. 해고 노동자들의 절박함을 점점 극단적으로 몰아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느낌을 받습니다. 절망을 안겨주는 정부예요.

어쨌든 회사가 흑자전환을 하면서 신규채용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사회적 합의 혹은 노-사의 극적 합의를 통한 복직은 회사로서도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 브랜드가치를 상승시키는 선택일거예요. 쌍용차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문제로 인식하는 시민들이 많으니까요.

또 하나, 전국에 흩어져있는 조합원들의 힘을 모으는 것도 중요한 일이에요. 다들 힘들잖아요. 답답함을 어디 가서 이야기하겠어요. 같은 조건에 놓인 동료들과 소통하는 길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이번 주 토요일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50시간 동조 단식단을 모집해요. 힘을 모아주시면 좋겠어요. 벼랑 끝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문제가 더 이상 길게 가지 않도록 말이에요.

: 정말 힘든 싸움이에요. 현 정국에서 중요한 사안이 참 많지만 당장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대한문이라고 생각해요. 노동문제는 사람 문제고 아주 구체적인 자리니까요. 여기에 오는 이들이 스스로가 그런 것들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현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많은 분들이 함께 기도하고 목소리를 모았으면 좋겠어요. (기사제휴=지금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