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금융자본주의, 어디로 가는가?

[주례토론회] 금융의 이중성과 자본주의의 미래


[편집자주-토론문]

금융을 바라보는 두 가지 일반적 시각, ‘기생성’과 ‘불안정성’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투기적인 금융자본에 대한 비판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었다. 이제는 보통 사람들도 금융의 투기적 성격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많이 갖게 되었다. 특히나 사회의 변화를 모색하는 운동주체들 사이에서는 더욱더 이러한 경향은 강해지고 있다. 그러한 인식들 중 한 가지로서 레닌의 ‘제국주의론’에 나오는 전통적인 시각이 있다. 바로 금융의 ‘기생성’이다. 금융이라는 것은 필시 실물영역에 근거해야하기 때문에 이들이 가져가는 “수익의 원천은 바로 실물영역에서 나온 것이다”라는 관점이다. 이것은 맑스의 자본론 3권 ‘이자 낳는 자본’에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부자본이 얻는 이자는 산업자본이 노동자들로부터 가져온 잉여가치의 일부를 분할 받는 것이다.

여기에 금융의 ‘불안정성’을 지적하는 시각이 있다. 포스트케인지언의 대표적인 스승인 민스키가 주장한 내용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금융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인 불안정성에 대해서 주목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이론적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도 굳이 이론적인 설명을 자세히 하지 않아도 금융이 가지고 있는 불안정성에 대해선 직관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다. 머나먼 나라에서 글로벌 경제위기를 고조시키는 사건이 터지기만 해도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출렁거리는 일을 흔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두 가지 시선, 즉 ‘기생성’과 ‘불안정성’으로 금융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 갑자기 이러한 질문이 떠오른다. 왜 이렇게 기생적이고 불안정한 뭔가가 전 세계의 경제 질서를 다스리게 되었을까? 이들에게 30년간이나 복종했던 전 세계인들은 과연 순진한 바보였나? 그렇다면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은 우리들의 무지 때문이었나? 그렇다는 답변을 내놓기엔 너무 허망하다.

그래서 금융의 여러 성격들을 ‘기생성’과 ‘불안정성’으로 설명할 순 있어도 그것이 금융의 본질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때론 금융이 안정적인 생산활동과 구매활동을 돕기 때문이다. 커다란 배를 만드는 조선업에서 선박금융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수년 씩 걸리는 생산작업에서 필요한 임금과 원자재를 조달하기 위해선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만 봐도 그렇다. 판매가가 100만원에 가까운 고가의 스마트폰을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건, 소비자할부금융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생산영역에 그리고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깊이 들어와 있는 금융을 ‘기생성’과 ‘불안정성’으로만 바라보는 건 일면적인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위기의 대안 모색에 있어 금융을 과소평가하거나 금융의 일부만을 통제하는 것으로 협소하게 만든다.

그래서 앞서 지적한 바처럼 생산일반에 내재화되어 있는 금융의 역할을 다시금 들여다보고, 과연 금융이 실물에 기생하면서 살아가는 부수물인지, 아니면 실물부문과 독립적이면서 재생산을 추동하는 고유한 영역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분석은 현재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가 어떤 영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위기대응을 시도할 것인지 혹은 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폭넓은 시각을 우리에게 제공할 것이다.

금융은 무엇을 ‘상품화’하는가?

이런 문제의식을 받아들인다면, 그동안 우리가 착목하지 못했던 금융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금융이 무엇을 ‘상품화’하고 있는지 궁금증을 갖게 된다. 먼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이라는 것이 뭔지 짚어보자. 흔히 시골장터에서 쓰다 남은 잉여물을 교환할 때 사용되는 재화도 상품이라고 말할 순 있으나, 자본주의적 사회에서 상품이라는 것은 생산성 즉 잉여가치에 대한 압박이 존재한다는 특징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러한 압박에 의해 발전이 추동되는데, 여기에는 개인의 발달 가능성도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 맑스는 상품화 과정은 개인의 소외의 측면도 있지만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발달의 측면도 있다고 보았다. 개인의 발달 가능성이 사회발전과 함께 존재하는 이유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분업체계에 의해서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거미줄처럼 얽힌 매듭의 하나로서 개인은 전체체계에 기여하고 도움을 받는다.

이로부터 우리는 상품의 사회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사회화라는 의미를 말 그대로 ‘개인이 알아서 그냥 하는 뭔가 비가시적인 무엇’이 아니라 집합적 관계를 통해 ‘나를 비롯한 타인으로부터 만들어지고 사회와 관계 맺는 것’이라고 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의 의미를 사회적 식별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존재로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식별과정은 상품의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세상엔 수많은 발명가들이 있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물건들이 모두 상품화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금융은 무엇을 ‘상품화’하는가? 맑스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자본론 3권에서 이윤을 분배받는 것으로 금융을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그가 설명을 단계적으로 확장시켜나가려는 의도에 의해 제한된 부분만을 설명하느라 그랬던 것이다. 그는 “금융은 기존의 상품영역을 확대시키거나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데에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자본론 2권에 나오는 이야기를 토대로 금융의 존재를 설명해 보자.

흔히 자본의 순환과 증식과정이라 일컬어지는 과정을 들여다보자. 투여된 자본으로 물건을 만들고 이것이 팔려서 다시 자본이 증식된다.(m-c-M) 여기엔 시간이라는 요소가 매우 중요하게 놓여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즉 자본이 증식되기 위해선 물건을 만들고 판매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장벽이 있다. 만약 만드는 과정에서 실패한다면 혹은 판매되지 않고 창고에 계속 쌓여 있다면 투하된 자본은 그냥 소비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자본가가 생각하는 비용은 100원에서 200원이 되기도 한다. 자본가의 그런 판단은 시간이라는 제약을 인간이 임의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당기간 동안 돈이 묶여 있는 걸 감내할 자본가는 그리 많지 않다. 만약 감당할 수 없으면 부도가 난다. 돈이 바로 바로 회전하는 대리운전과 물건 하나 만드는데 몇 년씩 걸리는 대규모 기간산업을 비교하면 이해되기 쉽다. 여기서 바로 금융의 필요성이 생긴다.

자본주의 생산의 무정부성에 의해 재고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데, 자본가는 여기에 묶인 돈을 회수하기 위해 이를 담보로 어음이나 채권을 발행하기도 한다. 그래야만 다음 생산에 투여될 자본을 만들 수도 있고, 밀린 임금과 자재대금을 치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대규모 신규투자는 이런 금융의 역할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은행으로부터 대규모 자금조달 없이 개인적인 돈만으로는 토지, 임금, 원료 대금을 모두 감당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이자 낳는 자본으로 금융의 성격을 규정하는 건 매우 협소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기존 상품영역을 확장하는 역할을 금융이 한다고 생각할 때, 무엇이 금융에 의해 상품화되고 있는지 따져볼 수 있다. 그것은 안전(security) 혹은 위험(risk)이다. 마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먹을 것을 구매하듯,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서 안전을 구매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현대인들 대부분은 연금이나 보험 한 두 개씩은 가지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금융상품들이다. 보험업의 발달은 원거리 무역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적 뿌리가 깊다. 선박금융도 마찬가지이다. 앞서 예를 든 재고물품을 담보로 한 어음이나 공장 부지를 담보로 한 채권 발행도 마찬가지이다. 실물에 묶여 있던 돈을 채권발행을 통해 회수하면서 위험(채권)을 팔고 안전(자금조달)을 구매한 것이다. 안전에 대한 구매대가로 약속한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그리고 위험을 구매한 상대방은 위험에 대한 대가로 이자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만약 위험이 현실화되었을 시 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위험을 계산해 내고 감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금융기법들이 개발된다. 가령 좁은 사이다병에 세숫대야로 물을 부으면 제대로 들어가는 물보다 낭비되는 물이 많은 것처럼, 위험성에 대해 지나치게 과민반응하면 필요이상의 비용낭비가 초래된다. 만약 커다란 깔대기가 있다면 필요한 양만 정확하게 병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80년 이후 등장한 각종 파생금융상품을 보면 모두 위험을 분산시키고 회피하기 위해 고안된 금융상품들이다.

앞서 언급했듯 ‘상품화’라는 과정을 사회적 식별과정이라는 보는 시각에서 해석해 볼 때, 상품화된 이런 것들의 과잉을 두고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경제학적 분석의 태도는 아니다. 그건 특정한 도덕적 규범의 문제일지 모른다. 오히려 금융에 의해 상품화 된 것들이 사회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식별되고, 앞으로 사회적 인간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분석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변모를 파악하는데 훨씬 유용할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금융광풍의 역사의 특수한 국면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기 금융시장 규모의 과잉팽창이나 파생금융상품의 폭증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와 금융시스템의 붕괴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금융이 일으킨 ‘상품화’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지배세력에 의해 설파된 금융규범(워싱턴 컨센서스)들은 모든 개발도상국이 따라야 할 경제 원리로 이식되었다. 또한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노동조건을 개선시키는 일보다 노후 대비를 위해 좋은 투자정보를 쫓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금융광풍의 몰락은 여기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었던 모든 이들을 경제적 몰락으로 함께 끌고 들어갔다. 그렇다면 과연 금융시장이 사라졌는가? 모두 알다시피 금융의 위세는 여전하고, 그리스의 채무위기 해결방식에서 보듯 금융에 의한 지배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모색 중인 자본주의 변화

그렇다면 앞으로 자본주의가 어떻게 변화할지 금융의 역할을 중심으로 가늠해 보자.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몰락한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똑같은 방식으로 다시 복귀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아직 파생금융상품 시장이 존재하기는 하나 2008년 이후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특히 문제가 되었던 구조화 채권의 발행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이젠 금융영역이 줄어들고 실물부문이 강화되는 추세로 자본주의의 변화가 생길 것인가, “미국 제조업의 귀환”라는 어느 신문 제목처럼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자본 중심의 자본주의가 다시 도래하는 것인가?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 등등은 자본의 이러한 요구를 그대로 반영한 표어다. 2차대전 직후 5~60년대 국가개입의 확대와 이를 통한 자본조달로 전후 황금기를 구가한 자본주의는, 1970년대 경기침체와 인플레라는 이중의 고통을 야기한 스태그플레이션을 낳았다. 이 위기 속에서 한동안 억압되었던 금융을 해방시켜 각종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하는 체제(신자유주의)로 변화시켜 냈듯이, 다시 자본주의는 새로운 시장개척을 위해 다양한 재원들을 동원하려 할 것이다. 물론 2008년 세계 금융공황의 파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이를 수습하고 엄청난 부채를 청산해 나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자본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자본 스스로도 답을 할 수 없는 혼돈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자본주의의 미래는 안전장치 없이 공중제비를 돌아야 하는 서커스단원처럼 위험천만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은 생산에 내재화된 방식으로 여전히 위력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자본주의의 미래를 엮어나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이는 신자유주의 하에서도 국가가 시장개입을 통해 자본의 위기조절에 앞장서는 것과도 같다).

동아시아를 생산기지로 하는 글로벌 공급사슬망은 이미 글로벌 금융을 내포하고 있다. 수출과 수입의 대금 결제를 위한 금융은 가장 기본적이고, 이자율과 환율변동의 위험을 다루는 금융기법은 제조업들에게 필수적인 사안이 된지 오래다. 초국적 기업들은 여러 군데 생산기지를 차려 놓고 재고관리와 재무관리를 한다.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선물가격에 의해 현물가격이 영향을 받는 일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세계시장이 축소되고 글로벌 생산이 다시 국지적 생산으로 후퇴하거나 금융제도를 국제적 차원에서 제약하는 초국가적인 뭔가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금융의 작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없다. 앞서 말한 대로 금융이 생산일반에 내재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금융이 자본을 조달하는 방식과 규모를 변화시키고 이를 통해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장 형성에 기여한다고 하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상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지식과 환경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지식과 환경 그 자체가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이것을 많이 혼동한다. 가령 어떤 지식이 있으면 그것이 상품화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규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을 위한 제도와 법이 필요하고, 상품화 된다고 할 때 그 가격을 책정하고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상품화의 과정은 사회적 관계를 바꾸는 것이다. 그것에서 실패하면 상품화가 될 수 없다.

이러한 제도적 규범을 새롭게 정립하려는 시도가 바로 미국과 유럽이 협상 중인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이다. 이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관세를 낮추는 게 아니다. 새로운 제도적 규범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이 규범이 다루는 영역엔 환경과 지식이 들어가 있고, 치열한 논쟁을 거쳐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규범이 왜 중요할까? 상품시장에서 유통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기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가령 새로운 환경기준에 따라 제품의 성분을 바꾸어야 하고, 건축물의 구조와 재질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는 이것을 상품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지적재산권을 담보로 활용할 수 있고, 이런 지적재산권은 규범에 의해 보호받는다. 앞으로 만들 수출상품과 대지에 지어질 신축건물이 이런 영향을 받아야 한다면 새로운 상품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상품화가 아주 잘 진행되었을 때를 가정한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성공이냐 실패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사후적으로 확인할 문제이다. 현재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마치 점쟁이처럼 풍월을 읊는 것 보다, 이러한 시도가 몰고 올 변화가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국제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일지, 이에 따른 작용과 반작용의 주체들은 어떻게 형성될 것인지, 새로운 사회화로 나아가는 토대가 되는 것인지 등등.

자본의 운동과 신용의 이중성

이러한 설명에 대해 혹자는 그것은 금융의 역할에 의한 변화가 아니라 실물영역에서의 변화 때문이 아닌가라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금융상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를 돕기 위해 상품화 된 ‘건강’을 예로 들어보자. 병원이 있고 그곳엔 각종 기계들과 서비스들이 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일하고 건강을 위한 각종 의료 제도들과 보험 상품이 있다. 이곳에 존재하는 산노동과 과거노동들이 결합되어서 건강과 의료라는 상품을 만든다. 마찬가지로 금융상품 중에서 펀드 상품을 예로 들면, 그것을 판매하는 은행이 각 지역마다 있고 판매를 독려하는 은행직원과 펀드자금을 관리하는 자산운용사가 있다. 이들은 사무실에 나와서 컴퓨터를 켜고 일하고 이러 저리 돌아다니며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한다. 이런 행위를 관리 감독하는 법적인 금융제도가 있다.

이 둘을 비교해 보면, 건강이 가치를 생산하는가라는 질문만큼이나 금융이 가치를 생산하는가라는 질문은 불필요함을 알 수 있다(이것은 사실 서비스업 전체가 마찬가지다). 가령, 자본주의 주류경제학의 메카이며 금융화가 잘 발달되었던 미국에서도 금융중개업의 GDP 기여도는 얼마 되지 못한다. 엄청난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는 한국도 국민계정에서 금융의 부가가치 창출비율은 GDP의 6.9%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경제학자들도 잘 알고 있듯이) 자산관리에 포함된 자금들은 모두 다른 이들로부터 이전받은 것이기에 이 규모만을 가지고 새롭게 만들어진 가치를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경제주체들이 이들에게 금융서비스를 의뢰하거나 자산관리를 의탁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건 이들이 가지고 있는 상품이 생산활동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실물적 가치를 낳는 존재인가를 따지는 문제보다 실물적 가치 형성에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따라서 보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가 금융을 통해 무엇을 상품(시장)으로 만드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이 과연 평균이윤율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인가하는 문제다. 앞서 말한 바처럼 자본의 활동공간이 넓어지면서 발생하는 리스크의 확대는 생산활동에 내재화된 금융을 추동한다. 그리고 추동된 금융은 식별된 리스크를 상품화하고 다시 생산활동을 촉진하는 도구로 쓰인다.

마지막으로 맑스가 자본론 3권 27장(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신용의 역할)에서 강조했던 지점을 다시 짚어보기로 하자. (1) 자본주의적 생산 전체의 기초를 이루는 이윤율의 균등화를 매개하기 위해 신용제도가 필연적으로 형성된다. (2) 유통비용 절감 (3) 주식회사의 형성 (4) 주식회사와는 별도로 개별자본가에게 일정한 한계 안에서 타인의 자본과 재산, 타인의 노동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나아가 신용제도의 이중적 성격에 대해서도 규정한다. “신용제도는 생산력의 물질적 발전과 세계시장의 창조를 촉진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새로운 생산형태의 물질적 기초로서 일정한 수준에서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역사적 사명이다. 동시에 신용은 이 모순의 격렬한 폭발, 즉 공황과 낡은 생산양식을 해체하는 요소들을 촉진시킨다. 그래서 신용제도에 내재하는 이중적 성격으로 인해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가는 이행형태를 구성한다.”

신용제도와 금융에 대한 이러한 맑스의 통찰은 실물과 금융의 이분법에 사로잡힌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금융자본의 부패로 인해 자본주의가 스스로 자멸할 수밖에 없다는 관념론과 자동붕괴론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촉구하면서, 현 단계 자본주의의 변화에 대한 금융의 역할에 대해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시들해진 창조경제에 대해서 왈가불가할 필요는 없겠으나, 이들이 기획했던 ‘창조금융’의 방향성과 역할에 대해 별 볼 일 없는 기생적 존재로만 평가하는 건 진지한 자세가 아닐 듯싶다. [토론문 끝]

* 발제자와의 협의에 따라 발제문은 생략합니다.
태그

신자유주의 , 경제위기 , 맑스 , 자본론 , T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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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들[금융자본]이 실물적 가치를 낳는 존재인가를 따지는 문제보다 실물적 가치 형성에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생산에 내재화된 방식으로 작용하는 금융에 대한 분석의 의의를 강조하더라도, (국독자론의 단계론적 함의가 없는) 금융의 가치 창조에서의 기본적인 기생성을 부정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즉 위 인용문의 두 문제는 동등하게 중요한 것으로 취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송명관

    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 발제자도 기생성을 부정한다기 보다는, 금융을 분석할 때 기생적 성격에 너무 경도되었던 기존 시각들을 비판하기 위해서 약간 막대구부리기를 한 것이 아닌가 판단됩니다. 본인도 발제하면서 그렇게 말했고요. 다음 발제를 해주실 김성구 교수님께서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 뭔가 좋은 말씀이 있으실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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