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경찰의 여성인권 침해 부추겨” 논란

서울중앙지법, 경찰의 기륭 성희롱 대법판결 뒤짚어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를 경찰이 성희롱했다고 인정한 대법원 형사판결이 나온 지 불과 1년여 만에 서울중앙지법 민사재판부가 같은 사건에 대해 ‘경찰이 성희롱을 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정반대 판단을 내려 파란이 일고 있다.

통상 형사사건 판결에서 인정한 사실은 민사사건에서도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민사재판부는 사건 당사자 진술 등 증거를 종합해 볼 때 ‘대법원의 사실 인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0년 4월 6일, 기륭전자 노사 간 폭행사건을 조사받던 박 모 씨는 용변을 보는 도중 동작서 조사담당 형사가 화장실 문을 열어 ‘동작서 성희롱’ 논란이 일었으며, 박 씨는 경찰에 항의하다 실신해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박 씨를 비롯한 노조와 시민사회는 동작서 앞에서 성희롱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동작서 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허위사실 유포로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검찰에 박 씨를 고소했다.

그러나 2012년 6월 14일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검찰이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박 모 조합원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인정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당시 법원은 “박 씨가 상당한 수치심을 느꼈을 것임이 경험칙 상 명백하다”며 “피해자(김 모 형사)의 진술들을 신뢰하기 어렵고, 달리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당시 재판과정에서 검찰은 ‘경찰 조사를 받게 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가 있다’는 보도자료를 언론에 유포했으며,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연합뉴스> 등의 언론사는 성희롱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켜 보도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박 씨는 작년 9월 김 씨를 상대로 ‘성희롱과 무고, 형사재판에서의 위증’ 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민사6단독(판사 심창섭)은 ‘김 씨가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박 씨가 옷을 벗고 용변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김 씨가 박 씨를 성희롱했다는 주장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고 17일 밝혔다.

심 판사는 ‘박 씨가 경찰에 적개심을 품고 거짓 항의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여성 피의자가 옷을 입은 채 전화를 하고 있었고 화장실 문을 약간 열어둔 상태에서 남성 경찰관이 무엇을 하는지 확인하려고 문을 약간 더 열었다면 성적 수치심이 있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박 씨의 형사재판에서 “화장실 문에 손댄 사실이 없다”고 한 김 씨의 위증은 인정해 박 씨에게 위자료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기륭분회 김소연 전 분회장은 “저희가 아직 판결문을 받아보지는 못했고, 위증만 인정됐다 들었다. 그런데 판결내용이 이정도 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인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존중하지 않은 판결”이라고 규탄했다. 김 전 분회장은 “대법원까지 가는 동안 재판과정에서 피해자가 굉장히 힘들어했다. 이미 수차례의 검증과정을 거쳐 대법원이 성희롱을 인정했던 판단을 외면한 이번 판결에 여성단체들과 대응을 준비 중이다”고 밝혔다.

기륭공대위에 참여했던 여성단체 관계자 역시 이번 판결에 대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며 “인권을 보호해야하는 법원과 경찰이 외려 여성노동자의 인권침해를 부추기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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