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동자는 왜 50M크레인에 올라갔나

건설노동자 피 빨아먹는 시다오께(하도급업자)의 정체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 1002번지, 동화주택 공사현장에는 50m 상공에 사는 사람이 셋이나 있다. 50m 높이의 타워팰리스에 사는 게 아니다. 좁은 출입문, 구멍이 숭숭 난 바닥과 안전장치 없는 난간에 비닐조각에 의지해 움막을 틀었다. 그곳엔 평생 고층 아파트 수십 개를 만들고도 정작 그 아파트 안에 들어갈 수 없는 건설노동자가 있다. 그들은 하늘을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왜 그곳에 올라갔을까.

한국노총-민주노총의 땅따먹기?
건설노동자 피 빨아먹는 시다오께(하도급업자)의 정체


동화주택 공사현장 50m크레인에 오른 이는 민주노총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권오준 수석부지부장, 박경태 금호지구장, 배진호 조직부장이다. 10일 배진호 조직부장이 크레인에 올라 농성을 시작했고, 권오준 수석부지부장, 박경태 금호지구장이 14일 크레인에 올랐다.

  50m크레인 농성에 돌입한 건설노동자. 왼쪽부터 박경태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금호지구장, 권오준 수석부지부장, 배진호 조직부장

크레인에 오른 노동자의 요구는 “어용노조 해체”와 “단체협약 이행”이다. 건설노조는 지난 8월 동화주택 건설 과정에서 토목 공정을 담당하는 ㈜석종건설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단체협약 내용은 ▲(건설노조 이외) 여타 어떠한 단체도 교섭단체로 인정하지 않음 ▲작업자 채용 시 조합원을 우선 채용 ▲지역노동자를 80% 이상 직고용 한다는 것이다.

토목공정을 책임지는 건설노동자는 팀을 이뤄 일한다. 그래서 노조는 팀을 이뤄 토목공정에 참여하고자 했다. 그러자 석종건설 관리자는 이것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회사가 원하는 인원을 배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노조는 이를 거부했다. 회사 마음에 드는 노동자만 쏙쏙 골라내서 고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단체협약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9월 25일 석종건설은 한국노총 영남건설노조 소속 노동자를 12명 공사현장에 투입했다. 그러면서 기존에 일하던 건설노조 소속 노동자와는 일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송영규 석종건설 이사는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우리는 상관없다. 회사 차원에서는 일만 잘하면 된다. 일 잘하는 사람을 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에서는 회사의 인사권까지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영규 이사는 “단체협약을 맺었다고 하는데, 현장 담당하던 직원이 노조의 압박 때문에 일반이사가 도장을 찍은 것이다. 대표이사가 직인을 찍은 것이 아니라서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에 이길우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장은 “회사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만 일 시키면 단체협약이 무슨 소용이 있나. 그리고 이들은 건설노동자 피 빨아 먹는 시다오께(하도급업자)”라고 반박했다.

건설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기 전까지 건설현장은 일명 시다오께인 팀장이 전문건설업체로부터 도급을 받았다. 가령 회사가 10명으로 이루어진 팀의 팀장에게 인원수에 곱해서 임금 전체를 지급하면 그 임금을 팀장이 다시 노동자에게 지급한다. 팀장이 노동강도와 임금까지 다 결정한다. 팀의 규모가 더 커지면 팀장은 일하지 않고, 중간에서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임금을 떼먹는 일이 부지기수다. 또, 회사가 원하는 작업량을 맞추기 위해 노동강도를 높이는 역할도 한다.

건설노조는 이러한 관행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팀장과 건설기능공 임금을 정해 단체협약을 맺었고, 중간에서 노동자 임금을 착복하는 팀장이 있으면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없도록 했다. 이런 규약을 어긴 팀장 몇몇이 건설노조에서 쫓겨난 일도 있었다.

동화주택 현장에서 출발한 한국노총 영남건설노조는 이런 시다오께가 주축이다. 건설현장의 오래된 관행인지라 신생노조 측은 다르게 설명한다.

전광식 영남건설노조 사무국장은 “우리는 시다오께가 아니다. 민주노총이 독선적으로 운영해 현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있다. 먹고는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고용권은 회사 고유권한인데 노조에서 너무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광식 사무국장도 이전에는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이었다.

이길우 지부장은 “하도급을 통해 노동자 임금 떼먹는 관행을 유지시키려는 자들이다. 그걸 못하게 하니 쫓아냈다고 말한다”며 “회사는 하도급업자를 통해 공기를 단축시키고 노동강도를 높인다. 하도급업자는 회사가 원하는 바를 도와주면서 고용권을 쥐고 노동자 임금을 떼먹는다”고 말했다.

영남건설노조 부위원장은 석종건설 전 이사인 문대권 씨가 맡고 있다. 노조가 설립한 시기도 동화주택 현장에 투입된 26일 전날인 25일이다. 또, 취재를 위해 함께 만난 송영규 석종건설 이사와 전광식 영남건설노조 사무국장은 서로 의견에 지지를 보냈다.


‘노조파괴 시나리오’ 가동한 창조컨설팅과 복수노조
민주노총, 민주노조 지키기 위한 전면적 투쟁 나선다


2009년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를 시작으로 상신브레이크, 유성기업, KEC 등 주로 금속노조 사업장에서 기존 노조를 와해하고 제2노조를 설립하는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노무법인 창조컨설팅과 회사, 관계기관들이 협력해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가동된 정황이 국정감사 등을 통해 밝혀졌다. 이 시나리오는 파업유도, 직장폐쇄, 제2노조 설립, 노동조건 후퇴 순으로 진행됐다.

동화주택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이 같은 시나리오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지난해와 올해 파업을 통해 대구 전역의 주택 건설 현장에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2000여 명에 달하는 조합원의 규모로 성장한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는 건설업체의 이윤 남기기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됐다. 그동안 높은 강도 노동을 통해 공기를 단축시켜 이윤을 남겼던 건설업체는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며 노동강도를 낮추는 건설노조의 투쟁이 달갑지 않았을 테다.

건설노조의 농성 이후 동화주택은 조합원 100여 명에 대해 업무방해로 고소고발했고, 이길우 지부장을 포함한 간부 8명에게 손해배상 가압류를 청구했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소속 단위사업장 노동조합은 이를 건설노조만의 문제가 아닌 민주노조 탄압으로 규정했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는 17일 오전 10시 동화주택(대구 중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노조 사수 투쟁에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권택흥 대구지역일반노조 위원장은 “건설노동자와 일반노조 소속 조합원의 생존권은 다르지 않다. 일반노조가 올해 대학청소노동자 공동파업을 통해 단체협약을 맺고 나니 한국노총이 만들어졌다”며 “회유방식도 조합비를 낮춰 주겠다, 집회를 안 가게 해주겠다 등이었다. 석종건설을 배후조종해 민주노조를 탄압하는 동화주택에 맞서는 건설노동자의 싸움에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송찬흡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기계지부장은 “아파트 현장에서는 불법이 난무한다. 이 불법을 저지르는 데 필요한 것이 하도급업자들이다. 영남건설노조는 노동자들이 만든 노조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한국노총 대구지역본부 관계자들도 영남건설노조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하더라”며 “동화주택과 석종건설이 건설노조를 우습게 봤다”며 전국건설노조 차원의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다.


건설노조 “시다오께 노조 내세워 숨은 전문업체, 어용노조 해체시키자”

17일 오후 1시 30분 건설노조는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건설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단체협약 이행”과 “어용노조 해체”, “불법하도급 중단”을 촉구했다.

이길우 지부장은 “고공농성 8일차를 맞아 오늘 아침 7시, 우리는 이번 투쟁 새로 결의하며 총파업까지 결의했다. 대구 원청사 협의회가 구성돼 건설노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시다오께 내세워 노조를 만들고 전문업체들은 뒤로 숨었다”며 “사측은 우리가 흩어지길 바라고만 있다. 여기 조합원 한 명도 이탈하지 않고 2000명 다 같이 모여 승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성열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장은 “건설현장에서 한 늙은 노동자가 아들과 같이 일하다 아버지가 흘린 땀 보고 학교를 그만두고 현장에서 일한다고 한다. 나도 건설노동자 아들이다. 30년 목수로 일한 아버지는 자신의 이름으로 집을 사지도 못했다. 건설현장에서 수많은 집과 아파트를 지었어도 돌아오는 것은 가난과 멸시였다”며 “우리도 노동자, 인간답게 살아야한다”고 호소했다.

결의대회를 마친 이들은 동화주택 본사를 거쳐 청구네거리까지 행진을 이어갔다.
덧붙이는 말

천용길, 박중엽 기자는 뉴스민 기자이며 이 기사는 뉴스민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작성한 글에 대해 동시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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