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3대 부채위기,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주례토론회] ‘재정위기’라는 잘못된 과녁과 부채위기의 극복 방향

국가부채 1000조? 1600조?...잘못 날아간 화살

갑자기 국가부채 액수가 얼마냐를 가지고 국감장이 시끄러워졌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22일 역대정권이 쌓아 올린 국가부채의 투명한 내역 공개를 주문하면서 국가부채의 해결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야당을 비롯한 비판적 시민단체에서는 복지공약파기로 궁지에 몰린 대통령이 국가부채를 빌미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런데 비판의 초점이 국가부채의 액수에만 맞춰지다 보니, 오히려 대통령의 꼼수에 길 터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우려마저 든다. 그래서 우리는 박근혜 정부가 복지공약 파기와 예산 감축에 대한 정치적 탈출구를 ‘재정위기론’을 지렛대 삼아 모면하려는 의도에 대해서 경계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1000조니 1600조니 하는 숫자를 강조하는 야당 국회의원들의 화살은 과녁을 잘못 겨냥했을 땐, 오히려 재정보수주의자들의 농간에 힘을 보태주는 꼴이 될 공산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재정위기론’이 실체가 없는 허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유럽의 재정위기 국가들처럼 수년째 국가파산이라는 공포에 노출된 나라들이 분명 있다. 심지어 미국마저도 부채한도증액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 연방정부가 폐쇄되는 수모도 겪었다. 우리나라도 인천처럼 재정위기에 빠진 지방정부나 LH와 같은 공기업 등의 부채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온 지 꽤 오래됐다. 이들은 재정위기 해법에만 수년째 골머리를 앓고 있고, 앞으로도 해결방법이 난망하다. 그렇다보니 공공기능은 현저히 떨어진 채, 자산매각과 재정긴축에만 몰두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재정위기론’의 선동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국가부채위기의 진실을 지적하기 위해선 더욱 비판의 칼날을 예리하게 세워야만 하는 것이다. 이번 주례토론회에서는 가계, 기업, 정부의 부채위기를 각각 진단하고 경제위기 가능성과 ‘재정위기론’의 진실에 대해서 짚어보고자 한다.

일반정부부채보다 공기업부채가 더 큰 유일한 나라 한국



[출처: 기획재정부]

내년부터 국제기준에 맞게 공공부채가 새롭게 산출된다. 그런데 공기업부채가 일반정부 부채보다도 더 많은 까닭에 공공부채규모는 부쩍 늘어 GDP 대비 75%를 넘는다. 작년까지 35%정도라고 자랑하던 MB정부의 주장이 무색해진다. 공기업부채가 최근 갑자기 늘어난 이유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침체된 경기를 부양시키는 도구로 공기업이 활용됐기 때문이다. 이미 많이 알려진 4대강 사업 말고도 다른 중앙공기업과 지방공기업들의 각종 토목건설 사업이 부채증가의 커다란 요인이었다. 공기업의 특성상 채무보증을 정부가 하도록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사실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부채가 국가부채라고 칭해야 옳다.

문제는 이렇게 갑자기 늘어난 공공부채의 액수에 놀라다 보니 부채 감축 논리만 횡행할 뿐, 부채가 왜 생겼는지 부채감축을 위한 접근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논의가 제대로 못 되고 있다. 가령 코레일의 부채의 상당 부분은 철도청 시절 KTX 건설사업에 들어간 정부부채가 공기업으로 전환하면서 넘어간 것이다.(코레일 4.5조, 철도시설공단 6.8조) 이건 마치 부모 빚을 떠안게 된 출가한 자식과 같은 신세인데, 심지어 수요예측에 실패해 적자만 쌓여가는 공항철도마저 떠안느라 1.2조나 더 빚지게 되었다.

공공부채를 바라보는 관점

그런데 생각해 보면 LH, 한국전력, 수자원공사, 코레일 등이 가지고 있는 이런 대규모 시설들은 부채를 일으키지 않고서 온전히 세금만으로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갑자기 세금을 10배 올리거나, 수년 동안 세금을 안 쓰고 모았다가 사업을 벌일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채권(공기업채, 국채)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원금과 이자 상환을 위해선 다시 팔아서 갚든, 엄청난 고수익을 내서 갚아야 하는데, 이건 마치 일반 사기업과 같은 대응이다. 하지만 수 백조에 이르는 그 엄청난 원금을 보상해줄 민간자금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애초 공공사업이라는 취지도 무색해진다. 수익성이 안 맞아서 다시 팔 거였다면 굳이 국가가 나서서 세금까지 들여 지을 이유는 없었다. 수익성과 달리 공공성이 중요한 사업근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부채로 인한 경영압박에 내몰리게 되면 수익사업에 목을 매는 사기업처럼 되든가, 재무개선을 위해 자산매각에만 몰두하게 된다. 이것도 마땅치 않을 경우 부분적이든 전면적이든 민영화(사영화) 단계에 빠지게 된다. 심지어 MB정부 시절엔 인천공항과 같은 우량공기업을 비싸게 팔면 국가재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논리마저 등장했다. 민영화가 쉽지 않은 경우는 정부가 지급보증을 통해 채무상환을 연장해주든가 세금으로 메우게 된다. 실제 이번 국감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정부가 부채를 지급 보증하는 손실보전 공공기관의 부채는 2008년 대비 약 96% 증가한 270조 원 가량 된다. 이는 현재 추정하고 있는 공공기관 총부채 588조 원의 45%를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손실보전기관에 해당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138조 원), 한국정책금융공사(49조 원), 한국수출입은행(46조 원) 등의 부채규모는 해마다 늘고 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부채축소를 전제로 공공사업을 벌인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 중요한 건 부채를 통해 만들어진 공공자산이 그 이상의 국민후생효과를 가질 수 있는가이다. 도로, 항만, 댐, 다리, 공항, 철도 등의 공공교통수단이나 공공목적으로 지어진 주택, 학교, 병원 등에서 발생한 부채에 대해서, 마치 원금상환을 대비해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개인부채와 동일하게 바라보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경남의료원 폐쇄, 철도민영화, 산업은행과 우리은행 민영화 논란에서 불거지는 공공부채감축 논리는 일의 우선순위를 거꾸로 둔 결과이다. 오히려 4대강 사업처럼 쓸모없는 퇴물이 될 사업들을 정밀 조사해 당장 중지시키거나 추가비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변경해야 한다. 가령 전력민영화를 전제로 만들어진 전력거래소는 전력원가를 상승시키는 역할만 할 뿐 어떤 후생효과도 없다. 전력 요금 현실화를 운운하기 전에 원가 현실화가 절실할 뿐이다.

그런데 공공부채의 총액만을 강조하다보니 부채축소에만 몰두하는 절름발이 공기업으로 전락하거나 민영화와 구조조정처럼 책임을 국민들과 공기업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정책만 난무하게 된다. 문제는 공공기능을 유지하면서 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데, 논점은 바로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채권시장에 의존하는 공공부채

앞서 지적한 바처럼 공공부채를 원천적으로 축소할 수 없다면, 차환(빚 갈아타기)을 위해 다시 채권을 발행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이자지급을 위해 더 많은 빚을 내야만 한다. 이런 사업이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고 해마다 크든 작든 지속적으로 벌어진다면, 부채규모는 계속 늘어나게 되어 공공부채는 사실상 유지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현재 30개 주요 공기업들이 매일 부담하는 이자만 150억이다. 이렇게 공공부채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방만한 사업방식에도 문제가 있지만, 공공자산을 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한 자금조달을 채권시장에 의존해야만 하는 구조적 요인 때문이기도 하다.


위 그림에서 보듯, 채권시장에 의존하게 되면서 세금으로 이자를 지급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구조에 80-90년대부터 일찍부터 노출되었던 일부 OECD 나라들은 정부 예산의 20% 이상을 국가 부채의 원리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이는 국내총생산의 3~5%에 해당된다.

우리라나도 2012년 12월 24일 기획재정부가 공식 발표한 일반정부 부채는 총 468조 6천억 원인데, 이 중 순채무는 175조 3천억 원으로 5년 전에 비해 100조 6천억 원이 늘었다. 그런데 국가 채무에 지급하는 이자는 5년간 누적 금액이 98조 3천억 원이나 증가했다. 순채무 증가분의 대부분이 이자 지급에 소모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셈이다. 이러한 결과는 빚을 돌려 막다 원리금이 점점 늘어나는 과다 채무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런 구조적인 자금조달 과정에 대한 변경 없이는 공공사업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부채관리조차 힘들다. 더구나 앞으로 소요될 복지재정의 증가분을 이런 식으로 조달한다는 것은 ‘복지망국병’을 외치는 보수주의자들의 공격에 딱 좋은 먹잇감을 던져줄 뿐이다.

중앙은행 독립...약인가, 독약인가?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2001~2010년 중 정부 부채 증가분 260조 7천억 원 중에서 46.2%는 외화 자산 매입을 위한 기금 등으로서 120조 5천억 원이다. 이는 환율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금융성 부채이다. 외환 위기 이후 2010년 현재 8배 가까이 증가했다. 외환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금융성 부채가 늘어가고, 이자를 갚기 위해 매년 국민 세금으로 메우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부실기업 청산에 필요한 공적 자금이나 정책금융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금융성 부채도 꾸준히 증가했다.

이런 금융성 부채를 조달하는 목적이 거시적인 금융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함이라면, 굳이 채권시장에 의존하는 방식을 취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심지어 적자성 채무처럼 쓰고 없어지는 부채가 아니라 다른 외화자산을 매입하는 금융성 부채라면, 한국은행을 통해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면 왜 안 되는가?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거론하면서 반대하는 시각이 있는데, 사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경제원칙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 이후 구제금융의 대가로 자본시장 개방과 중앙은행 독립성을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중앙은행을 통한 자금조달 방식을 금기시하게 되었으나, 노무현 정부시절에도 39조원을 빌렸었다. 그리고 최근 박근혜 정부도 67조원 가량을 한국은행으로부터 조달했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금융질서를 위협하는 행동이니 뭐니 하면서 정치적 공격을 하는데, 박근혜 정부가 싫은 것과 공공부채 조달방식의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 중요한 건 공공자금이 헛되게 쓰이는 걸 막아야 하는 것이지, 경제원칙에 있지도 않은 중앙은행 독립성을 껴 맞추는 건 아니다.

만약 중앙은행 독립성에 따라 중앙은행을 통한 자금조달 방식이 하지 말아야 할 원칙이라면,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국채와 모기지 등을 매입하여 자금을 공급하는 양적완화가 어떻게 6년째 진행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 스스로 비전통적이라 칭했던 정책이 이젠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정책이 되었으며, 시장은 양적완화 중단이 아닌 단지 축소라는 소식에도 화들짝 놀라 휘청거리는 형국이다. 미국, 일본, 영국, 유럽은 되고 다른 나라들은 안 된다는 원칙이 있단 말인가? 이는 기본적인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더 나아가 일반적인 공공부채를 조달할 때조차도 국민후생을 위한 절실한 사업이라면 중앙은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과거 산업화 시기 민간자본이 부족한 상태에서 정부는 채권시장이 만들어지길 앉아서 기다리진 않았다. 바로 중앙은행을 통한 국채매입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했고, 기간산업을 만들었다. 혹자는 이런 방식이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국민들을 고생시켰다고 말하지만, 산업적 성장기 국면에서 일정정도의 인플레이션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풀린 돈이 국민들의 호주머니로 골고루 돌아가지 못했던 경제적 독점과 불평등이 문제이지 자금조달 방식이 문제인건 아니다.

금융권력의 선봉대, 국제신용평가사

그런데 현실에서 공공부채의 자금조달 방식을 가로막는 건 ‘중앙은행 독립’이라는 허울만이 아니다. 바로 국제신용평가사로 표현되는 ‘금융권력’이 있다. 앞의 그림에서 보듯, 채권시장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에서는 이들은 국가를 초월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민간기관인 국제신용평가사들은 국가의 신용등급을 결정하고 사실상 국채금리까지 좌지우지한다. 이들의 신용등급 평가항목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국가의 신용등급은 가차 없이 하락하게 되고 국채금리는 치솟는다.

최근 유럽의 경우만 봐도 이들의 말 한마디가 한 나라의 경제를 들어다 놨다하는 예는 무수히 많이 보아왔다. 결국 국가가 일개 금융사기업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꼴인데, 낮은 금리로 공공부채의 차환발행을 지속하기 위해선 이들이 정한 평가항목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국제금융시장의 구조이며 힘의 관계이다. 경제원칙이 아닌 ‘금융권력’이 지배하는 시장논리의 힘이 우릴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마치 신용대출을 받으려는 개인이 신용조회와 평가를 통해 1등급부터 10등급까지 순위가 매겨지는 것과 같다. 이 평가방식과 과정에 대해서 개인이 개입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리고 등급에 따른 대출금리를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국가가 그런 신세인 셈이다. 그래서 외환보유고를 쌓기 위해 항상 안달이 나 있고, 정부부채를 관리하기 위해 철도처럼 공기업으로 부채를 떠넘기기도 하고, 4대강 사업을 위해 수자원공사에게 8조원의 부채를 밀어 넣기도 한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이 설파하는 균형재정 논리나 부채관리에 대해 마냥 이념적인 논리로 대응하기 힘든 곤란함이 있는 것이다. 바로 그들의 논리 뒤엔 국가권력을 초월한 국제금융권력의 힘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과 대항하기 위해서는 왜 2008년 금융위기가 국가부채위기로 전이되었는지 따져보고, 현재 공공부채의 자금조달 방식이 위기전이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짚어야 한다.

지금의 부채문제는 일국적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금융시장을 통해 통제되는 글로벌 쟁점이며, 우리가 이미 여기에 목줄이 잡힌 이상 이를 뿌리치기 위해선 더 큰 거시적 쟁점을 건드리고 국제금융권력의 지반을 흔들어야 한다.

이건 유럽의 채무위기를 보면 쉽게 이해되는데, 2010년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움츠려 들었던 ‘금융권력’이 다시 주도권을 쥐기 위한 반격의 해였다. 그리스를 제물삼아 재정위기로 모든 시선을 끌어당겼고, 2011년부터 벌어진 미국의 부채한도 증액문제를 계기로 경제위기의 모든 쟁점을 ‘재정위기론’으로 옮겨버린 것이다. 이 선공에 국제신용평가사가 앞장섰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재정위기론’은 그 실체를 떠나 매우 잘못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세워진 과녁이라고 칭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위기를 과대 포장하는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이 여기에 의도하지 않게 공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쪽 눈을 감고 있는 ‘관치금융’ 논리

이런 잘못 세워진 ‘재정위기론’과 함께 잘못 사용되는 관념이 있는데, 바로 ‘관치금융’이다. 앞서 지적한 박근혜 정부가 한국은행으로부터 67조 원을 빌렸던 방식을 두고 중앙은행 독립성을 해치는 ‘관치금융’이라 비판하는 일부 시각에서 이런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관치금융’이라는 말은 지난 산업화 과정에서 부패한 관료와 재벌 간의 결탁에 의해서 자금 공급이 왜곡되었던 어두운 그늘을 지적하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이 말은 마치 원래 금융이라는 것이 시장논리에 봉사해야만 한다는 것으로 와전되어 있다. ‘관치금융’이라는 말이 경제원칙과도 맞지 않다는 건 신문기사에 오르내리는 문구만을 봐도 알 수 있다. 우리은행 민영화를 외칠 때는 ‘관치금융’을 운운하다가도, 부도위기에 몰린 STX 구제금융이 필요할 땐 ‘신속한 정부개입’을 외친다.

이러한 역설이 벌이지는 것은 금융의 역할이 위기대응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손실의 사회화’를 매개하는 중요한 고리이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과정과 이후 재정위기로 전이되었던 국가들을 보면 대부분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바로 개인부채가 위기가 심화하면서 은행을 비롯한 금융부문위기로 옮겨갔고 이를 구제하기 위해 정부부채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과거의 금융위기의 사례에서도 대부분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관치금융’이라는 말은 위기가 심화되면 갑자기 뒤로 숨어버리고 만다. 누군가 나서서 사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 해결사는 긴급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정부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곤 사태의 원인과 책임을 묻기도 전에 부실은 모두의 잘못과 모두의 책임으로 둔갑된다. 이것이 바로 한쪽 눈을 감고 있는 ‘관치금융’ 비판의 실체다. 이런 허약한 비판의식으론 위기의 분석도, 올바른 대응방안도 마련할 수 없다. 공적기능이 매우 강한 금융은 민주적 통제에 의해 강력하게 다스려져야 할 대상이며, 올바른 ‘관치’가 정답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은행은 민영화할 대상이 아니라 국영은행으로서의 민주적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

민간부채 위기는 국가부채 위기로 전이 된다

이렇게 금융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모든 경제위기가 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위기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부채의 위기를 이야기하기 전에 은행위기를 지적해야 하고 그러한 금융위기를 증대시키는 실물부문의 위기를 분석해야 한다.

[출처: 박양수·손종칠, <부채 경제학과 한국의 가계 및 정부부채>, 한국은행, 2012. 4.]

위 그림에서 보듯, 민간부문이 부채 위기는 위기가 격화되면 정부부채로 옮겨간다. 그 이유는 현대 자본주의의 체제가 은행을 중심으로 한 관리통화제도 하에서 돈이 돌기 때문인데, 이 돈은 모두 신용창조 즉 부채를 통해서 만들어진다. 당연히 채무불이행이 벌어지면 은행위기로 전염되고 급격한 금융경색 현상이 벌어지면서 위기는 실물부문으로 급속히 퍼지게 된다.

은행을 통한 자금조달 시스템이 한편에서는 원활한 자금공급을 통해 생산 활동을 돕지만 반대급부로 채무불이행이 크게 벌어지면 위기는 전반적인 영역으로 급속하게 전이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는 모두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위기를 반드시 동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모든 역량을 동원해 은행위기를 막기에 나서게 되고, 이로 인한 부채를 모두 떠안게 되는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지난 2008년 금융위기에서 중심부 국가들이 해결해야만 했던 은행부실 규모는 엄청났다.



한국의 민간부채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우리가 직격탄을 맞지 않았던 이유는 중심부 국가들처럼 은행이 파생금융상품에 적게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요동쳤지만 연쇄적인 채무불이행에 의한 은행위기 가능성은 적었다. 그래서 달러스왑으로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면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산업은행의 리먼브라더스 인수 파동을 회상해 보건데, 안이하고 잘못된 판단이 우리나라 경제를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음을 곱씹어야 한다. 만약 당시 산업은행이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했다면, 그 손실을 메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엄청난 국가적 고통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08년 금융위기를 반면교사로 삼는다고 할 때, 현재 우리에게 닥쳐올 부채위기는 어디서 시작할지 바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부동산거품붕괴로 인해 위기가 누적되고 있는 가계부채다. 그리고 회복기미를 보이지 못하는 건설, 해운, 조선 산업 등의 부실기업부채다. 이것은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채무위기국가들의 대부분이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이와 관련된 산업이 몰락하면서 연쇄적으로 위기가 심화되었던 경험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미국, 아일랜드, 스페인 등은 부동산 거품이 위기 원인이었고, 그리스는 해운, 선박금융의 거품이 위기의 기폭제였다.

  가처분소득대비 이자지급, 가처분소득대비 가계부채, 금융자산대비 금융부채, 주택 매매가격 등락률, 일반은행 가계대출 연체율, 가계대출 비은행 비중 등 여섯 가지 지표를 종합하여 산출한 지표.

위 표에서 보듯이 2013년 현재 가계부채 위험 수준이 2000년대 초 카드사태보다 훨씬 높으며, 이런 추세대로라면 내년엔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건 앞으로 닥칠 주택담보대출의 부채상환 규모를 예측한 자료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013년 현재 일시상환과 분할상환 거치기간 종료로 상환압박을 받고 있는 주택담보대출의 부채규모는 105조 원 가량 된다. 이는 작년 76조 원에 비해 50%가량 급증한 규모이다. 이는 최대한 만기를 연장하거나 일시상환을 분할상환으로 갈아타는 정책을 통해 위기를 지연시키는 과정에서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2015년이 되면 일시상환과 거치종료로 인한 상환압박에 몰린 채무규모가 180조를 넘게 된다. 문제는 현재 가계가 가지고 있는 자산은 대부분 주택과 같은 실물자산이라 처분하여 빚을 갚는데 커다란 장애가 있다는 점이다(한국의 가계자산에서 실문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80%가량 되는데, 이는 미국과 일본의 35%대 수준과 비교할 때 매우 높다). 그래서 정부가 그토록 주택매매 활성화에 목메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의 장기적인 하락 추세는 수년째 계속 되고 있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 없는 서민들이 수 억 원이나 빚내서 집을 산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부채가 만기연장과 이자지급만으로 안정화 될 수 없는 현실에 있다. 이는 최근 부채가 증가하는 요인을 분석한 자료로부터 알 수 있는데. 생활자금을 메우기 위한 부채가 급증하고 있으며, 은행권에서 돈을 빌리지 못해 비은행권으로 몰리는 현상이 매우 뚜렷하게 드러난다. 은행권의 건정성 강화 방침으로 인해 은행연체율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지만, 오히려 채무자들은 빚을 돌려막기 위해 금리가 높은 비은행권으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저금리 정책으로 이자 갚는 수준에서 수년째 버티고 있지만, 가계소득이 대폭 늘지 않는 이상 이런 상태를 계속 유지하긴 힘들다.

특히 자영업자들의 채무위기가 심해지고 있는데, 금융감독원 자료에 의하면 그 규모는 개인사업자 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하여 250-300조원에 이른다. 대부분 사업에 어떤 특별한 아이템이 있기 보다는 퇴직, 해고, 미취업 등으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비자발적으로 자영업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3년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묻을 닫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자영업자들의 채무위기는 갑작스런 외부충격에 취약한 시한폭탄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2011년 소상공인 진흥원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월 소득 100만원 이하가구가 절반을 넘으며, 적자가구도 25%에 이른다.

좀비처럼 살아있는 악성 기업부채

그런데 자영업자와 같은 소기업 수준의 위기만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건설, 해운, 조선 업종에 불어 닥친 불황으로 인해 중견기업 이상의 큰 기업들이 도산위기에 몰렸다. 당시 MB 정부는 4개 등급으로 나눠 구조조정과 지원 사업 실시했는데, 여전히 이들 업종의 부실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건설업은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면서 장기침체를 겪고 있고, 해운과 조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불황이 수년째 지속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못 찾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특히 2013년 올해는 대기업들의 도산규모가 급증했다. 그런데 이런 위기는 이미 3년 전부터 지적되어온 것으로서 부실문제가 지금 갑자기 터진 것이 아니다. 이제 대기업들까지도 채무위기를 연장하거나 몇 가지 재무구조를 조절하는 수준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위기에 몰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0년 기준 그룹별 연결기준 재무상황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자기자본대비 부채비율 200%이상이면서 이자비용 대비 영업이익이 300%미만은 기업들(즉 빚은 많은데 상대적으로 이익이 적은 기업들) 중에서 지금 현재 부실문제가 심각한 기업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동양, STX, 한진, 동부, 두산, 웅진, 한진중공업, 동국제강, 금호아시아나 등이 그러한데, 이들 중 몇 개는 그룹은 이미 해체수순을 밝고 있다. 앞으로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한, 부실 대기업들의 부채문제는 계속 붉어 질 것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기업부실 그 자체가 아니다. 언제나 그랬듯, 부실을 정리하는 가운데 채무위기가 다른 곳으로 전가된다는데 있다. 올해 2분기 은행권의 신규부실규모가 10조 원 가량 증가했는데 대부분 기업부실에 따른 손실이었다. 특히 조선업과 해운업의 부실채권비율은 작년 1분기와 비교하여 크게 상승했는데, 조선업은 1.83%에서 6.86%로, 해운업은 1.65%에서 6.59%로 급증하였다.

이러한 부실 전가는 은행권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얼마 전 벌어진 동양그룹 사기피해처럼 이들 회사채를 가지고 있던 개미투자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국가에 의해서 보증을 받는 은행들과 달리 이들은 딱히 구제할 방법도 없다. 이외에도 이들과 연계된 다른 중소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끼치는데 이들이 발행한 어음이 휴지조각이 되거나 갑작스런 거래단절로 인해 연쇄파산이 발생한다. 올해 상반기에 경남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는 STX의 부도사태가 터졌을 땐, 휘청거리는 지역경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발 벗고 나서 금융지원책을 발표했다. 일시적인 고통이 지나고 문제가 잘 정리되면 문제가 없겠지만, 계속된 침체국면과 함께 연쇄부실이 누적될 경우 손실의 사회화는 급속하게 진행될 것이다. 지난 5년간 부실기업정리를 위해 투입된 재정과 기금, 회사채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매입과 보증 등등이 그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언제나 ‘신속한 정부개입’이 등장했고 약속된 절차에 따라 부실문제는 처리되었다.

한국의 부채위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다시 한 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심부 국가들의 위기가 어떻게 확장되었는지 살펴보자. 대출자의 파산 -> 은행부실자산 급증 -> 금융기관연쇄파산/공적자금투입 ->국가부채위기심화/신용평가강등 ->국채시장마비 ->구제금융 수용, 이라는 과정을 거쳤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위기 전염 과정과 달리 두 번째 단계인 은행부실자산 급증이라는 과정을 아직 경험하고 있진 않다. 앞서 지적한 바처럼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의 은행들이 파생금융상품에 적게 노출되었기에 은행부실자산이 급격하게 증가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는 앞으로다. 이자만 내고 있는 가계가 2015년 200조에 이르는 원금 상환압박에 몰릴 경우 사태는 심각해진다. 여기에 올해처럼 STX 규모의 기업부도사태가 몇 개만 더해진다면 은행위기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것을 끊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령 미분양 아파트 해소를 위해 주택금융공사를 동원해 각종 부동산 채무보증을 시행하고 있는데, 미분양 물량을 3년 뒤 건설사가 되사는 조건으로 보증을 서는 것이 바로 그런 예들 중 하나다(건설사에서 미분양을 ‘전세’로 내놓는 사례가 있는데, 사실 일반적인 전세라기보다는 일반인들이 한 번 사고 3년 뒤 건설사가 되사는 원리다).

하지만 채무원금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채무위기는 상존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소득증대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원금상환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가계실질소득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어 상환압박은 더욱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은행 부실 자산이 급증했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이다. 금융기관의 연쇄파산, 공적자금투입, 국가부채증가,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앞선 사례를 반복할 것인지, 아니면 위기의 연쇄고리를 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예 해결방식을 새롭게 구성할지, 지금부터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가령 2008년 금융위기를 겪었던 아이슬란드의 사례를 참고해보자. 아이슬란드는 은행구제에 공적자금을 낭비하지 않고 파산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이후 이 은행들을 국유화했다. 당시 아이슬란드는 이런 정책결정을 위해 국민투표까지 시행했었다. 당시 이 파산한 은행들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던 외국계 자본들과 신자유주의적 금융질서를 맹신하는 국제신용평가사들은 격렬히 반대했지만 아이슬란드는 이를 강행했고 오히려 경제위기탈출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건데 은행위기 단계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사후약방문처럼 부실이 터지고 난 다음 공적자금 투입에만 급급할 것인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은행의 사회화 플랜을 가지고 선제적 대응을 할 것인지 말이다. 그래서 우리은행 민영화 추진은 돌이킬 수없는 ‘악수’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참고사항으로서 앞서 언급한 양적완화가 있다. 선진국들은 경기부양이라는 이유로 중앙은행을 통해 국채뿐만 아니라 모지지 채권이나 회사채까지 매입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민간채무위기를 국가가 떠안고 있는 형국인데, 기대했던 실물부문의 경기부양 효과는 미미하고 글로벌 금융시장만 달아오르고 있다. 그래서 이런 양적완화의 이중성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금융시장을 안정화시키는데 나름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법을 쓸 수 있을까? 미국이나 유럽처럼 이런 양적완화를 바로 사용할 수 있을까? 아마도 국제신용평가사들의 공격과 함께 외환시장과 국채시장의 동요가 일어날 것이다. 이에 대한 사전통제를 먼저 시행해야 하는데, ‘관치금융’을 운운하는 지금의 수준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채권시장에 의존하는 국가재정을 바꾸지 않는 이상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일으키는 충격을 막기 힘들다. 특히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구조에서 외환시장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경제위기는 걷잡을 수 없다. 현재 32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가 있지만 현재 국내 들어와 있는 외국계 자금 규모가 이보다 훨씬 커서 본격적인 외환위기가 발생하면 이것만으론 방어하기 벅차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자본시장은 상당히 많이 개방되어 있는 상태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설령 이것을 수행했다고 치더라도 부실자산을 중앙은행이 잠시 떠안는 방식만으론 위기가 해소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 아이슬란드 사례에서 이후 벌어진 사건들이 진정한 위기 해소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바 은행을 파산시키고 국유화시켰던 아이슬란드는 다시 은행을 재자본화 하는 과정을 밟았다. 이를 위해 과다한 세금이 소요됐고, 긴축정책이 시행되었다. 그리고 위기 당시 금융산업의 거품에 취해있던 경제가 다시 옛날로 돌아가 어업만 순항할 수 없었다. 이미 금융화 된 경제구조를 바꾸기 쉽지 않은 것이다. 결국 부동산 버블이 다시 시작되어 40%이상 폭등하였고 민심은 급격히 이반되었다. 그리고 올해 4월 총선에서 개혁성향의 집권당은 위기의 주범이었던 우파연합에게 다시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러한 아이슬란드의 드라마틱한 과정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준다. 먼저 국제금융권력에 맞선 재정통화주권의 확립이며, 경제구조를 바꾸기 위한 기간산업의 사회화 플랜이다. 앞으로 2년 뒤 우리에게도 닥쳐올지 모를 연쇄적인 채무위기를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 이들의 쓰라린 교훈을 우리 현실에 맞게 연구해야 한다. 가령 무역의존도가 큰 우리나라와 같은 신흥국들의 가장 큰 위협요소는 외환시장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쏟아 부은 금융성 정부부채 규모만 해도 120조 원에 이르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외환시장을 근본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대책이 매우 시급하며, 달러에만 의존하지 않는 다양한 통화스왑구조를 구축할 필요하다.

아직 위기가 가시화되지도 않았는데 성급한 것이 아닌가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 우리가 중지를 모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미 IMF 사태를 겪었기 때문에 다들 잘 알 것이다. 왜냐하면 위기가 터지고 나면 힘의 논리에 의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빨려가기 때문이다. 손쓸 틈 없이 멍하게 있다가 당했던 97년의 기억을 되돌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부터 힘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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