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개량의 혼돈, 라틴아메리카 ‘핑크타이드’는 어디로?

[주례토론회] ‘차베스주의’의 진화인가 ‘룰라주의’로의 수렴인가, 기로에 선 라틴아메리카

[편집자주-토론문] 올해 지구 반대편에 벌어졌던 일 중에서 가장 뜨거웠던 이슈들 중 하나는 차베스의 사망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향방이었다. 우리와 별다른 인적 물적 교류도 없는 베네수엘라, 이곳에서 벌어진 격렬한 계급투쟁에 대해서 소위 사회운동과 변혁을 지향하는 사람들만 관심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차베스 사망 이후 브라질 중심의 중도 실용노선, 즉 ‘룰라주의’가 중남미를 재편할 것이고 이것이 라틴아메리카의 대외투자환경을 급속하게 개선할 것이라는 주장을 각종 통계지표를 이용하여 설파하고 있다.

그러나 그토록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던 브라질에서 지난 6월 200만이 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교통요금 인상에서 시작된 이 싸움은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불평등에 시달려온 1억 9천의 브라질 민중들의 눈을 뜨게 했다.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그동안 룰라주의가 관리했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에 대해 격렬한 반대로 나아갔다.

한때, 노동자 출신의 대통령으로 칭송받았던 룰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브릭스 멤버 브라질, 얼핏 봐도 왜 이런 격렬한 저항이 일어났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면 지난 2008년 우리가 경험했던 촛불시위를 생각해 보자. 그러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당시 행정부와 의회를 모두 장악한 MB정권에 대해서 갑자기 폭발적인 대중투쟁이 일어나리라곤 다들 예상하지 못했다. 바로 그것이다. 지금 브라질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은 기존의 정당 및 노조세력들과 전혀 다른 세력과 기층민중이 이끌고 있는 ‘브라질판 촛불투쟁’이다.

챠베스의 사망과 함께 몰아닥친 베네수엘라의 위기, 그리고 브라질 민중의 격렬한 반신자유주의 투쟁은 현재 라틴아메리카가 겪고 있는 혼돈의 상황을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혁명과 개량의 혼돈, 2000년 대 라틴아메리카에 등장한 ‘핑크타이드(pink tide)’ 경향(분홍물결, 선거를 통해 잇따라 좌파정부가 들어선 것)은 점점 엷어져서 흰색이 될 것이지, 아니면 더욱 붉어져 갈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이번 주례토론회에서는 ‘차베스주의’와 ‘룰라주의’의 등장과 전망을 짚어보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교훈을 찾고자 한다.

라틴아메리카 현 정세와 ‘핑크타이드’의 등장

먼저 라틴아메리카의 역동적 현대사 속에서 현 시기의 의미를 짚어보자. 1959년 쿠바혁명에서 1991년 산디니스타 혁명의 패배까지, 냉전시기의 라틴아메리카의 좌파운동은 혁명과 반혁명의 비타협적 대치로 점철된 역사였다. 다른 유럽의 나라들처럼 노조와 같은 기층대중조직이 움직이기 보다는 정당운동 중심의 혁명투쟁이 중심이었다. 여기에 미국의 사주를 받은 군사정권의 심심치 않은 쿠데타는 언제나 수많은 인민들의 피로 점철되었다. 대통령궁을 폭격했던 1973년 칠레 피노체트 쿠데타, 1976년부터 8년간 고문과 학살을 자행한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군사적 억압으로 인해 대중 운동의 토대가 쉽게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러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 포스트 냉전 국면으로 바뀌게 되면서 정치지형의 변화가 생긴다. 군부의 협상에 의한 퇴각과 민주화 이행, 국가주도의 수출대체산업화 전략에서 신자유주의로의 선회가 이뤄진 것이다. 이것은 철저하게 기득권들의 중심으로 이뤄진 권력 재배치였지만, 이러한 틈바구니에서 새로운 비제도적 대중운동과 새로운 좌파운동이 싹트기 시작했다.

대외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차츰 약화되었고, 대내적으로 라틴아메리카 블록 강화와 블록 내 헤게모니 투쟁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민정으로 이양된 권력은 자신의 전망을 신자유주의적 발전에 의존했고 많은 대중적 저항을 불러들었다. 그리고 무능과 부패로 얼룩진 집권세력들은 이를 해결할 수 없었고, 대규모 민중봉기로 발전하였다. 여기에 기존의 권력분점에 편입되었던 제도정당이나 노총들의 외부에서 이들과 다른 새로운 민중운동들이 각성되고 조직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조류가 ‘핑크타이드’ 등장의 배경되었다. 그리고 차베스의 등장과 성공은 ‘핑크타이드’ 물결을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차베스의 계급투쟁

2002년 갑자기 외신뉴스에서 베네수엘라 쿠데타 소식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곧 몇 일후 대통령의 귀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만 해도 우리는 무슨 해프닝이 벌어졌나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매고비마다 심심치 않게 자행되었던 좌파정부 축출 쿠데타였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점은 빈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당시 차베스 대통령이 다시 민중의 힘으로 복권되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은 차베스에게 전화위복의 계기를 주었다. 98년 대통령이 되었지만 곳곳에 산재해 있던 기득권세력들에 의해 손발이 묶여 있던 차베스 정권은 언제 발생할지 모를 군사위협을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일로 차베스는 군대 내에 존재했던 모든 반대파들을 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2003년 1월 석유자본의 사보타지가 국가경제를 혼돈으로 몰고 갔다. 하지만 이런 사태는 역효과만을 불러들었고, 이를 계기로 베네수엘라 국가경제의 가장 중요한 축인 석유산업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집권 후 5년만의 일이다. 그만큼 기득권세력들의 저항이 엄청났다는 걸 방증한다. 실제 석유수출로 인한 수익의 70%를 석유공사(석유자본)가 가져가고 나머지를 국고로 넘기는 일이 벌어질 만큼 국가안의 국가로서 석유공사가 존재했고 이들은 기득권세력에 철저하게 복무하는 국가장치였다.

마지막 기득권세력의 반격은 2004년 8월 대통령 소환투표를 통해 벌어지는데, 58%의 반대로 대통령소환이 무산되고 이를 계기로 차베스는 국가운영의 확고한 입지를 쥘 수 있게 되었다. 98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6년 동안에 걸친 격변의 과정이었다.

이후 차베스진영은 모든 선거에서 압승하기 시작했고, 흔히 20세기 좌파의 딜레마였던 선거집권의 불가능성을 뒤집고 ‘핑크타이드’라 불리게 된 선거를 통한 좌파정부 집권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2002년 차베스의 권력복귀부터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2002년 브라질 대선에서 룰라가 예상치 못한 당선을 이뤘던 것도 이러한 대중적 각성과 변화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좌파집권의 경향은 계속 퍼져났고, 멕시코, 콜롬비아, 칠레, 온두라스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서 중도좌파 혹은 좌파가 선거를 통해 집권하게 되는 결과로 발전되었다.

고난의 ‘차베스주의’

스스로 21세기 사회주의라고 칭했던 ‘차베스주의’는 2007년 12월에 있었던 개헌국민투표를 패배하면서 차츰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그 후 2009년에 다시 개헌투표를 실시하여 승리하지만, 찬성득표율이 과거 2006년 대선선거 득표율 62.84%보다 낮은 54.85%에 머물면서 구심력이 떨어졌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2012년 12월 대선 차베스 득표율 55.07%, 차베스 사후 치러진 2013년 대선에서 차베스의 뒤를 이은 마두로의 득표율 50.61%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시련에 대해서 단순하게 차베스 개인의 사망이나 반대파들의 악선동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다양한 요인이 있음을 짚어야 할 것이다. 일단 차베스주의에 반대하는 세력들에 누가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MUD라고 하는 반차베스 연합세력이 있다. 여기엔 차베스 등장 이전 국가의 부를 서로 나눠먹으며 수십년 동안 통치했던 구세력(AD, Copei)도 있으나 이들은 별 영향력이 없다. 이들보다는 신생우파라 불리는 Proyecto Venezuela, Un Nuevo Tiempo, Primero Justicia 가 있는데, 반차베스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인 ‘엔리케 카프릴레스’가 Primero Justicia 소속이다. 그런데 이외에도 Movimiento al Socialismo(사회주의 운동), La Causa R(혁명의 근원), Partido Bandera Roja(적기당), Por la Democracia Social(사회민주주의를 위하여) 등등 이념적으로 좌파를 지향하는 다수 정당들이 상당수 포함되어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때 차베스와 운동을 함께 했던 세력인데, 여기에 베네수엘라 좌파운동의 갈등, 배신, 분열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발제문 참조)

베네수엘라 정치운동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함부로 재단할 순 없지만, 차베스주의를 둘러싼 좌파 내 노선갈등과 이합집산이 매우 심하다는 걸 방증한다. 심지어 차베스의 제안으로 건설된 PSUV(베네수엘라 연합 사회주의당)의 당원수가 2007년에 570만 명이나 되지만, 2010년 선거에서 득표수가 540만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과연 PSUV가 정당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결국 차베스 개인의 대중친화력으로 수년간 버텨온 것이라 볼 수 있다. 2013년 대선에서 차베스의 뒤를 이은 마두로가 가까스로 이겼지만, 이후 취약해진 정치토대를 어떻게 다시 복원할 것인지 매우 중요한 시점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차베스 사후 보여줬던 지키기 위한 포지션에만 역량을 쏟아 부을게 아니라, 새로운 돌파구를 뚫어보려고 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보인다. 설령 이런 가운데 잠시 권력을 내준다고 하더라도 전열을 새롭게 정비하고, 대중적 토대를 재건하는 일보후퇴 전략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자본의 날개를 단 ‘룰라주의’, 촛불에 가로막히다

이렇게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주의’가 고난을 겪고 있는 동안, 브릭스의 멤버인 브라질의 ‘룰라주의’는 더욱더 자본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서방 언론매체와 친자본주의 연구소 등에서 브라질이 라틴아메리카의 중심국가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소식을 쏟아냈다. 이들은 강경노선인 베네수엘라와 실용노선인 브라질을 비교하는데 각종 통계데이터를 동원하였고, 강경노선 그룹의 국가들은 물가도 높고 외국인 투자도 적었지만, 실용노선 그룹의 국가들은 외국인 투자도 많고 물가도 안정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일면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와 물가상승률만 가지고 경제상황을 평가할 수 없다. 가령 외국인 투자를 많이 받아들인 브라질은 자본통제의 일환으로 도입했던 토빈세를 올 6월 폐지했다. 왜냐하면 양적완화 축소논란 이후 썰물처럼 빠져나가던 외국계 자본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9.5%에 이르는 고금리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이처럼 자본의 날개를 달고 고속성장을 한 브라질이 그 대가로 치러야 할 고통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장의 그늘 속에서 벌어지는 불평등은 민중을 더욱더 정치적 환멸로 몰아갔다. 룰라집권 동안 빈곤퇴치의 성과도 많이 이뤄냈지만, 경제적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그 이상의 개혁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 한 게 사실이다. 여전히 불평등지수(지니계수)는 0.55에 이를 정도로 극심한 빈부격차에 놓여 있는 것이 브라질의 현주소이다.

이러한 불만과 고통이 이번 교통요금 인상 시위로 분출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분노는 곧장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모든 생활이슈를 다 거리로 쏟아지게 만들었다. 정부당국이 요금인상을 철회했지만, 문제의 본질이 요금인상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투쟁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더욱 번져 나갔다. 결국 대통령이 민주적 요구에 수긍하고 경찰폭력에 대해 사과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화려한 외적 성장에 가려졌던 민중의 불만과 분노는 지칠 줄 모르고 터져 나왔다.

여기서 브라질의 기존의 저항운동과 다른 특징적인 것이 있는데, 이미 집권세력이 된 PT(브라질 노동자당)와 20년 넘게 타협주의 노선을 걸어온 브라질 노총 CUT은 철저하게 대중들로부터 외면 받았다는 것이다. 기존 운동세력으로서 MST(토지점거운동)만이 지지를 받았다. 이로서 기존 운동의 동맹은 와해되었고, 룰라집권 이후 ‘룰라주의’에 대한 최초의 정치적 심판이 내려지게 되었다. 이것은 아래로부터 일어난 반신자유주의 투쟁이었다. 그리고 ‘룰라주의’에 기댄 라틴아메리카의 전망에 제동을 걸게 만들었다. PT-룰라주의 체제에 대한 대중적 거부는 새로운 대안, 새로운 주체형성의 가능성을 만드는 계기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투쟁이 앞으로 어떻게 수렴될지 지켜볼 일이다.

‘핑크타이드(pink tide)’의 추동력은 아래로부터의 민중투쟁과 사회운동

‘차베스주의’와 ‘룰라주의’를 중심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지형을 짚어보았는데, 이것의 영향은 결코 일국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아우르는 양대 노선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세력의 집권과 확대는 결코 개인의 영웅적 행동만으론 설명될 수 없다. ‘핑크타이드’가 불어 닥쳤던 2000년대 초중반의 시기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민중 투쟁이 아주 격렬하게 벌어졌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2000년 5월 볼리비아 코차밤바 봉기(물사유화 전쟁), 2001년 12월 아르헨티나 봉기(신자유주의의 총체적 파산에 맞선 민중봉기), 2001년 1월 에콰도르 봉기(IMF 구조조정에 대한 원주민 투쟁), 2002년 6월 페루 전력민영화 반대투쟁, 2003년 볼리비아 민중봉기(1차 가스전쟁), 2005년 3월 에콰도르 봉기(구티에레스 퇴진투쟁), 2005년 5월 볼리비아 봉기(2차 가스전쟁) 등등.

이러한 대중투쟁은 국경을 넘어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사회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차베스의 승리는 이러한 투쟁들을 더욱 확장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각국에서 벌어진 민중의 저항과 사회운동은 이후 선거로 집권한 좌파정부와 긴장관계를 형성하면서 우경화를 막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베네수엘라에서의 차베스 정부와 좌파와의 긴장과 갈등, 볼리비아에서 에보 모랄레스 정부와 사회운동의 긴장과 협력, 에콰도르 라파엘 꼬레아 정부와 원주민 운동의 갈등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아이티(2004), 온두라스(2009), 파라과이(2012)에서 보듯, 대중적 운동의 힘이 부족했던 나라들에선 견제는커녕, 선거집권 후에 우파에 의해 강제축출 당하는 일이 벌여졌다. 선거에서 이겨도 대중적 토대가 부실하다 보니 우익들의 집요한 정치적 공격과 폭력에 의해 좌파정부가 좌초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라틴아메리카 역사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사례들인데, 냉전시기엔 미국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 등이 빈번하게 벌어졌었다. 그래서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라틴아메리카를 연방적 질서로 묶어세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차베스주의’ 시도는 그것 자체로 매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아래로부터의 힘이라는 것이 언제나 고정불변한 상수는 아니다. 구체제를 무너뜨리는 폭발력이 존재하지만, 신체제를 만들어갈 자양분과 운동의 기획이 그것으로부터 바로 나오지 않는다. 차베스 정부 하에서 석유자원에 기반한 많은 자금들이 협동조합 건설에 들어갔지만 비효율적인 운영과 부실로 인해 자립경제의 토대는 아직 요원하다.

그러나 신체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좌절만을 보고 정치적 회의에 빠지거나 신자유주의로의 ‘투항’을 선택할 수만은 없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인구가 20-30%에 불과했던 베네수엘라가 80%가 넘는 수준까지 올라오고, 80%가 넘는 절대빈곤층이 배고픔으로부터 탈출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이제 ‘차베스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짚고, 다시 볼리바르 혁명의 새로운 10년을 어떻게 기획하고 아래로부터의 힘을 모아낼 수 있을지 주목할 시점이다. [토론문 끝]

아래는 발제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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