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되고 싶다는 사람들...“인권유린, 착취 못 참아”

가정파탄, 노조탄압, 산업재해, 자살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

10년 넘게 ‘노동자로 살고 싶다’며 목소리를 높여온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회사에 종속돼 일하면서도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일명 ‘특수고용’ 노동자들이다.

90년대 이후, 특수고용직의 확대는 산업과 직종의 구분도 없었다. 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 모인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학습지교사를 비롯해 골프장 경기보조원, 대리운전기자, 화물운송노동자, 건설기계굴삭기기사, 레미콘기사, 간병인, 마필관리사, 보험설계사, 타워크레인설치해제, 덤프기사, 보조출연자, 택배기사 등 다양한 직군들로 구성돼 있었다.

이들은 양대노총과 민주당 등이 주최한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실태 증언대회’에 참석해 10년 넘게 겪어온 부당한 사례들을 풀어놓았다.


수 없이 바뀌는 노동자들의 법적지위...법원 판결도 오락가락
노조탄압, 산업재해, 생활고, 자살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


2027일이라는 장기간의 투쟁을 통해 현장에 복귀한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은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학습지교사들은 법적으로 ‘노동자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회사가 단체협약 체결을 거부한다 해도 법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까닭이다.

오수영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장은 “긴 싸움을 통해 단체협약을 회복하고 현장으로 돌아갔지만, 오늘이라도 사측이 노동조합이 아니기에 더 이상의 단체협약은 없다 라고 선언한다면 우리는 또 다시 거리로, 하늘로 쫓겨 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1999년 노조를 결성한 88CC 골프장경기보조원들은 ‘특수고용’이라는 고용형태 때문에 밥 먹듯이 단협 해지와 직장폐쇄, 부당해고에 시달리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사장이 취임하면서부터는 노조 탈퇴 강요, 48명에 대한 부당해고, 단협해지 등의 탄압 강도는 더욱 심해졌다. 부당해고 투쟁은 벌써 6년째를 맞았다.

법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절박함에 수도 없이 법적 다툼을 진행 했지만, 법원과 고용노동부는 매번 다른 판결을 했다. 김은숙 전국여성노조 88CC분회장은 “그동안 14건의 소송을 진행했고, 30회 이상의 판결을 받았으며, 현재 대법원에 5건, 고법 4건이 진행 중에 있다”며 “판결내용 중 경기보조원의 법적지위 관련해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6회)’, ‘노동조합법상 노동자(22회)’,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도 아니다(1회) 등이다”라고 밝혔다.

이어서 “우리가 하는 일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지만, 노동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했다가(2000.5) 이후 타 사업장의 법원판결을 이유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다(2003.6)라고 행정해석을 바꿨다”며 “또한 부당해고 되어 소송을 해보니 하나의 근로조건을 놓고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우리의 법적인 지위가 수없이 바뀌는 경험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자영업자’를 꿈꾸며 회사에 입사한 보험설계사들은 회사로부터 출퇴근과 영업실적, 활동상황까지 관리를 받으면 일을 하고 있다. 오세중 보험인협회 대표는 “회사는 보험설계사를 대상으로 상품내용에 대한 허위, 과장된 교육을 통해 상품 판매를 독촉하여 불완전판매가 이뤄지도록 하면서도 그에 대한 책임은 모두 판매 담당 보험설계사에게 돌아가도록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A생명보험 설계사는 보험사로부터 잘못된 교육을 받고 영업을 했다가 고객의 민원에 시달리다 자살했으며, 올 4월에도 영업부진을 고민하던 한 보험사 지점장이 목숨을 끊었다. 또한 보험영업 실적이 좋으면 정직원으로 채용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취업한 청년 구직자가 실적 스트레스를 받다 자살한 사례도 있었다.

드라마 보조출연자 노동자들 역시 촬영 과정에서 목숨을 잃고는 하지만,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산재처리도 쉽지 않다. 문계순 전국보조출연자노동조합 위원장은 “작년 TV에 방송된 드라마 중 각시탈이란 프로를 촬영하다 사고로 사망한 보조출연자 고 박희석 씨의 아픔을 누가 관심 가져주나”며 “산재처리 과정에서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를 보면서 우리를 두 번 울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서 문계순 위원장은 “의상반납, 분장을 지우는 시간 등은 근로시간이 아니라고 하고, 한 달 받는 돈은 고작해야 월 50만원 수준”이라며 “사용자는 노동조합을 부인하고 조합탈퇴 등의 악행을 저지르고 있으며, 노조를 탈퇴하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고 하니 노조를 탈퇴하고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우리는 을의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토로했다.

“횡포를 넘어 인권유린, 갈취 등의 착취가 만연돼 있어”

대리운전기사와 화물운송 노동자를 비롯해 건설부문에도 특수고용이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만연해 있다.

2007~2009년 사이에 대리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24명이 사망, 1859명이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대리운전기사들은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산재보험을 비롯한 4대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25%에 달하는 부당한 콜 수수료와, 패널티라는 명목의 벌금, 부당한 관리비 징수, 센터의 담합 등으로 삼중고를 겪기도 한다.


송재성 전국대리운전 사무처장은 “파행과 횡포를 넘어 인권유린, 갈취, 횡령, 배임, 사기 탈세 등의 착취가 범죄의식도 없이 만연돼 있다”며 “단체보험 가입을 강요하면서도 그에 따른 영수증을 교부 받지 못해 보험의 내용을 알 수 없고 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바퀴달린 노예’로 알려져 있는 화물노동자들의 경우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익과 노예 계약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윤창호 화물연대 조직국장은 “2008년 총파업 전후와 비교해보면 2012년 1/4분기 운임은 2008년 1/4분기에 비해 7%인상되었으나, 유류비는 24%가 상승했다”며 “현재 인천에서 20ft 컨테이나 운반을 하고 있는 화물노동자는 모든 비용을 지출하고 나니 실수익은 69만원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하기호 건설레미콘 위원장 역시 “저희 특수고용직은 근로자 신분이면서 개인사업자로 편입되어 즉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못되듯이 저희는 그냥 근로자일 뿐”이라며 “1일 8시간 정착, 시간외수당 등을 지급받지 못한 가운데 하루 15시간을 넘나들며 일에 파묻혀 지애고 있으며, 의료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등 자비로 전액 처리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60M 이상의 고공에서 위험천만한 일을 하고 있는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박한국 전국타워크레인 설, 해제노동조합 위원장은 “현장은 공사입찰의 명분으로 타워임대회사에게 떠넘기고 임대회사는 개인사업자인 팀장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하도급 체제가 심각한 병폐를 만들고 있다”며 “산재요양신청도 받지 못해 재해자가 자비로 병원비를 지급해야 하는 불상사도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두원균 건설기계조직본부장 또한 “우리 건설기계노동자들은 최저가 낙찰제도로 인해 1일 10시간, 11시간 노동을 강요당하고, 저가수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온다”며 “건설기계노동자들은 차량할부금, 캐피탈 등으로 가정경제가 파탄난지 벌써 오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증언대회에 참석한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작년에 특수고용노동자 보호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법안심의가 한 번 이뤄진 바 있다”며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원칙에 대해서는 여야 합의가 돼 가고 있지만, 문제는 특수고용 직종의 범위와 해직자, 실직자, 구직자의 범위 문제가 쟁점으로 남았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김 의원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안심사가 이뤄질 예정이지만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면 법안이 통과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양대노총을 비롯한 전체 노동계가 노동법 개정을 위해 힘을 합쳐 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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