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민원이 노조탄압 도구로, 남원에서 포항으로 쫓겨난 KT직원

[감시 통제, 벼랑 끝 감정노동자](7) 인력퇴출프로그램의 결말, 죽어가는 KT노동자

KT포항지사에서 근무하는 원병희(50) 씨는 오늘도 퇴근 후 한 찜질방으로 향한다. 그에게 이 찜질방은 숙식을 해결하는 집이 됐다. 집을 날려 버린 것도, 빚더미에 오른 것도 아니다. 찜질방 생활이 시작된 건 올해 3월부터였다. 전북 전주가 집이던 그는 KT남원지사에서 근무하던 중 올해 3월 2일 자로 포항지사 전보 발령을 받았다. 개인적 요청이 있었던 것도, 전국적인 순환 배치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만 지목해 전북 남원에서 경북 포항으로 발령이 났다.

남원에서 포항으로...KT직원이 찜질방 생활?
노동탄압에 활용되는 감정노동 평가


어이없는 전보발령에 화가 났지만, 원 씨는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87년 한국전기통신공사 시절 입사한 원 씨는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해고와 정직 통보를 겪었기 때문이다.

2009년 이석채 전 KT회장 취임을 앞두고 주주총회에 참석하려던 원 씨는 입장을 저지당했다. KT직원으로 ‘우리 사주’이던 원 씨는 이석채 회장의 구조조정 계획을 확인하려 했으나, 도리어 주주총회 방해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이 때문에 원 씨는 2010년 집이 있는 전주에서 남원지사로 전보 발령을 받는다. 계속 근무를 하다 손을 수술하고 병가로 치료받던 중 원 씨는 2011년 6월 30일 자로 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KT의 부당노동행위에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원병희 씨

“1년 동안은 별일 없이 지냈어요. 제 업무는 민원 상담인데, KT상품판매를 지시하는 거에요. 상품판매는 제 소관이 아니라고 했어요. 민원 업무도 하는데, 상품 판매하는 게 쉽지 않아 동료들은 주로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한테 울며 겨자 먹기로 팔아요. 상품 강제 판매는 불공정거래기 때문에 안 된다고 지적했어요”

해고 사유는 한 가지가 아니었다. KT의 민원 업무 처리는 3단계다. 흔히 접수하는 KT 100번 콜센터가 1단계, 100번에서 해결하지 못한 민원을 해당 담당 부서로 넘기는 2단계, 두 단계를 거치고도 해결되지 못한 민원만 접수하는 3단계. 원 씨는 이 3단계 민원 업무와 직접 방문한 고객 민원 해결 업무를 담당한다.

“2011년 어느 날, 지사로 노인 한 분이 찾아와서 ‘네가 해지시켰지’라더니 다짜고짜 욕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문제로 왔는지도 몰랐다. 몇 번을 그렇게 찾아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분이 학원을 운영하던 2006년쯤 114 게재 명의에서 삭제시켰다는 이유였다. 정액요금제 할인을 받으려면 상호를 사용하면 안 되고 개인만 가능하다. 할인혜택을 주려고 당시 근무자가 가입 변경을 해 준 것 때문이더라. 나는 그때 남원에서 근무하지도 않았다.

민원인의 친인척 되는 동료직원이 그분을 두고 ‘치매’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그래서 본부에 이런 상황이었다고 보고를 했다. 그런데 그 고객이 다시 본사에 찾아와 저를 해고해야 한다고 요청을 몇 번 했다더라”


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던 와중에 원 씨는 그렇게 해고를 당했다. 이후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 2012년 7월 30일 자로 그는 복직했다. 복직 후 자신의 컴퓨터를 열어 보니 당시 민원 관계된 자료와 소명 문서가 모두 삭제된 상태였다.

“처벌하기 위해서 이런 방식을 만들기도 하는구나 싶더라. 92년부터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 2002년 민영화가 된 KT는 구조조정을 꾸준히 진행했다. 공사 시절 호봉제로 장기 근속자 연봉이 많다고 내쫓은 거다. 그러면서 민영화 반대 싸움을 벌이던 민주노조 조합원을 중심으로 탄압이 진행됐다. 해고와 징계를 겪고, 부당 해고 판정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VOC(고객의 소리)를 해고와 징계 근거로 삼기 시작했다”

100번 콜센터 상담원이 KT직원이 아니라고?
3단계 거치면서 증폭된 불만, 노동자에 발산


원 씨는 복직 후 한 달 만에 다시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다. 해고 기간 중 계열사인 KTCS 노조 간부의 자결에 유족과 함께 KT본사에 방문한 것 때문이었다. 업무방해와 명예훼손으로 보복성 징계를 당한 것. 다시 출근해서 한 달여 근무하다 갑작스레 포항지사 전보 발령을 받고 연고에도 없던 곳으로 오게 됐다.

“포항에 와서 처음 민원을 다뤄보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더라. 경상도 사투리에 적응하는 게 힘들었다. 끝이 내려가는 전라도 말투에 민원인이 갑자기 ‘너 지금 반말하느냐’며 욕을 퍼붓더라. 너희는 내 요금을 받아먹고 사니까 내가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연고 없는 포항까지 발령 보낸 이유가 짐작됐다”

민원 접수 1단계인 100번 콜센터는 KT직원이 아니다. 100번 상담원은 자회사(KTCS, KTis) 비정규직이다. 2단계와 3단계 직원은 KT 소속 직원이다. 100번 상담원과 KT 민원 근무자는 서로 통화할 수 없다. 사전에 민원이 해결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파악할 수가 없다. 민원을 제기하는 고객은 이런 내부체계를 모른다.

이 같은 체계는 민영화 후 KT가 수익경영에 몰두하면서 만들어졌다. 2008년 KT는 고객민원처리(VOC) 업무와 100번 업무를 협력사로 외주화한다. 그러면서 본사 직원 550여 명을 전직시킨다. 희망자를 모집해 전출한 모양새였지만, KT민주동지회에 따르면 장기근속자에게 나가라는 압박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고 3년이 지난 2011년 VOC 업무를 KT가 다시 회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자회사에 근무하던 이들은 그만두거나 100번 상담 업무로 전환됐다. 사실상 구조조정 계획이었던 셈이다. 이 같은 복잡한 KT의 수익경영은 민원인들에게도 복잡함을 전가한다.

“3단계인 우리한테 넘어오는 민원은 불만이 증폭돼 찾아온다. 1단계와 2단계를 거쳐서도 해결이 안 됐기 때문이다. 분노 내지는 증오심이 가득하다. 이런 부분을 정신으로 견뎌내야만 한다.

그렇다고 100번 상담원들 잘못도 아니다. 이들은 자기 의지와 판단으로 민원을 처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짜인 스크립트만 그대로 읽을 수밖에 없다. 욕을 하던, 성희롱 발언을 하던, 주어진 스크립트만 반복할 수밖에 없다. 쌓이고 쌓여도 해결이 안 되는 이유다”


KTCS 소속으로 100번 콜센터에 근무하는 A씨는 “우리가 상담할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다. 매뉴얼에 명시된 문제면 처리하면 되지만, 그게 아니면 넘길 수밖에 없다. 임금도 낮고 계약직 형태로 근무하다 보니 오래 일하는 사람이 드물다.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처리할 수 있는 권한도 없고, 해결방법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100번 상담원들은 업무량이 많아 대기 중인 민원은 예약콜로 처리한다. 그런데 A씨는 상담이 많은 때에는 예약콜을 처리하지 못할 때도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고객의 불만은 더 쌓이고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옮겨간다. 상담원을 증원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지만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을 시행한 KT와 자회사에게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감정노동, 고객과 노동자 싸움 붙여놓고 이윤 취하는 경영진의 문제”

원 씨는 민원 문제 해결을 위해 본사에 몇 차례 문제를 제기했다. KT의 제도로 인해 해결 불가능한 민원은 상담원이 상담한다고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알고 있다.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A 씨는 “고객 상담 업무를 하는 우리도 고객이 될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다른 상담원들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도 ‘너도 한번 당해 봐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고 말한다.

원 씨는 “진정한 민원 해결은 민원인의 뜻을 받아서 장기적인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 민원인들도 약한 사람이다. 요금 관련해서 KT 요금이 비싸다는 문제 제기는 필요하다. 그런데 이건 콜센터 직원이 해결할 수 없는 정책적인 문제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영진들은 이런 문제는 외면하고, 노동자에게 고통만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매년 업무평가가 진행 중이고, 원 씨도 업무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평가 기준은 민원 해결 실적이 50%, 상품 판매 실적이 50%다. 상품 판매에 문제를 제기한 원 씨가 좋은 평가를 받을 리 만무하다. 만약, 남원에서처럼 고객이 ‘이 직원 해고해야 한다’고 요구라도 하면 그는 다시 한 번 징계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감정노동에 대한 평가가 해고와 노조탄압의 도구가 될 수 있는 현실이다. 감정노동은 블랙컨슈머의 문제도, 민원을 빠르게 해결 못한 노동자의 문제도 아니다. 고객과 노동자를 따로 나눠서 서로 싸우게 만들어 놓고 직무유기하는 이들의 문제다. 이윤을 취하는 곳이 어디인가 질문해야 한다. 인간 모멸적인 민원을 제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걸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누가 만들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연재순서>

(1) 감정노동자, 회사의 ‘감정통제’와 ‘감시’에 두 번 운다
(2) 흰 옷에 가려진 통제의 그늘, 간호사
(3) 강요된 웃음, 백화점 판매 노동자
(4) 감시와 통제, 돌봄 노동자
(5) 과로사 아니면 자살, 사회복지사
(6) 1인 승무, 공포와 싸우는 지하철 승무원
(7) 인력퇴출프로그램의 결말, 죽어가는 KT노동자
(8) 불법파견의 비극,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9) 퇴출악몽에 자살충동까지, 콜센터 노동자
(10) 독일과 일본, 감정노동자의 권리
(11) 감정노동자의 현실, 감정노동자의 권리

* 이 기획은 뉴스민, 뉴스셀, 미디어충청, 울산저널, 참세상, 참소리 공동기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