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베이어벨트 타는 제조업은 모두 ‘불법파견’

[기고 쌍용차 비정규직, 정규직 소송 승소 의미

“저희 네 명 모두 이겼어요. 막걸리 한 잔 해야죠.”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서맹섭 지회장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11월 29일 오후 3시 무렵이었다. 그는 쌍용차 사내하청 노동자도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정규직이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고 기쁨이 가라앉지 않은 모양이었다.

3년 전 금속노조에서 일할 때가 생각났다.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에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간주된다는 판결이 난 후 전국이 떠들썩했다.

언론 보도를 보고 경남 창원에서 어느 여자 분이 전화를 했다. 남편이 볼보건설기계코리아에 7년 넘게 사내하청으로 일하고 있는데, 정규직 전환 소송을 할 수 있느냐며 간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규직노조가 있지만 별로 관심이 없다며 금속노조에서 도와줄 수 있느냐고 했다.

볼보는 굴삭기를 비롯해 건설 장비를 만드는 회사로 자동차 회사와 마찬가지로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으로 건설 장비를 조립 생산하기 때문에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다. 2005년 7월 1일 이전부터 근무했기 때문에 2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으로 간주된다는 근로자파견법의 고용의제 조항이 적용되는 노동자였다.

하지만 당사자가 소송을 해야 하고, 회사에 통보되기 때문에 해고를 각오해야 한다는 얘기에 그녀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핸드폰 번호를 알려줬지만 다시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2010년 대법 판결로 기대가 컸던 사내하청 노동자들

쌍용차 4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2년이 지난 2003~2005년부터 정규직으로 간주된다는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민사 1부(재판장 주심 이인형)의 판결문은 2010년 7월 22일 대법원 판결과 거의 비슷하다.

재판부는 “사내협력업체의 근로자로서 업체로부터 지휘, 감독을 받아 근무하였다”는 회사측 주장에 대해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 생산방식에 맞추어 컨베이어벨트 상 차체, 의장의 일부 공정에서 작업을 수행하여, 원고(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피고(쌍용차)의 전체적인 작업지휘에 따라 근로에 종사하였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하청업체가 독립된 경영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 “사내협력업체는 독자적으로 내지 주도적으로 피고와 사이의 계약에 따른 차체 의장의 일부 공정상 업무를 진행하였다고 볼 만한 증거는 없고, 사내협력업체는 원고들의 작업과 관련하여 그 근태관리 정도를 하였다”며 합법도급이 아니라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쌍용차가 사무실을 제공하고 하청업체의 사업계획서를 제출받았으며, 쌍용차 소유의 설비와 기계, 자재를 사용하고, 쌍용차가 작성한 표준작업요령, 조립사양서, 일일생산계획서에 따라 작업을 수행했다는 점 등 10여 가지를 불법파견의 근거로 인정했다.

평택법원 재판부의 판결문은 2010년 7월 22일 현대차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랐고, 주요한 근거 역시 대법 판결과 거의 비슷하다. 요약하자면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 방식의 자동차 조립생산은 합법 도급이 아니라 근로자 파견이기 때문에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이라는 것이다.

“컨베이어벨트 방식의 자동차 생산은 합법도급 아니다”

쌍용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파견이라는 법원의 판결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불법파견이 현대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 제조업 전반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에서 현대차 울산공장에 대한 불법파견 판결 이후 11월 12일 현대차 아산공장도 불법파견이라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어 올해 2월 28일 한국지엠(구 지엠대우) 창원공장 노동자들이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받았다.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서맹섭 지회장이 2005년 12월 산업자원부가 주최한 제31회 국가품질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 은상을 수상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현대차와 한국지엠에 이어 쌍용차 노동자들의 정규직 소송 승소는 사실상 자동차를 만드는 완성차 모두가 불법파견이라는 것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이는 현대차 비정규직 1600명의 집단소송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는 12월 3일과 내년 1월 1월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이 열리며 2월 중에는 1심 선고가 이뤄질 예정이다.

불법파견의 대명사가 된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은폐하는 신규채용을 중단하고, 정규직 전환을 실시해야 한다. 법원과 노동위원회에서 불법파견이 확인된 의장(조립), 차체, 도장, 프레스 등의 공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즉시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법원에서 논란이 있는 공정에 대해서도 중단된 특별교섭을 통해 정규직 전환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한국지엠에 대해 대법원 판결 9개월 만인 12월 2일부터 일주일간 ‘불법파견 특별점검’을 한다. 정부는 “불법파견 사업장 특별근로감독 실시, 원청 직접고용 행정명령” 공약에 따라 한국지엠 뿐 아니라 현대, 기아, 쌍용, 르노삼성까지 5대 자동차 회사에 대해 즉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직접고용 행정명령을 내려야 한다.

완성차 5사 특별근로감독 실시, 직접고용 명령 내려야

둘째, 불법파견은 자동차 생산 공장만이 아니라 컨베이어벨트 방식을 이용해 생산하는 제조업 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굴삭기, 크레인, 지게차와 같은 건설 장비를 만든다. 로템이나 대우정밀 등은 장갑차를 만들고 대동공업은 트렉터와 경운기 같은 농기계를 만든다. 모두 자동차 회사와 똑같은 생산방식이다.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현대다이모스, 다스 등 자동차 부품회사도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해 자동차부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불법파견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법원 판결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가 불법을 방치한다면 지방 정부와 의회, 민주노총과 노동단체들이 나서서 실태조사를 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셋째, 사내하청 노동자와 정규직노조가 나서야 정규직 전환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쌍용차를 비롯해 현재 노동자들이 근로자 지위확인 집단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사업장은 현대차, 기아차, 한국지엠, 현대하이스코, 금호타이어, 삼성전자서비스 등이다. 이들 사업장은 모두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으로 비정규직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곳이다. 증거자료를 모으고 법정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당사자가 나서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볼보건설기계 노동자의 사례처럼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를 각오하고 소송을 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그래서 정규직노조의 역할이 중요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고, 증거자료를 모으고, 소송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회사가 해고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총 소속 정규직 노조가 나서서 불법파견에 대한 실태조사와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은 잘 들리지 않는다. 정규직노조의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내고 이를 확산시켜야 한다.

정규직노조가 나서서 불법파견 조사 사례는 어디에?

쌍용차 불법파견 법원 판결에서 재밌는 대목이 있다.

“원고(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피고(쌍용차)의 정규직원과 같은 사무실 내에 자리를 배치받고 회의에 참석하기도 하였고, 피고의 정규직원과 함께 같은 분임조로 편성되어 전국 경진대회 등에 참여하여 수상하기도 하였다.”

2003년 9월부터 쌍용차 평택공장 차체부에서 일했던 비정규직 서맹섭 지회장은 2005년 차체 2팀 대표로 정규직과 함께 산업자원부가 주최하는 31회 국가품질경연대회에 참가해 경기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전국대회에서 대통령 은상을 받았다.

당시 불법파견 문제를 몰랐던 쌍용차는 수상 소식을 회사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었고, 이 사실이 불법파견의 증거가 됐다.

그런데 최근 위장도급과 불법파견 논란이 일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가 자신들과 무관하다는 서비스 기사들에게 ‘프로서비스 엔지니어 인증서’, ‘우수 엔지니어 인증서’ 등을 수여한 증거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삼성서비스 노동자들은 삼성의 옷을 입고 삼성의 지시에 따라 삼성의 부품으로 삼성의 전자제품을 10년 넘게 고쳐왔다. 삼성은 이들을 ‘당사 프로서비스 엔지니어’로 인증했다. 삼성과 고용노동부의 대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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