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 화폐 그리고 국가...자본주의 통화체제의 변화

[주례토론회] 양적완화, 새로운 파국의 시발점?


[편집자주 - 토론문]

6년째 지속된 비전통적 통화정책, 새로운 통화정책의 장을 열다?

우리는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비전통적인 긴급조치가 6년째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제 그 긴급조치가 상시조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할 새로운 경제대통령인 미국 연준(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새 의장 ‘옐런’은 2016년까지 그것을 지속할 것이라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다. 그 근거는 소위 ‘새케인지언’의 거시경제모형인 DSGE(동태적 확률 일반균형 모형)의 공식에서 몇 개 변수를 수정하여 나온 계산된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편에선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상태에서 다른 방도가 없는 어쩔 수 없는 위기대응이라 평가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선 이러다 새로운 위기가 오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왜냐하면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킨 중요한 요인이 바로 ‘자산가격 결정모델’에 대한 맹신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위기에 대한 면역력이 높아진 상태라 갑작스런 금융시스템의 붕괴에 대비할 정책대응력은 갖춰진 상태이다. 이를 위해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금융시장을 관리하기 위한 여러 조치들이 함께 취해지고 있다. 가령 구두개입이나 사전안내와 같은 중앙은행의 커뮤니케이션 정책(‘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이 양적완화와 함께 중요한 정책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중앙은행장이 언론에 나와 적극적인 정책목표를 제시하고 이에 따라 경제운용을 할 것을 약속한다. 이것은 불확실성을 제거하여 시장의 동요를 달래기 위함이기도 하며, 미래의 ‘기대’를 바꿔 현재 시장참여자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6월 버냉키 연준 의장이 벌인 양적완화 축소논란사태는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정책의 한계를 드러냈다. 양적완화의 2013년 연내 축소와 2014년 종료라는 발표를 불과 2주 만에 뒤집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발표 후 전 세계의 금융시장이 요동쳤고, 특히 신흥국들의 금융시장에서 달러가 급격히 유출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급하게 사태진화에 나서 금융시장의 동요는 진정되었지만, 현재 세계경제가 안고 있는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결과만 보여줬다. 이젠 양적완화를 축소하는 것도 지속하는 것도 힘든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더욱 심어줬던 것이다. 현 금융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양적완화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중앙은행의 선택이 차선책에도 미달한다는 의심을 불러온 것인데, 경제지표 발표 때마다 일희일비하고 중요인사들의 한 마디에도 쉽게 동요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새로 연준 의장에 취임하게 될 옐런은 이를 의식한 듯, 의회에서 양적완화 축소는 당분간 없을 것이라 못 박았다. 심지어 양적완화 중단의 기준이 되는 실업률 6.5%를 5.5%까지 낮춰 잡아, 장기간 양적완화를 시행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여전히 양적완화 축소 논란은 신문지상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형국이다. 그녀가 공공연히 말한 대로 2016년까지 계속될지도 모를 이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통화정책 교과서에 실리게 될지, 아니면 새로운 위기의 시발점이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번 주례토론회에서는 중앙은행(미국 연준)에 의한 화폐정책의 역사적 변화를 ‘화폐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관리’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이 분석에 근거하여 앞으로 펼쳐질 세계경제질서의 변화를 진단해보고자 한다.

화폐는 중립적이지 않다, 국가의 중요한 역할 ‘화폐관리’

우리에겐 낯선 ‘브뤼노프’라는 마르크스 경제학자가 남긴 중요한 유산이 있다면, 그건 20세기 현대국가의 중요한 두 가지 기능에 대한 정리일 것이다. 바로 노동력 관리와 화폐관리이다. 노동력 관리는 국가의 구체적인 재정정책과 사회 관리정책으로 드러나며, 화폐관리는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한 통화신용정책으로 드러난다.

행정부는 선출된 권력이니 만큼 재정정책과 사회정책에는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녹아있다는 건 누구나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는 케인즈 경제학의 역사적 등장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시기로 부터 경제‘법칙’이 아닌 경제‘정책’이 중요한 화두가 된다. 바로 1930년 대공황의 여파인데, 실업이 급증하고 사회가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케인즈는 기존의 경제학 관념과 달리 실업이라는 것이 예외적인 상태가 아니라 일반적 상태라고 파악했고, 실업을 줄이는 역할을 국가가 해야 한다고 진단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공황으로 전 세계가 혼돈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대중이 봉기를 일으킬 것이고 러시아에서 시작된 소비에트 혁명이 전 세계로 파급되면서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라 우려했다. 이를 위해 임금정책에 있어서 조직노동자들과의 합의가 중요하고,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주체로서 정부의 중요성이 등장했던 것이다. 역시 넓은 의미의 정부로서 중앙은행도 포함되는데, 유통화폐와 은행의 신용(대출)을 통제하는 매우 중요한 국가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중앙은행도 경제정책의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중앙은행의 통화신용정책에 대해선 뛰어난 전문가들에 의해 다뤄지는 중립적 대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 더구나 복잡한 숫자와 이해하기 어려운 경제학 개념들이 난무하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를 이해한다기보다는 그냥 믿을 뿐이다. 국가로부터 분리된 경제라는 영역을 올바로 다스리기 위한, 그들의 고도의 판단이라고만 보는 것이다. 그래서 ‘관치금융’의 폐해라는 말을 들을 때도 편향된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할 것으로서 금융과 중앙은행 등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미국 연준의 역사를 보면 중앙은행의 독립은 ‘수단’의 독립을 의미할 뿐, ‘목표’의 독립은 아니었다. 중앙은행이 비록 정책실패의 책임을 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정책의 수립 및 집행까지 국민경제와 전적으로 분리된 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준금리나 은행의 지급준비율 등에 대한 결정에 대해 중앙은행은 배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은 국민경제와 동떨어진 특정 방식만을 고집할 순 없다. 경기가 불황일 때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신용팽창을 자극하는 저금리정책을 취하고, 경기가 과열되면 버블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리 금리를 인상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중앙은행들은 정부의 의회와 행정부로부터 위임받은 업무를 수행할 것을 요구받기도 한다. 가령 미국의 경우 연준은 물가안정과 고용극대화라는 책무를 위임받아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최초의 중앙은행이라 할 수 있는 영란은행의 설립이 프랑스와 전쟁을 위한 재정적 요구에 이뤄진 역사를 들여다보면, 증앙은행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국가의 필요와 이를 둘러싼 현실적 조건은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근대적 중앙은행의 탄생과 국가장치로의 변모

근대적 중앙은행의 시초라 일컬어지는 미국 연준은 1913년에 설립되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실질적인 근대적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한 것은 1951년 ‘재무부-연준 합의’부터이다. 1913년 설립 당시 연준의 설립 이념은 지금처럼 물가안정, 금융안정, 완전고용이 아니었다. 당시 설립이념에 해당하는 내용은 ‘진성어음주의’였다. 이것은 무역 및 상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어음을 할인해주는 업무였다. 최종대부자로서의 역할도 아니고 금융시스템의 관리와 통제를 관장하는 역할도 아니었다. 자본가들의 무역과 상업 활동을 지원하는 기능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재할인창구를 통해서 많은 자금이 풀려나가자 미국 동부의 금융자본가들이 이것을 금융투기에 활용하게 된다. 그래서 1928년부터 당시 연준 내부의 중요한 두 기관이었던 연준이사회와 공개시장조작을 담당하는 뉴욕연준이 금리문제를 두고 심각한 대립을 하게 되는데, 연준이사회는 정부 측 이해를 대변했고 뉴욕연준은 12개 지역 연준은행, 즉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했다. 당시 금융투기가 과잉되었다고 판단한 연준이사회는 금리를 올리려고 했고, 뉴욕연준은 활발한 경제활동에 따른 정상적인 유동성 요구라고 판단하여 이를 막으려 했다. 그러다가 결국 연준이사회는 금리인상을 결정한다. 한편에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1929년 주식시장 붕괴되고 이후 금융공황으로 발전했다고 평가한다.

그 후 1930년 세계대공황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갔고, 당시 금본위제였기에 이에 대한 연준의 대응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1933년 대통령으로 새로 취임한 루즈벨트는 금의 유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적성국에 관한 법을 이용하여 전미은행의 휴무를 4일간 선포한다. 그리고 긴급은행법을 만들어 전국의 은행들을 연방감독체계에 포함시키도록 하였으며, 수년간에 걸쳐 예금자보험법 등의 금융개혁법을 제정하였다. 일련의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뉴욕을 중심으로 한 민간 금융 자본가들의 사적금융활동이 국가 관리체계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본격적인 근대적 의미의 중앙은행으로 변모하기까지 십 여 년 시간이 필요했고, 연준을 둘러싼 본격적인 정치투쟁이 벌어진다. 첫 번째 단계는 앞서 언급한 1933년, 1935년 은행법 개정 이후, 제도 및 정책기조의 방향이 마련되었던 시기이다. 두 번째 단계는 연준 스스로가 정책의 주체로 호명되는 과정이다. 이는 1946년 ‘고용법’, 1951년 ‘재무부-연준 합의’, 1953년 ‘단기국채매입주의’를 거치면서 절정에 다다른다.

1945년 종전 이후 미국은 전쟁터에서 돌아온 유휴노동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1946년 ‘고용법’ 제정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로서 국가에 의한 완전고용정책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러한 정치 사회적 상황은 연준의 정체성도 변화시켰다. 그 이전까지 국가채무관리와 상업 활동에 기반한 어음인수 등을 주요하게 다뤘지만,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압력에 직면하면서부터 경기순응적 역할에서 경기대응적 역할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이런 변화는 나중에 1978년 ‘완전고용 균형성장법’이 제정되면서 더욱 체계화된다.

1951년의 ‘재무부-연준 합의’의 시작은 미국의 세계 2차 대전에 참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은 전비마련을 위해 막대한 재정조달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연준이 미국 정부의 국채를 매입하고 국채 금리를 지지하는 것이 통화정책의 최우선과제로 부상했다. 그리고 이런 관행은 종전 이후까지 계속되었는데, 이 와중에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연방정부는 더 심각한 재정조달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런 관행에 당시 연준 의장인 메케이브는 더 이상 물가안정을 해치는 통화정책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천명하였고, 당시 트루먼 미 대통령과 심각한 마찰을 겪는다. 결국 1951년 ‘합의’를 통해 정리되는데, 재무부와 연준이 부채관리와 화폐정책에 있어서, 정부가 원하는 수준의 자금을 성공적으로 조달하고 공공부채의 화폐화를 최소화한다는 공동목표에 합의하게 된다.

이 합의 중요성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 거시경제적 안정화를 중앙은행독립의 방침으로 설정했다는 것과, 둘째 경기대응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운용을 연준으로 하여금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데 있다. 그러므로 1951년의 합의를 행정부와 연준의 갈등이나 케인즈주의적 재정정책에 종속된 통화정책으로 이해하는 건 한 가지만 보고 다른 한 가지는 보지 못한 해석이다. 대공황부터 전후복구까지 연준의 역할은 국가 채무관리만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연준의 통화신용정책이 거시경제정책에서 중요성을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연준 의장의 리더십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1953년 ‘단기국채매입주의’가 확립되는데, 이것은 단기국채금리를 낮춰 단기화폐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의미이다. 이를 통해 금융자본에 원활한 화폐공급을 유도하고자 했다. 그리고 재무부가 지시했던 특정 국채금리지지는 폐지되었지만, 연준은 재무부가 의도했던 재정조달을 외면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았다. 또한 공개시장조작에 대한 권한을 금융자본의 지지를 받는 뉴욕연준에서 워싱턴의 지시를 받는 연준이사회로 가져오게 되면서 명실 공히 연준 전체에 대한 통제력과 함께 통화신용정책 모든 수단들을 갖추게 되었다.

종합해볼 때, 이런 수 십 년간의 과정에서 벌어진 연준의 독립은 정부로부터의 독립이 아닌 정부 내부에서의 독립이었고 경제정책 형태로서 화폐에 대한 국가 관리를 확립해가는 과정이라 정의할 수 있다. 국가가 경제정책의 주체로 호명되기 위해선 필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이는 사회적 혹은 정치적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국가가 정책의 특정한 주체로 자립하여, 물리적 힘이나 행정 등과 구별되는 특정한 정치적 활동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자본주의에서 경제는 법칙이나 시장의 힘이 아니라 주체로 호명된 국가에 의해 관리되는 특정한 정치의 대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연준의 역사적 탄생과 변모의 과정은 현재 연준의 수행하는 양적완화 정책의 본질에 대해서 일관된 분석을 제시해준다. 그들에게 있어서 양적완화정책이 경제이론에 부합하는지 시장의 규칙에 위배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의도했던 경제정책의 효과와 실현여부가 중요한 것이다. 말 그대로 위기대응을 위해선 기존과 상충되는 방침이라도 갖다 쓰고 탈나지 않게 잘 관리만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이 방식이 전통적이냐 비전통적이냐는 별 중요한 쟁점이 아닐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마치 원칙 없이 마구잡이로 갖다 붙이는 궁여지책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온갖 거시경제모형을 이용하여 그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중앙은행에 맞서지 마라’라는 금융시장의 격언을 계속 상기하도록 유도하며, 언제든지 중앙은행은 사태를 적절히 관리할 능력이 있음을 천명한다. 그래서 더욱 커뮤니케이션 정책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비판의 방향도 그것이 기대와 달리 경제정책의 실현을 위한 정치사회적 토대를 침식시키는 결과로 귀결될지, 아니면 새로운 안정화정책이 될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연준의 역사적 변모과정에서 보았듯, 사회적 정치적 조건의 시대적 상황이라는 것이 연준을 변화시킨 가장 큰 변수였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20세기 현대국가의 두 가지 역할, 즉 노동력관리와 화폐관리로 집약되는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 중앙은행은 앞으로 더욱 큰 요구를 받을 수밖에 없고 스스로를 계속 그렇게 호명할 것이다.

연준의 양적완화는 자신의 화폐체제 토대를 위협하고 있다


흔히 미국의 화폐제도의 특징을 ‘조세기반 화폐체제’라고 부른다. 위 그림에서 보듯 중앙은행의 화폐발행은 재무부 국채에 근거하고 있으며 다시 재무부 국채는 미래에 걷을 조세수입에 근거하고 있다. 여기서 미래조세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미국의 경제력과 헤게모니를 의미이다. 만약 미국의 경제력이 추락하고 헤게모니를 점점 상실한다면 세계화폐로서 달러체제는 붕괴할 것이다.

현재 여러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로 인해 중앙은행의 자산항목에서 국채의 비중은 낮아지고, 다른 파생금융상품이 채웠다. 대표적으로 모기지 파생금융상품(MBS)와 같은 것이 있다. 다음 그림에서 보듯, 연준은 양적완화 초기부터 파생상품에 대한 대대적인 구매자 역할을 자임했다. 이러한 역할의 변화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고, 국채매입을 통해 원활한 재정조달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참조: www.alsosprachanalyst.com

이러한 자산구성의 변화와 양적확대는 실물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한 경기부양의 명목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아래 그림에서 보듯, 유통현금의 변화는 거의 미비하며 대부분 중앙은행 예치금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이렇게 싸여만 가는 은행들의 초과지급준비금에 대해서 연준은 이자를 붙여줌(지준부리)으로서 은행의 재무건전성 강화를 지속시켜왔다.

  미국 연준 예치금 변화 (단위: 10억 달러)
참조: research.stlouisfed.org

연준은 이제 수동적인 ‘최종대부자’의 자세를 탈피하고 사전적이고 적극적인 ‘최초구매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대응은 어찌 보면 새로운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도 말했듯, 자본주의는 신용체계에 대한 관리를 통해서 자본주의 생산의 원활한 작동을 보장받는다. 앞서 언급한 브뤼노프도 화폐는 자본주의 신용체계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화폐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보증 받고 작동하는 곧, 국가 관리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연준의 화폐적 해법은 그 자체로 파국적인 사건이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현재 발달한 신용체계를 조정하는 적합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국가장치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탄생했던 근대적 연준의 역사를 상기해 볼 때, 지금의 국면을 화폐관리 통해 경제정책에 개입하는 연준의 일관된 태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변화는 자신의 화폐기반 시스템인 조세기반 화폐체제를 위협하고 있음에는 분명하다. 연준의 자산항목을 모두 제자리로 되돌려 놓기 위해선, 자본주의의 새로운 호황이 등장하여 그 자산을 모두 민간이 되사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세계적 장기불황의 끝은 보이질 않고 있다. 미국은 연방정부 부채협상을 둘러싼 갈등에서 보듯 리더십의 큰 상처를 받고 있다. ‘미래에 걷어 들일 조세’가 의미하는 미국의 경제력과 헤게모니의 토대는 점점 침식되고 있고 있는 것이다.

양적완화정책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 ‘명목 GDP 목표제’

이런 상황을 연준도 의식하고 있는지, 자신의 역량으로 모든 위기를 극복할 순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통화신용정책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명목 GDP 목표제’가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작년 12월 버냉키 연준 의장은 연준의 정책목표 중 하나인 ‘물가안정목표제’를 ‘명목 GDP목표제’로 변화시킬 의지가 있음을 밝혔다. 명목 GDP 성장률이란 물가상승률에 실질 성장률을 더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김중수 총재도 이런 발언을 되풀이 하고 있는데, 이건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관리 정책을 포기하고 GDP 성장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것으로서 매우 커다란 변화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방식인데, 실질성장률이 부진하더라도 물가를 끌어올려, 즉 돈을 더 적극적으로 풀어서 목표했던 성장률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당연히 새로운 형태의 자산버블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불안정성은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 언뜻 보기에 경기침체에 의한 마이너스에 플러스 요소인 경기부양효과를 더하면 제로가 되면서 경기침체를 막을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합일 뿐, 모든 값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편차를 고려하지 못한 단순한 생각이다. 현재 실물부문은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겪고 있지만, 이와 달리 금융시장은 위기이전 수준을 회복하여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우리는 역대 어느 시기보다도 더 큰 실물과 금융의 불균형을 경험하고 있다.

또한 연준의 이런 적극적인 정책개입 방식은 연준 만이 할 수 있는 정책이다.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다른 신흥국들은 수행하기 힘들다. 이는 통제불가능한 외환시장 때문인데, 오히려 이런 현실적 토대의 불균형은 연준의 방식이 중앙은행 역할의 보편성을 침식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보편성의 균열은 자본주의적 관리방식의 국제적 연결고리를 끊게 만들 것이고, 국지적인 갈등과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환율갈등으로부터 그런 조짐을 이미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지역간 갈등 속에서도 그런 경향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미국의 헤게모니 약화와 자국의 이해를 찾기 위한 국지적 갈등들이 과연 ‘뉴노멀(새로운 정상상태)’로 가기 위한 성장통이 될지, 아니면 연쇄적인 파국의 나선이 될지, 우리는 그 변곡점 위에 서 있다. 여기서 미국의 달러헤게모니를 상징하는 연준의 선택과 변모가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 금융위기 이후 6년 동안 세계적으로 오바마보다 더 파급력이 컸던 인물이 버냉키였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2014년 새로운 경제대통령 옐런의 등장은 미국의 화폐적 위기대응에 대해서 우리를 더욱 주목하도록 만들고 있다. 양적완화 축소냐 지속이냐 라는 논란은 금융시장의 비명과 탄성만으로 좁게 바라볼 성질의 것이 아님은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화폐관리는 국가의 기본기능이고 그것은 재정통화정책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며, 우리의 일상은 이런 국가의 화폐관리로부터 파생된 경제정책에 광범위하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토론문 끝]

* 토론문 정리 : 송명관(참세상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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