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직업병 피해자 6년만의 첫 교섭, 파행으로 끝나

피해자 교섭단 자격시비로 논의는 시작도 못해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들이 18일 오후 삼성전자와 첫 본교섭을 가졌다. 직업병 투쟁에 나선지 6년 만에 열린 교섭이지만, 삼성전자에서 피해자 교섭단의 자격문제를 거론하며 교섭은 파행으로 마무리됐다.

교섭에 앞서 "지금껏 돈으로 회유해온 삼성이 이제라도 대화에 나선 것은 다행이지만, 피해자 가족을 두 번 울리지 않도록 교섭에 임해줬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던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반올림 측 교섭단 대표)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출처: 뉴스셀]

오후 3시부터 기흥사업장 나노파크 1층 대회의실에서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반올림)’ 측과 삼성전자의 1차 본교섭이 열렸다. 교섭단에는 반올림 측은 피해자 가족 7명과 반올림 활동가 2명으로 구성된 교섭위원 9명 및 서기, 참관 각 1명이, 삼성전자 측은 인사팀 4명, 법무지원팀 2명, 서기 1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교섭을 시작하자마자 삼성전자 측은 ‘반올림’을 교섭당사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올림에 따르면 삼성전자 측은 “반올림은 실체가 없으니 이해 당사자로부터 위임을 받아오라”, “위임받지 않은 반올림 활동가들은 나가거나 참관만 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교섭단의 피해자 가족들은 “우리는 위임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는 교섭의 주체다. 6년 넘게 싸워오면서 개인 피해자 이름으로 싸워본 적이 없고, 항상 반올림 이름으로 싸웠다.”며 반올림을 교섭 주체로 인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삼성 측은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날 교섭은 교섭단 자격시비만 일다 2차 교섭날짜도 잡히지 않은 채로 끝났다.

반올림은 논평에서 “6년 만에 열린 귀중한 본교섭이 시작부터 교섭 주체에 대한 자격 시비로 점철된 것에 큰 유감을 표한다.”며 “삼성전자는 반올림을 교섭주체로 인정하고 성실교섭에 임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반올림은 지난 8개월 동안 다섯 번에 걸친 실무협의 내내 삼성과 대화를 해온 주체였다. 더욱이 반올림 활동가를 포함한 교섭단 구성은 실무협의에서 양측이 합의한 사항임에도 이 모든 과정을 원점으로 돌리는 삼성의 태도는 매우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반올림 이종란 활동가는 “우리는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본교섭이 투명하고 내실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삼성 측은 지난 9일과 오늘 열린 반올림의 기자회견에 대해 ‘협상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연이어 개최하고 일방적인 주장을 지속하고 있다’며 공문을 통해 거듭 불쾌감을 표한데 이어, 급기야 이미 합의한 반올림 측 교섭단 자격까지 문제 삼아 교섭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 삼성이 과연 이번 교섭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출처: 뉴스셀]

반올림과 직업병 피해 유가족들이 교섭에 앞서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정문 앞 기자회견에서 밝힌 '삼성 직업병 대책 마련을 위한 요구안'에는 공개사과와 노동자의 건강권 실현대책, 보상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공개사과’의 내용은 피해노동자와 가족, 국민 앞에 “화학물질 및 방사선에 대한 철저한 관리, 적절한 보호장비 지급, 안전보건 관련 정보제공과 교육 등 안전보건 관리 책임을 다하지 않음 점”과 “산재 신청을 하지 않도록 회유하거나 산재인정이 이뤄지지 않도록 업무환경 정보를 은폐한 점” 등에 대한 사과 요구이다.

반올림은 또한 ‘노동자의 건강권 실현 대책’으로 “화학물질과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공개, 화학물질안전보건위원회의 설치와 정기적인 감사, 안전보건에 대한 노동자에 대한 실질적인 참여를 인정할 수 있도록 노조설립과 활동 방해금지 등”을, ‘보상’과 관련해서는 “삼성전자 DS부문(반도체, LCD 등)에서 산재를 신청한 모든 이들에게 피해를 보상하고, 현행 퇴직자 암 지원제도를 개선해 대상과 지원조건을 넓히고, 보상수준을 확대할 것 등”을 요구안으로 상정했다.

한편, 반올림이 공개한 '삼성전자 직업병 제보 및 산재신청 현황'에 따르면 2013년 12월 6일 기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등에 근무하다가 희귀병에 걸린 피해자는 총 138명, 사망자는 56명에 달한다. 이 중 36명이 산업재해를 신청했으나 유방암으로 숨진 고 김도은 씨와 재생불량성빈혈로 투병중인 김지숙 씨 단 두명만 산재인정을 받았다. 고 황유미씨 등 세 명은 1심에서 산재 인정을 받았으나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로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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