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한 유미, ‘또 하나의 약속’ 즐겁게 봤을 것”

영화 개봉 첫날 집단 관람...주인공 황상기 씨 “영화 많이 봤으면”

“우리 유미가 영화를 상당히 좋아했어요. 가수도 좋아했어요. 유미와 함께 영화를 보진 못하지만, 유미가 아마 하늘나라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고 있을 거예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한 6일 오전 서울 구로CGV 한 편에서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가 흘러나왔다. 영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고 황유미 씨 아버지 황상기 씨의 목소리다. 그는 강원도 속초에서 새벽 첫 차를 타고 이날 서울로 올라왔다.

대형 영화관 안에는 ‘또 하나의 가족’을 홍보하는 포스터 한 장 붙어있지 않지만, 황 씨는 외롭지 않았다. 그의 오른 손에는 유미 씨의 유품이 담긴 작은 종이가방이 들려있다.

그는 “우리 유미가 가수 신화를 좋아해서 어릴 적에 사진을 모았는데, 유미와 함께 영화 보는 기분일 것 같아 가져왔다”며 “유미와 같은 또래였을 신화 팬들도 또 하나의 가족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 뒤 멋쩍게 웃었다.

[출처: 사진총괄 : 노동과세계 변백선 기자]

이날 영화관에는 ‘또 하나의 약속’ 상영관 축소 논란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황상기 씨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상임활동가 이종란 노무사를 비롯해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장하나 민주당 의원 등이 개봉일 첫 영화 관람을 위해 나섰다. 노회찬 전 의원은 “영화 제작과정부터 참여했다”며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출처: 사진총괄 : 노동과세계 변백선 기자]

또한 위영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 삼성전자서비스 기사로 근무하다 회사의 노조 탄압 등에 항거한 故 최종범 열사의 부인 이미희 씨 등 삼성 관련 피해자들이 영화관을 찾았다.

이미희 씨는 “언론에서 ‘또 하나의 약속’이 높은 예매율에도 불구하고 극장에서 상영을 기피해 외압설까지 제기됐다는 보도를 접했다”며 “안타까운 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씨는 “내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남편의 100일 추모제가 열린다. 남편의 음력 생일이기도 하다”며 “삼성을 비판하는 영화를 추모제 전날 보게 되어 뜻 깊다”고 심경을 전했다.

특히 이들은 영화 관람 내내 눈시울을 붉히며 황유미 씨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영화에 담긴 ‘작은 거인’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끈질기고 강렬한 투쟁은 현실만큼이나 큰 감동을 줬다. 영화가 끝나고 제작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이 화면에 오르기 시작하는 순간, 관람자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출처: 사진총괄 : 노동과세계 변백선 기자]


[출처: 사진총괄 : 노동과세계 변백선 기자]

‘또 하나의 약속’은 2003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입사한 뒤 4년이 채 못 돼 백혈병으로 숨진 故 황유미 씨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온 몸을 던져 싸운 아버지 황상기 씨의 실화를 담은 영화다.

어려운 집안형편을 생각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취업한 그는 20개월 만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바로 건강이 악화하면서 1년9개월 만에 아버지 황상기 씨의 택시 안에서 숨졌다.

한편 영화가 끝난 뒤 이들은 바로 회의를 열고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 열사 대책위원회’를 ‘삼성바로세우기(가칭)’ 대책기구로 전환한다고 결정했다. 이 기구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 연대하고, 삼성의 ‘노조파괴 문건’을 알리는 등 삼성의 노동인권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제기한다.

‘삼성바로세우기(가칭)’는 오는 20일 오전 첫 대표자회의를 열고 공식 출범한다.

“속초에서도 영화상영 안하니까...삼성 눈치보면 안되요”

황상기 씨 인터뷰

오늘 아침 속초에서 올라오셨나요?

속초에서 아침 첫차 타고 올라왔는데...상당히 억울하죠. 삼성이 잘못한 사실을 우리가 잘못했다고 지적해 주는 거잖아요. 삼성과 이건희 회장을 눈치보고, 굴복하는 행위죠. 강원도 속초에는 보겠다는 사람이 많이 있어도 볼 수 없어요. 극장이 메가박스 하나 있는데 상영을 안 해주니까요.

안 그래도 ‘또 하나의 약속’ 축소에 외압설까지 제기됐잖아요

영화관마저 삼성의 눈치를 본다면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 영화는 문화인데, 문화조차 기업의 힘으로 좌지우지 하고 입을 막아버리면 억울하지요. 국민은 안녕하지 못한 거예요.

오늘 삼성전자서비스 기사들도 집단 영화 관람하더라고요

삼성전자서비스 기사들이 4일간 파업하는 동안 다같이 ‘또 하나의 영화’를 보기로 해서 기뻐요. 초일류기업 삼성은 쉽게 잘못을 고치지 않을 거예요. 더 많은 노동자가 나서 삼성을 비호하는 정부를 질타해야 해요. 정부는 삼성이 잘못해도 벌은 안 주고 상만 주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삼성을 상대로 싸우는 사람들을 응원해 줘야 해요.

영화 보면서 어떠셨어요? 유미 씨 생각 많이 나셨죠?

영화 보면 유미 골수 검사할 때... 골수 뺄 때 엉덩이 꼬리뼈에서 막 그러잖아요. 그리고 영화에서 그렸듯 유미가 내 택시 안에서 숨넘어갈 때가 생각나죠. 그때가 영동고속도로 싸리재 넘어갈 때 중간지점이거든요. 유미와 유미엄마가 택시 뒤에 있는데, 유미가 숨넘어가니까 유미엄마도 숨넘어가고. 차를 세우고 뒷문을 여니까 유미는 눈이 허옇게 뒤집혀서... 사람이 죽으면서 눈을 뜨니까, 눈을 감겨줬죠. 기가 막혔죠. 내 정신이 아니었어요. 고속도로 중간에 차 세우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죠. 모르겠어요. 힘들었어요.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삼성은 직원인 삼성노동자를 한 번 싸먹고 버리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고, 대기업에 돈만 벌어다주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해요. 삼성이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데, 그러기 위해서는 노조가 필요하죠. 삼성은 노조를 인정해야 해요. 만일 우리 유미가 살아있을 때, 노조가 있었다면 조금은 달랐지 않을까 싶어요. 삼성의 노동자는 안전하지 않아요.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해요. 내가 바로 삼성백혈병 피해자가 될 수 있어요. 다시 강조하지만 삼성노동자가 모두 뭉쳐 스스로 단결력을 가져야해요. 노동3권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거예요.
덧붙이는 말

정재은 기자는 미디어충청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미디어충청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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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 황상기 , 황유미 , 또하나의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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