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9년 만에 마당에 들어선 송전탑 뽑고 전선지중화

한전, 2008년 공사 착공했으나 경영여건 악화 이유로 2014년 재추진

한국전력은 2008년도에 주민들 요구로 약속했던 울산 북구 양정동 주택가에 들어서 있는 송전탑 2개를 2월부터 철거하고 송전선로를 지중화한다. 이는 2005년 양정초등학교 바로 뒷편에 송전탑 공사를 하려는 걸 막아내는 데서 시작됐다. 이번 공사는 주민들이 3년 싸움 끝에 2008년 지중화 약속을 받았으나 5년이 지난 시점에 들어가는 공사다.

  철거될 송전탑 2기. 울산 북구 양정동 주택가 마당에 들어서 있는 154kV 송전탑과 뒷편에 보이는 현대자동차 2공장 안쪽에 서 있는 송전탑이 철거되고 3구간에 대한 전선지중화 공사가 10일부터 시작된다. ⓒ용석록 기자 [출처: 울산저널]

공사 안내판도 세우지 않고 공사하던 현장 학부모·주민들에게 들켜
행정기관이 지나친 위법사실 학부모들이 밝혀내 공사 중단


2005년 11월 북구 양정초등학교 교장은 교장실에서 정체 모를 진동을 느꼈다. 뒷산을 보니 오전에 있던 나무가 오후에 보이지 않았다. 학교장은 학교운영위원회에 연락해 학부모와 함께 현장을 확인했다. 산에 오르니 한전에서 송전탑을 세우기 위한 기초공사를 하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양정체육공원 환경정화 봉사활동을 벌이던 주민자치위원장과 주민들도 송전탑 공사 정황을 확인했다.

학교운영위원와 학부모들은 송전탑철거를위한 학부모비상대책위원회(현미향 대표, 당시 양정초 운영위원장)를, 주민들은 송전탑철거를위한 주민비상대책위원회(박경수 대표, 당시 양정동주민자치위원장)를 꾸렸다. 이들은 비대위를 하나로 뭉쳐 공동대책위원장을 세우고 3년 동안 송전탑반대 싸움을 했다. 한전은 당시 양정초등학교 뒷산(양정산)에 있던 기존 송전탑(13번) 아래쪽에 154kV 송전탑을 두 개 더(13-1, 13-2) 세우려 했다. 송전선로는 현대자동차로 들어가는 선로였다. 주민들이 발견할 당시 13-1번 철탑은 이미 기초공사가 끝난 뒤였다.

대책위는 한전이 주민들 몰래 신속한 공사를 하기 위해 불법행위를 했음을 밝혔다. 한전은 작업시 실측하고 보존해야 할 경계표시를 하지 않았고 공사 안내판도 설치하지 않았다. 토사방출과 비산먼지, 소음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고 <소음진동규제법> 제25조에 의거한 특정공사 사전신고도 하지 않았다. 대책위가 현장을 확인했을 때 공사는 허가 면적의 20%를 초과한 땅을 무단으로 훼손했고 이는 <개발제한구역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29조에 의거해 공사중지명령, 공사중지 명령 위반 시 허가 취소 대상이었다.

대책위는 북구청(이상범 구청장)이 한전 공사를 허가하는 과정에 법률적 하자가 있음을 밝혔다. 자치단체장은 환경부장관 등과 사전에 환경성검토협의를 거쳐 환경파괴 및 주민의 생명과 건강침해 가능성을 우려해 공사 허가 절차를 밟아야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대책위는 북구청도 허가를 취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책위는 한전의 위법 사실과 학생·주민들이 송전탑 건설로 받게 되는 피해 내용을 작성해 1,549명이 서명하고 울산북구청, 울산교육청, 울산시청,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양산국유림관리소 등 11개 관계기관에 송전탑 공사 허가 취소를 요청했다.

학부모와 주민들은 2005년 12월 4일 한전의 공사장 진입로에 천막을 치고 새벽부터 공사차량 진입을 막았다. 집회를 열면 200명 정도 참여했다. 주민자치위원회를 비롯한 관변단체도 모두 참여했다. 이로부터 10일 뒤 북구청은 불법행위에 따른 공사 중지를 명령했고, 양상국유림관리소는 한전에 국유림 사용중지 통보를 했다.

한전 공사 시행사는 공사중지명령이 내려진 다음날 학부모와 지역주민 11명에 대해 울산지법에 공사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했고, 울산동부서에 13명을 업무방해로 고소.고발했다.

마을 관통하는 송전탑 철거와 전선지중화도 관철
학부모들 노력 돋보이고 주민들 참여도 높아


2006년 3월부터 북구의회, 북구청, 주민과 학부모, 한전, 새마을아파트재건축조합, 시공사 등은 전체 간담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2006년 9월, 학교 바로 뒷산에 세워지기로 한 13-1호기를 철거하고 원상복구시킬 것, 이미 철탑이 들어서 있던 14~17호기 송전탑을 철거하고 지중화할 것을 결정했다. 이 가운데 16호기는 양정동 힐스테이트 아파트를 신축하면서 철거됐고 학교 뒷산에 세우던 철탑도 철거했다. 13-2번은 마을로 내려오지 않도록 우회하는 것에 주민이 합의했다.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에 13-1호기 공사장 철거 외에 기존에 세워져 있던 15번 철탑 철거가 쟁점사항이 됐다. 15번 송전탑은 양정산에서 내려와 마을을 관통하며 주택가 마당에 세워진 철탑이다. 대책위 쪽은 주민에게 피해가 큰 기존 철탑 철거를 강력히 요구했으나 간담회를 주관했던 이들은 13-1번만 우선 철거하고 15번 철거는 점진적으로 협의하자고 해 진통이 있었다. 학부모쪽 비대위는 끝까지 주민 마당에 있는 송전탑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과는 주민 마당에 있던 15번 송전탑을 뽑고 전선지중화로 결정됐다.

  양정동 동사무소 입구에 걸린 지중화 환영 펼침막. ⓒ 용석록 기자
[출처: 울산저널]

한전은 2008년 12월 지중화 공사에 착공했으나 2009년 1월 한전 경영여건 악화 등을 이유로 지중화사업을 잠정중단했다.

2010년 주민들은 지중화 공사 시행을 재차 요구했고, 2013년 북구청은 지중화사업 도로굴착심의회 등을 개최해 행정 절차를 보완했다. 2013년 8월 울산광역시 도로점용공사장 교통소통대책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한전은 2014년 2월 10일 지중화 공사에 들어가 7월 말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당시 시행사는 동부경찰서에 학부모와 지역주민 13명을 업무방해로 고소.고발했으나 취하했다. 그러나 주민대표 박경수 주민자치위원장, 김재환 주민봉사단체회원, 학부모대표 현미향 양정초 운영위원장, 김현주 학부모위원 4명에게 약식벌금 50~70만원이 부과됐다. 이들은 벌금이 부당하다며 정식재판을 신청했고 울산지법에서 무죄를 판결받았다. 검찰은 대법까지 항소했고 이들은 지법-고법-대법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로써 2005년 시작된 양정동 주택가 일대 송전탑 철거 투쟁은 만 8년 만에 철탑을 뽑고 전선지중화까지 오게 된 것이다. 행정기관보다 주민이 나서서 한전의 위법 사실을 밝혀내고, 송전탑 반대 출발점이던 양정초 뒷산 송전탑 공사중지만이 아닌 기존에 세워져 있던 송전탑을 철거한 것은 눈여겨 볼 일이다. 또한 대책위에 주민과 학부모들이 적극 나섰던 점이 주목되고 문제 해결을 위해 행정기관도 노력을 기울였다.

공동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박경수 북구새마을회장은 인터뷰에서 "한전은 두더지처럼 밤에도 공사하러 들어가 언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들어가 일을 했다"고 회상했다. 경찰 출석요구, 법정소송 등으로 모아둔 서류만 라면박스로 5상자는 된다며 힘들었던 시간을 설명했다. 철탑에 대한 공부도 그때 싸움을 통해 하게 됐다.

공동대책위원장을 맡았던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값진 승리지만 한번 들어선 철탑 뽑는데 9년이 걸렸다"며 "도시 곳곳에 들어선 대형 송전탑에도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증설되는 송전탑이 주는 전자파 피해와 자연을 훼손하는 정도가 도를 지나친다는 지적이다.
덧붙이는 말

용석록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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