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라는 낙인, “다 죽여서 북한 보내라”

소위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들, 압수수색과 조사 등에서 인권침해 빈번

소위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된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의 아내 엄경희 씨에게는 ‘빨갱이 가족’이라는 주홍글씨가 따라다닌다. 지난해 8월 28일 이후, 엄경희 씨는 줄곧 국정원과 보수단체, 언론의 괴롭힘과 이웃들의 따돌림에 시달려 왔다.

인권침해도 잇따랐다. 압수수색 과정에서부터 언론사들의 경쟁적인 취재, 검찰의 수사 과정 등에서 피해자와 가족의 인권은 무시됐다.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이지만, 진실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았다. 국정원발 ‘내란음모’ 정보는 진실처럼 확산됐고, 여론은 그들에게 ‘빨갱이’라는 죄목을 확정지었다.

‘빨갱이’라는 낙인

12일 오후 1시,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는 인권단체연석회의 등의 주최로 ‘아무도 우리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소위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임권침해 보고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구속자 가족과 압수수색 당사자 등은 연신 눈물을 흘리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엄경희 씨는 그동안 밤낮으로 국정원 직원의 사찰에 시달려 왔다. 재판 과정에서는 얼굴이 무자비하게 공개됐고, ‘일베’에도 엄 씨의 사진이 유포됐다. 보수단체들의 신체적, 언어적 폭력에도 시달렸다. 사람들의 감시와 손가락질이 이어지면서, 엄 씨는 이제 자신을 감시하는 습관까지 생겼다.

“저희 집에 압수수색이 들어오기 약 한 달 전부터 아이 방 창문으로 계속 카메라 불빛이 터졌어요. 국정원 직원들은 앞집과 옆집 등 사방에서 촬영을 하며 사찰을 했어요. 국정원 직원들은 우리 집을 들여다보다 저와 눈이 마주치면 슬그머니 도망갔어요. 너무 무서워서 CCTV를 설치했죠. 저를 감시하기 위해서였어요. 남편이 영장 실질심사를 받던 날, 국정원 직원들로 보이는 여성들이 제 사진을 찍었어요. 찍지 말라고 하니까 ‘어디서 마누라 사칭을 하고 다니냐’며 채증을 계속했어요. 그 사진은 일베에 올라갔고. ‘다 죽여야 한다’,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는 글들이 달렸어요.

재판이 끝나고 나오는데, 탈북자 단체들이 구속자 가족들과 방청객들에게 ‘이 에미나이들, 너희 사람 죽여봤어?’라고 하더군요. 보수단체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때리기도 하고 ‘다 죽여야 한다’고 욕을 하기도 했어요. 우리는 사회에서 격리당하는 환자와 같은 사람들이었어요. 지금도 커피숍을 가게 되면 옆에 남녀 커플만 있어도 국정원 직원이 감시하는 것 같아요. 새벽에도 집 앞을 몇 번이나 둘러보고, 우리 집이 어떻게 보일까 하며 나를 감시하는 습관도 생겼어요.”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된 김근래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의 아내 한영 씨의 집에도 국정원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지난해 8월 28일 새벽, ‘둘째 아들 일 때문에 왔다’는 말만 듣고 문을 열어준 것이 악몽의 시작이 됐다. 남편의 합법적이었던 방북은 언론을 통해 ‘밀입국’으로 왜곡됐고, 세 명의 자녀들은 아빠의 오랜 부재를 경험해야 했다.

“지난해 8월 28일 새벽 6시 30분 경, 벨 소리가 났어요. 인근 경찰서에서 나왔다면서 둘째 아이 이름을 대며 아이 때문에 왔다고 하더라고요. 문을 열어보니 10명이 넘는 남자들이 서 있었어요. 아이 때문에 온 것이 아닌 것 같았고, 제 옷차림도 단정치 못한 상태라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고 문을 다시 닫으려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문을 열고 밀고 들어오더라고요.

그 다음부터 구석구석 방을 수색하고, 첫째 아이가 용돈을 모아 산 장난감 총을 보며 ‘진짜는 아니죠?’라고 물었어요. 아이가 초등학교 수련회에서 기념품으로 사온 은장도를 보며 ‘무슨 용도냐’고 묻기도 했어요. 아이 아빠가 예전에 ‘청년문화유적답사’ 등을 통해 방북을 한 적이 있어요. 합법적으로 간 것이었고, 당시 안기부 직원도 동행해 그 직원이 찍힌 사진도 있어요. 국정원 직원들은 안기부 직원이 찍힌 사진만 빼 놓고 다 압수해갔어요. 이후 언론에는 아이 아빠가 ‘밀입국을 했었다’는 보도가 나가더라고요.”


이영춘 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장은 지난해 8월 28일 압수수색 이후 이웃에서 ‘왕따’가 됐다. 경찰은 이 씨의 아파트에 100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해 주민들의 통행을 가로막았고, 언론을 대동한 국정원은 압수수색 과정을 과대 포장했다.


“8월 28일 압수수색을 하고 한 달 뒤, 2차 압수수색이 진행됐어요. 경찰은 아파트에 100여 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유치원 통학차량의 통행까지 방해했어요. 아파트 주민들은 무서워서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어요. 1차 압수수색 한 시간 뒤, 아직 어떤 언론에도 압수수색 보도가 나오지 않았던 시점에서 TV조선 취재진들이 취재를 나오더군요. 그 날 이후, 동네사람들은 문을 열고 나오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다시 문을 닫고 들어가요. 아파트에서 마주칠 것 같으면 멀리 돌아가기도 하고요.

2차 압수수색 당시 국정원은 200명 정도의 취재진을 대동했어요. 여섯 명의 국정원 직원들이 압수수색 박스 세 개를 양 쪽으로 잡고 나갔죠. 그런데 그 박스에는 고작 10장짜리 수첩 쪽지가 들어있었어요. 사진을 찍히기 위해 그랬던 거죠.

지역 경찰서장은 회사 사장에게 전화해 ‘이영춘이라는 자가 회사에 있었는데 왜 보고하지 않았냐’고 했다더군요. 겁을 먹은 사장이 저에게 ‘옛날에는 빨갱이를 돌로 쳐서 죽였다. 사실로 밝혀지면 우리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말했어요. 아파트 관리자들에게도 ‘이영춘이라는 자가 살고 있나’라는 연락이 계속 와요. 보수단체들은 사무실 앞에서 집회를 하거나 협박전화를 하고요. 언론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없어요. 취재진들은 실명과 얼굴을 그대로 보도해요.”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침해도 잇따랐다. 국정원은 이 씨의 부부관계까지도 사상적 검증을 하려 들었고, 회유를 일삼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진보진영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는 내가 살아온 모든 일들이 RO사건과 연결됐어요. 국정원 직원들은 저에게 ‘부인과 결혼한 것도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것 아니냐’, ‘부부관계에서 주체사상 학습을 시켰나’ 등의 질문을 했어요. 또한 ‘네가 하지 않은 것은 안다. 김홍열이 했다고 이야기 하라’고 회유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던 것은 성명서 하나 채택하지 못하는 것이었어요.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경기본부 등에 연락을 해 성명서를 채택하려고 했지만 ‘조작된 내란음모 사건’이라는 문구를 쓸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수정을 거쳐 ‘소위 내란음모 사건’으로 표기하려고 했으나, 야4당에서는 그 문구가 들어가면 함께할 수 없다고 했어요. 한 시민사회단체 집행위원장은 ‘국정원이 아무 것도 없이 발표했겠나. 뭔가 있으니까 했겠지’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소위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들, 압수수색과 조사 등에서 인권침해 빈번

소위 ‘내란음모’ 사건이 발생한 후, 인권단체연석회의와 다산인권센터 등 인권단체들은 지난해 말부터 ‘인권침해 보고회 준비팀’을 운영해 왔다. 단체들은 구속자 가족과 압수수색 당사자, 5월 정세 강연회 참석자 등 피해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2월 12일 보고서를 발간했다.

인권단체들은 보고서를 통해 내란음모 사건과 관련한 압수수색, 검찰 및 국정원의 조사 과정, 언론 등을 통해 피해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랑희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는 “헌법과 형사소송법 상 권리가 보장되지 않은 압수수색이 공포감과 위압 속에서 진행됐으며, 인격권과 무죄추정의 원칙이 훼손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거의 모든 압수수색이 ‘차를 빼 달라’, ‘옆집인데 물이 샌다’는 등의 허위 고지와 함께 시작됐으며, 변호인이나 가족들에 연락을 취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는 등 피해자들의 고립 상황이 이어졌다. 영장의 범위를 벗어나거나 공소사실과 무관한 물품들에 대한 압수수색도 이어졌지만, 피해자들의 참관권은 무력화됐다

또한 랑희 활동가는 “조사과정에서도 사상검열과 자백 유도 등이 이어지며 양심의 자유 및 사상의 자유가 침해됐고, SNS상의 사소한 기록들까지 이적 사상의 증거로 삼아 사생활 및 개인정보를 침해했다. 일상적으로 사생활을 감시하기도 하고, 조사 과정에서 갑자기 의사와 간호사가 들이닥쳐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언론과 사회적 배제를 통해 인권침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랑희 활동가는 “피해자들은 취재 거부권도 인정받지 못했고, 언론은 ‘동네 망신주기’ 방식의 무차별적 사생활 침해를 일으켰다”며 “또한 사건 발생 초기부터 언론은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한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했으며, 기본적인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는 허위, 왜곡 보도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한편 압수수색 이후 피해자들은 극심한 트라우마에도 시달리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트라우마는 특히 사찰, 도감청, 감시에 대한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인한 지속적인 자기검열, 과도한 흔적 지우기, 불면증, 갑작스러운 건강악화로 나타나기도 했다”며 “특히 압수수색 대상자의 가족은 이후 생활에서 불안과 위축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상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정신 건강의 문제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불안장애, 신체화장애, 우울장애 등으로 나타나며, 이 중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불안장애가 특히 두드러진다”며 “이른바 ‘진보당 내란음모 사건’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정신건강 실태조사와 세심한 치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