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광장 점거운동의 모순과 우익

[분석] 우크라이나 좌파활동가 인터뷰...우크라이나 시위, 어떻게 볼 것인가?

[편집자주]우크라이나 정부가 3개월째 지속된 반정부 시위 아래 기로에 놓였다. 그러나 억압적 민족주의와 파시스트 주도 아래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는 향후 시위의 전개과정 뿐 아니라 유럽 그리고 세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의 기반인 독립광장, 마이단의 내부의 정치관계와 이 시위에 대한 현지 사회운동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자율노조(Autonomous Workers Union) 키예프 지부에서 활동하는 데니스(Denis)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전한다. 체코 좌파 매체 “Pratele komunizace”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여기에는 마이단 운동(광장점거 운동)과 이의 맥락에 관한, 한국 사회운동에 대해서도, 중요한 통찰이 담겼다. 인터뷰는 2월 18일 시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기 전 진행됐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이다. 장문의 글인 관계로 주요 내용을 중심으로 옮긴다.

[출처: http://pratelekomunizace.wordpress.com/]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의 배경과 요구

브라치슬라프(Vratislav): 광장 점거운동은 약 3달 전 시작해 키예프에서 다른 지역으로 확산됐다. 운동은 독립광장, 주변 지역과 정부기관을 점거하거나 봉쇄했다. 극우 조직과 전통적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도 악명 높다. 운동은 소위 ‘마이단(광장)’ 또는 ‘유로마이단’으로 불리며 원래는 정부에 유럽연합과의 협정을 인준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 요구는 이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부패한 국가기구 타도로 모아졌다. 찬 유럽 구호는 여전히 중요한가 아니면 부수적 요소인가? 만약 군중이 지배 집단을 몰아낸다면, 이들은 서구로의 길을 택할 것인가? 시위대는 ‘극단적인 유럽낙관주의’를 공유하는가?

데니스: 초기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유럽’에 대해 특유의 이해관계에서 매우 유토피아적인 꿈을 꿨다. 부패가 없고 사람들은 높은 임금을 받으며, 법으로 사회보장도 지원되고, 정치인들은 정직하고, 거리는 깨끗한, 이런 사회를 ‘유럽연합(EU)’이라고 불렀다. 다른 나라사람들이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유럽은 그런 근사한 그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유럽 사람들은 유럽 깃발을 불태우며 긴축조치에 반대한다고 얘기해도, 우크라이나인들은 “그래도 유럽은 러시아 보다는 더 잘 살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박했다. 처음부터 시위는 계급의제에는 어떤 여지도 남겨두지 않은 채,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문명적 선택’이라는 허위의식으로 추동됐다. 그람시적 용어로 말하자면, 부르주아의 문화적 헤게모니의 결과이며 이는 우리가 향후 수년간(또는 수십년간) 이 나라에서 싸워야 하는 주요 문제다.

하지만 ‘유럽’은 실제로 시위대의 주요 목표가 결코 아니었다. 반정부 및 러시아 반대 정서는 훨씬 더 커서 12월 1일 경찰의 진압 후 자연스럽게 ‘유럽찬성’이라는 수사를 능가했고,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지어 시위의 초기 이유를 기억하지도 않는다. 극우들은 초기에 시위에 잠입하기 위해 유럽연합을 반대하는 전통적인 태도를 숨겼지만 그들은 이제 유럽연합이야 어쨌든 정권 교체를 원할 뿐이라고 공개적으로 표명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가 역사적으로 2개의 문화, 정치 그리고 언어적 독립체로 나뉘어져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거의 산업화된 남부와 동부는 러시아어를 쓰며, 대게 친 러시아적인 문화와 정치적 의제를 가지며 소비에트에 대한 향수가 있다. 우크라이나 서부와 중앙은 농촌이고 인구가 적으며 우크라이나어를 쓰고 서구 유럽에 보다 기대어 있다. 지난 십년 동안 키예프는 정치적으로 동구에서 서구 쪽으로 이동해 왔다. 이런 분열은 우크라이나 단일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는 곳에서 자주 과장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나는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벨기에 보다 더 통합된 민족국가라고 본다. 하지만 여전히, 이 분할은 존재하며 우크라이나에서 지배계급이 러시아와 벨라루스 같은 권위주의적인 정권을 세우는데 실패한 주요 이유가 됐다. 어느 정치인들도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됐다. 이 때문에 정치인들은 노동계급에 대해 균형을 지키고 양보해야 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유지됐고, 복지국가적인 요소는 러시아에서보다 훨씬 더 일반적으로 나타났다.

- 마이단의 정치적 요구는 우발적이지 않으며 이 요구 뒤에 어떤 사회-정치적 현실이 존재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위에서 설명한 정치적 이질성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이 분열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2009년 대선 직전, 당시 야권이었던 지역당(현 여당)은 (지지기반인 동부쪽을 동원하기 위해) 크림반도에서 나토 군사훈련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선동했지만 이 군사훈련은 선거 후에도 지속됐다. 언어정책도 마찬가지다. 대선 전 지역당은 러시아어를 공식어로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선거 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2012년 총선 전에야 이 법을 통과시켰다. 그 동안 차별을 받는다고 느꼈던 러시아어 사용 인구는 지역당을 지지했지만 서부의 우크라이나어 사용 인구는 ‘언어적인 종족학살’이라며 대중시위로 맞섰다. 이런 식으로 양 진영은 지역적 문제를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원해 왔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현재 대통령을 미워해 왔으며, 이들은 대통령 반대시위를 벌일 꼬투리만 찾고 있었다. 지금 그 계기가 형성된 것인데, 그것이 바로 정부 스스로가 유발한 유럽연합 협정 논란이다. 작년 내내 정부는 지속적으로 우크라이나가 유럽과의 협정에 어떻게 서명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했었다. 그들은 친 유럽 진영을 기대로 들뜨게 했다. 이후 정부가 갑자기 유턴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극도로 좌절하고 분노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정부를 미워하는 데는 분명히 매우 실제적인 이유들이 있다. 대통령은 2010년 대선 이후 인기를 끌지 못한 신자유주의 조치를 취했다. 천연가스 요금을 인상하고, 의료부문도 손을 보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많은 의료기관들이 문을 닫고, 의료보험도 금융시장과 연동된 형태로 바뀔 것이다. 또한 여성의 연금 수급 연령을 올려 극단적으로 비대중적이었던 연금 개혁을 관철시켰다. 노동권을 심대히 침해하는 노동법 개악이 시도됐고, 철도는 민영화는 진행중이다. 마지막으로 중소업체를 강타하는 새로운 세법도 통과시켰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정부는 낮은 지지도 때문에 이 조치를 취소해야 했다. 천연가스, 전기, 난방, 수도세는 유럽과 이전 소련 국가들 중 가장 낮은 국가에 속하지만 그 수준에서 동결됐다. 노동법은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했고, 연금개혁은 중단됐다. 그러나 경제의 일반 수준 뿐 아니라 노동계급의 복지는 사람들이 원하는 수준보다 떨어지며 보다 높은 생활 수준을 요구하는 데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불만은 민족주의라는 허위의식이라는 옷을 입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사항이 있다. 특권층의 꼭두각시였던 대통령은 2010년 이후 스스로 사업가가 됐다. 그의 큰 아들은 어마무시한 권력을 축적했다. 이 가족은 정부의 주요 자리를 차지했으며 자본 이동에 관한 통제를 독점했다. 그리고 이는 이제까지 그를 지원했던 다른 특권계급과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물론, 전통적인 특권 집단은 이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 점에서 현재 시위는 또 기득권층의 이해를 반영하기도 한다.

- 마이단에는 분명하고 보편적인 요구사항이 있는가?

내가 아는 한 공통된 한 가지 요구는 대통령 사퇴이다. 이는 회합의 포인트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 머무르길 원치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좀 더 가까이서 보면 광대한, 그리고 서로 모순적이기도 한 스펙트럼이 형성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최근 모든 증오를 특히 대통령에 맞춰 이를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은 옳다.

현재 우크라이나 노동계급의 상황은 러시아나 다른 주변국에 비해 상당히 좋다. 관세동맹으로의 통합은 노동자들에게는 나쁜 것들만을 의미한다. 이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자유와 생활 수준 모두를 조일 것이다. 실제로, 관세동맹은 각국 노동법의 통합을 요구하기 때문에 정부는 이를 빌미로 생활수준을 보다 쉽게 악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통합은 거시경제 차원에서 1990년대 무너졌던 국가 간 협력을 되살려 하이테크 산업의 부흥을 이끌 수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는 경제를 보다 강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우크라이나 노동자에 뿐 아니라 부르주아지에게도 끔찍한 비용을 낳을 수 있다. 우리의 민족적 부르주아지는 러시아의 그들 보다 훨씬 약하다. 그리고 관세동맹으로의 통합은 그들에게 가상적인 멸종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지배계급은 러시아와의 관세동맹을 선호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우크라이나 경제에 관한 최적의 시나리오는 지정학적으로 중립적인 정책을 지속하는 것이다. 어느 쪽으로의 통합이든 우크라이나 수출이나 복지에 타격을 줄 것이다. 단 하나의 질문은 그러한 중립을 지킬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중략).

중산층이 우익을 지지하는 이유

- 언론은 초기 마이단이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민주적 다원주의와 다문화주의를 추구한다고 했다.

절대적으로 다문화주의는 아니다. 모두가 극우의 역할을 알고 있다. 그들이 어디에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주류는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더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를테면, 최근 3개 정당 중 가장 자유주의적인 비탈리 클리츠코는 “두려워 말자, 우리는 우크라이나인”이라는 운동을 선포했다. 물론, 대부분은 정치적 다원주의, 부르주아적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마이단의 군중은 전근대에 파묻혀, 중세적인 행위를 한다. 태형 기둥, 린치, 전통적인 성적 역할을 강화하는 행위들이 부활하고 있다.

애초 11월 ‘유로마이단’은 우익 자유주의의 의제였다. 경제적 자유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하지만 시위에 가담한 극우 조직가들은 유럽의 다문화주의, LGBT 권리, 노동권과 자유 등의 이슈를 심각하게 억압하고 있다.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시위대 다수를 대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수는 공격적으로 밀고 나아가는 그들의 정치적 의제에 매우 허약한 상태다.

노동계급의 수는 증대됐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계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카테고리이다. 키예프의 노동계급 다수는 여전히 무관심하다. 마이단의 계급구성은 평범하다. 다수는 학생, 쁘띠부르주아와 서부 지역의 프롤레타리아 층이다. 노숙인들은 음식과 난방 때문에 찾아오지만 많은 운동가들은 그들을 싫어한다.

시위는 특히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1월 16일 ‘독재법’ 이후 보다 반정부적이며 민주주의를 찬동하는 운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나는 여전히 우익에 대한 가장 많은 지지자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고 본다. 우익을 지지하는 이들은 주로 인텔리겐차이며 특히 학생들이다.

- 학생과 인텔리겐차가 일반적으로 우익의 기본적인 추종자라는 것이 흥미롭다.

이는 파시즘에 대한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이다. 그렇지 않는가? 키예프의 인텔리겐차와 소부르주아지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지지하는 주요한 사회적 세력이다.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서 스바보다(자유당)는 프롤레타리아 층의 선거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2012년 키예프 선거에서 그들은 선거에 대한 인텔리겐차의 각성과 보다 급진적인 것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 기록적인 수를 획득했다. 그리고 민족주의가 기본적인 ‘상식’이 되며 이는 계속 강화됐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여전히 부분적으로는 무관심하며, 부분적으로는 부르주아지 포퓰리즘 정당을 신뢰하고 있다.

- 체코 출신의 한 좌파활동가는 마이단 시위에 대해 “첫 번째이고 가장 중요한 중산층 시위”며 “상대적으로 교육받고 성공한 사람들”인 반면, “극우는 우크라이나의 가장 가난한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시위의 목소리를 가장 소리 높여 표현하는 지식인, 작가와 예술가의 좁은 층은 극우에 아무런 영향력도 없다”고 말한다.

‘중산층’이 이 시위를 수적으로 주도하지는 않더라도, 시위대의 ‘목소리’라는 자세를 취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들이 극우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냐고 질문했는데, 사실은 그 반대다. 극우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의 소산이다. 오늘날 그들은 스스로의 의제를 구술하고 문화적 헤게모니를 확대할 수 있는 자립적인 정치 주체가 되면서 이렇게 진화했다. 서부 지역에서 스바보다(자유당)는 지난 의회 선거 후 노동자계급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프롤레타리아 정당으로 간주된다. 동부 지역에서 그런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우크라이나 공산당이다. 물론 모두 어떤 식으로든 노동자계급을 대표하진 않는다. 주관적으로 노동자의 정치적 동조를 형상화할 뿐이다.

키예프는 2개 양 지역 사이에 놓인 중립지대다. 아무도 2012년 선거에서 스바보다의 엄청난 성공을 기대하지 않았다. 스바보다에 대한 주요 지지층은 소위 ‘깨끗한 대중’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잦은 분란을 낳고 공산주의 잔류와 연합한 현재 국가를 싫어하는, 교육받았고 상대적으로 잘사는 ‘중산층’을 의미한다. 물론 유럽연합에 대해서는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인 미덕이 물질적인 성공으로 보상되는 판타지의 땅으로서 유럽연합을 생각하는 사람들. 이들은 정치를 잘 모른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우파이고 민족주의자라 알고만 있다. 이들은 그 결과 자신의 관점을 표현하기 보다 정치적으로 경험이 있는 지도자들을 신뢰한다. 그들 지도자가 민족주의자거나 심지어 나치주의자인 상황에서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정치적 토론의 중심을 오른쪽으로 이동시켰다. 이는 마이단의 중산층 다수의 정치적 초상이다. 좌파운동이 발전하지 못한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너무 부패하고 추악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자유주의자들은 큰 문제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자급자족적인 강한 정치적 트렌드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양 진영 모두 보수주의와 민족주의가 거칠게 혼합된 우익 포퓰리즘 이데올로그들에 의해 지배된다. 이는 중요한 문제다. 자유주의자들에 비해 극우 활동가의 실제 수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서 잠재적 파시스트를 다 동원해도 약 1-2천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극우의 생각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 군중에게 환영받고 있다. 두 번째로 극우는 매우 잘 조직돼 있고, 또 사람들은 그들의 ‘급진주의’를 좋아한다. 보통의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은 경찰과 정부를 싫어해도 그들과 공개적으로 싸워 자신의 평안을 결코 해치고자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편에서 싸우려 하는 우익적인 선봉을 환영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치 시위대와 일반 시위대 사이에는 물리적인, 일정한 거리가 있다. 나치는 이제 대부분 그루셰프스코고(Grushevskogo) 거리의 바리케이트에 모인다. 일반 시민은 마이단에 머무르고 있다. 극우를 지지하지 않는 매우 소수의 자유주의자들도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심지어 (민족주의 운동의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스테판 반데라를 위한) 횃불 행진 시위에 반대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다른 자유주의자들은 야권 정당 지도자들 뒤에 서 있지만 이 야권은 시위대 사이에서 별로 대중적이지 못하다.

- 시위대는 우익 포퓰리스트, 변장한 자유주의자와 파시스트 사이의 어떤 공간에 존재하는 것 같다.

의회 자유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좌파 포퓰리스트로 변장하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노동계급으로부터 어떠한 지지도 얻을 수 없다. 모든 주요 의회 정치세력은 우익이며 항상 긴축과 자유주의 개혁을 위해 논쟁한다.

소비에트 붕괴 후 대안 없는 고립 속 민족주의의 강화

-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보수적인 관점이 주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한 보수주의의 역사적 사회적 원인은 무엇인가?

지난 20년 간 국가의 인도주의적 정책은 민족주의자들의 손에 있었다. 그들은 모든 문제를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한 우크라이나’와 같은 민족주의적 문제로 돌파하고자 했다. 전통과 ‘영웅주의적’ 과거는 좋은 것으로 간주됐다. 문제들에 대한 현 국가와 소비에트 경험을 부정하며, 좌파 이데올로기의 대중성, LGBT와 같은 유럽연합의 진보적인 요소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그들은 이 점을 강조해왔다.

- 1990년대 초기 충격요법 후, 자본주의적 구조조정은 자신의 탄력을 잃고 이후 우크라이나는 아마도 (계급, 국가적, 지정학적, 경제적) 많은 모순의 폭발을 회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위한 세계’가 되면서 특정한 사회경제적 상태를 유지하려 했던 경향도 이러한 보수주의의 이유로서 설명될 수 있는가? 강력한 지구적 자유화 과정으로부터 방어적으로 철수한 문맥에서, ‘영광스러운’ 과거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사를 통한 강하고 폭넓은 보수적인 민족주의가 뜻을 이룬 것 같다.

체코와 같은 ‘사례적인’ 국가들에게서 이러한 재구조화가 어떻게 진행됐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보수적인 가치의 부활과 민족주의의 ‘허구적 전통’은, 내가 아는 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뿐 아니라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와 전 유고슬라비아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은 또 무신론, 페미니즘과 국제주의를 공식적으로 추동한 진보적인 가치를 붕괴시키기도 했다. 이 틈은 국가주의와 보수주의의 거친 혼합에 의해 지체없이 채워졌다.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는 이를 열심히 지원했다. 사실, 1990년대 초 많은 대학에서 ‘과학적 공산주의’ 학과는 ‘과학적 민족주의’로 바뀌었고, 후에 이는 ‘정치과학’ 학과로 대체됐다.

상황은 여러 면에서 현대화된 부르주아지 독재 정권의 몰락 후 그리고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며, 중동 여러 나라에서 나타났던 보수주의와 이슬람주의의 물결과 유사했다.

- 극우의 진실에 대해 돌아가 보자. 스바보다는 유럽연합에 찬성하는가? 꽤 모순적인 정보들이 있다. 스바보다 당은 대통령을 전복하고 지금 야권이 새로운 친 서방 정부를 결성한다면 실제 IMF 긴축 조치들을 도입해야 한다고 결정할 것이라고 보는가? 이는 그들의 지지층과 멀어지도록 하지 않을까?

내가 말한 대로 그들은 유럽 통합을 실용주의적이며 대중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이는 그들의 정책과 모순되지만 스바보다는 이것이 대중에 중요한 한 지지할 것이다. 야권이 이길 경우, 우익은 긴축을 부과할 것이고 스바보다는 아마도 이들의 상대편을 비판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사회경제적 이슈에 대해 꽤 민감하다.

“더욱 중요해지지만 행동하지 않는 프롤레타리아”

- 우크라이나 운동을 보면, 계급운동의 지구적 과정에서 2개의 이질적인 지점에 대한 중요한 성격과 결합하고 있다는 인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나는, 2005년과 2006년 헝가리 반란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세계적 위기 전에 일어난. 하지만 헝가리는 당시 금융붕괴를 경험했고 젊은 파시스트들이 결국 빅토르 오반 신자유주의 정권의 등장으로 이어진 당시에 주요 역할을 했다. 다른 편에서, 마이단 운동과 인디그나도스, 오큐파이, 아랍의 봄 운동 등과의 유사성들을 발견할 수 있다. 형태와 문맥 모두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사회적 경제적인 불만들에 의해 점점 더 요구되고 있지만, 그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투쟁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그들 삶의 사회적 현실성을 우회하는 것 같고 단지 성난 시민들 또는 화난 민족적 공동체 또는 다른 어떤 것 사이에 있는 정치 지형만 문제 삼는 것 같다.

매우 적절한 지적이다. 2006년 헝가리는 좋은 사례다. 하지만 난 우크라이나 시위대를 스페인의 인디그나도스에는 비교하고 싶지 않다. 우크라이나와는 다르게 스페인에서는 중도좌파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큐파이운동도 마찬가지다. 이 운동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꽤 혼란됐었지만 그래도 주된 흐름은 좌파 자유주의에 있었다. 좋은 사례는 이집트에 있다. 우리는 진보적이며 혁명적인 충격이 무바라크의 몰락을 가져온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이후 이슬람주의자들이 시위를 접수했고, 혁명을 독점했으며 대중을 분열시켰다. 결국, 그들은 구 정권의 손으로 돌아간 민중을 두려워했다. 우크라이나 스바보다와 다른 파시스트들은 이집트 무슬림형제단과 다른 이슬람주의자들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그들은 야권이지만 그들 구호 아래 모든 시위대를 단결시킬 수 없다. 시위하는 민중들은 다른 편에서, 매우 화가 나있지만 그들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자기 언어가 부족하다. 그들은 가장 눈에 띠는 그룹의 언어를 빌리고 있다. 그들은 계급 노선에 따라 스스로를 조직하는 데 준비가 돼 있지 않다.

- 우크라이나는 부패한 지배계급과 기업에 맞선다는 것이 다른 광장 운동과 연계돼 있는 것 같다.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측면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 마이단은 사회적 몸체로서 자신 재생산을 위해 씨름하고, 자기 인프라구조를 조직하며, 방어하는 등 오클랜드 커뮤니티 또는 타흐리르가 해야 했던 것 같은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내부 삶은 어떻게 조직되는가?

내가 아는 한, 마이단에서 잠재적인 조직은 우익 정치세력의 조직적인 구조에 대치된다. 스바보다, 우익섹터와 스필나 스프라바는 빌딩을 점거하고 일상을 조직한다. 의회 야당 또한, 이러한 문제에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어쨌든, 모든 것은 이미 기성 정치 지도자들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다. 예를 들면, 수백 개의 방어 조직이 있다. 공식적으로 그들은 안드레이 파루베이의 명령 아래 모두 있다. 그는 일전에, 지금은 스바보다라고 불리는, 사회민족당 설립 구성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국당 소속이다. 사실, 파루베이나 스바보다에 복종하지 않는 부대들이 있다. 하지만 어쨌든, 제재 받지 않는 구성단위가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다. 음식, 장작, 석유, 임시적인 무기 등. 당신은 주위를 걸어 다닐 수 있고 돈을 모을 수 있지만 이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알고자 하는 보스들에게 70%를 줘야 한다. 자기 조직을 위한 일부 공간이 있지만 매우 제한적이다.

필수적인 것들은 거기에 있는 보통의 사람들을 위해 ‘나온다’. 평범한 활동가들은 결정과정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군대에 속해 있다면, 꽤 자율적으로 자신의 돈과 자원을 사용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특별한 내부의 구조와 관계에 달려 있다.

야권이 대표하는 마이단의 한계와 배경

- 스페인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사람들)는 정당을 배제했었지만, 마이단의 경우 조국당, 개혁민주동맹, 스바보다(자유당) 등 야권은 주요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이단에는 총회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당신은 ‘군중’과 정치인들이 일정하게 양분됐다고 지적했는데, 이것이 어떻게 존재하는가?

마이단의 일반 사람들을 야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야권은 마이단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체계를 운영한다. 아마도 이 모순적인 상황은 가부장주의적이며 수동적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다시 보스는 증오하면서 다른 이들이 그렇게 되도록 하고 있다.

- 키예프 외 지역인 리비우 지역에서 정치인과 시위대 사이의 거리는 보다 깊고 분명한 것 같다. 그들은 수미에 소위 지역 ‘민족위원회’를 선출하며 지역 정치인과 부패를 조사하고, ‘민병대’ 부대를 조직하기 위한 총회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리비우에서도 똑같은 일이 진행됐다고 말한다.

내가 아는 한 '민족위원회'는 보통 자칭 정당운동가와 지역위원회 대표들로 구성돼 있다. 그들은 선거를 열겠다고 약속했지만 투명한 선거는 조직되지 않았다. 이러한 민족위원회는 실제적인 권력을 가질 엄두를 못내며 그들은 아무것도 못할 것이다. 리비우 '민족위원회' 대표는 리비우 지역위원회 대표이자 스바보다의 유명 회원이다. 이들은 시위대에게 지역 청사에서 떠나라고 요청했다. '혁명적인' 민족위원회는 사실상 죽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정당에 대한 운동의 불신은 자기조직적인 운동을 형성하는 등의 시도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최근, 다양한 시민연합들의 시도가 있었다고 읽었지만 야권 지도자들은 효과적으로 이러한 시도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유산시켰다는데?

민족주의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다양한 유명 인권활동가, 법조인, 유명인사와 시민단체들은 ‘마이단의 시민 위원회’가 결성했다. 내가 아는 한, 우크라이나 자유노동조합연맹도 여기에 참가했다. 그들은 이 운동에서 자유로운 대안(부분적으로는 좌파적 자유주의식의)을 만들고자 했다. 인권, 시민자유, 평등한 의사 결정, 풀뿌리의 주도권 등과 같은 의제를 제안하며. 하지만 그들은 어떤 진지한 세력을 형성하는 데 실패했다. 일반 활동가들은 의미있는 세를 형성하지 못했고 대게 가상적이었다. 이 이유는 야권의 교활한 전략 때문이 아니라 객관적인 조건이 문제였다. 공공 담론의 상태. 한 사람이 비판적인 활동에 관심이 있을 때, 그는 거의 용감한 민족주의자 마초와 힘 있는 정치인을 가진 ‘보다 강한’ 흐름에 참여하는 것 같다. 그러한 대안적 ‘시민’ 운동에 진지하게 관심 있는 사람들의 수는 매우 소수다. 이 진영의 모든 것은 12월 야권에 의해 먹혔다.

- 립컴(LibCom)의 인터뷰에서 당신은 야권 정당이 총파업을 선언하며 어떻게 마이단을 그들의 영토 내로 이동시키려 하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비참하게 실패했는지 설명했다. 이 이유는 그들이 이에 대한 어떠한 작업 구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마이단은 키예프에서 다른 지역까지 확산될 수 있었고, 이는 단지 다시 한번 점거와 폭동 운동으로서였던 것 같다. 당신은 또 마이단에 참여하지 않았던 키비브 운수회사 노동자들의 시위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인들은 파업에 익숙하지 않다고 말했는데?

동유럽 노동운동의 허약성을 설명하는 많은 이론들이 있다.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는, 나를 대신할 수 있는 보스가 있는 소비에트 정치 문화의 유산 때문이다. 소련에서 한 거대한 기구, 우크라이나 노동조합연맹이 남겨졌다. 공식적으로 수백만의 조직원이 있지만 노동자 권리를 지키는 전투적인 조직은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좋은 변호사와 관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노동자들의 대표자가 아닌, 조합주의적 결정의 공동 매니저로서 스스로를 본다. 진실한 독립적, 전투적 노동조합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소련 시설 작업장의 전투성은 발전하지 않았는가? 부분적으로는 길고 고통스러운 경제위기 때문이다. 거리에 나가 맞아야 하고, 공장은 폐쇄될 지경이라면, 당신은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파업을 할 수 없다. 1990년대 대중적인 파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이는 대게 비민간기업의 경영진에 의해 그들 보스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직됐다. 독립적인 노동운동을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구조와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좌파와 마이단과의 관계

- 마이단을 둘러싼 다른 투쟁들이 무엇이 있는지 설명해 달라. 파시스트와 인종주의 민족주의자들의 영향 아래 어려울 것은 같지만 좌파적 실천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공공운수노동조합은 파업을 했었고, 국립 끄이브 모힐라 아카데미 대학은 학생휴업을 벌였다. 아나키스트와 페미니스트들도 여기서 활동하고 있다고 읽었다.

극좌는 마이단에 대해 어느 정도 분열된 상황이다. 보다 작은 조직들은 이 시위는 절대적인 반동이라며 어떠한 지지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이러한 입장은 그들이 정부 지지자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다른 좌파들은 반복적으로 이 운동에 가입하려 했다. 그들은 청색 대신 붉은 색의 유럽연합 깃발을 들고 마이단에 나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그리고 페미니스트적인 슬로건을 외쳤다. 이들은 이후 나치에 잔혹하게 공격당했다. 마이단 근처에 노동조합연맹의 텐트가 있다는 얘기가 돌자, 무대에서 한 남성은 일부 ‘앞잡이’가 있다고 말하고 “남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 지 알고 있다”며, 결국, 나치의 폭도들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칼로 텐트를 찢었으며 그들 집기를 훔쳐갔다. 피해자들은 사실상 '좌파'로서 어떠한 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들 정치적 이력이 알려진, 좌파운동의 구성원이었고, 이것으로 충분했다.

어쨌든, 좌파 활동가의 대부분은 이는 그들의 전쟁이 아니라고 봤다. 독재적인 법이 통과된 이후에서야 그들은 이 운동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정치활동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정치적 자유가 위험해졌다는 일반적인 이유로.

많은 좌파들은 ‘병원감시’를 진행하는 세력에 참가했다. 병원에서 부상당한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그들은 경찰에 의해 제거되지 않았다. 물론, 이는 기본적으로 ‘인도주의적인’ 일이지만, 정치적 프로젝트는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학생 파업을 조직하기 위해 시도했다. 그들은 키예프에 위치한 국립 끄이브 모힐라 아카데미 대학에서 노력했지만 결국 겨울 방학으로 학교가 문을 닫으며 모든 것은 실패로 돌아갔다. 지금 극좌와 자주 혼동되는 또 다른 그룹이 있다. ‘나로드니 나바트’ 조직과 같은 이들은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부르지만 실제적으로 남성우월주의에 외국인혐오가 우세하는 매우 보수적인 정치 그룹이다. 이들은 시위가 시작된 후 드라마틱컬하게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파시스트들은 좌파들을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비난했고 마이단에서 내쫓았다. 재미있는 일은 그러나 마초민족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이 스바보다 준군사조직과의 관계를 위해 마이단에 반 민족주의의 그래피티를 그리는 우리 동료을 비난한다는 것이다.

좌파를 위한 가장 합리적인 전략은 극우 뿐 아니라 정부에 맞선 2차 전선을 세우는 일이다. 이는 마이단 밖에서 행해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이고 최종적인 정치적 목표가 무엇인지 말하는 데 두려워해선 안 된다. 우리는 단지 이 방법으로 강한 정치적 연합을 결성할 수 있다.(후략)


[원문] http://pratelekomunizace.wordpress.com/2014/02/19/maidan-and-its-contradictions-interview-with-a-ukrainian-revolutionary-syndicalist/
[원제] Maidan and Its Contradictions: interview with a Ukrainian revolutionary syndicalist
[게재] 2014년 2월 20일
[번역] 정은희 (참세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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