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제 엄마 없는 것처럼, 시간제 일자리도 사라져야”

3.8 여성의 날 106주년, 여성노동자들은 ‘시간선택제 일자리’로 몸살

경북 칠곡에 있는 초등 돌봄교실 전담교사 이선미(가명) 씨는 매번 무기계약직 전환의 문턱에서 좌절을 경험한다.

돌봄전담사 일을 시작하고 24개월이 되던 날 이 씨는 무기계약직 전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학교장은 “실업급여를 받았으니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돌봄전담사 특성상 3월부터 12월까지가 계약기간이라, 수입이 없는 1~2월에 실업급여를 받은 것이 무기계약직 전환 불가의 이유였다.

교장은 이전처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계약’을 해서라도 일을 할 것인지, 아니면 해고를 당할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했다. 아울러 그녀에게 “돌봄교실을 직장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무료봉사로 생각해야 한다. (직장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면박을 줬다.

올해에는 돌봄전담사들이 2박 3일간 경북교육청에서 점거농성을 벌여, 교육청으로부터 무기계약직 전환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구두’로만 이를 전달했고, 학교장은 교육청의 공문이 없으니 무기계약직 전환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교육청에 공문을 내려 보내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감감 무소식이었다. 5일, 학교에 출근한 이선미 씨는 ‘공문이 없으니 돌아가라’는 학교장의 말을 듣고 결국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시간제 엄마 없는 것처럼, 시간제 일자리도 사라져야”

3.8 세계 여성의 날이 제정된 지 106주년이 지난 현재. 한국 여성노동자의 삶은 정부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 정책으로 더욱 열악해져만 가고 있다. ‘일 가정 양립’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시간선택제 여성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정규직과의 차별, 육아와 가사 부담에 여전히 짓눌려 있다.

‘106주년 3.8 여성노동자대회 공동기획단’은 5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시간제일자리 문제점과 현실’에 대한 토론회 및 증언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선미 씨는 “교육청은 작년까지 존재했던 온종일 돌봄사업을 폐지하고, 상시 지속적 업무를 담당하는 초등 돌봄교실 전담사들의 초단시간 계약을 2배로 늘렸다”며 “시간 쪼개기, 요일 쪼개기 등의 초단시간 계약과 무기계약 회피가 이어지고 있으며, 무기계약 인원을 아예 동결해 버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쌍둥이를 앞집에 맡겨 놓고, 일하는 노동자로, 엄마로 살아내기가 너무 막막하다”며 “시간제 엄마가 없는 것처럼, 시간제 일자리도 사라져야 한다”고 눈물을 흘렸다.

학교나 문화, 교육센터 등에서 수업을 하는 예술강사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들 역시 수업시수 당 급여를 받고 있다. 예술강사 이민영 씨는 “수업시간 한 시간 가량에 대해서만 급여를 지급하는데, 우리는 수업 전 수업계획을 세우고 자료를 수집하고, 수업 이후에는 수업일지를 작성해 통합운영시스템에 보고해야 한다”며 “특히 예술강사는 3월 2일~12월 31일까지가 최대 계약기간이어서 1, 2월은 계약기간이 아닌데도, 이 기간에 학교 측과 수업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술강사들은 건강보험직장가입 혜택도 누리지 못한다. 심지어 고용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음에도 실업급여 조차 받지 못한다. 11월을 전후로 해, 이미 다음 연도 계약이 예정돼 있어 구직이 완료됐다는 이유 때문이다. 예술강사들에게 1~2월은 ‘보릿고개’일 수밖에 없다.

이민영 씨는 “얼마 전 경주 리조트 붕괴사고에서 사망한 이벤트 업체 사람도 사실은 연극분야 예술강사였다. 이 시기에 강사들은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변을 당했다”며 “또한 문체부와 진흥원, 광역센터 및 지역운영단체, 학교 등은 고용주의 책임을 서로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홈플러스 노동자들의 30분 단위 근로계약 문제는 익히 유명하다. 노조 단체협약으로 30분 단위 계약제 폐지를 이끌어내긴 했지만, 회사는 여전히 6시간~8시간까지 계약상 차별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진숙 홈플러스노조 서울본부장은 “투잡을 하고 싶어도 스케줄이 매일 고무줄처럼 들쑥날쑥해 개인적인 약속조차 잡기 힘들다”며 “특히 동료들간에 존재하는 차별적 계약시간은 월 10만원 남짓의 월급차로 이어지고, 이로 인한 갈등과 괴리가 14년 내내 지속돼 왔다”고 토로했다.

또한 정부는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시간선택제공무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인데, 이는 전일제 근무자와 시간제 근무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과 남성의 양극화 현상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라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전일제 대비 시간선택제공무원의 급여수준을 예측했을 때, 시간제공무원의 월 보수는 78만원으로, 전일제의 156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재직 30년차가 됐을 때도 전일제는 442만원, 시간제는 221만원의 임금 격차가 나타난다. 윤선문 공무원노조 정책실장은 “한번 시간선택제공무원은 영원히 시간선택제공무원으로 퇴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간제 일자리, 여성이 73.1%...저임금과 육아 부담 이중고 겪는 여성들

2013년 3월 기준, 시간제 노동자는 임금노동자 중 9.9%로, 약 175만 명에 달한다. 시간제노동자들의 규모는 꾸준히 증가해 왔는데, 2001년 87만 명에서 2013년에는 175만 명으로 2배가량이 증가했다. 시간제 일자리의 90.6%, 약 159만개의 일자리는 임시직, 일용직 등 비상용형 일자리다.

시간제 일자리 노동자의 여성 비율은 73.1%에 달한다. 시간제 노동자 네 명 중 세 명이 여성인 셈이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여성 시간제 노동자의 36.8%인 46만 7천명은 최저임금 미만자로 추정되며, 전체적으로는 시간제 노동자 3명 중 1명이 최저임금도 못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또한 시간제 일자리의 근속연수는 매우 짧아, 전체의 66.3%가 1년 미만의 근속기간”이라고 설명했다.


시간제 노동자들의 주요 취업사유는 ‘생활비 등 당장 수입이 필요해서’라는 응답이 35.4%로 가장 높다. 여성의 경우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기 위해서’라는 응답도 상당하다. 하지만 시간제일자리를 선택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보육서비스가 뒷받침되지 않아, 여성 노동자들은 시간제 일자리의 저임금과 육아로부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심선혜 공공운수노조연맹 보육협의회 의장은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유법상 12시간보육을 원칙으로 하지만, 부모들은 실제 12시간을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찾기 어렵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9시 등원과 5시 하원을 요구 받는다”며 “보육교사로서는 시간외 근무수당이 지불되지 않고, 이후 업무처리를 위해서라도 아이들을 빨리 하원시키기 원해, 교사와 학부모간의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간제 일자리 확대와 함께 시간제 보육도 확충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통해 여성의 ‘일 가정 양립’이 정착되기란 쉽지 않다. 심선혜 의장은 “나 같은 경우도 4시간짜리 시간제 노동자인데, 출퇴근 시간과 마무리 시간까지 합치면 사실상 7~8시간 정도 근무를 하고 있다”며 “적어도 12시간의 보육서비스가 제공돼야 여성으로서는 숨을 돌릴 수 있다. 시간제 보육에 따른 여성의 끔찍한 삶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전문가들은 시간제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우선 최저임금 현실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시간제 노동의 대부분이 최저임금에 경계선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시간제일자리가 중소영세사업장에 몰려있고, 소정근로시간이 짧아 해고, 휴업수당, 연장, 야간 및 휴일근로 적용에서 배제되고, 각종 사회보험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특히 ‘노동시간 비례 대우’ 원칙에 따라, 시간제 노동자들을 상대로 식사비, 교통비. 각종수당, 사내복지 등에서 차별을 두는 경우도 다수 존재한다.

남우근 정책위원은 “비례보호 원칙은 근로대가성 임금으로 국한하고, 각종 후생복지적 차원에서 지급되는 생활보장성 임금은 온전히 적용해야 한다”며 “또한 외국의 시간제 보호 법제에서 공통적으로 규정하고 있듯, 노동자가 전일제와 시간제의 전환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러한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전일제 노동에 대한 근로시간 규제를 강화했을 때 시간제 노동의 노동시장 내 가치가 높아지게 되고, 시간제 일자리의 노동조건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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