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환자, 당국의 방치 속에 거리로 내몰려

인권침해 S요양병원 위탁 해지, 대체병원은 마련 안돼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의 현황과 대책' 토론회가 5일 오전 10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렸다.

에이즈환자에 대한 인권침해 논란을 빚은 S요양병원에 대해 질병관리본부가 위탁계약을 해지했지만, 대체 요양병원을 마련하지 않아 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이 사실상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S요양병원은 2010년부터 지금까지 에이즈 환자에 대한 폭력, 환자 방치, 성폭력 등 수많은 인권 침해 논란을 일으켜 왔다. 이에 피해환자 가족들과 인권단체들은 지속적으로 이 병원에 대한 위탁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요양병원을 마련할 것을 요구해 왔다.

이에 질병관리본부는 결국 지난 2월 초 위탁계약을 해지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대체 병원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달 14일 환자들과 면담을 강행해 환자들에게 S요양병원에 남을지 여부를 물었다.

이에 인권단체들은 환자에게 다른 선택권이 주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면담은 S요양병원에 남을 것을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항의했고, 결국 면담은 중단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S요양병원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국가에서 지원이 중단되었으니, 병원비를 올려내든지 아니면 2월 28일까지 병실을 비워라’는 통보를 받은 상태다. 이에 따라 환자들은 지속적인 인권침해에 시달리면서도 병원비를 더 내가면서 S요양병원에 남든지, 거리에 나앉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에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아래 나누리+)는 5일 이른 10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긴급토론회를 열고 S요양병원 환자들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환자 가족들은 S요양병원으로부터 병실을 비우지 않을 거면 한 달에 50만 원 정도의 입원비를 더 낼 것을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병원 측은 가족들에게 ‘우리는 잘했는데 외부 단체들이 데모를 해서 국가지원이 끊겼다’라는 식으로 설명했다고 전했다.

S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던 에이즈 환자는 총 56명이다. 나누리+ 권미란 활동가는 “이미 11명의 환자가 S요양병원에서조차 쫓겨날 것이 무서워 스스로 짐을 싸서 뿔뿔이 흩어진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중 소재가 파악되는 사람은 고작 4명뿐이다. 이들은 종교기관이나 쉼터 등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여기서는 의료적 치료가 제공되지 않는다.

현재 질병관리본부가 확보한 대체 병상은 서울의료원에 5개뿐으로, 이는 S요양병원 환자들이 옮겨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이날 증언에 나선 환자 가족 ㄱ씨는 “3월 1일이 지났는데 서울의료원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인지 S요양병원에서 연락이 안 오니 속이 탄다”라면서 “아들을 닦아주지도 않고 먹이지도 않고, 가래를 주기적으로 석션을 해서 빼 줘야 하는데 그것도 안 해줄까 봐 전화해서 재촉도 못 하겠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달라는 돈을 낼 여력도 없고…”라며 고통을 하소연했다.

가족이 없는 환자 ㄴ씨는 현재 상황을 병원 측에게서 직접 듣지도 못하고, 다른 환자들을 통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달 25일 국립중앙의료원에 외래진료를 나왔다가 길에서 넘어져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하게 됐다. 그러나 다음날 S요양병원의 간호사가 전화해서 몇 호실이냐고 묻더니 자기 짐을 택배로 보내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퇴원 절차도 없이 내쫓긴 것이다.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질병관리본부가 시급히 대체 요양병원을 확보하는데 나서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 참석하기로 했던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감사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 토론회 하루 전에 돌연 참석을 취소했다. 이에 참가자들은 “에이즈 환자들의 인권이 이렇게 방치되고 있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권미란 활동가
HIV/AIDS 장기요양사업 전반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나누리+ 권미란 활동가는 “1, 2차 의료기관에서 수술 전에 환자에게 설명도 없이 HIV검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수술을 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라면서 “이런 차별을 당해도 감염인들은 법적 구제를 받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HIV감염인이 급성기 치료 후 갈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문제도 지적됐다. 권 활동가는 “질병관리본부와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쉼터가 각각 2곳씩 있지만, 모두 10명 내외 입소가 가능한 소규모 쉼터”라면서 “쉼터는 간호인력이 없는데다 장기입소를 하기는 어려워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대체 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권 활동가는 “의료법 시행규칙에서 ‘전염성 질환자는 요양병원의 입원 대상으로 하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고, 각 지자체 ‘노인요양시설 설치 및 운영조례’에서도 에이즈 환자 입소를 가로막는 조항들이 존재한다”라면서 “이 때문에 각 요양병원이 질병의 특성에 상관없이 에이즈 환자를 무조건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에 권 활동가는 △관련 법령의 조속한 개정 △HIV감염을 이유로 인권침해를 당했을 때 구제가 가능하도록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개정 및 차별금지법 제정 △요양병원 확충 및 상시적인 모니터링 시스템 운영 △‘노인복지시설 인권 매뉴얼’을 요양병원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40여 명의 에이즈 환자 및 가족과 관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3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이날 토론회에는 40여 명의 피해 환자, 가족,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덧붙이는 말

하금철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

에이즈 , 요양병원 , 위탹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하금철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