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의 보루’가 된 쌍용차 두 사람 이야기

7일 북콘서트...고통과 아픔이 유쾌함으로 버무려져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77일 옥쇄파업을 다룬 짧은 영상 말미에 “견뎌!”라고 쓴 자막이 눈길을 끈다. 경찰병력이 대규모 정리해고에 맞선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참하고도 철저하게 짓밟는 장면이다.

이 말은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과 김혁 전국금속노조 정책기획실장이 투쟁과정에서 서로 ‘보루’가 됐음을 상징하는 의미심장한 말로 들린다. 용산참사의 상흔이 가시기도 전에 쌍용차 평택공장 옥상에 컨테이너 박스를 들어올리고 곤봉·방패와 전기총으로 무장한 경찰병력과 뒤를 따르는 사설 용역경비, 한 때 동료였던 구사대의 합동작전에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대화를 안 할 거면 차라리 다 죽여라!’는 절규로 견디는 일이었다.

영상은 3월 7일 오후 7시 서울시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쌍용차 투쟁 기록소설 <내 안의 보루> 북콘서트에서 상영됐다. 이 자리는 벌써 5년이 지났지만 현재진행형인 쌍용차 사태를 공유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또한 한상균 전 지부장과 김혁 실장, 그리고 작가 고진 씨의 솔직담백한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로 몰렸다. 늦은 저녁 한적한 조계사 경내 한 편은 잠깐이나마 어느 유명 영화인 못지않은 팬사인회같은 착각을 불러오기도 했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는 “이렇게 재미있는 북콘서트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레드카펫’이 화려하게 등장한 대신 ‘감옥 수감 년수가 누구 못지 않다’는 유머가 흘렀던 ‘별들의 잔치’는 2009년의 고통과 아픔의 기억이 재구성되어 유쾌함으로 버무려졌다.


전남기계공고 동기, 한상균 전 지부장과 김혁 금속노조 실장
24권의 일기와 작가의 걱정어린 발걸음으로 태어난 책
출판인세 전액, 손배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 위해 쓰여


한상균 전 지부장은 북콘서트에서 “‘우리 동지’가 된 많은 사람들과 아픔과 기쁨을 나누었던 시간을 잊을 수 없다”며 “그 시간 중에서 나와 김혁 실장의 이야기 일부가 책 속에 묻어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장으로 돌아가면 조합원들이 가득 모인 자리에서 여러분의 축하를 받으며 못 다한 이야기를 하겠다”며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김혁 실장은 “북콘서트도 처음이고 이렇게 앞에 서니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당혹스럽다”며 “차라리 집회 사회를 보라고 하면 편할 것 같다”고 말해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내 안의 보루>는 한상균 전 지부장과 김혁 실장을 주인공으로 2009년 ‘77일간의 쌍용차 파업 투쟁’을 다룬 기록소설이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책 말미에 붙인 글에서 “‘쌍용차’는 언제부턴가 이 시대 핍박받는 사람들의 상징이 됐다”고 적었다.

특히 한 전 위원장과 김 실장의 남다른 인연은 소설 출간의 배경이 됐다. 쌍용차 파업 투쟁과정에서 두 사람은 전남기계공고 동기에다 바로 옆반 친구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은 2009년 4월 7일 쌍용차 회사가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 사람은 노조 위원장으로서 공장 안에서, 한 사람은 금속노조 활동가로서 공장 밖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던 서로가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소재가 됐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을 함께 경험한 두 소년이 오십이 다 돼 파업 현장에서 서로를 알아보게 된 것이다.

한 전 위원장은 “서로 만났는데, 말도 별로 없고 밋밋했다”며 “통닭에 소맥 한 잔 할 수 있는 자리가 우연히 마련됐는데, ‘어? 이 친구가 5.18에 금남로도 아네?’ 하다보니 김혁 실장이 옆반 친구라는 걸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가 “쌍용차 파업이 끝나고 안양교도소에서 다시 만났다. 못 다한 인연의 고리는 일명 ‘국립대학’ 졸업으로 이어졌다”고 말해 북콘서트장은 웃음바다로 변했다.

  무대 왼쪽부터 한상균 전 지부장, 김혁 실장, 고진 작가, 그리고 사회를 본 이창근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이 앉았다.


한 전 위원장은 2008년 12월 쌍용차 노조 선거에서 ‘민주연합 대표’로 나와 당선되고 ‘대중투쟁의 지도자로서 흐트러짐 없이’ 77일간의 쌍용차 파업투쟁을 이끌었다. 3년간의 옥고를 치른 뒤에 그는 다시 문기주 부지부장, 복기성 비정규직 부지회장과 함께 171일간의 평택공장 앞 철탑 농성에 돌입하기도 했다.

김혁 실장과 소설을 집필한 고진 작가의 인연도 예사롭지 않다. 두 사람은 대학 동기다. 고진 작가는 2009년 친구 모임에서 우연히 김혁 친구가 쌍용차 파업으로 구속됐다는 소식을 듣고 ‘울컥’했단다. 그는 “친구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데 나는 먹고 살기 바빴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함과 자괴감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고진 작가의 이런 마음은 <내 안의 보루>가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 이 책은 그가 집필한 첫 소설이다. ‘일단 김혁 친구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작가의 걱정어린 발걸음과 2년간의 기다림, 주변 동료의 제안은 그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북콘서트에서 심경을 묻는 사회자의 첫 질문에 그는 “나는 별로 한 것이 없고 두 분이 험난한 길을 걷게 된 것을 듣고 우연히 쓰게 됐다”며 “북콘서트도 처음이고 글을 쓴 것도 처음이다”고 말했다.

  북콘서트는 한상균 전 지부장, 김혁 실장, 고진 작가, 김진숙 지도위원,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가 이야기 손님으로 나섰다. 민중가수 박준 씨와 인디밴드 '디어 클라우드'의 공연, 송경동 시인의 시 낭독이 북콘서트를 풍성하게 했다. 박준(사진) 씨가 노래공연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김혁 실장이 감옥에 수감된 동안 적은 24권의 일기는 책의 뼈대가 됐다. 고진 작가는 “24권의 일기를 봤고 하루에 한권씩 읽었다. 오랜만에 필사로 된 글을 보니 눈이 아프고 힘들었다”며 “사건별과 인물별 등으로 분류해 고민하다 2달이 걸렸고, 2013년 초부터 글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김혁 실장은 관련해 “어느날 노조 활동을 하는 동지가 감옥에 면회와서 ‘수기를 한 번 써보라’고 해서 ‘내 주제에 무슨 수기를 쓰나’ 하고 말았다”며 “하지만 돌이켜보니 나를 돌아본 시간이 없었다.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혁 실장은 2001년 ‘대우자동차 농성투쟁’, 2003년 ‘명동성당 이주 노동자투쟁’ 그리고 2009년 ‘77일간의 쌍용차 파업투쟁’에 이르기까지 세 번의 큰 싸움을 거치며 세 번 모두 구속됐다. 학생운동 시절까지 합쳐 여섯 번 감옥에 구속됐다. 고진 작가는 책에서 그를 ‘투사’로 표현했다.

한편 <내 안의 보루> 출판인세 전액은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고통을 당하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을 위해서 아름다운 재단의 긴급지원 사업인 <노란봉투>에 기부된다.

조계종노동위원회 위원장 종호 스님은 북콘서트에서 “한진중공업 최강서 씨가 2012년 돌아가셨다. 쌍용차 정리해고 승소 판결이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손배가압류에 얽매이고 있다”며 “합법적인 노조 활동조차 자본의 탄압이 심해 안타깝다”고 밝혔다. 종호스님은 이어 “듣도 보고 만져보지도 못한 손배가압류로 생명을 달리하는 일들이 많은 것 같다”며 “이 책 <내 안의 보루>를 사람들이 많이 읽게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말

정재은 기자는 미디어충청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미디어충청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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