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합의 후폭풍, “밀실야합이자 의사 이권 챙긴 합의”

노동, 보건의료 단체 등 의-정 협의 규탄...의협 “최선 다한 협상”

지난 17일,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보건복지부의 제2차 의-정 협의 결과를 둘러싸고 보건의료, 노동, 시민사회단체 등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단체들은 이번 의-정 합의가 의사들의 이권 챙기기에 머문 졸속적, 기만적 합의라고 비판하며 협의문 폐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출처: 노동과세계 변백선 기자]

애초 의협은 올 초까지만 해도 보건의료노조를 비롯한 6개의 보건의료단체들과 ‘보건의료단체 공동협의회’를 구성하고 정부의 의료영리화 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공동 논의에 참여해 왔다. 하지만 의협은 결국 독자적으로 보건복지부와 원격진료,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설립 등을 골자로 한 정부의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을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됐다.

시민사회는 이번 의-정 협의가 ‘의료민영화 저지’와 ‘의사들의 이권’을 맞바꾸는 협의 결과였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정책실장은 17일, CBS라디오 [정관용의 시사자키]와의 인터뷰에서 “의료계 쪽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던 의료계의 이권과 관련한 정책 대안들이 모두 실려있다”며 “사실상 의료민영화 반대라는 본질적 요구와는 다른 안이 나온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앞서 의협과 복지부는 4월부터 6개월 간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국회가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화할 때 시범사업 결과를 반영키로 했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가 수차례의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진행해 왔고, 그럼에도 효과성과 실효성을 입증하지 못해 논란이 있어왔다. 때문에 의-정이 원격진료 허용법안을 추진하며, 시범사업을 병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원격진료 허용을 추진하기 위한 시간벌기용 ‘꼼수’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의료법인의 영리자법인 설립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기구 구성 역시, 의료공급자단체만 포함됐고 노동시민사회단체나 의료소비자단체들이 전면 배제돼 논란이 일었다.

또한 김준현 정책실장은 “(논의구조는) 1차 협상 과정에서 나왔던 내용이며, 영리자법인 설립은 전제로 부작용과 관련해 논의구조를 가동하겠다는 이야기”라며 “이렇게 되면, 정부의 입장과 정부주도의 정책에서 공급자들이 오히려 역이용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논의부분을 이행하기 전에 영리자법인을 포함해 투자활성화대책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어야 하는데, 그것에 대한 내용이 합의문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번 의협은 이번 협의를 통해 수가인상 등 보건의료정책을 결정하는 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의 구조개편에 합의했다. 건정심에 공익위원을 사용자 단체와 공급자 단체가 동수로 추천해, 의사협회와 같은 공급자 단체의 위원 수를 늘려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김준현 실장은 “1, 2차 합의 내용을 관통하는 기조는 우리가(의협이) 헌신했으니, 우리가 좀 더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구조를 갖춰달라는 것”이라며 “전체적으로 의-정 합의 내용은 국민들을 완전히 배제해 놓은 채 의료계와 정부 간에 합의한 내용이다. 법적으로 개정을 하는 등으로 귀결된다면 월권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계와 보건의료,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의료민영화, 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의료민영화저지 범국본)’도 18일 오전,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정 2차 밀실합의를 규탄했다.

이들은 “의협이 이 합의를 두고 자신들의 요구가 대폭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의협은 애초에 의료민영화를 저지할 생각이 없었음을 고백하는 것일 뿐”이라며 “의협은 원격의료, 영리자회사를 반대하면서 국민과 함께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의협과 정부와의 단독 협상은 계속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을 뿐”이라고 비난했다.

이어서 “정부와 의협의 2차 의정합의는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바람과는 아무 관계없는 밀실야합일 뿐”이라며 “의협은 지금이라도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을 수용한 것에 대해 깊이 있게 사죄하고 합의에 대해 원천 무효를 선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노환규 의협 회장은 18일 오전,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의정 협상 결과와 관련해 “만족은 못하지만 서로 간에 최선을 다한 협상이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의협과 정부가 원격의료의 입법화를 허용한 것 아니냐는 시민사회의 비판에 대해서는 “시범사업기간 6개월은 매우 짧지만, 의협이 시범사업과 관련한 설계나 구성, 진행, 평가 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 기간이면 원격진료 위험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시범사업 결과를 입법에 반영토록 했기 때문에 입법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고 밝혔다.

건정심 구조 개편과 관련해서도 “건정심 구조는 오랫동안 문제가 됐고, 이에 따라 정상적인 수가현실화가 되지 않았다”며 “수가현실화는 의료비가 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의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고 강조했다. 의-정 협의문 수용 여부를 묻는 의협 회원 찬반투표 결과에 대해서는 “(협의문이)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하지만, 의사들의 요구도 너무 거세 낙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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