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해산심판, 정부 제출 증거 채택 상당수 보류

“정부, 트럭으로 쓰레기 같은 자료까지 제출”...지방선거 전 판결 어려울 듯

사상 초유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 4차 변론에서 청구인 법무부가 제출한 증거들 상당수가 철회되거나 채택 보류됐다. 또 받아들여진 증거들도 피청구인(통합진보당) 변호인단이 혁명조직(일명 RO)이나 위헌여부를 판단하는데 직접 관련이 없거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혀 상당시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헌법재판소는 1일 오후 2시 대심판정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사건’과 ‘정당활동정지 가처분신청 사건’ 4차 공개 변론을 열고, 100여개의 서증조사(문서증거조사)를 진행했다. 당초 헌법재판소는 법무부 측이 제출한 1700여개 서증조사 대상 갑 제1호증부터 471호증까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일괄조사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피청구인 측의 충분한 방어권 확보를 위해 증거를 하나하나 살펴야 한다는 요구가 일부 받아들여져 100호증까지 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청구인이 제시한 증거 1호 북한 대남부서 작성 문서(한국사회변혁운동론)의 출처나 발행시기가 없어 진정성 판단이 어렵다며 증거 채택을 보류했다. 재판관들은 “발간 시기를 보면 1992년경으로 20년이 넘고, 이 책의 대남 혁명 전략이 지금도 북의 대남전술이라고 볼 수 있느냐”고 정부(청구인) 측에 물었다.

피청구인 측 이재화 변호사도 “정부가 구국전선에서 (문서를) 출력했다고 하는데 언제 출력했는지가 없고, 현재도 구국전선에 있다면 93년 이후 민노당도 창당되고, 민노당 선거방향 등 이런 내용이 전혀 없다. 20년 전 버전 그대로라면 북의 대남 전략이 없다는 말”이라고 증거 능력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헌재는 이와 같이 출처가 불분명한 북한 지령문이나 작성자 미상의 인터넷 블로그 글, 중복 증거 등을 두고 증거채택을 보류하거나 추가 자료를 법무부 측에 요구했다.


“서면 검토로 다하면 재판할 필요 없어”

피청구인 측과 청구인 측은 증거 채택여부와 내용을 놓고 첨예한 논쟁을 벌였다. 법무부 측은 서증 4호 조봉암 진보당 사건 재심판결문을 두고 “과거 반국가 이적활동 단체들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며 “(조봉암) 진보당은 공산독재는 물론 자본독재도 반대했으며 강령이나 활동은 반국가단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반면 피청구인 측 김선수 변호사는 “이미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이라며 “청구인은 (조봉암 사건을) 좌익 민주체제 위해세력으로 예시를 들었지만 이건 역사를 부정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또 “(조봉암) 진보당의 정책은 피청구인의 정책보다 훨씬 사회주의적”이라며 “(조봉암) 진보당은 강령이 사회민주주의였지만, 통합진보당은 진보적 민주주의”라고 반박했다.

피청구인 측 이재화 변호사도 “(조봉암) 진보당은 통신 등 재산업을 원칙적으로 국유화 하자고 했다. 통합진보당이 위헌 정당이면 (조봉암) 진보당은 10배 이상 위헌”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서증조사 초반부터 개별 증거를 놓고 격렬한 공방과 더불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자, 박한철 헌재 소장은 일반적인 증거들은 이미 서면으로 충분히 검토한 상황이라 증거 내용을 일괄로 듣고 크게 문제되는 것만 의견 진술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피청구인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재화 변호사는 “사상초유의 정당해산 사건에 일개 형사사건보다 실질적 변론기일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다”며 “헌재가 알아서 판단한다고 해서, 실질적 변론을 못해선 안 된다. 서면으로 다 하면 재판을 할 필요가 없다. 정성을 들여 설득하기위해 재판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증거조사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지적을 두고도 “(청구인 측이) 트럭으로 쓰레기 같은 자료까지 제출하니까 이런 문제가 생긴다”며 “청구인의 잘못으로 피청구인이 손해를 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박한철 소장은 “증거채택 성립여부가 문제가 되고, 증거조사가 쟁점이 될 텐데 관련성조차 의심되는 부분이 많다. 그런 부분은 당연히 시간을 들여 말씀할 기회를 많이 주겠다. 필요한 부분에 가서 말씀을 많이 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재차 피청구인 측이 구체적으로 구술 기회를 달라는 요청에 박한철 소장은 “청구인이 무려 1700여개가 넘는 증거를 제시했는데 물리적으로 다 검토가 가능한지의 문제다. 변론제한 취지가 아니”라며 “변론을 효율적으로 충분히 하도록 기회를 드리기 위해선데 지엽적인 것을 문제 삼아 문제제기한다면 재판진행에 협조를 안 하신다는 취지로 비쳐진다”고 밝혔다.

김선수 변호사는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증거는 청구인이 철회하는 것이 맞다”고 맞섰다.

결국 50여개씩 일괄 설명을 듣고 일괄 변론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변론이 속개돼 100호 증거까지 서증조사를 진행했다. 헌재는 오는 22일 오전 10시부터 101호증부터 974호증까지 검토하기로 했지만, 청구인측의 증거설명, 피청구인측의 변론과정의 공방 시간을 감안하면 서증조사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부가 계획한 6월 지방선거 이전에 가처분이나 판결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24일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피청구인의 방어권을 제한해 재판의 속도를 높여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변호인단은 변론 직후 기자들과 만나 “청구인측이 판결문이 제출 되어 판결문으로 보면 충분한데도 수사기록에 공소장, 수사기관의 수사보고 등을 무차별적으로 제출해 피청구인 입장에서도 일일이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사실을 창작 편집하거나 왜곡한 부분이 굉장히 많아 그 부분을 일일이 지적하지 않으면 이를 간과하고 재판할 수 있어, 공정하고 신중하게 절차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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