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주의 ‘임금체계 개편’ 논란, 노동계·학계 입장은?

‘대안적 임금체계’ 마련 요구부터 ‘연공제 부분수정’까지

지난달 19일 고용노동부가 성과주의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발표하면서 임금체계 개편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노동부의 매뉴얼이 또 다른 저임금 체계를 확대하고 노동조합 무력화를 가속화 시킬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학계나 전문가 집단에는 노동부의 매뉴얼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현재의 연공급 임금 체계를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임금체계 개편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마련 돼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의 연공급 체계에서 일부 보완, 수정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의견과는 또 다른 주장이다.

정의당 정책위원회는 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임금체계개편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하고 대안적 임금체계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박하순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연구위원과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센터 소장,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기업 임금부담 낮추기 위한 매뉴얼, 노조 무력화 가속화 시킬 것”

다소 수위는 다르지만 노동계와 학계, 그리고 노동부 매뉴얼 연구 작업을 진행한 연구진들도 이번 노동부 매뉴얼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우선 박하순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연구위원은 노동부의 임금체계 매뉴얼의 목적은 기업의 임금부담을 낮추려는 것일 뿐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박하순 연구위원은 “재계와 정부, 노동부는 90년대 초중반부터 직무급, 직능급으로의 임금체계 개편을 이야기 해 왔지만 이번에는 특히 캠페인의 강도가 센 것 같다”며 “이유는 최근 통상임금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작년 4월말 통과된 60세 이상의 정년을 의무화 한 정년연장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정기상여금 등의 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기업의 임금부담이 높아지고, 정년연장법은 기업의 노동자 고용 부담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현재의 연공임금 체계에서는 근속과 나이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기 때문에 정년이 늘어날 경우 기업으로서는 임금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박하순 연구위원은 노동부의 매뉴얼 또한 이 같은 기업의 임금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부의 매뉴얼은 현재 연공급 체계에서는 기업의 임금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직무급, 직능급을 도입해 임금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업의 임금부담을 줄이기 위한 임금피크제 도입도 계속 이야기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연공임금 체계에서는 회사가 임금 부담으로 중장년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 등을 강요해 고용불안을 초래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직무급, 직능급을 도입해 중장년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겠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박하순 연구위원은 “속임수에 불과하다”며 “임금체계가 개편될 경우 낮은 인사고과를 받고 임금이 오르지 않으며 승진이 지체될 경우 노동자는 버티기 힘들다. 하급자가 자신을 지휘하는 위치가 되면 스스로도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고 회사로부터 압력도 온다. 직능급, 직무급이 도입돼도 이전보다 정년 보장 정도가 더 높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동부의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이 노동조합을 무력화 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성과에 기초한 임금 체계가 도입될 경우,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이 무력화되고 이는 노조 이탈과 노조 무력화의 수순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노동계, 학계, 연구진 등 노동부 매뉴얼 문제점 지적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역시 노동부의 매뉴얼이 기업의 임금 부담을 낮추기 위한 목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정이환 교수는 임금체계 개편은 현재 임금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은 비정규직과 중소영세 노동자들의 형평성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 교수는 “노동부의 매뉴얼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임금체계 개편과 일치하지 않는다”며 “임금체계 개편의 목적은 중소영세, 비정규직 등의 사회적 형평성을 보장하기 위해서야 하는데, 현재 노동부의 매뉴얼은 기본적으로 고령층의 임금비용 삭감이 주된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현재 직무급, 직능급이 일방적으로 미화되고 있다. 하지만 연공급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직무급, 직능급도 역할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또한 매뉴얼에는 성과주의가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성과주의가 직능급, 직무급과 조화되는 것이 아니다.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노동부 매뉴얼의 연구 작업을 수행한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센터 소장은, 노동부가 중장년의 임금 문제와 정년연장에 따른 합리성에 방점을 찍으면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연구를 수행할 때는 합리적인 임금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매뉴얼의) 맥락이 정년연장 합의문에 따른 연결지점으로 비춰져 많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연구 과정은 정년 연장에 따른 합리성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어서 그는 “연공급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고용노동부가 연공급을 너무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성과주의 임금체계에 대해서도 “우리는 성과요소를 임금 결정체계에서 빼자는 주장이다. 이는 노사 간에 부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지, 노동시장 전반에서 성과주의를 가져가는 것은 작동이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대안적 임금체계’ 마련 요구부터 ‘연공제 부분수정’까지

대안적인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이장원 소장과 정이환 교수의 경우 연공급 개혁을 비롯해 대안적인 임금체계 개편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점에서 입장을 같이했다. 반면 박하순 연구위원은 현재의 연공급 임금체계를 부분수정하는 선에서 임금체계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이환 교수는 “학계에서는 연공급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점과, 연공급이 개혁돼야 한다는 점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며 “비정규직과 중소영세 사업장까지 적용되는 임금체계가 무엇인지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연공급이면 좋겠지만 이는 그야말로 이상주의적인 생각이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기업 내 수준이 아닌 산업과 업종 수준에서 (임금체계가) 도입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기업단위로 적용되더라도 업종에 따른 기준이 있어야 임금체계 개편이 사회적 형평성의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장원 소장도 “현재 연공급과 직능급, 직무급 등 일정한 한계선상에서 사회적 논의가 겉돌고 있다. 결론은 사회적으로 노사정이 합의할 수 있는 표준화된 대안 모델을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산업별, 업종별로 임금이 결정되는 대안적 임금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며 정이환 교수와 입장을 같이했다. 그는 “다만 우리나라는 유럽처럼 산별협약이 체결되기 어려운 조건이기 때문에 정부가 직무표준을 정해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이장원 소장은 노동부의 매뉴얼이 임금체계 개편 논의의 출발점이라며 이후 사회적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직 노사정위원회 등의 협의체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전이며, 매뉴얼은 논의를 좁혀가는 출발점이기 때문에 이를(매뉴얼) 두고 비판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정부도 매뉴얼대로 밀어붙이려고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서비스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박하순 연구위원은 “현재 임금체계는 사무 관리직이나 대기업 생산직 등 비중이 크지 않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대다수의 노동자가 임금체계가 없어 배제된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체계를 고민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진공상태에서 책상 위에서만 대안을 만들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박 연구위원은 임금체계 개편의 대안은 현재 체제 하에서 부분수정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모든) 노동자들에 대해 연공급을 도입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은 할 수 없다. 하지만 낮은 정도의 기울기라도 일정한 임금곡선을 가져야 하며 생계비 상승에 따른 임금인상은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민주노총에서는 현재의 연공급 체계를 정률방식의 임금인상이 아닌, 정액인상 방식으로 부분 수정, 개편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사무 관리직의 직급상승에 따른 임금 인상을 낮추거나 동결하면서 임금격차를 줄여나가자는 것이다. 박하순 연구위원은 “이 같이 정액인상의 임금인상 방식을 적용할 경우, 5년 이상 경과하면 노동자 내부 임금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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