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가난해져야 할까요?

[봉당풍경](9) 복지사각지대 일제조사의 명백한 무효성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가 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지만, 가난해지는 것은 예상 외로 간단하다. 부모가 가난할 경우, 자신 혹은 가족이 아플 경우, 일터를 잃을 경우, 투자가 잘못됐을 경우, 나이가 들 경우... 절대적이지 않지만,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상당수의 사람들은 부족한 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스스로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불안한 미래에 현실을 저당 잡혀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열심히’와 ‘최선’이란 말에 사로잡혀 살도록 훈육되었고, 그러기에 개인의 삶에 닥친 가난에 대한 사회의 태도는 비정하리만큼 냉정하다.

송파 세모녀의 안타까운 죽음이후 국가와 사회는 아주 잠시 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듯 보였다. 마치 국가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조사만 하면 해결해 줄듯이 보였다. 그러나 정보제공이나 사각지대 발굴로 이와 같은 죽음이 재발되는 것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태의 본질은 너무나 까다로운 자격 조건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국가의 지원을 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즉 복지사각지대는 공공부조의 제도적 모순으로 발생될 수밖에 없는데, 이번 정부조치는 제도는 그대로 둔 채 변죽만 울렸다. 국가가 빈곤을 사회·구조적인 원인으로 인식한 후, 가난한 국민들에게 제도적으로 권리를 부여해서, 그들이 삶을 계속적으로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강화하고 두텁게 함으로써 해결될 문제를 조사만해서 뭔가 달라진 것처럼 퍼포먼스만 했다.

이제까지 대한민국은 ‘빈곤’에 대한 국가 책임은 사적 부양의 원칙을 우선으로 하면서, 1촌 이내 혈족이 지원하지 못할 경우에만 부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으로 가난한 개인과 그 가족의 근로능력 및 재산-소득이 엄격하게 조사된 후 부분적인 권리를 부여했다. 이에 반빈곤운동단체에서는 현실적인 빈곤선 도입 및 급여인상과 부양의무 기준 철폐를 요구해왔지만, 정부는 외면해 왔다. 물질이 넘쳐나는 시대에 가난으로 죽어간 국민들의 죽음 앞에서도 국가는 빈곤발생에 대한 관점을 바꾸기는커녕 사태의 본질을 오도하면서 빈곤의 책임을 여전히 국민 개개인의 사적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작하고 있다. 빈곤에 대한 국가의 태도, 이에 준하는 제도운영의 원리가 그대로 유지됨으로써 현실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는 3월 일제조사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마치 커다란 변화가 온 것처럼 거짓 포장에 여념이 없다.

3월 한 달간 지자체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복지사각지대에 대한 일제조사가 수행되었고, 4월 1일 복지부는 3월 일제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일제조사는 일선 시군구·읍면동의 사회복지 공무원과 이·통·반장, 지역사회복지협의체 등과 같이 민·관의 협력으로 수행되었다. 정부는 세 가지 근거를 내세워 긍정으로 평가했다.

△긴급지원 등 복지제도와 보건복지콜센터 홍보를 통해 복지지원 신청과 보건복지콜센터 상담이 증가했다. 3월 중 복지지원을 신청한 사람은 7만4천명으로, 2월 31,021명의 2.5배 증가했고, 이 중 긴급지원으로 4천명, 민간자원 지원으로 1만6천명 복지지원, 2만1천명은 기초생활보장 등 선정 절차 진행 중 이다. △일제조사 기간 동안 직권조사와 다른 사람의 신고를 통해 복지지원 신청이 이루어진 비중이 전월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보건복지콜센터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져서 2월 135,209건에서 3월 187,580건으로 전월에 비해 39% 증가했고, 복지사각지대 긴급지원 상담실적은 2월 2,757건에서 3월 9,509건으로 3.5배 증가했다. 향후 과제로 보건복지부는 일제조사 결과를 분석하고, 지속적으로 홍보를 실시하는 한편, 4월 중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복지사각지대 발굴 및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할 계획으로 주요 내용으로 복지제도 알리기, 시군구의 찾아가는 서비스, 제도 문턱 낮추기 등을 제시했다.

직권조사와 제3자 신고 증가는 복지부 일제조사지침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21조에 따라 급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락되지 않도록 하기 직권으로 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 급여신청은 신청을 원하는 당사자나 친족 및 기타관계인, 사회복지전담공무원, 민간복지기관 사회복지사 등에 의해 수행될 수 있다. 그러므로 민관 협력으로 수행된 일제조사 결과 이와 같은 신청 증가는 놀라운 일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일상적으로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의 직권조사가 어려웠던 원인이 개선되어야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3년도 기준, 주민센터에서 사회복지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약 2.8명(복지직 1.6명, 행정직 1.2명)이고, 이들의 업무 중 민원상담 36.1%, 행정처리 24.1%로 업무 중 60% 이상이 해당 업무로 소요된다. 반면 방문상담 8.8%, 서비스 연계 등과 같은 사회복지 전문 업무에 8.5%로 하루에 약 40분 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다. 또한 감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3년 4월 기준 지자체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은 총 25,000명으로 행복e음을 통해 총 115개의 복지사업의 수급자 14,338,773명이 관리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한 명의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이 수급자만 평균 574명을 담당해야 한다. 즉 충원되지 않는 사회복지담당 공무원 인력으로 실제 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업무는 일상적으로 수행되기 어렵고, 일제조사와 같은 ‘보여주기 행정’으로는 실적만이 중요하게 다뤄지게 됨으로써 실제 사각지대 해소라는 본질보다는 조사수행자체만이 중요하게 된다. 그 결과 담당 공무원의 피로도는 심각하게 쌓이고, 이로 인해 오히려 업무의 질은 떨어질 수 있고, 실제 복지행정서비스의 개선이나 사각지대해소에는 별다른 성과를 갖지 못한다.

첫째,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제도적 보호에 단 3.7%만이 선택되었다. 완료된 지원기준으로 공공부조제도인 기초생활제도의 혜택은 신청인원 중 단 3.7%에게만 제공되었다. 물론 신청이후 자산 및 소득평가 기간을 고려할 때 진행 중인 2,036명이 신청자 중 27%를 차지하지만 평가조사 과정에서 탈락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진행 중인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 둘째, 긴급복지의 경우 전월 대비 높은 증가율을 보였지만, 긴급복지는 일회적이고 낮은 급여 수준으로 일시적인 지원이라는 점에서 보여주기 행정의 전형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표3> 긴급복지 급여 종류 및 내용

<표3>을 보면 국가가 제공하는 급여의 횟수는 최대 12회에서 1회에 그치는 것도 있다. 긴급복지 지원의 대상자가 되려면 △소득은 최저생계비 150%(4인기준 2,446천원) 이하여야 하고(생계지원의 경우만 최저생계비 120% 이하), △재산은 대도시 13,500만원, 중소도시 8,500만원, 농어촌 7,250만원 이하여야 하고, △금융재산은 300만 원 이하라는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즉 소득과 재산 수준 모두가 기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고, 만족이 되더라도 지원 기간과 수준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셋째, 지원완료를 전체로 봤을 때, 66%에 해당하는 대상자들에게 민간(신청자 중 21.9%)자원을 연계했을 뿐이다. 즉 국가는 긴급하게 사각지대를 해소할 것처럼 동원령을 내렸지만, 결국 민간자원연계로 위기를 모면하면서, 민간에게 ‘아름다운 이웃’이 될 것을 강요하는 것으로 국가복지의 구멍을 정당화한 것이다.

도대체 국민이 얼마나 더 가난해 지면 국가가 뼈저린 반성을 하고 근본을 바꾸려고 할까? 이것은 분명 정치권력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갖는다. 우리사회의 몫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정치적 권리는 매우 미약하고, 선거를 통해 이들을 위한 정책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빈곤정책은 관료와 전문가들에 의해 독식되었고, 이해당사자들은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가 되기 위해서는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수준과 1촌 이내 가족과 철저하게 단절되거나 단절되지 않을 경우 가족마저도 소득과 재산이 미약해야만 한다. 가난한 사람이 수급자가 되기 위한 길은 부자가 천국을 가는 것보다도 어려울 수도 있다.

마셜 살린스는 ‘stone age economics’에서 가난은 단순히 재화의 양이 적다거나 수단과 목적 사이의 관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봤다. 가난은 사람 사이의 관계이자 사회적 지위이며 계급 간의 불쾌한 구별이 되었다고 보았다. 자본주의 사회는 가난을 구조적으로 발생시키면서 가난한 사람을 다양한 방법으로 구분하고 차별한다. 이러한 구분과 차별이 지속되는 한 모든 시민의 인권은 무의미한 허상에 불과하다.

가난 자체가 사람 간의 구분으로 작동하는 한, 국가가 이러한 구분을 무력화하기 위한 노력을 서두르지 않는 한,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가난으로부터,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멸시로부터 과연 당신은 안전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가난한지’ 보다는 ‘얼마나 인간으로서 더 존중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더 늦기 전에 근본 제도 개혁에 힘을 모아내야 할 것이다.

* 참고: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구조적인 사각지대 원인에 대해 보다 알고 싶다면 사회공공연구원에서 발간된 [워킹페이퍼 14-01]“복지사각지대의 구조적 원인(http://www.ppip.or.kr/webbs/view.php?board=pds&id=184&page=1&category1=5)”을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