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경찰, ‘밀양송전탑 반대’ 음독 배경 은폐 드러나

장하나 의원 녹취록 공개...고인, 응급실 찾아 온 경찰에 “송전탑 때문”

경찰이 밀양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음독을 선택한 밀양 주민 故(고) 유한숙 어르신(71)의 뜻을 왜곡해 고인과 유가족 명예를 훼손한 사실이 드러났다.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 제공

8일 장하나 새정치연합 의원과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가 국회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한 고 유한숙 어르신의 생애 마지막 경찰 진술 녹취록엔 이 같은 사실이 생생하게 담겼다. 녹취록에 따르면 고인의 음독자살 선택 배경은 밀양 송전탑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유한숙 어르신의 죽음을 개인사 등의 복합적 원인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밀양경찰서는 2013년 12월 7일 음독사망 관련 수사결과 보도자료에서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제반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 음독한 것으로 보여지며 고인의 사망이 지역사회 안정을 저해하는 수단으로 호도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보도자료와 녹취록을 종합하면 경찰이 송전탑 때문에 죽음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지역의 송전탑 반대 여론 확산을 의식해, 녹음한 육성 내용을 축소 은폐하려 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녹취록에 따르면 경찰은 유한숙 어르신이 실려간 응급실을 찾아가 직접 음독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유한숙 어르신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경찰의 물음에 여러 차례 송전탑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하나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 필사본 일부


■ 형사 : 어르신은 뭐 오늘 특별히 뭐 언짢은 일이 뭐 있었는가요? 왜 그렇게 이리 또 사람 그래도 집에 따님도 걱정하시고 다 걱정하시는데
■ 딸 : 아버지!
■ 故 유한숙 : 응
■ 유한숙의 딸 : 왜 그러셨는지를 얘기를 좀 해보세요.
■ 故 유한숙 : 송전탑 때문에 그래
■ 형사 : 예?
■ 형사 : 예?
■ 故 유한숙 : 송전탑 때문에
■ 형사 : 예
■ 故 유한숙 : 니네 그게 송전탑 때문에 내가 돼지도 못 먹이고, 하나 옮기면 되는데.
■ 형사 : 예
■ 형사 : 큰 아드님 말씀 들으니까 오늘 뭐 싸우시다가 이래 얘기 하시더만은예.
■ 故 유한숙 : 하∼ 기분도 안좋고,
■ 형사 : 기분이 왜 안 좋으셨는데예?
■ 故 유한숙 : (기침) 사는 게 힘들어가 죽고 싶어서 그런기지 뭐. 아이고∼
■ 형사 : 사는 게 힘들어서, 그거는 뭐 다 사람이 살다보면 다 힘들가는거, 다 쉬운게 어디 있습니까? 저희들도, 갑자기 왜 이렇게 하실 필요는, 목숨이 제일 중요하신데 일단 뭐.
■ 故 유한숙 :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 송전탑..
■ 형사 : 살만큼 사시기는 아직까지 뭐 정정하시죠, 예.


유족, 녹취록도 왜곡 가능성도 제기

어버이 날인 8일은 유한숙 어르신이 사망 153일 째였다. 유가족들이 5개월 넘게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개인사 정도로 치부된 고인의 사인을 바로 잡기 위해서다.

유한숙 어르신의 큰아들 유동한 씨는 기자회견에서 “아버지 음독 당일 날 부산대병원 응급실에 경찰이 처음 찾아왔을 때 했던 얘기가 있다”며 “‘어르신 왜 그러셨습니까’라고 경찰이 묻자 제 선친께서 ‘765 송전탑 때문에 살기 싫어서 약 먹고 죽으려고 했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여기 녹취록에 나와 있지 않다”고 밝혔다.

유동한 씨는 “녹취록 대부분이 형사가 발언한 내용인데 저와 여동생은 아버지께서 흐린 얘기를 듣지 못했다”며 “그나마 증인들이 있기 때문에 (경찰이) 100% 다 왜곡할 수 없어서 부분적이나마 인정한 그런 내용의 녹취록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유동한 씨는 “선친께서는 765송전탑에 항거하는 의미로 음독을 하셨는데도 경찰이 사인을 왜곡하는 바람에 정부의 사과나 보상이 없다고 본다”며 “밀양경찰서에서 불법으로 선친과 유족의 명예를 손상해 아버지 장례도 못 치르고 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또 다른 잘못된 일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장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도 경남청이 녹취록 공개를 거부해 보좌관들이 일부 내용을 필사해 와 공개할 수 있었다.

장하나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여러 차례 경남경찰청에 음성 녹취 파일 원본을 요구했지만 고의로 녹취록 제출을 안 하고 있다”며 “유족이 녹취록 공개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법적절차를 다 밟았는데도 국회 자료제출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경남청과 밀양서는 사인을 왜곡한 담당수사관을 징계해 왜곡된 수사결과를 바로잡고 유족들에게 즉시 사과해 최소한 장례를 치룰 수 있도록 인륜을 지켜야한다”며 “더 이상 인간성이 메마른 공권력은 국민이 용납지 않을 것”이라고 촉구했다.

정상규 변호사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법률 지원단 간사)는 “개인정보 파일을 당사자인 아들이 동의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정보 공개를 않는 것은 경찰의 직권남용”이라고 지적했다.

이계삼 대책위 사무국장은 “의원실 보좌관들이 녹취록을 필사해서 이 자리에서 다시 공개해야 하는 이 현실은 너무 참혹하고 야만적이다”고 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박근혜 정부는 밀양주민들을 더 이상 적으로 돌리지 말고 대화와 소통을 시작해야 한다”며 “한전과 경찰이 계속 힘과 폭력을 동원해 밀양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려고 한다면 밀양의 비극은 다시 또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송전탑 건설 중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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