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청소노동자 ‘씻을 권리’ 법 시행됐지만...현실은 열악

지자체 소속 청소노동자 휴게시설 등 노동조건 실태조사 발표

“버스에 환경미화원이 탔다. 냄새가 났다. 주위 사람들이 환경미화원 주변에 앉지 않고 힐끗힐끗 쳐다봤다. 환경미화원은 굉장한 자괴감을 느꼈다 한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 일과건강은 21일 국회 기자회견실에서 지난 4월 말에서 5월 초까지 지방자치단체 소속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조사한 실태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의 이름은 ‘청소노동자 씻을 권리 지키기’였다. 지자체에 소속돼 환경미화를 담당하고 있는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반영한 것이다. 이들은 전국 47개 지자체 소속 청소 업무 담당 조직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수행했다. 이중 36%는 지자체 직영소속, 64%는 도급이었다.

기자회견에서 한대일 전국민주연합노조 김포지부장은 “직영업체에 일하고 있는 나도 일한지 13년 동안 씻을 곳조차 없었다. 2011년도 ‘환경미화원 씻을 권리’ 캠페인 이후 그나마 나아졌다”며 “대행업체에 가보면 13~4명이 일하는데 달랑 수도꼭지 하나, 간이 화장실 하나 있는 정도다”라고 증언했다.

조사결과에 의하면 47개 업체 중 휴게시설이 있는 곳은 85%였다. 나머지 15%는 아직도 휴게시설을 갖추지 않았다. 하지만 휴게시설이 있는 경우도 실제 조건은 열악했다. 1인당 제공되는 휴게실 면적은 평균 1.25㎡(0.35평)에 불과했고, 탈의, 식사를 할 수 있는 독립공간을 갖춘 비율은 각각 45.5%, 60.5%였다. 32.6%의 사업장에선 휴게시설 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목욕시설이 없는 사업장은 전체의 30%였다. 목욕시설이 있는 경우도 30%는 온수가 나오지 않고, 평균적으로 0.5㎡(0.15평)의 비좁은 공간에서 10명 당 샤워기 1.7개로 몸을 씻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의 사업장은 세탁시설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세탁시설과 함께 세탁물을 건조할 독립적인 공간이 있는 경우는 전체 조사대상 사업장의 25%에 불과했다. 대다수의 청소노동자들이 제대로 마르지 않은 옷을 다시 입고 일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남녀가 함께 일하는 사업장 비율이 35%임에도, 이 중 남녀가 함께 사용하는 휴게공간과 화장실의 비율이 50%~70%에 달해 일터 내 기본적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은수미 의원은 “이번 실태조사로 직접고용, 간접고용 모두 청소노동자들에게 씻을 장소도, 밥 한 끼 편히 먹을 공간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 요구는 이미 2012년 민주노총 중심에 ‘청소노동자의 씻을 권리’ 캠페인으로 관련 법 개정까지 이뤄낸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조사결과로 관련 조항을 준수하는 사업장이 드물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임상혁 일과건강 운영위원은 “2012년 법이 개정됐고, '사업자는 위생시설을 설치하고 이용하게 해야 한다’는 벌칙조항이 신설됐다. 이번 조사는 개정된 법이 실제 사업장에서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 보기 위한 조사였다”면서도 “안타깝게도 아직 법을 제대로 잘 지키는 곳이 드물다”고 말했다.

한대일 지부장은 “법은 법일 뿐 실제 지켜지지 않는다”며 “현장담당자조차 법령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노동부는 사고가 나거나 파업이 있어야 조사를 나온다”고 말했다.

정구율 서울시 청소대행업체 환경미화원 권리찾기 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서울시에도 무허가로 고가다리 밑에서 씻을 곳도 없이 컨테이너 박스에서 옷만 갈아입는 환경미화원들이 많다“며 “청소업체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하는데 노조설립 자체가 어려운 현실이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이어 “그래서 저희는 ‘환경미화원 권리 찾기 운동본부’라는 임의단체로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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