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호석 열사여, 간접고용 노동자의 태양으로!”

삼성전자 떠나 정동진으로...45일 만에 전국민주노동자장

지회가 승리하는 날 화장해 정동진에 뿌려달라던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염호석 양산분회장이 45일 만에 잠들었다.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비롯해 노동계, 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염호석 노동열사 전국민주노동자장 장례위원회는 30일 오전 9시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인, 영결식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엄숙한 분위기에서 영결식을 마친 뒤, 선소리꾼의 구슬픈 목소리에 맞춰 삼성전자 본관 주변을 행진했다.

염호석 분회장은 이날 강원도 정동진으로 향했다. 장례위원회는 오후 4시 정동진에서 노제를 진행하고, 다음날 1일 오전 9시 고인이 근무했던 삼성전자서비스 양산센터에서 연이어 노제를 진행한다. 염 분회장은 1일 오후 경남 양산시 솔밭산 열사묘역에 잠든다.

[출처: 정운 현장기자]

[출처: 정운 현장기자]

“경찰이 아들 시신 가져가고...마지막 길 안아보고 싶었는데”
유골 없이 유품으로 치러진 염호석 분회장 장례


경찰이 염 분회장의 장례절차에 개입해 시신·유골함 탈취 논란이 일면서 고인의 장례는 유골 없이 치러졌다. 대신 염 분회장의 영정 사진 앞에는 고인의 유품이 가지런히 놓였다. 고인이 생전 착용했던 신발, 양말 등과 명함, 사원증, 그리고 고인의 동료가 정동진 바닷가에서 가져온 모래가 담긴 작은 병이다.

염 분회장의 친모인 김정순 씨는 영결식에서 “경찰이 아들의 시신을 가져가고, 유골함마저 가져갔다. 아들이 가는 마지막 길, 한 번 안아보고 싶었는데 이조차 막았다”며 “국민의 세금을 받는 경찰이 왜 우리 아들의 시신을 탈취했는지 정말 억울하고 분통하다”고 말했다.

[출처: 정운 현장기자]

[출처: 정운 현장기자]

[출처: 정운 현장기자]

특히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위영일 지회장과 라두식 수서부지회장이 연행·구속되면서, 노조 간부들은 염 분회장의 장례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장례 참가자들은 경찰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송경동 시인은 조시 낭독 전에 “양해를 구하고 제 마음을 추도시를 먼저 드린다”면서 경찰이 장례 장소에 설치한 폴리스라인을 걷어버렸다. 송경동 씨는 “저들은 이 선을 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저들은 장례식장 문까지 넘어 열사의 시신을 가져갔다”고 강하게 비판한 이후 ‘우리들의 정동진’ 제목의 조시를 낭독했다.

염호석 열사대책위원장 남운우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도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안전조치, 임금도 보장되지 않았다. 노조탄압과 표적감사 등으로 염호석 열사를 잃어야 했다”면서 “자식의 유골만이라도 돌려달라는 생모의 부탁에도 인간 본성마저 저버린 박근혜 정부와 경찰은 시신을 탈취하는 등 파렴치한 작태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우리 인류가 30만 년 동안 피눈물로 일군 문명을 말살하고 있는 삼성 재벌과 박근혜 정권을 바다에 묻는 장례식으로 선포해야 한다”며 “오늘은 장례식이 아니라 작은 불씨를 몰아 태우는 싸움의 현장이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삼성 노사 임단협 체결, 노조 사수와 간접고용 철폐로
“오늘 열사를 가슴에 묻지만, 이 싸움은 끝이 아니다”


영결식에서는 무노조 경영 방침을 고수하는 삼성에서 노조를 지켜내고,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철폐하기 위한 걸음을 내딛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삼성 하청노동자, 서비스기사들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28일 노조 결성 1년 만에 노사 임단협을 체결했다. 앞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사는 이날 박종길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과 우원식, 은수미 등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의원들이 배석한 가운데 임금단체협약(기준협약)을 조인식을 진행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지난 9월부터 이어진 임단협 교섭이 올해 4월 결렬되고, 염호석 분회장이 자결하면서 5월 19일 전면파업에 돌입하고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해왔다.


[출처: 정운 현장기자]

[출처: 정운 현장기자]

[출처: 정운 현장기자]

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은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 저들이 보기에 작은 성과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여러분이 투쟁으로 얻어낸 성과물이기 때문에 결코 그 승리가 작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눈물을 흘리며 “일상으로 돌아가 재벌에 양심을 팔아먹는 노조가 아니라,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떠오르는 태양이 되어야 한다. 염호석 열사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이 되어야 한다”며 “오늘 열사를 가슴에 묻지만, 재벌의 탐욕 끝장나고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 때까지 힘 있게 투쟁해 나가자”고 말했다.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 권영국 공동대표는 “경찰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시신을 탈취 당하고 유골을 탈취 당했을 때, 삼성 자본과 박근혜 자본이 결탁한 폭력 현장 목격했을 때 열사의 동료와 우리는 부끄러웠다. 참담했다”며 “산 사람 소원도 아닌 죽은 사람 유언조차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누구의 아픔도 볼 수 없다던 당신의 진정한 마음이 당신의 동료들을 일으켜 세웠다”며 “초일류 기업이라는 삼성이 두려워 방관하고 있던 우리 동시대인들을 삼성 본관 앞으로 불러 모았다”고 강조했다.

금속노조 전규석 위원장은 “최종범 열사의, 염호석 열사의 투쟁으로 결국 우린 누구도 밟아 보지 못한 삼성재벌의 땅에 금속노조의 푸른 깃발을 꽂았다”고 말했다. 이어 전 위원장은 “우리 모두 이 승리가 완성이 아닌 시작임을 또한 잘 알고 있다”며 “삼성재벌은 열사가 목숨 바쳐 지킨 노조를 호시탐탐 엿볼 것이다. 승리의 그 날까지 투쟁하겠다. 금속노조에게 진정한 승리는 아직도 멀었다”고 밝혔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 직무대행 곽형수 부지회장도 “우리는 해냈다. 76년 무노조라는 삼성에서 임단협을 쟁취했다”며 “이 싸움은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한다. 무노조 경영을 철저히 무너뜨릴 때까지 계속 싸워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염호석 양산분회장은 노조탄압 중단, 생활임금 쟁취 등을 위해 파업을 하던 도중 5월 15일 새벽 실종돼 17일 오후 1시30분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해안도로 인근 지점에 세워진 자신의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염 분회장은 유서에 “저는 지금 정동진에 있습니다. 해가 뜨는 곳이기도 하죠.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지회가 빛을 잃지 않고 내일도 뜨는 해처럼 이 싸움 꼭 승리하리라 생각해서입니다.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저희가 승리하는 그 날 화장해 이곳에 뿌려주세요. 승리의 그날까지 투쟁”이라고 적었다.

우리들의 정동진

염호석 열사의 영전에/ 송경동 시인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정동진으로 가는 길이 어디에 있나요
정동진으로 가는 차를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정동진으로 가는 차비는 얼마 인가요

힘겹게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임산부에게
바삐 출발하려는 화물차 운전수에게
점심을 먹고 나오는 회사원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노동자들에게도 밝은 해가 떠오른다는
그곳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자본가가 없고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간다는
그곳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길거리 노점상에게 서울역 노숙자께
무료하게 가게 앞에 앉아 있는 상점주인에게
표를 팔고 있는 철도원에게 물어보고 싶다
혹시 혼자 그곳을 찾아가겠다는 사람을 못봤나요
젊고 씩씩한 사람이었는데
어려서부터 엄마를 그리워하며
그래서 늘 빛이 그리웠던 사람이었는데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어서
자신을 바쳐서라도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겠다고
혼자 쓸쓸히 길 떠나던 한 사람을 보셨나요

정말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건지
이렇게 가만히만 있으면 좋은 세상이 오는 건지
언제까지 이렇게 착하게 대기하고만 있으면
누군가 반드시 구해주러 오는 건지

오늘 당신께 가서 물어봐야겠다
왜 바보같이 그랬는지
왜 우릴 두고 먼저 갔는지
왜 우릴 위해 당신이 갔는지
그렇게 좋은 곳이면 함께 가자해야지
왜 혼자만 갔는지

그런데 정말 그 정동진은 어디에 있나요
노동자민중의 신새벽이 떠오르는 곳
거짓된 역사를 찢고 새로운 역사가 떠오르는 곳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지 않고
만인이 만인의 행복이 되는 곳
누구도 누두의 위에 군림하지 않고
누구도 누구를 차별하지 않는 곳

그런 정동진을 아시나요
그런 최종범을 염호석을 아시나요
삼성 무노조 76년의 벽을 깬
그런 기쁨을 슬픔을 아시나요
그런 노동자민중의 새날 정동진 푸른 바다에
자신의 유해를 남김없이 후회없이 뿌려달라고 했던 사람을
그런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상을 아시나요
최종범, 염호석이 간 그 아름다운 길을
눈물겨운 길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오늘 다시 떠오르는 이 뜨거운
결의를 분노를 약속을 아시나요

오늘은 맑은 날
우리 모두가 천 개의 뜨거운 해가 되어
만 개의 천 만 개의 밝은 해가 되어
당신을 만나러 가는 날
당신의 마지막 날을 만나러 가는 날
당신의 영원한 날을 만나러 가는 날
사랑합니다. 동지
잊지 않겠습니다. 동지
덧붙이는 말

정재은 기자는 미디어충청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미디어충청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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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합원

    ㅅㅈㅋ 민주노조추진위 애도합니다,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