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개조, 세월호 참사 ‘재난’을 이용한 박근혜의 ‘역습’

‘국가개조’의 종착은 ‘규제완화’와 민영화

세월호 참사를 겪은 한국 사회는 4월 16일을 기점으로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까.

세월호 사태로 그동안 곪아 온 안전과 교육, 노동의 문제와 정부의 무능함, 부패와 비리가 여실히 드러나면서 변화와 혁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기대는 그저 기대일 뿐, 참사 100일이 지났지만 유족들이 요구하는 특별법 제정조차 국회에서 가로막혔다. 350만의 국민들이 특별법 제정 서명에 나섰고, 범 시민사회가 결집했는데도 국회와 청와대의 빗장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지지세력의 재결집을 꾀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핵심적으로 내걸었던 ‘비정상의 정상화’의 기치를 더욱 강화하고, ‘국가 대변혁’이나 ‘부패 척결’ 등의 공세적 방향을 내걸었다. 이를 지렛대로 삼아 물밑에서는 규제완화를 비롯한 TISA 협정, 그리고 비정규직 확대 등이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은 지난 24일,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세월호의 역설과 국가개조 문제’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강동진 참세상연구소(준) 준비위원은 “세월호 참사의 교훈이 정치적으로 결집되지 못하고 세력으로 확장되지 못한 지금, 우리는 박근혜의 역습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세월호 참사, ‘재난’을 이용한 박근혜의 ‘역습’

‘경제민주화’ 담론으로 정권을 잡은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초기 ‘창조경제’라는 새로운 담론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실체가 모호했던 ‘창조경제론’은 반짝 조명을 받다 사라졌으며, 그 자리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새로운 용어로 채워졌다. 이와 함께 세월호 참사를 전후로 ‘국가개조’라는 용어가 또 한 번 유행을 탔다. 야당의 비난으로 ‘국가개조’라는 명칭을 ‘국가혁신’이라는 용어로 바꿨지만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강동진 위원은 박근혜의 ‘국가개조’는 크게 ‘규제완화’ 정책과, 비정상의 정상화를 통한 ‘공공부문 부채 축소’라는 두 축으로 가동될 것이라 전망했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척결’, ‘공직 철밥통’, ‘관료사회 적폐 추방’, ‘부패 척결’ 등의 선정적 단어를 동원했다. 이번 참사를 통해 공무원들을 ‘국가개조’의 일차적 대상으로 삼아 그동안 추진해 온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에 본격 시동을 걸겠다는 의미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정책은 국가개조론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개조론 천명 이후 오히려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이행 압력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규제완화 정책을 ‘국가개조’라는 용어로 가림막을 쳤다. 규제를 ‘착한규제’와 ‘나쁜규제’로 이분화했고,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규제개혁’이 시급하다고 선전했다.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 교본은 지난 4월 공개된 맥킨지 보고서다. 맥킨지는 초국적 자본을 상대로 하는 컨설팅 업체다.

강동진 위원은 “‘한국 신 성장공식’이라는 맥킨지 보고서에는 △중산층 가구의 재정 건전성 강화 △서비스 부문 확대 및 강화 △중소기업 부문 강화 △여성의 노동참여 확대 및 출산율 하락 저지 등이 제시돼 있으며, 정부는 이를 그대로 시행하고 있다”며 “이 보고서의 첫 처방책이 LTV 부동산 규제완화였다. 최경환 신임 경제부총리는 최근 LTV 금융규제 완화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 보고서의 처방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맥킨지 보고서는 규제를 받고 있는 공공서비스 영역에 대한 산업구조조정과 노동력 재배치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공공부문 규제완화와 직결되는 문제다.

강동진 위원은 “맥킨지 보고서가 제시한 처방책 중 ‘여성노동참가 확대’는 ‘시간제 일자리’ 확대 정책으로 작년부터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맥킨지의 여성노동의 확대는 의료보건, 공공서비스 분야로의 노동력 재배치와 산업구조조정도 함께 노리고 있다”며 “국가개조가 그리는 그림은 공공부문 구조조정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공공부문을 포함해 전 사업의 개조를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개조’의 종착은 ‘규제완화’...전위대는 ‘국민경제 자문회의’

규제완화를 비롯한 경제구조 재편을 진두지휘하는 곳은 ‘국민경제 자문회의’다. 강동진 위원은 “민간전문가를 중심으로 구성된 국민경제 자문회의는 규제완화 정책 등의 내용과 방향을 총체적으로 이끄는 국가개조의 전위대”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유명무실하게 존재했던 ‘국민경제 자문회의’를 유일한 대통령 자문기구이자 최상위 기구로 재편했다. 여기에는 장관급 수준의 민간위원들이 30여 명 포진됐다. 민간위원에는 초국적 자본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 한국대표를 비롯해, 베인&컴퍼니 한국대표, 롤랜드버거 컨설턴트 코리아 대표 출신의 인사들이 이름을 올렸다.

강동진 위원은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사조직이라 불렸던 국가미래연구원 출신 교수가 9명이며, 대통령의 학맥인 서강대 교수가 유난히 많은 것이 특징”이라며 “국민경제 자문회의 위원들이 일종의 박근혜 정부의 인력 풀을 이루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국민경제 자문회의가 규제완화 등의 국가개조의 큰 그림을 그리는 총괄 기구라면, ‘규제개혁위원회’를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단위다. 규제개혁위원회는 규제의 신설, 강화 등의 심사와 기존 규제에 대한 검토를 추진하는 대통령 직속 기구다. 이 곳 역시 정부위원과 민간위원 등 20~25명의 규모로 가동된다.

규제개혁위원회의 제9대 민간위원장 역시 김앤장 법률사무소 상임고문 출신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국민경제자문위원회 공정경제 분과장을 지내기도 한 인물이다. 강동진 위원은 “안전규제와 선박관리 규제 완화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정부는 ‘국가개조’라는 수사를 덧붙여 생명과 안전을 강화하는 정책에서 심각하게 역행하고 있으며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초국적으로 진행되는 규제완화의 흐름이 청와대 안방에서만 비밀리에 공유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지난 6월 19일,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는 TISA(복수국 간 서비스 협정)의 금융서비스 분야 부속서 초안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TISA 참여국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TPP와 TTIP에 해당하는 국가 20여 곳이다.

참세상연구소(준)의 송종운 위원은 “폭로된 문서를 보면 한미 FTA에서 논란이 됐던 역진방지조항, 네거티브 규제 등이 동등하게 실려 있다. 문제는 이것이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역시 TISA의 비밀주의에 따라 의회를 배제한 채 청와대 내에서만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TISA의 목표는 현재 오작동하고 있는 WTO 협상을 압박하려는 것이다. 강도 높은 자유화와 규제완화를 제시해 WTO에 포함된 여타의 국가들을 궁지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국가개조’는 사상적 수준 아닌 국면타개용 ‘포퓰리즘’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국가개조’의 개념과 담론에 대해 “보수야당대표의 문제제기에 의해 ‘국가개조’를 ‘국가혁신’으로 바꾼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사상적, 이데올로기적 수준을 가진 것이 아닌 국면타개를 위한 강한 포퓰리즘적 성격을 노정하고 있다”며 “국가혁신 기획은 공공영역의 전반적 민영화, 사회적인 것의 자본화를 성장동력의 최후보루로 삼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김철 실장 역시 “정부의 ‘국가개조, 관피아 척결’은 레토릭일 뿐, 기존의 국정운영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며 “여야 원내지도부 회동에서 ‘국가개조’를 ‘국가혁신’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수용한 것은 ‘국가개조’가 그간 정부에서 내걸었던 구호인 개혁, 혁신, 창의, 선진화, 창조, 합리화, 정상화 등의 다른 표현일 뿐이며 실질적인 내용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원담 교수는 “담론투쟁의 전선을 어떻게 열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궁극적으로 국가개조 기획의 성격과 방향에 대한 진단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대응의 방향, 주체형성, 경로문제에 대한 논의 또한 진전해가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배성인 교수노조 사무총장은 세월호 참사로 박 대통령이 ‘국가개조’라는 명분하에 제멋대로 국가기강을 세울 수 있는 동기를 제공받았다고 분석했다. 향후 거버넌스를 내세우는 협력적 관계를 모색하며, 탄압과 정면돌파를 병행할 것이라는 예견이다.

배 총장은 “박근혜는 지난 대국민담화를 통해 공직사회를 민간에게 개방하는 거버넌스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했다”며 “이는 국가의 정책적 변화에 대한 대중들과 시민단체들의 동의를 획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적 우위가 확립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권경우 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은 세월호 참사가 ‘안전담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문제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안전을 강조할수록 위험의 공포는 커지고 자유는 사라진다. 그런 점에서 안전의 또 다른 얼굴은 감시와 검열이 될 수밖에 없다”며 “안전은 규칙을 지키는 것이고, 세월호가 가라앉는 순간에도 ‘가만히 있는’ 것이고, 시위와 집회에서 경찰의 해산방송을 잘 따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안전담론’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은 희망 없는 안전의 추구가 아니라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 나아가 위험을 감수하는 힘”이라고 밝혔다.

신병현 홍익대 교수는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들을 뒤로하고 배를 탈출한 선원들의 행동이 금융화 시대에 일반화 되는 지대의 추출과 정보기술에 의한 접속을 통한 조직화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금융화 시기 우리의 일상적 삶 자체는 자본축적의 후배지로 동원됨으로써, 자본의 생산과정 외부에서의 가치추구 시도는 공통적인 것들에 대한 독점적 지대로의 조직화와 전유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며 “신자유주의 경영담론 지배에 균열을 내고 상이한 담론 계열의 흐름으로 비틀어내기 위한 윤리-정치체제를 둘러싼 적극적인 담론 투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열린 ‘세월호의 역설과 국가개조 문제’ 토론회는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과 교수노조, 문화사회연구소, 사회공공연구원,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회, 진보교육연구소, 참세상연구소(준)이 공동주최했고 한국연구재단이 후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