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농성단, 프란치스코 교황 향해 “낮은 데로 임하소서”

세월호 가족 등 “교황 방한 빌미 농성장 철거 우려, 농성 이웃 방문 호소”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앞두고 광화문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유족,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들이 교황에게 광화문에서 농성하는 약자들의 힘이 돼달라고 호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14일 방한해 17일까지 천주교 대전교구가 주최하는 ‘제6차 아시아청년대회’를 비롯해 충남 당진 솔뫼성지(대전교구), 서울 광화문 광장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 음성 꽃동네, 서산 해미성지(대전교구)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러나 사회적 희생자와 약자들을 위해 거리에서 농성해온 이들은 교황의 방한이 오히려 정권의 새로운 탄압을 위한 빌미로 작용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우선 정부가 광화문 광장 시복 미사를 준비한다는 이유로 광화문 일대에 높이 90cm의 흰색 방호벽을 설치하는 등 삼엄한 경호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면서 농성장 철거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격리 수용된 음성 꽃동네를 방문하는 것도 지난 2년 간 거리에서 지역 사회와 함께 평등하게 살기 위해 싸워온 장애인들을 외면하고 잘못된 장애인정책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도록 하는 처사와 다르지 않다는 시각이다.

이 때문에 현재 광화문 일대에서 농성해온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 희망연대노조(씨앤앰, 티브로드지부), 케이블방송통신공동대책위와 민주노총은 5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교황에게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며 이 곳 농성 이웃을 방문해 달라고 호소했다.

기자회견에서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광화문에서 농성하고 있는 이들은 현재 가장 많은 상처, 가장 많은 차별, 가장 많은 억울함 속에서 있는 사람들”이라며 “교황의 방한이 오래 전 탄압받고 죽임 당한 이들의 정신을 기리는 것이라면 이를 이어 받아 현재의 약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진미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은 “세월호 가족들이 처음부터 바랬던 것은 오직 하나, 왜 희생자들이 죽었는지 그리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명백히 밝히는 것”이라며 “가족들은 4.16일 이전과 이후는 달려져 국민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교황에게 “아직 아이들을 가슴에도 묻지 못한 세월호 가족에게 따뜻한 위로와 자비로운 말씀을 해주시라”고 부탁했다.

박경석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교황이 오신다는 소식에 처음에는 너무 기뻤다”며 “가난한 사람과 장애인에 대한 교황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힘이 됐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장애인등급제를 폐지하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거리에서 외쳤는데 교황은 장애인들을 격리하고 죄인처럼 가두는 대규모 시설에 간다”며 “이는 그 시설을 인정하는 것이고 교황이 이러한 꽃동네를 방문하는 모습이 방송중계되면 2년 동안 정부에 요구해왔던 것이 한방에 무너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교황의 사랑의 메시지가 우리에게는 지옥의 메시지가 되지 않을지 무섭다”며 “세모녀 사건, 불타죽은 장애인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장애인들이 농성하는 바로 이 광화문 지하도에 찾아와주길 부탁한다”고 했다.

광화문 일대에서 농성해온 씨앤앰지부, 케이블방송비정규지부와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 노동자들도 교황에 함께 호소했다.

이종탁 서울희망연대노동조합 위원장은 “직장폐쇄당하고 계약해제 당한 노동자들이 갈 곳은 거리밖에 없었다”며 “교황은 멀쩡한 직장을 놔두고 거리로 나온 노동자, 일생을 바쳐 일한 직장에서 계약해지된 노동자들을 만나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어 “노동자에게 가난과 궁핍을 강요하는 현재, 교황은 교회가 거리로 나가야 한다고 얘기했던 것으로 들었다”며 “낮은 데로 임하겠다는 교황님의 말씀이 노동자, 유가족 그리고 장애인들의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쌍용차정비지회, 레이테크코리아분회, 노들야학, 사회진보연대, 좌파노동자회, 통합진보당 서울시당, 노동당 서울시당 등 단체와 정당도 함께 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정은희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