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부도 검인정제 유지했는데..."

역사교사 97% "국정교과서 반대"

  국회는 25일 오후 의원회관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전환',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출처: 교육희망 이창열 기자]

한국사교과서 ‘국정전환’의 문제점을 긴급 진단하는 토론회가 2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역사정의실천연대와 김태년·도종환·안민석·유기홍 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한 목소리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반대했다.

"일제 조선총독부 교과서도 ‘검인정’이었다"

이준식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이 ‘유신체제와 국정교과서-지배 이데올로기의 도구가 된 교과서’를 주제로 먼저 포문을 열었다.

이 위원장은 교육부가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배경에는 작년에 교학사가 발행한 한국사교과서의 채택율이 ‘0%’를 기록한 사실과 관련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 위원장은 “교과서로 쓰기에는 부실한 ‘잡서’라는 것이 학계와 교육계의 평가였고, 대다수 국민도 이런 평가에 동의한 셈”이라며 “그러자 박근혜 정권은 시대에 뒤떨어진 ‘역사교육의 국가통제’라는 헛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제는 아예 한국사교과서를 유신체제에서 했던 것처럼 국정제로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또 “1974년 이전만 해도 중·고교 국사교과서 발행은 검정제였다”며 “심지어 일제 식민지 시절 조선을 통치한 조선총독부도 국정이 아닌 검정제 교과서를 유지했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에 따르면 유신체제 하에서 국정교과서는 1974년과 1979년 두 차례 발간됐다. 이 위원장은 “당시 교과서를 보면 5·16 군사쿠데타 이후 대한민국에는 박정희 1인 또는 박정희 정권만이 존재할 뿐”이라며 “결국 이런 정권찬양 역사서술이 의도하는 바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유신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함으로써 유신독재에 대한 영원한 충성을 담보하는데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사교사 97%가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이유...

조한경(경기도 부천여고 역사교사)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학교현장의 역사교사들이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역사교육연구소가 공동으로 지난 7월 11일부터 17일까지 전국의 역사교사 85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7.0%(828명)는 한국사교과서의 국정전환에 ‘반대한다’고 대답했다. ‘찬성한다’는 대답은 3.0%(26명)에 불과했다.

바람직한 한국사교과서 발행체제를 묻는 설문에는 ‘검인정제’가 68.8%(589명)로 가장 많았다. ‘자유발행제’(28.6%, 245명)와 ‘국정제’(2.6%, 22명)가 뒤를 이었다. 국정으로 전환하지 않고 교육부의 편수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91.7%(774명)는 ‘필요없다’고 대답했다.

이는 여당과 교육부의 한국사교과서 국정전환에 현장교사들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한경 회장은 “정답은 국정제 전환도 편수관제도의 부활이 아니다. 지금 교육부가 할 일은 현재 검정제도를 취지에 맞게 착실히 운영하고, 국가의 통제를 최소화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역사교과서를 학교현장에 보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정교과서 자체가 반교육적”

진영효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참교육실장은 “국정교과서는 교육적이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국정교과서는 획일성 그 자체이며, 사상과 이념을 떠나 교육원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진 실장은 “국정교과서는 국가만이 유일하게 교육과정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나의 교과서만 개발해 교육의 다양성을 제한하려는 제도”라고 규정했다. 진 실장은 또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지속돼 온 뉴라이트의 교과서 장악음모”라고 지적하고 “이 같은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한국사뿐 아니라 국어, 도덕, 사회 등 다른 교과로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정교과서,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 침해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손영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교과서 국정제에 대한 법률적 검토의견을 내놓았다.

오 교수는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는 학생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존엄성, 알 권리와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며, 교육의 입장에서 보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중립을 침해할 수 있어 위헌적”이라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992년 교과서 검·인정제와 국정제 모두가 합헌이라고 판단했지만, 법적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손 변호사도 오 교수와 견해를 같이 했다 오 교수는 한발 더 나가 “만일 교육부가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할 경우, 행정소송으로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손 변호사는 “1992년 헌재 판결의 논리는 교과서 발행에 국가가 개입한 것은 정당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하지만 이번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다르다. 현행 교과서 검정제로도 교육의 공공성과 교육의 질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데도, 굳이 국정제를 도입해 기본권을 제한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면, 위헌성을 입증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 변호사는 또 “국정 교과서로 수업을 해야 하는 학생과 교사들이 일차적으로 기본권을 침해 당하는 것이므로 이들이 원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기사제휴=교육희망)
태그

역사 , 총독부 , 검인정제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이창열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