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인상? "예산 맞춤형 최저생계비" 비판 봇물

2000년 이후 최저 인상률..."물가인상률 반영은 현실성 없어"

지난달 29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아래 중생보위)가 2015년 최저생계비 인상률을 올해 대비 2.3%로 결정한 가운데,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비현실적인 결정'이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중생보위가 결정한 2.3% 인상률은 최저생계비를 계측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최저의 인상률이며, 평균 인상폭인 4.12%에도 절반 수준에 그친다. 또한, 상대적으로 인상폭이 컸던 최저생계비 계측년도를 제외한 평균 인상률(3.38%)과 비교해도 1% 이상 낮은 수치다.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한 활동가가 중앙생활보장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시민단체들은 올해에 유독 낮은 인상률을 질타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물가상승률'에 기초한 최저생계비 결정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데 비판의 화살을 겨눴다.

현재 최저생계비 결정은 3년에 한 번씩 전물량 방식(필요한 서비스와 재화의 총량을 산출하는 ‘절대적 빈곤선’에 입각한 방식)으로 계측하고, 비계측연도에는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그런데, 복지부는 올해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1.3%로 너무 낮아 생활의 질 변화를 반영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내년도 물가상승률 예측치까지 고려해 인상률을 2.3%로 확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1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는 중생보위가 합의했던 물가상승률 자동반영 방식이 국민 생활수준의 실질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을 복지부가 인정한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빈곤사회연대도 지난달 29일 발표한 성명에서 "지금까지 최저생계비는 전체 국민의 소득상승률과 생활의 질 변화와 무관하게 결정되어 왔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1999년 당시 중위소득 대비 40.7% 수준이었던 최저생계비가 2008년 30.9%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중위소득은 말 그대로 모든 가구를 소득 순서대로 줄을 세웠을 때 딱 중간에 위치한 가구의 소득을 말한다. 즉, 시민단체들의 주장은 물가인상에 따라 최저생계비의 절대 금액은 상승했을지 몰라도, 전 국민의 소득 상승의 ‘중간 수준’에 비추어 본 실질 최저생계비는 하락했다는 것이다.

빈곤사회연대는 또 "현행 최저생계비 계측조사에 따르면 최저생계비로 생활하는 가구의 11세 남아는 8천 원짜리 반바지 2벌을 2년간 입어야 한다"면서 "빈약한 최저생계비에 물가인상률을 더한다고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의 지표가 나올리 만무하다"라고 꼬집었다.

즉, 현재의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 계측방식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물가인상률 반영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시민단체에서는 오래 전부터 선진국처럼 최저생계비를 중위소득 50% 수준으로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최저생계비를 이처럼 ‘상대적 기준’에 따라 결정하자는 것은 국가의 빈곤선을 단지 ‘죽지 않고 먹고는 살 수 있는 정도’의 절대적 수준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을 규정하는 기준으로 삼자는 것이다. 이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2조 6항에도 명시되어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해온 것은 이런 최저생계비 현실화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한정된 예산에만 맞춘 ‘예산 맞춤형 최저생계비’였다는 지적이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오건호 공동위원장은 1일 YTN라디오 ‘수도권 투데이’에 출연해 “이론상으로는 최저 생계비를 먼저 정하고 그것에 맞추어서 예산을 배정하기 때문에 (정부는) 이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런데 2000년 이후부터 14년 동안 국책연구기관 보고서에서도 빈곤 계층이 400만 명에 달한다고 보고하는데, 최저생계비 수급대상은 130만 명 수준으로 계속 묶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예산을 먼저 정해놓고 그에 맞춰 수급자 숫자를 조절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정부가 제시하는 해법이 없지는 않다. 정부가 ‘민생법안’이라며 시급히 통과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새누리당 유재중 의원 발의)은 기존에 복지부에서 통합적으로 지급하던 기초생활급여를 ‘맞춤형 급여’라는 이름으로 각 부처별로 쪼개고, 이에 대한 지급을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절대적 빈곤선’에 기초한 최저생계비의 개념은 사라지고, 대신 중위소득 상승률(‘상대적 빈곤선’)이 급여액에 반영되어 급여액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 개정안에는 엄청난 함정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이전까지는 최저생계비가 부족하나마 ‘빈곤의 최저선’으로 기능하면서 국가가 국민에게 ‘기초생활’을 권리로서 보장하도록 강제 할 수 있었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그러한 권리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급여제공이 단순히 각 부처의 재량사항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 국회 논의 과정에서 생계급여·의료급여·교육급여 등 각 급여에 ‘중위소득 몇 퍼센트 수준’이라는 것을 법에 명시하자는 데 까지 합의되기는 했으나, 복지부는 이를 현재 급여 수준 정도, 즉 생계급여의 경우 현재보다 소폭 상승하는 정도에 불과한 중위소득 30%로 하겠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빈곤사회연대는 정부의 개정안이 “현재의 최저생계비를 ‘낮은 수준에 묶어두는’ 것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결국 각 부처의 예산 사정에 따라 급여가 언제든지 축소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문제의 본질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급여체계’ 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급여의 자격 요건’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바로 근로능력 유무를 판단해 있지도 않은 소득을 부과하는 ‘추정소득’,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실제 부양 사실과 상관없이 의무를 부과하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문제라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개정안에는 사실상 이에 대한 해답이 빠져있다.

그런 법안을 정부와 여당은 ‘송파 세모녀 사건’을 막을 법안이라며 국회 통과를 압박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가 최근 빠른 시일 내에 통과시켜야 한다고 발표한 30가지 민생법안 중에 1번에 해당한다.

최저생계비는 사상 최저 인상률을 기록하고, 여기에 더해 ‘최저생계비’라는 개념조차 사라진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상정된 상황. 장애·빈민운동 진영 시민단체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시국이다.
덧붙이는 말

하금철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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