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공단 산재 사고 시민안전과 직결

[기획4] 불법하도급·최저낙찰제 없애야 안전 보장

편집자주 : 울산에는 유해화학물질 전국 6,172개 제조업체 중 503개 업체가 있다. 유독물질 취급 점유율은 전국의 25.5%, 화학물질 점유율은 30.3%를 차지한다. 한해 60여 명에 이르는 산업재해 사망자는 남구와 울주군에 집중돼 있다. 국가산업단지가 있는 남구와 울주군 산재 사망자는 화재와 폭발사고 건수와 비례한다. 시민 안전과 직결되는 화학공단 안전 문제에 정부와 울산시, 노동계의 직접 관여가 필요하다.

화학물질 몰린 울산 남구 해마다 25명 사망

울산에는 전국의 유독물질과 유해화학물질이 1/4 이상 집결해 있다. 2013년 울산지역 화학물질 사고 발생 87건 가운데 31건은 시설관리 미흡, 35건은 작업자 부주의, 21건은 운반차량에 따른 것이었다. 국가산업단지가 있는 남구와 울주군 산재사망자 수는 대형 조선소가 있는 동구보다 월등히 높다.


울산 석유화학공단과 국가산업단지는 휘발성, 폭발성, 인화성, 화학 물질을 주로 다뤄 자칫 대형 사고를 불러올 위험이 잠재돼 있다. 울산 대형 제조업체는 일상적으로 외주 하청 노동자를 사용한다. 공장을 증설하거나 정비·보수 기간에 일하는 노동자는 거의 100%에 가깝게 외주업체 노동자다. 플랜트 배관, 용접, 도장, 전기 등 업종도 다양하다.

울산지역 구군별 산업재해 사망자 수를 보면 남구와 울주군이 월등히 높다. 남구와 울주군에는 미포국가산업단지, 온산국가산업단지가 포함돼 있다. 국가산업단지는 단순 산업재해를 포함해 공장 화재나 폭발사고로 인한 산재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고, 폭발사고는 시민 안전과 직결된다.

울주군엔 해마다 30여 건의 화재·폭발사고가 일어나 전국의 기초자치단체 가운데서도 최상위권이다. 그러나 울산지역 산재 사망자는 남구가 단연 많다. 울산 남구의 산재 사망자는 해마다 24~27명에 달한다. 이는 많은 양의 위험물을 취급하는 사업장이 남구에 집중해 있어서다.

남구에는 SK에너지를 포함한 석유화학공장이 있다. 울주군에는 S-OIL을 포함한 제련소와 제지공장 등이 밀집해 있다. 남구와 울주군 대공장 가운데 SK에너지와 S-OIL은 비교적 산업재해, 폭발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설비와 안전수칙이 잘 지키는 반면 LS니꼬와 고려아연과 같은 제련소는 폭발사고와 산재사망사고가 잇따른다.

고용 형태에 따라 위험을 느끼는 정도는 판이했다. 정규직 노동자는 안전하다고 말하는 반면 외주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플랜트 노동자들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실제 산재 사망자의 90% 이상이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한 플랜트 노동자가 용접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출처: 울산저널 자료사진]

울산미포국가산단에는 삼성정밀화학, 태광산업, 효성, 카프로, 코오롱, 동부하이텍, SK에너지, SK케미칼 등이 입주해 있다. 온산국가산단에는 한국석유화학공사, S-OIL, KG케미칼, LS니꼬, 고려아연, 한국제지, 무림제지 등이 입주해 있다.

국가산업단지 내 사업주는 나름 안전교육과 안전사고 예방에 신경을 쓴다.

울산고용노동지청이 지난 5~7월 말까지 울산 151개 사업장 화학설비 정비·보수작업을 밀착 관리한 결과 추락방지시설을 안 하거나 위험성 평가를 안한 사업장, 장비에 대한 작업계획서 미작성 사례 등이 적발됐다.

2m가 넘는 높은 곳 작업 때 안전한 작업을 위해 비계와 발판을 설치한다. 그러나 비용을 줄이려고 비계 설치 대신 사다리나 로프를 이용한다. 고공 장비를 이용하면 장비를 부르는데 60~70만원이 든다. 비계를 설치하려면 한 포인트 설치하는데 5~6명이 투입돼 설치에 2시간, 해체에 1시간이 걸린다. 설치 시간과 인건비, 자재비 포함하면 100만원 이상 든다.

석유화학공단과 국가산단 안전은 안전 설비에 투자하는 비용이 확보돼야 가능하다. 그러나 다단계 하청은 단계별 이익금을 내야 하고 재계약을 해야 하므로 산재은폐도 빈번하다. 최저가 낙찰제와 불법하도급을 개선하지 않으면 작업장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은 노조설립 뒤 줄기차게 ‘플랜트 건설현장 불법하도급 근절’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일 계속 하려면 위험에도 참아야”
플랜트 배관 노동자 허영모 씨(49)


허영모 씨(49, 가명)는 플랜트 배관 일을 10년 가까이 해오고 있다. 보통 배관사와 용접사, 조공을 포함해 3~4명이 한 팀을 이룬다. 이들은 전문건설업체나 용역업체로부터 물량을 받아 일한다.

  플랜트 노동자들은 대부분 높은 곳에서 작업하지만 비계 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 [출처: 울산저널 자료사진]

허씨는 올해 초 고려아연에서 일할 때 안전 발판 없이 파이프를 밟고 일했다. 용접과 배관 일이 동시에 진행되지만 안전발판 설치가 안 돼 ‘불티 비산 방지막’은 설치할 수 없었다.

허씨는 지난 2010년 남구 석유화학동단 내 모 회사에서 인화성 원료가 들어 있는 배관을 커팅하면서 목숨을 걸어야 했다. 배관 안에 인화성 원료가 들어 있으면 이를 세척하고 절단작업을 해야 용접불꽃으로부터 화재와 폭발을 막을 수 있다. 허씨는 업체 관리자에게 위험한 작업이라고 말했지만 “괜찮으니 그냥 진행하라”는 답을 들었다.

원청 안전담당자는 위험 작업을 감시해야 하지만 그 자리에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작업을 거부해야 하지만 허씨는 일했다. 못하겠다고 하면 업체는 일당을 쳐주고 집에 가라고 한다. 다른 업체를 불러 일을 시키고 허씨 팀은 그 업체로부터 일감을 받기 어렵다.


허씨에게 산재 당한 동료를 소개해 줄 것을 부탁했다. 허씨는 플랜트 노동자 특성상 쉽지 않다고 말했다. 팀으로 일하기 때문에 계속 일을 받으려면 위험에 침묵하고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플렌트 노동자는 특정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자기 노동력을 업체에게 인정받아 일힌다.

허씨는 “나는 건강하고, 일 잘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다는 이미지를 업체한테 심어줘야죠. 잘못 소문 나면 일거리가 없어져요. 외국계 회사가 한국 회사보다 안전한 환경임은 인정하지만 하도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플랜트 노동자는 늘 불안할 뿐”이라고 했다.

허씨는 산재사고 은폐를 막기 위해 모든 사업장에 자체 응급구조 외에 119 응급상황실로 반드시 신고하도록 하는 규정을 법제화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작업거부권과 작업중지권 보장된 외국계 회사
한국 솔베이 박현철 상무 인터뷰
2003년 공장장 구속 뒤 안전 강화


울주군 온산공단에 있는 (주)한국솔베이 회사 안에서는 계단을 오를 때 안전난간대를 잡아야 하고, 화단 앞이라도 전면주차를 금지, 뛰면 안 되고, 모든 임직원에게 작업중지권, 모든 작업자에게 작업거부권이 주어진다.

플랜트 노동자들 사이에 남구 석유화학공단에 있는 (주)한국듀폰과 울주군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주)한국솔베이는 비교적 안전작업이 잘 이뤄진다고 평가된다.

2003년 직전에 한국솔베이는 환경법을 위반하고 공장장(한국인)이 구속, 안전사고로 안전팀장이 구속됐다. 2003년 프랑스 사람이 공장장으로 부임하면서 박현철 상무는 타 회사에서 일하다가 한국솔베이 안전관리팀장을 맡아 일했다. 한국솔베이는 한불화학으로 알려진 회사로 100% 벨기에 솔베이그룹에서 투자한 석유화학업체다.

2003년 새로 부임한 프랑스 공장장은 “한국 사람들은 사고가 나면 왜 보고하지 않고 숨기느냐”며 인센티브제도를 시행했다. 인센티브 제도는 안전사고를 신고한 건수가 많은 부서에 고과점수를 높게 주는 방식이다. 관리자에게만 시행하던 인센티브 제도는 2005년에는 최준호 공장장이 부임하면서 전 직원으로 확대됐다. 작업자가 불안정한(위험한) 상태로 일하면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고, 작업자가 스스로 위험하다고 판단해도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과 작업거부권이 시행됐다. 처음에는 안전난간대를 잡지 않는 행위, 안전보호구 미착용 등이 신고되더니 안전설비를 강화해야 하는 것까지 파악됐다.

한국솔베이는 제조업, 화학업체에 필요한 115개 안전작업 규정을 마련해 솔베이 소속 직원과 임시협력업체에게도 적용한다. 안전과 관련된 문제점과 개선점을 많이 제출하면 상하반기에 각각 본봉의 100%를 인센티브로 지급한다.

2003년 응급처치가 가능한 사고가 발생한 건수는 2건으로 파악, 신고제를 운영한 뒤 2004년 28건, 2005년 20건, 2006년 25건, 2007년 35건, 2008년 31건, 2009년 30건이었다. 6년 가량 사고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한 결과 2010년 23건, 2012년 9건, 2013년 11건으로 줄었다. 안전규정, 안전보호구, 안전설비에 걸쳐 작은 사고를 예방한 결과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협력업체와는 안전교육과 안전 감사를 정규직과 동일하게 실시한다. 한국솔베이에서는 약 270명이 일하고 그 가운데 정규직이 170여 명, 협력업체가 100여 명이다. 협력업체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은폐하는 사례가 없는지에 대해 박 상무는 협력업체에도 인센티브제도를 시행하되 응급조치 사고 신고에는 상을, 대형 사고에는 벌을 주는 규정이 있다고 했다.

울산고용노동지청은 2013년 6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안전문화 교육 사례를 시행한 뒤 울산 기업체 안전관련 부서에 100여 명이 신규채용됐다고 밝혔다.

정부도 낙찰제 개선책 내놔
울산노동지청 건설현장 보호구 점검


정부도 대형 관급공사에서 최저가 낙찰제도의 문제점을 잘 알고 개선책을 마련 중이다.

정부는 지난 7월 최저낙찰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종합심사 낙찰제’를 토지주택공사 등 7개 공공기관 발주현장에서 시범실시키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종합심사낙찰제에 사회적 책임지수로 가점 1점을 반영한다. 사회적 책임지수는 고용 0.4점, 안전 0.4점, 공정거래 0.2점 등 모두 1점으로 구성된다. 종합심사 낙찰제는 낙찰가격, 공사수행능력, 사회적 책임 등을 반영해 업체를 선정한다.

건설노동자들은 올해 대정부 안전 관련 요구안으로 △산재사망처벌과 원청책임 강화 법제화 △산업단지 노후설비 조기교체 △최저낙찰제 폐지와 적정임금제 실시 △화물덤프 불법 개조 단속과 처벌 강화 △전기 배전 국가 자격증 전환·의무고용인원 법제화 △적정 공사기간 보장·건설현장 주말휴무제 등을 요구했다.

한편 울산고용노동지청은 지난 1일부터 올 연말까지 건설현장과 사업장의 보호구 지급과 착용을 집중점검한다. 울산 노동지청은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보호구를 지급했는지와 보호구를 지급했는데도 착용하지 않은 근로자를 단속한다.

점검 대상은 노동지청이 감독하는 건설현장과 그동안 보호구 착용이 미흡했던 개인 발주 소규모 공사현장이다.

노동지청은 사업주가 지급한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근로자를 적발하면 과태료 5만원를 부과하고 현장에서 근로감독관이 안전보건교육을 한다.

울산지역 건설업 재해자 수는 2012년 607명(사망 13명)에서 2013년 671명(사망 27명)으로 늘었다. 특히 사망자수가 크게 늘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물체가 떨어지거나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에는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보호구를 지급하도록 하고, 근로자는 보호구를 착용하고 작업하도록 규정했다.
덧붙이는 말

용석록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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