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장 화장실에 노출된 경찰 인권감수성

국가인권위, 양운기 수사 진정에 화장실 개선 권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 내 ‘개방형 화장실’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이는 양운기 수사(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지난해 10월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 수용 도중 피해에 대해 제기한 인권침해 진정에 따른 것이다.

양운기 수사는 지난해 10월 12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 저지 시위에 참석했다가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되어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 이틀간 입감됐다. 양 수사는 이 유치장 내 화장실에 1미터 높이의 칸막이만 있을 뿐 그 위로는 아무런 차폐 시설이 없어 용변을 볼 때 소리와 냄새가 새어 나와 일을 볼 때마다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꼈다며 천주교인권위원회를 통해 국가인권위에 조사를 요청했다.

국가인권위 조사 결과,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 운영 중인 7개 유치실 중 장애인 전용과 여성 전용을 제외한 나머지 5곳 유치실 내 화장실은 바닥에서 1미터 정도의 차폐막만 설치돼 있을 뿐, 그 위로는 아무런 차폐 시설이 없었다. 따라서 옷을 벗고 입는 과정에서 신체 일부가 노출된다. 국가인권위는 8월 1일 이 결정을 내렸으며 9월 2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를 공개했다.

양운기 수사는 2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경찰의 인권 감수성이 뒤떨어져 있음이 확인됐다”며 “제주동부경찰서가 권고를 이행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찰서 유치장의 모습, 경찰청 공식 유튜브 채널 화면 캡처

그는 또 “유치장에 들어간 사람은 위축되어 아무 말도 못하고 지내다 나온다”면서 “사람들의 위축감을 이용해 인권을 일상적으로 침해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권력”이라고 성토했다. 양 수사는 유치장 내 인권 침해 문제는 전국적인 것이라고 본다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싸움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청 예규 ‘유치장 설계 표준규칙’에 따르면, 유치장 화장실에는 파손되지 않는 재질의 좌변기를 두고, 화장실 벽은 천정까지 설치해야 한다. 또 유치인의 자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화장실 출입문과 내부에 돌출 시설물, 부착물을 설치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화장실 벽에 깨지지 않는 재질의 견고한 투시창을 설치하고 냉온수 수도시설을 갖추게 하고 있다.

국가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제주동부서 측은 규정에 맞는 유치장 화장실을 갖추지 못했음을 인정하면서도, “본서는 ‘유치장 설계 표준규칙’ 제정 이전에 지었는데, 이 규칙은 유치장의 신축, 개축 또는 시설을 개선할 때 적용하도록 되어 있어 앞으로 경찰청에서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시설을 보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2001년 헌법재판소는 감시와 통제의 효율성에만 치중하여 유치인에게 차폐시설이 불충분한 화장실을 이용하도록 한 것은 인격권 침해라고 판시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 따라 경찰청이 2006년 개방형 화장실을 밀폐형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발표하고 ‘유치장 설계 표준규칙’도 전면 개정됐으나, 경찰청 발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고 1일 지적했다.

2012년 8월 천주교인권위가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정보공개자료에 따르면 유치장이 있는 전국 112개 경찰서 중 70개(62.5%)에 밀폐형 화장실이 하나도 없었다. 천주교인권위는 경찰이 예산 확보를 이유로 개선 의지가 없어서 현재의 개선 속도라면 전국의 유치장 화장실을 모두 밀폐형으로 바꾸는 데 20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기사제휴=지금여기)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강한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