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 바닥난 지자체…대책 없는 '과잉 복지' 때문?

“복지 확대 성과는 박근혜 정부가, 책임은 지방정부에”

늘어나는 복지재정 부담 책임을 두고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지자체들은 최근 시행된 무상보육과 기초연금으로 인해 늘어난 복지 예산 부담 때문에 지자체 파산 위기에 봉착했으며, 이에 국고보조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이를 ‘야당의 정치 공세’로 규정하거나 지자체의 방만한 재정 운영 탓으로 돌리며 역공하는 자세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대표회장 조충훈 순천시장, 이하 협의회)는 지난 3일 전국 226명 시장·군수·구청장 공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해, “과중한 복지비용 부담으로 지방정부 파산 위기에 처했다”며 “조속한 정부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복지 디폴트’(지급불능) 사태가 불가피하다”라고 밝혔다.

협의회에 따르면 최근 고령화 및 저출산 대책에 따른 복지정책의 확대로 자치단체의 최근 7년간 사회복지비 연평균 증가율은 11%를 기록했는데, 이는 지방예산 증가율인 4.7%의 2배 수준을 넘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시행된 무상보육 전면 확대와 올해 7월부터 시행된 기초연금으로 인해 지방 복지재정 지출은 더 큰 폭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처럼 ‘돈 써야 할 곳’은 늘어 가지만, 정작 ‘돈 들어올 구멍’은 늘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협의회는 “부동산 경기침체와 취득세 영구인하 등에 따라 지방세입 여건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며 “226개 시군구 중 125개(54.4%)가 지방세로 인건비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협의회는 국가적 복지사업의 안정적 추진을 위해 △기초연금 전액 국비지원 또는 평균 국고보조율 90% 이상 확대 △보육사업 국고보조율 서울 40%·지방 70%까지 인상 △지방소비세율 현행 11%에서 16%로 즉시 인상 및 단계적으로 20%까지 확대 등을 요구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4일 민선 6기 서울시정 4개년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실제 지방정부의 ‘복지 디폴트’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며, “중앙정부가 정책 결정만 하고 그 부담은 지방정부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식으로 조이다가는 우리가 꿈꾸는 보편적 복지에 해당하는 서비스를 할 수 없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B>정부 “선심성 복지 정책 남발이 문제”</B>

그러나 이러한 호소에 정부와 여당의 반응은 싸늘했다. 새누리당은 5일 김현숙 원내대변인 브리핑에서 박원순 시장을 겨냥해 “복지라는 시급성을 가진 문제를 정략적으로 활용해 최소한의 재정 마련 자구 노력도 없이 중앙정부를 뒤흔들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지금은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협력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도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말 이미 보육료 및 양육수당 국고보조율을 15% 인상하는 등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앞으로 지자체 부담은 줄어들 것”이라며 사실상 국고보조율을 더 올려야 한다는 지자체들의 요구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 장관은 오히려 ‘방만한 지방재정 운용’에 문제의 원인을 돌리며, 향후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전담반)를 구성해 방만한 지방재정 운용실태를 종합 점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러한 문 장관의 발언은 5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관악노인종합복지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자체는 정부 추가지원을 성급히 요구하기보다는 세출 구조조정과 지방세 비과세·감면 축소 등 자구노력을 먼저 강화해야한다"면서 "일부 지자체에서 재정부족을 하소연하면서 선심성 복지시책을 남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라는 지적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지자체가 복지재정에 대한 ‘중앙정부 책임성’을 요구하고 있다면, 정부는 이에 맞서 ‘지자체의 선심성 복지정책이 문제’라는 식으로 맞서고 있는 형국인데, 여기에 일부 언론들도 정부 편에 가세해 ‘선심선 복지정책’을 문제 삼고 나오기 시작했다.

세계일보는 지난달 29일 <‘공짜 점심’ 심각성 깨우치는 지자체의 ‘복지 디폴트’>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학교 교실 벽이 갈라지고 천장이 내려앉아도 손을 쓰지 못하는 것이 지방재정이 처한 현실”이라며 “‘대책 없는 과잉 복지’의 후유증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어 세계일보는 “곳간은 생각지 않고 선거철마다 흥청망청 선심공약을 남발한 탓”이라며 “복지 재앙의 불길이 번지지 않게 하려면 사업 전반에 대한 재검토와 보완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보편적 복지와 같은 복지 확대 정책의 중단을 주문한 것이다.

<B>전문가들 “정부, 증세논의 봉쇄하고 지방정부에 책임 전가”</B>

하지만 복지 전문가들은 문제의 원인을 ‘보편적 복지 확대’에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오건호 공동위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무상보육 확대와 기초연금 실시는 이미 지난 대선 때 정치·사회적 합의를 통해 실시한 것이고, 사실상 당시의 합의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시행되고 있다”며 “선심성 복지로 볼 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대선 당시 무상보육에 대한 국고부담을 20% 늘리겠다고 한 약속을 깼고, 기초연금 지급도 전체 노인에게 주겠다고 한 것을 소득 하위 70%로 제한한 바 있다.

오 공동위원장은 또 “보수언론에서는 지방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 즉 세출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진짜 문제는 열악한 지방정부의 세입”이라며 “올해 중앙정부도 30조 원 안팎의 재정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획기적인 국고보조율 증대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재정확충에 대한 의사결정 권한이 중앙정부에 있는 만큼 중앙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오 위원장은 “따라서 전국민적 증세 논의가 필요한데, 중앙정부가 그런 논의 자체를 봉쇄하고 책임을 지방정부에 전가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지방정부는 자체적으로 수행하던 취약계층 대상 복지 사업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의 빈곤층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회공공연구소 제갈현숙 연구원도 4일 비마이너가 주최한 특강에서 “정부가 확대된 복지정책에 맞춰 연말정산 적용률을 조정해 세수를 확보하는 등 중앙정부 세입구조는 일부 개선했지만, 지자체 수익구조는 전혀 보장해 주지 않고 있다”며 “결국 박근혜 정부는 보육과 기초연금 등 일부 복지 확대의 성과는 자신들이 다 가져가면서 그 책임을 고스란히 지방정부에 떠넘기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덧붙이는 말

하금철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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