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금융화, 공간의 금융화

[주례토론회] 정치, 경제, 문화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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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래할인 관행

근래에 들어와서 사람들이 새로운 시간 경험을 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오늘날 삶의 방식을 크게 지배하고 있는 ‘미래할인’ 관행이다. 미래할인은 미래를 미리 앞당겨서 사용하는 일로서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예는 돈을 빌릴 때 이자율을 적용하는 경우다. 이자율 적용의 핵심은 미래가치를 할인하는 것이다. 이자율 10퍼센트를 적용한다면, 현재 시점의 100만원과 1년 후의 110만원은 같은 가치를 지니는 셈이 되며, 1년 후의 110원과 현재의 100원 사이에 등가 관계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미래할인’이 발생하는 것은 동일한 금액 100원의 미래가치를 현재 시점에서 산정할 때 이자율에 해당하는 만큼의 가치를 감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100원이 1년 후의 110만원과 동일하다고 보는 것은 그 100원의 가치가 1년 후가 되면 떨어진다고 보고, 떨어진 만큼 가치를 할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자율을 적용하여 미래를 할인하는 관행은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당연시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근대에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유럽에서도 중세까지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행위를 죄악시했다. 당시 기독교 전통에서 그런 행위를 죄악으로 간주했다는 점은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아퀴나스는 “빌려준 돈에 이자 받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파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정의롭지 못하고, 분명 정의와 상반되는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돈놀이를 ‘불의한 죄악’으로 규정했었다(Aquinas, 2008).

경제학 이론에 근거하여 이자율 적용의 정당성을 처음 체계적으로 주장하고 나선 것은 신고전학파다. 이들에 따르면 이자율을 적용하는 것은 사람들이 동일한 재화라고 하더라도 미래보다 현재에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여겨서 생긴 일이다. 이런 입장을 피력한 대표적인 인물이 오스트리아학파의 일원인 뵘-바베르크Eugen von Böhm-Bawerk였다. 뵘-바베르크는 맑스의 노동가치설을 반박하고자 이자율 적용의 정당성을 주장했던 경제학자다. 맑스에 따르면 ‘이자’는 화폐의 이윤 생산 기능에서 나오며 이윤의 일부에 해당한다. 만약 누가 화폐소유자로부터 100원을 빌려 20원의 이윤을 만들어내고 “연말에 100원의 소유자에게 예컨대 5원(즉 생산된 이윤의 일부)을 지불한다면,그는 이것에 의해 100원의 사용가치―그것의 자본기능(capital function), 20원의 이윤을 생산한다는 기능―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셈이다. 이윤 중 이렇게 지불되는 부분을 이자(利子: interest)라고 부른다”(맑스, 2004b: 412). 반면에 뵘-바베르크는 이자가 발생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자는 어떤 가치를 당장 쓰지 않고 나중에 쓴 것에 대한 보상인 것이지 누구를 착취하는 일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뵘-바베르크에 따르면, “우리는 기쁨과 슬픔에 대한 미래의 느낌에 대해서는 그 느낌이 미래에 속한다는 이유로 관심을 덜 갖게 되며, 우리의 관심이 적어지는 것은 미래가 먼 정도에 비례한다”(Böhm-Bawerk, 1959: 268; Liedekerke, 2004: 73에서 재인용). 다시 말해 동일한 재화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가치 평가의 시간적 편차를 드러내며, 그 재화의 미래가치보다 현재가치를 더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을 가리키는 말이 ‘양의 시간 선호’다. 뵘-바베르크와 마찬가지로 이자율 적용의 정당성을 주장한 어빙 피셔Irving Fisher는 이 태도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여섯 가지를 든다. ‘선견지명’, ‘자기-통제’, ‘습관’, ‘예상수명’, ‘타자에 대한 배려’, ‘유행’이 그것이다. 사무엘슨Paul A. Samuelson에 따르면, 뵘-바베르크와 피셔가 이런 지적을 한 것은 타인에게 빌려줄 수 있는 돈을 있게 만든 “과거의 저축은 기다림과 자제의 희생을 필요로 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이자 수령자가 누구를 착취한다는 생각이 틀렸음”을 밝히기 위함이었다(Samuelson, 1994: 209).

할인을 당연시여기는 사람은 문제를 현재가치와 미래가치의 차이 산정이라고 하는 수학적인 것으로 치환한다. 하지만 가령 100원에 대해 연 이자율 5퍼센트를 적용하는 것은 1년 후 같은 100만원의 가치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는 행위다. 문제는 이 예측은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단을 통해서, 다시 말해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할인율은 조급한 상인, 느긋한 브로커, 그리고 한정된(상당히 짧은) 시간지평 안에 일정한 물품이 전달될 것이라는 예측 등에 의해 결정된 합의 가격이었다. 그 거래는 현재 시점에 이루어지지만 그 거래는 두 당사자에 의해서 어떻게 보면 합의된 미래에 대한 전망을 필요로 했다”(Shively: 8). 이것은 할인율 적용이 이루어지는 미래할인 행위이 개인들 간의 합의, 즉 개인들의 주관적 조건 하에서 이루어진 거래였고, 할인은 실증경제학보다는 규범경제학의 문제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미래할인으로서의 이자율 적용은 오늘날 철저하게 실증경제학 문제로 바뀐 상태다.

규범경제학에서 실증경제학으로의 전환은 오랜 시간이 걸려서 이루어졌다. 핵심은 자본주의의 도입이다. 맑스가 『자본』 1권에서 말한 ‘자본과 노동력의 역사적 조우’가 일어나자 돈놀이에 대한 종교적 제한은 현실 속에서 무력화되었다.1 자본주의는 고정자본 등에 대한 투자를 위해 정교한 신용체계를 구축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이자 낳는 자본’을 형성한다. 맑스와 하비가 지적하듯이 고정자본이 자본주의 축적에 필수적인 만큼 의제자본도 필수적이다. 이자를 기대하지 않고 일어나는 의제자본 유통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이자율 적용은 자본주의가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부상한 이후에는 역사적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도 이자율 적용의 정당성을 경제이론으로 논증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은 미래 할인이 오늘날처럼 당연한 관행으로 통한 것은 아님을 말해준다. 뵘-바베르크와 피셔 등이 이자율 적용의 정당성을 주장한 방식도 규범경제학적 접근이었지 실증경제학적인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미래할인과 이자율 적용을 지지했지만, 왜 그것이 정당한 것인지 따로 도덕적 근거를 제시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왜 양의 시간 선호를 긍정해야 하는지 따질 필요를 느끼는 경제학자들은 거의 없다.

반 리데케르케Luc Van Liedekerke에 따르면 이 변화는 “1930년대에 경제학에서 일어난 공리적 혁명”의 결과다(Van Liedekerke: 74). 이로 인해 경제학에서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과거에는 뵘-바베르크나 피셔처럼 신고전학파까지도 경제적 결정의 도덕적 기반을 따지는 것이 정상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그런 학문 풍토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Van Liedekerke: 75). 오늘날 이자율 적용 행위는 굳이 정당화해야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일반화되었다. 이것은 규범경제학 또는 도덕경제학이 주류경제학에서 더 이상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2

그러나 리데케르케의 말대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자율 적용의 정당성 논의가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는 해도, 오늘날 즉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크게 진행된 상황에서 확산된 미래할인 관행은 이자율 적용의 일반적 관행, 예컨대 수정자유주의가 지배하던 시기의 관행과도 다른 측면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1940년대 중반 이후 세계의 경제 질서도 ‘미국적 자유주의’의 지배를 받았다는 점에서 시장과 자본의 자유가 보장을 받고 있었고, 따라서 이자율 적용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다고 할 수 있다.3 그러나 1970년대 이전까지는 미국에서까지 자유주의가 사회주의와 부분적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는 국제적 상황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결과 당시 미래할인 관행은 수정자유주의 경제이론인 케인스주의에 의해 통제를 받았다고 봐야하며, 이런 점에서 오늘날과는 다른 모습을 띠었다고 하겠다.

현재 미래할인 관행이 가장 큰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파생상품 시장이다. 이 시장은 현재 세계 최대의 시장 규모를 자랑하고 있고, 브라이언과 래퍼티에 따르면 ‘명백한 자본주의적 상품과 화폐’의 거래로 이루어진다(4장 참조). 파생상품 시장을 지배하는 것이 미래할인 관행이라는 것은 따라서 그 관행이야말로 오늘날 자본주의의 핵심 특징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미래할인이 얼마나 자본주의적 삶을 지배하고 있는가는 기획금융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보여주는 바다. 기획금융도 미래에 생겨날 ‘현금 흐름’을 예상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미래를 앞당기는 행위의 또 다른 예다.

파생상품과 기획금융 등은 오늘날 신용체계가 원용하고 있는 최적 금융상품으로서 미래노동에 대한 기대를 기반으로 하여 설계되고 거래된다.4 이들 상품은 그래서 ‘위험상품’이 되며, 미래할인 상품의 성격을 띤다. 위험risk은 미래에 속하는 사안이다. 파생상품이나 기획금융에 투자하는 것은 이 미래를 불확실이 아닌, 확률의 영역으로 치환함으로써 이루어진다(Martin, 2002: 104-5). 이것은 이자율을 적용하는 것과 같다. 경제학자들이 이자율을 적용시킬 때 하는 일은 이자율 계산으로서, 이때 계산 가능성은 미래의 위험이 확률로 간주됨으로써 생겨난다. 하지만 쉬블리가 지적하듯이, “위험의 확률적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얼마쯤은 과학적 문제이지만, 미래 위험의 정해진 수준을 수용하는 것은 윤리적 문제인 것이지 경제적 문제가 아니다”(Shively, 2002: 14). 프랭크 나이트Frank Knight가 지적한 바 있듯이, 위험과 불확실성은 개념상 서로 다르다. 전자는 측정이 가능하지만, 후자는 불가능한 것이다(Knight, 1921; Langlois and Cosgel, 1993: 457). 이슬람에서는 그래서 이자를 받는 행위를 금하는 전통이 있다. 코란에서 이자 또는 화폐의 시간-가치인 ‘리바riba’를 금한다.

의제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이자 낳는 자본이 갈수록 원활하고 빠르게 유통할 수 있도록 고도의 금융화를 유발하는 신용체계가 발달한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적 축적 구도 하에서는, 특유한 시간의 경제가 작동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2. 시간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

금융화가 진행되면서 신자유주의적인 새로운 시간의 경제 즉 가상적 시간의 경제가 작동하고, 이와 더불어 미래할인 관행이 확산해 사회적 시간 속도가 증가하게 되면, 문화정치경제는 어떤 변동을 겪을 것인가? 지난 40년 가까이 자본 축적의 지배적 전략으로 등장한 금융화는 양의 시간 선호의 만연, 순현재가치 계산 관행의 확산, 이자율 적용의 확대, 그리고 이에 따른 대대적인 미래할인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미래할인이 확산되었다는 것은 자본 회전기간을 단축하는 각종 기술이 널리 확산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날 사회적 신진대사의 속도가 빨라진 것은 속도증가의 기제, 무엇보다도 정교하고 복잡한 거대한 신용체계가 작동함으로써 생기는 현상이다. 속도증가 기제에는 신용체계 이외에도 다른 요소들이 있다. 상품의 생산과 유통 및 소비 흐름을 가속시키기 위한 각종 수단(적시생산, 수평적 생산, 재택근무, 다품종소량생산, 자동화, 패션, 디자인 등), 사람들의 습속을 자본 축적에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어내는 일상생활체계,5 개인들의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경향 또는 욕망 지향을 재조정하는 개성체계(성공신화 등의 주입으로 성취욕 북돋우기 등), 그들의 지적, 정신적, 심리적 능력과 교육적 수준을 새롭게 조정하는 역능체계(교육제도, 의료 및 보건복지제도 등), 인적 및 물적 상품의 더 빠른 이동을 위한 교통체계(지하철망, 퀵서비스, 대리운전, 물류체계 등), 이미지와 텍스트 등 상징적 차원의 생산과 유통 소비를 관장하는 매체체계 등이 머리에 떠오른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속도증가 체계들을 작동시키는 근본 원인이 자본의 회전시간 단축에 있고, 오늘날 이 경향을 가속시키는 핵심적 요인을 금융화에서 찾을 수 있다면, 오늘날 시간경험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새로운 신용체계의 형성과 작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또 다른 관심사와 관련하여 이제 떠오르는 질문은 신용체계의 확산으로 사회적 삶의 속도에 가속도가 붙게 되면, 문화정치경제는 어떤 변화를 겪느냐는 것이다.

시간의 금융화로 일어나는 문화정치경제적인 변동 또한 기본적으로 부 생산(경제), 권력 생산(정치), 의미 생산(문화)의 개별적 측면과 이들 측면의 상호관련이라는 관점에서 검토될 필요가 있다. 부의 생산은 단순히 자본의 운동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자본,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에 의해서 동원되는 노동,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조절하는 국가가 서로 매개하며 맺게 되는 관계를 경유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경제적 실천과 정치적 실천을 접합을 전제한다. 동시에 부의 생산은 새로운 삶의 방식과 태도, 특정한 사회적 능력 등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문화적 과정을 대동하기 마련이다. 권력 생산도 통상 말하는 ‘정치의 장’에 국한되어 일어난다고 봐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행정 등의 능력을 가진 부르주아와 부의 생산을 관장하는 자본가 간의 경쟁과 협조,6 그리고 이 둘의 권력 행사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영향력 여하, 나아가서 부의 생산 조건 여하에 의해 그 모습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의미 생산과 관련해서도 우리는 의미나 가치 변화가 재현이나 상징, 담론 등 각종 표현 층위 즉 통상 문화라고 여겨지는 사회적 실천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제 세력의 권력 및 부의 생산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특정한 가치를 지닌 표현 또는 재현 행위는 계급, 성차, 성욕, 인종/민족, 세대 등 인구의 사회적 분할선들을 따라 지지나 저항을 받을 수 있으며, 사회적 정체성에 기반을 둔 이런 반응은 이해 배분과도 관련되기 마련이다. 이 책을 통하여 문화정치경제를 분석적 필요에 따라 정치경제, 문화정치, 문화경제로 구분하면서, 다시 이들 단위를 문화적 정치경제, 경제적 문화정치, 정치적 문화경제로 더 복잡하게 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통해 최근 시간의 금융화가 진행되면서 발생하고 있는 문화정치경제의 변동을 살펴보자.

2.1 시간의 금융화와 문화적 정치경제

자본주의적 신용체계를 확대강화하고 있는 금융화 경향이 오늘날의 시간경험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다. 이 장 앞부분에서 확인한 것처럼, 자본주의는 지난 수십 년에 걸쳐 M-C-M’ 순환과 M-M' 순환을 후자 우위 하에서 서로 연계하여 작동시켜왔고,7 이에 따라 거대한 신용체계를 새롭게 구축함으로써 과거와는 전적으로 다른 시간경험 형태를 만들어냈다. 각종 펀드, ABS, MBS, 기획금융, 그리고 이들 상품을 활용하는 금융파생상품을 도입함으로써 미래할인을 일상적 관행으로 정착시킨 결과, 대중으로 하여금 끝없이 확장되는 현재 속에 살아간다는 관념을 품게 만든 것이다. 가상적 시간이 자연적 시간, 기계적 시간을 지휘하도록 함에 따라서, 오늘날의 지배적 시간흐름은 더 이상 순차적이거나 지속적이지 않다. 시장에 출시되는 시간에 맞춰 적시 생산되어야 하는 것은 이제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만이 아니다. 과거에는 자연 순환에 따라 자라던 바나나, 포도, 백합, 장미 등도 맞춤 맞은 때 시장에 도착하기 위해 대양을 건너고 창공을 나는 동안 그 생장이 첨단 기술에 의해 통제된다.

신용체계가 시간 조직에서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 것은 사회적 신진대사에 오늘날 그것이 결정적인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신용체계의 일차적 기능은 저축자와 궁극적 사용자 사이에 시차를 두고 일어나는 자원 분배를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해내는 것이다”(Mahan, 2006: 1). 이때 신용체계는 시간 간 위험 배분 체계로 작용하게 된다. “기금 중개 과정은 가용 자원 활용을 가장 생산적인 방식으로 하도록 한다. 그런 과정은 시차를 둔 토대 위에 재정 위험을 관리함을 의미한다”(Mahan: 1). 금융 팽창이라는 말이 적합할 정도로 오늘날 신용체계가 크게 확대된 것은 이렇게 보면 ‘시간 간 위험 배분’ 행위가 그만큼 빈번해졌다는 것, 그리하여 미래를 앞당기는 개발, 거래 투자가 급증했다는 것, 이 결과 사회가 갈수록 분주해지고, 부산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어떤 정치경제적 변동을 동반하는가? 자본의 회전속도를 가속시키는 신용체계가 가동하는 화폐자본이 자유롭게 유통되는 금융화의 최적 조건을 마련하려면 국가와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새로 조정될 필요가 있다. 수정자유주의 시절 또는 발전주의 시절 개인의 소득은 기본적으로 노동을 통한 임금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복지 또한 노동의 권리에 상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금융화가 진행되면서, 소득은 갈수록 긴밀하게 자산 증가, 투자 결과 등과 연동되었고, 복지 또한 상품으로 전환되었다. 우리는 이런 결과를 초래한 금융자유화를 위해 한국 정부가 어떤 시도를 했는지 앞에서 살펴본 바 있다(2장 6절). 금융화는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후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꾸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금융자본의 자유를 강화하는 조치다. 산업자본 발전을 위해 금융자본 운동에 제한을 가하던 수정자유주의 하의 금융제도는 이제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관련 법 제정이나 폐기를 둘러싼 정치적 결정이 이뤄진다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에서 대공황의 원흉으로 지목된 금융자본에 족쇄를 채워놓을 목적으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상업은행과 채권회사의 겸업을 금지코자 1933년에 도입한 글래스스티걸법Glass Steagall Act을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와 무력화시킨 것이 좋은 예다. 동법의 변질이 시작된 것은 사실 오래 전이다. 통화감독청이 은행도 일부 채권업무를 할 수 있다는 법해석을 제시한 것이 1960년대이고, 은행들이 자의적인 법 조항 해석으로 위법적인 채권업무를 벌여도 법원이 그에 대해 호의적 판결을 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 말이다. 이 흐름은 “시티그룹이 다른 회사를 소유하기 위해 만들어져 ‘시티그룹 정당화법’이라고도 불린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이 통과된 1999년에 절정에 이른다(홍석만·송명관, 2013: 40-41).8 글래스스티걸법이 이로써 사문화된 것은 금융자본의 활동 무대를 확장시키기 위해 경제세력(은행, 금융자본)과 정치세력(의회)이 협력하여 법 제도를 바꿔낸 대표적 사례다.

글래스스티걸법은 1929년 대공황 원인으로 지목된 금융자본 통제를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제정되었지만, 전후 미국에서 수정자유주의가 작동하는 데에도 일정한 역할을 했다. 수정자유주의의 경제이론으로 작용한 케인스주의는 사적 금융의 활동을 제한하고, 국가 재정을 통해 경제활동을 진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940년대 중반 이후 자본주의가 황금기를 구가할 때 작동한 포드주의는 사적 금융보다는 국가 재정이 사회적 부의 생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경우, 어떤 효과가 나는지 잘 보여준 바 있다. 당시 노동자계급은 비교적 양호한 노동권을 누렸고 상당한 수준의 복지를 보장받았었다. 물론 포드주의가 문제없었던 것은 아니다. 포드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작동하며, 자본주의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포드주의의 노동-자본-국가의 삼각동맹은 케인스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세력들 간의 타협으로서 경제성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동안은 잘 작동하는 듯해도, 적자재정을 일으키고, 인플레이션을 야기하는 등 구조적 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관심을 기울일 것은 금융화가 통제되고 있던 수정자유주의적 포드주의 체제와 글래스스티걸법 등의 효력 약화나 폐기로 인해 금융화가 극도로 전개된 신자유주의적 금융화 체제의 시간경험상 차이와 관련된 정치경제 문제다. 포드주의 체제에서 시간경험은 일정한 지속성을 띠는 반면, 금융화 시대에는 이미 본 것처럼 즉시성, 휘발성, 일시성, 단명성, 경박성, 부박함, 부산함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은 사람들이 노동보다 투자 행위에 더 열중해 생기는 경향으로서 동시에 신용활동이 크게 증가한 결과이기도 하다. 랭글리Paul Langley에 따르면, 1990년대 “미국인의 3분의 2정도는 신용편의를 활용하면서, 대금이월자revolvers 주체위치로 살아간다”(Langley, 2005: 18).9 이처럼 많은 인구가 신용편의를 활용하게 된 것은 금융자본이 최근 갈수록 더 큰 자유를 누리며 활동하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금융자본은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택 구입 자금을 대출해주는 등 인위적 자산효과를 만들어냄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더 많은 경제활동을 하도록 만들었다.10 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는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투자은행 등 미국 지배블록의 용인 하에,11 과도한 신용 즉 부채를 짊어지고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 신용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다가 결국 연체를 하게 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사람들이 돌려막기까지 하며 신용편의를 자주 활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미래할인에 의존하여 사는 정도가 높다는 말이다. 신용편의를 포함한 신용체제의 빈번한 활용과 작동은 더 큰 자산효과를 겨냥한 활동이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더 많은 소비, 창업 등으로 더 한 층의 삶의 속도 가속화에 기여하게 된다. 즉시성, 휘발성, 단명성, 경박성, 부박함, 부산함 등이 오늘날 삶의 시간적 징표라면, 그것은 금융화로 촉발되는 경향인 셈이고, 이런 흐름을 강화하는 것은 금융자본의 자유를 더욱 더 많이 확보해주는 정치경제적 체제라 하겠다.

정치경제는 언제나 이미 문화적인 측면을 갖는다. 시간의 금융화를 추진하는 정치경제적 결정도 정치경제적 논리로써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결정은 특정한 문화지형을 전제한다. 미국에서 비우량주택담보대출이 1995년부터 시작되어, 2000년대 초에 크게 확대되는 데에도 합리적인 경제적 이성 이외의 작인이 필요했다.12 경제의 흐름을 특정한 방향으로 즉 금융화로 움직이게 만든 담론적 실천이 그것이다. 3장 7절에서 본 것처럼 클린턴, 부시 등이 앞장서서 ‘소유권 사회’ 담론을 퍼뜨린 것이 좋은 예다. 이 담론은 새로운 경제적 상상 즉 신자유주의적 상상에 따라서, 이제 임금과 혜택이 아니라 자산을 기반으로 하여 개인의 복지를 준비해야 하고, 기업과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자기 복지의 책임을 져야한다는 통념, 자기책임 의식을 만들어냈다. 한국에서도 새로운 상상을 주조하는 일이 벌어졌다. OECD, WTO 가입 조건으로 금융자유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졌을 때, 한국정부가 금과옥조로 내세우곤 한 명분은 세계화 시대에는 글로벌스탠더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계화 및 글로벌스탠더드를 주제로 하는 담론은 기업을 비롯한 각종 사회조직의 경영 투명성을 유난히 강조했는데, 이것은 금융의 자유화를 추진하기 위해 “새로운 담론적 소우주”를 형성하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 있다(서동진, 2009: 37).

아울러 금융화로 시간의 속도가 증가하면서 사회적 리듬이 바뀌고, 이 과정에서 대중음악을 위시한 대중문화에서의 변화도 같은 맥락에서 언급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말, 특히 금융자유화가 가동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부터 댄스음악이 대중음악의 주요 장르로 등장했고, 같은 시기 ‘트렌디드라마’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들 대중문화 장르가 당시 등장한 것은 사람들의 감각이 새로운 사회적 리듬에 맞게 주조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 징표로 보인다. 1990년대 말에 형성되어 지금까지 진행되는 한류 열풍도 금융화와 무관한 현상이 아니다. 무산된 에잇시티를 포함하여 최근에 PPP를 통해서 개발되고 있는 많은 부동산 개발사업에는 ‘한류랜드’라는 이름을 단 문화단지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실은 부동산 개발 기획에 리츠, 뮤추얼펀드, MBS, ABS, CDO 등의 금융상품을 동원하는 데 한류의 문화적 매력도 상당히 중요한 유인 요인으로 작용함을 보여준다. 다양한 금융상품 거래를 확산시키는 금융화 과정에 제동을 걸 장애를 없애는 것이 노동과 국가와 자본 간의 새로운 역관계 즉 금융화의 정치경제적 조건이라면, 이 조건을 더욱 개선하는 데에는 문화적 실천이 요구되는 것이다. 시간의 금융화에서 작용하는 문화적 정치경제는 그리하여 자본의 회전기간 단축에 기여하면서 사회적 삶의 속도를 더욱 가속시킨다고 할 수 있다.

2.2 시간의 금융화와 경제적 문화정치

신용체계의 확대로 미래할인 관행이 확산함으로써 가상적 시간 형태가 시간 경험을 지배하게 되면, 삶의 결은 어떻게 바뀌고 거기서 일어나는 갈등과 투쟁은 어떤 모습을 띠게 될 것인가? 금융화는 기본적으로 거대한 신용체계를 만들어내고, 이 과정에서 속도증가 기제를 전면적으로 가동시킴으로써, 각종 사회적 리듬과 신진대사를 가속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금융화가 확대시키는 것은 금융적 거래로서 이것 자체는 이자 소득의 획득을 위해 작용할 뿐, 이윤율 추구에 기반을 두고 실질적 가치를 생산하는 실물경제와는 무관하다. 하지만 금융활동에 따른 이익, 그리고 사람들이 갈수록 더욱 더 의존하는 부채를 통해 형성되는 자산효과는 유효수요를 키워내며 소비를 진작시키고, 삶을 더욱 부산하게 만든다. 여기에 덧붙여 기획금융, 리츠, 뮤추얼펀드 등의 거래 확대로 부동산 투기나 개발이 활발해지면, 사회적 신진대사와 리듬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이런 변화가 문화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삶의 결 자체가 바뀌고, 사람들의 인식구조, 상식도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특히 2000년대에 들어와서 세계 전역에서 부동산 거품이 발생한 것은 단순히 사람들의 경제적 실천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유주의적 금융화와 더불어 자산효과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크게 확산된 결과이기도 하다. 2014년 현재 유럽에서만 1100만 채의 빈집이 양산되었다는 사실이 그 생생한 증거다. 시간의 금융화와 함께 일어난 삶의 방식, 가치 및 태도 변화로 사람들은 이제 주택을 주거용으로 보기보다는 자산 증식 수단으로만 보는 것 같다.13

사회적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삶의 리듬이 빨라지게 되면 ‘시간기근’ 현상이 전반적으로 확산된다. 미래를 할인한다는 것은 미래를 소환함으로써, 미래를 제거하는 일이기도 하지만,14 현재의 지평에 미래를 가져옴으로써 현재를 소거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오늘날처럼 미래학적 전망이 넘치던 때도 없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전망을 기반으로 하는 기획, 개발, 투자 행위의 종류나 수가 얼마나 많은가. 시간기근은 현재의 시간이 소거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다. 서울, 싱가포르, 런던, 뉴욕 등 서로 다른 시간대를 가로질러 24시간 개장돼 있는 외환시장에 참여하느라 “새벽 2시 잠, 4시반 출근”의 일상을 보내야 전문 투자자들의 삶이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머니투데이, 2010.4.23.). 앞서 금융화로 인해 미래할인이 광범위하게 일어나면서 미래의 현재화가 빈번해지고, 이것은 곧 현재의 확장을 의미하기도 함을 지적한 바 있다. 시간기근과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현재의 확장은 사실상 현재 시간의 농밀함이 희박해졌다는 징표다. 어떤 상품이 미래 특정 시점에 갖게 될 가치를 예상하여 현재 시점에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일은 불확실성에 대한 예측을 위험의 확률 계산으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현재 시간의 확장을 전제하지만, 시간이 경험적으로 농밀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확장되는 만큼 ‘시간의 띠’가 엷어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이 “취향을 조정할 수 있는 즉시성, 일회성, 일시성의 미학”이다. 마르스든Richard Marsden에 따르면 이 미학은 자본의 회전기간 단축에 필요한 유연적 생산의 조직과 관련되어 있다. “유연성의 극치는 시장의 변화하는 요구에 완벽하게 반응하며 짧은 진열시간을 갖는 가상 조직이다. 그 결과는 산업자본의 이해를 중심으로 한 포드주의-케인스주의 축적체제의 와해와 금융자본의 이해를 중심으로 한 유연적 축적체제에 의한 그것의 대체였다”(Marsden, 1999: 10).15 이렇게 보면, ‘즉시성의 미학’이 사람들의 취향을 즉각적, 일회적, 단기적 성격을 띠게 만드는 것은 금융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본 축적을 위한 각종 활동과 조직이 갈수록 유연해졌기 때문이다. 즉시성의 미학은 즉각적 만족을 요구하며, 그 만족의 실제 배달을 약속한다. 이런 미학이 경제적 형태를 띨 때 나타나는 것이 단기실적주의다. 단기실적주의는 주주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으로서, 기업 운영을 맡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가에 반영될 자산을 단기간에 늘릴 것을 요구한다.

시간기근을 자아내는 속도증가와 미래할인은 문화정치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베냐민은 1840년 경 파리에서 아케이드에서 거북을 데리고 산책하는 유행이 있었음을 언급한 바 있다. “만보객들은 거북이 자신들의 보행속도를 정해주기를 좋아했다”(Benjamin, 2006: 84). 만보객이 이처럼 최대한 느린 보행을 하려 했던 것은 산업화로 인해 증가하던 삶의 속도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만보객의 행위는 일종의 연기에 해당한다. 보행 속도를 일부러 늦춘 것은 만사가 빨라지는 지배적인 삶의 모습에 대한 정치적 항의를 행위 예술로 표현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금융화와 더불어 가상적 시간이 19세기 파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의 속도를 증가시키고 있는 오늘날도, 느림이라고 하는 변별적인 생활 리듬이 정치적 의미를 갖고 등장했다. ‘느림의 미학’, ‘느림의 경제학’ 등이 그것이다.16 물론 이런 느림 선호는 금융화 시대의 예외 현상이며, 주로 강조되는 것은 가속의 필요성이다. 속도증가 기제가 곳곳에서 가동되면서 느림은 적체, 지체의 부작용으로만 간주되고, 대신 즉각적 노후화, ‘쓰고 버리는 사회’ 구축, 트렌드 강조 등 대부분 자본 회전기간 단축에 필요한 조치들만 선호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삶의 느림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것은 문화정치의 주요 전선이 가속과 느림의 벡터를 결정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상품의 노후화는 사람들의 새로움 추구 욕망을 겨냥한 자본의 축적 전략이다. 베냐민에 따르면 상품의 새로움은 “상품의 사용가치와 무관한 자질”이며 이미 19세기에도 “집단적 무의식에 의해 생산된 이미지에 떼래야 뗄 수 없이 부착된 외관성의 기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Benjamin: 41). 당시 각종 외관의 새로움을 감별하는 인물 즉 ‘새로운 것의 판관aibiter novarum rerum’은 전형적으로 ‘속물’과 ‘댄디’였다(Benjamin: 42). 삶의 느림을 추구한 만보객과는 대비되는 이들이 오늘날 모습을 감추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이 나타났다는 것은 즉각적 노후화, 트렌드 강조 경향이 갈수록 강렬해지는 데서 확인된다. 상품 생산에서 새로움이 강조되는 이유는 단 하나, 축적을 위해 자본의 회전기간 단축하자는 것이다. 감각 쇄신에 주된 역할을 하는 미학적 쇄신과 실험이 갈수록 상품 생산 논리를 반영하고, 또 그 역 현상이 성립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학의 꾸준한 상품화와 상품세계 심미화의 이중운동”으로 본격 예술 분야와 상품 생산 영역의 구분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Žižek, 2000: 28). 미학적 쇄신은 바로 상품의 쇄신으로, 이 쇄신을 통한 감각의 쇄신은 새로운 상품에 대한 요구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 새로움이 도달하는 것은 그런데 즉각적 죽음이다. 어떤 새로움이든 다른 새로움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야 하니까.

시간의 금융화는 이렇게 보면 오늘날 지배적인 문화정치를 끊임없는 각종 쇄신 추구로 향하게 하는 셈이다. 오늘날 생태환경의 대규모 파괴를 야기하는 개발, 어떤 전통과 지속이든 기억으로부터 지워버리는 혁신, 나아가 디자인과 패션, 트렌드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 크고 빈번한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자본의 회전기간 단축을 위한 각종 신용거래가 만연함으로써 사회적 리듬이 빨라지면, 방금 나온 새것도 바로 폐품 처리되기 일쑤다. 이런 ‘노후화 가속’의 사회적 전면화가 지닌 경제적 의미는 분명하다. 신용거래와 부채, 자산 동원의 증가가 대규모로 일어나는 것은 사람들이 시간의 금융화와 함께 형성된 새로운 문화정치에 그만큼 깊숙이 포획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 지배적인 문화정치는 만사를 속도로 재단하기 때문에 빠른 것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느림의 미학까지도 상품으로 활용할 자세가 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시간의 금융화로 발생하는 문화정치는 특히 그것이 금융화 논리에 종속된 경우는 자본 축적에 봉사하는 경제적 기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금융화 시대 시간의 문화정치가 금융화의 논리에서 벗어나면 경제적 기능을 탈각하게 되는 것일까? 사실 문화정치가 경제적 성격을 벗어던지는 일은 어떤 경우든 없다고 봐야 한다. 가령 느림의 삶을 선택할 경우 문화정치는 오늘날 지배적인 재현과 표현과는 당연히 다른 형태를 띠게 띨 것이지만, 그 때에도 새로운 표현과 스타일의 정치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3장 9절에서 본 것처럼 인도에서 차도르나 히잡, 터번 착용이 특정 종족의 정체성 표현이자 영국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저항이면서 동시에 영국의 인도 경제 지배에 대한 대안의 추구였듯이, 오늘날도 느림의 미학과 그에 따른 새로운 삶의 추구는 새로운 경제의 조직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시간의 금융화로 인해 형성된 지배적인 문화정치와는 다른 형태의 사회적 실천을 추구하는 것은 금융화의 경제적 질서와는 다른 질서를 추구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2.3 시간의 금융화와 정치적 문화경제

시간의 금융화로 속도증가 기제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현상과 연동되어 나타나는 정치적 문화경제는 어떤 모습을 띠게 될 것인가? 신용체계의 작동으로 자본의 회전속도가 빨라지는 상황에서 문화와 경제의 융합 현상은 어떤 식으로 일어나고, 이 과정은 또 오늘날의 정치적 실천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문화정치경제’를 이해해온 방식에 따라서 이 질문을 다시 바꿔보자. 경제의 문화화와 문화의 경제화의 동시 진행은 어떤 사회적 변화를 야기하고, 이 변화는 어떤 정치적 의미를 가지며, 나아가서 문화경제의 정치적 차원은 시간경험의 변화와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인가?

오늘날 시간의 금융화로 삶의 속도가 증가하면서 일어나는 문화경제의 변화는 한편으로 상품의 심미화로 인해 예컨대 “즉시성, 일회성, 일시성의 미학”이 확산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로 인해 상품의 (교환)가치가 상품의 사용가치보다는 그 이미지, 기호, 디자인, 상징성 등에서 만들어지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는 데서 확인된다. 경제적 대상으로서의 상품은 이때 문화적 대상인 예술작품을 모방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문화적 대상으로서의 이미지나 기호 등은 심미적 호소 이외에 상품의 부가가치 증가와 같은 경제적 기능 수행을 지향하는 경향을 드러내는바, 이 이중운동이 오늘날 유난히 강화되고 있는 것은 물론 금융화와 함께 자본의 회전기간 단축 운동에 새로운 자극과 충격이 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 소절에서 살펴본 대로 오늘날 ‘즉시성의 미학’이 요청되는 것은 유연적 생산의 필요성 때문이고, 후자의 필요성이 생기는 것은 그것대로 자본의 회전기간을 단축하기 위함이며, 이 마지막 운동을 강화하는 것은 M-M’ 순환의 확산과 이에 부응하는 신용체계의 확대다. 즉시성의 미학을 동원한 상품 생산에서 강조되는 이미지, 기호 등의 소비는 사용가치의 소비와 달리 욕구보다는 욕망의 작용에 의존하며,17 이에 따라 상품의 새로움이 바로 그 죽음을 가져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상품의 수명단축 현상이 일반화된다.

즉시성의 미학이 특히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은 소비분야로서, 이것은 “소비에서의 회전시간을 촉진할 필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 상품의 생산이 “(칼과 포크처럼 대부분 상당한 수명을 지닌) 재화의 생산에서 (거의 즉각적인 회전시간을 지닌 스펙터클 같은) 행사의 생산으로 강조가 이동”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Harvey, 1989: 157). 행사의 특징은 일회로 그 수명이 다한다는 것, 따라서 지속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행사로서의 상품에 필요한 것은 내구성을 지닌 용도보다는 이미지나 스타일 측면의 매력이다. 오늘날 연예인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중요한 사회적 지위를 갖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18 무엇보다도 행사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연예인들은 인간관계에서도 부모나 부부보다 더 큰 말 걸기 효과, 심리적 호소력을 갖는 경우가 많다. 내구성을 지닌 상품보다는 즉각적 소비가 가능한 행사가 상품으로서 더 매력적이듯이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온 지인보다는 새로운 인기를 얻은 연예인이 더 친근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새로움이 즉각적 죽음을 맞기는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변하는 감각 층위에 대한 영향력이 사라지는 순간 존재가치를 상실하는 이미지와 기호에서 나오는 호소력은 컴퓨터 기억처럼 쉽게 휘발되는 성질이 있다. 오늘날 전에 없이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된 연예인들도 ‘15분의 명성’만 얻고 수명을 다하는 경우가 허다하다.19 그러나 연예인이든 재화든 상품의 수명이 짧을수록 스펙터클은 화려하고, 자본은 더욱 빨리 회전하며, 축적은 더욱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경제적 가치 생산이 이처럼 심미적인 차원에 더욱 의존하고, 상품의 이미지 및 기호로서의 성격이 강화되는 흐름에 짝 맞추듯 나타나는 것이 예술과 문화의 경제화 현상이다. 근대적인 미학 통념은 예술작품을 시장교환에서 벗어난 그 자체의 ‘자율적’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문화자본’이라고 하는, ‘경제적 자본’과 구분되는 자본의 개념은 예술과 문화의 이런 자율성 개념에 일정하게 의거한다고 볼 수 있다. 회화작품에 어울리는 장소라 하면 흔히 박물관이나 미술관, 또는 소장가의 저택이 뇌리에 떠오르는 것도 작품은 다른 사물들과 분리되어 그것만의 장소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예술작품을 구입하고 소유하려는 목적은 소장하고 감상하기 위함만은 아니다. 테일러Mark Taylor가 지적하고 있듯이 미술품은 이제 소장품보다는 자산 범주에 더 가깝다. 과거에도 예술품에 대한 투자는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예술에 대한 “투자 게임은 예술이 소비 상품보다는 금융 자산으로 간주되며 중대한 변화를 겪는다. 예술시장 투기자들은 최근 미술품 구입 및 판매를 위한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를 조직했다. 이들 펀드는 금융자본주의의 원리를 예술에까지 확장한다”(Taylor, 2011: 12). 이처럼 금융 자산으로 취급되는 예술작품을 위한 시장에서도 즉시성의 논리가 강조될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감상을 위한 소장품보다는 매매를 위한 자산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작품이 화폐처럼 언제라도 자본의 유통 회로에 투입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작품이 갖는 소임은 따라서 가능한 한 단기간에 이익을 내고 다른 이의 수중으로 넘어가는 데 있다.

예술, 나아가서 문화가 자산 또는 다른 금융적 수단으로 전환되는 경향은 물론 미술품의 자산화 현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문화의 경제화 흐름은 우리의 일상생활이 금융화의 논리에 포획되는 것으로 더욱 확연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금융화는 우리로 하여금 삶 전반을 금융적 위험 관리에 바치도록 만듦으로써 삶을 경제적 목표와 원리에 종속시킨다. 오늘날 시간경험이 크게 바뀐 것도 이 문화의 경제화와 무관하지 않다. 랜디 마틴이 지적하듯이 “금융화는 미래를 현재로 불러오도록 우리의 시간 감각을 재정향한다...위험 관리는 현재에 미래로 지향함이다”(Martin, 2002: 196). 갈수록 신용편의에 의존하고, 각종 펀드와 주식, 부동산 투자에 몰두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자신의 삶 대부분을 투자 위험 관리라는 경제적 실천으로 채우겠지만, 그로 인해 더욱 불안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금융화로 더욱 필요해지는 위험 관리는 단기 효과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장기적 전망을 제공하기 어렵다. 금융화 시대의 삶을 특징짓는 불안과 동요는 미래의 장기적 전망 부재로 인해 현재가 늘 불안정한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안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소비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저축할 것만 요구하는 더 옛날 꿈나라에 속하던 평온함과는 크게 엇갈린다”(Martin: 196).

오늘날 시간의 금융화와 함께 등장한 문화경제적 양상은 제임슨Fredric Jameson이 언급한 “미학적 생산이 상품생산 일반에 통합”되는 현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상품의 생산 및 소비에서 즉시성의 미학이 더욱 중요해진 만큼이나 오늘날은 미학적 쇄신과 실험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에 대한 자본의 지원도 강화된다.

더욱 신기해 보이는 새로운 재화 물결(의류에서 비행기에 이르는)을 더욱 더 큰 회전률로 생산해야하는 미친 듯싶은 경제적 절박감이 이제는 미학적 쇄신과 실험에 갈수록 중요한 구조적 기능과 위상을 부과한다. 그와 같은 경제적 필요성은 그 다음으로 더 새로운 예술에 대한, 재단 및 기금에서 박물관 및 다른 후원 형태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기관 지원에서도 확인되고 있다(Jameson, 1991: 4-5).

미학적 쇄신과 실험이 경제적 절박감을 해소하는 해결책으로 요청되면, 새로운 미학적 조류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더 커질 것이고, 이로 인해 경제와 문화의 통합은 더욱 긴밀해질 것이다. 나아가서 더욱 새로운 상품에 대한 요구와 미학적 쇄신과 실험에 대한 요구는 더 큰 범위에서는 쇄신과 혁신을 사회조직의 원리로 만들기도 한다. 사회적 혁신과 쇄신에 대한 강조가 오늘날 사회운영의 원리가 되었다는 것은 각종 ‘개혁’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제시되고 있는 데서 나타나고 있다.

자본의 회전시간 단축을 위한 상품 쇄신과 이를 위한 미학적 실험에 대한 요구 증가와 궤를 함께 하는 개혁 추진은 주로 사회통제의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이때 개혁은 대부분 자본 축적 조건의 개선을 위해, 자본주의적 조직 및 구성원의 경쟁력을 강화를 위해 추진되기 때문이다. 시간의 금융화와 함께 형성되는 문화경제와 연계되는 정치적 실천이 어떤 형태와 경향을 지닐 것인지 여기서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의 금융화로 미래할인 행위가 확산되는 가운데 즉시성의 미학이 상품 생산과 소비에 침투하고, 예술의 금융화와 자산화를 포함한 문화의 경제화로 문화가 경제의 수단으로 바뀌고 나면 정치는 더욱 심미화된다. 미학적 영역이 자율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시기 상품 논리에 대한 미학적 실천의 비판은 그 날이 아직 날카로웠던 편이다.20 그러나 미학적 실천은 이제 그런 성격을 대거 상실했고, 예술의 상품화 아니면 상품의 부가가치 제고를 위한 수단으로 전환되었다. 오늘날 정치가 심미화되었다는 것은 미학적 실천의 이런 측면이 정치에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 정치의 심미화는 권력과 정치의 연예화 또는 오락화로 나타난다. 연예인이 정치인이 되고 정치인이 연예인이 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정치의 연예화와 오락화는 사회적 갈등과 모순을 금융적 위험과 유사한 정치적 위험으로 전환시켜 관리하는 새로운 기술인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갈등과 모순의 해결은 이제 적대와 대결, 투쟁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정치적 승리에서 더 요긴하게 활용되는 것은 그 대신 이미지와 여론의 형성이고, 이를 위한 각종 행사를 조직하는 기획과 연출 능력이다. 이에 따라 정치는 갈수록 정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연예프로그램에서 다음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전 프로그램 내용이 바로 잊혀져버리듯이, 정치적 쟁점은 행사와 일정의 흐름에 그 의미가 부각되거나 소멸되고, 정치도 부박함과 일시성, 단명성이라는 금융화시대 시간경험 일반의 자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의 연예화는 따라서 사회적 쟁점을 프로그램으로 짜서 다루는 일을 관행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3. 공간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와 연계된 공간 생산에서 일어난 변화를 문화정치경제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위에서 살펴본 공간적 변동이 일어나려면, 문화와 정치와 경제의 관계는 어떻게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일까? 그리고 정치경제, 문화정치, 문화경제는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하고, 정치경제는 문화와, 문화정치는 경제와 그리고 문화경제는 정치와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고 작동해야 하는가?

오늘날 공간의 금융화가 새로운 경제적 논리에 따라 작동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주로 ‘금융적 매개’를 통해 진행되고, 이 과정에서는 M-M' 운동이 M-C-M' 운동을 추동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작동하는 것이 기획금융과 파생상품, 그리고 ABS, ABCP, MBS 등 무수히 많은 금융상품들이다. 오늘날 이들 상품이 대거 동원되어 공간 생산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 과정이 철저하게 자본의 흐름에 종속되고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제적 과정이 오늘날 공간 생산을 주도하려면 정치적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도 생각해야만 한다. 최근에 한국에서 건조환경이 거대한 규모로 들어서게 된 데에는 정치적 의사결정의 일환으로서의 정책이 작용한 측면이 매우 크다. 한국정부는 1990년대 말부터 각종 금융상품을 제도적으로 도입했고, 지방정부의 경우 PPP 사업을 빈번하게 벌여 대규모 부동산 개발을 조장했다. 부동산 규제 완화를 추진한 것은 김대중 정권 이후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한국 지배블록의 일관된 모습으로서, 부동산 정책에 관한 한, 자유주의 세력과 권위주의 세력 간에는 아무런 차이를 보여주지 않는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는 최근 한국의 국가적 정책 노선이었던 것이다. 이 정책은 기본적으로 금융화 정책인바, 여기서 금융화는 경제적 논리로 작동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정치적 결정을 기초로 진행된다고 봐야 한다.

아울러 공간의 금융화는 광고 등 문화적 기제에 의해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예컨대 기획금융으로 개발되는 부동산의 사업성 즉 상품 가치가 의문스럽고 실제로 높지 않다 하더라도, 그것을 더욱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오히려 더 집요하게 일어난다. 이때 흔히 가동되는 것이 특정 부동산 개발 사업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이미지나 텍스트, 담론 생산 등으로 구성되는 의미생산 기제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부동산 건설사들이 이영애 같은 슈퍼스타를 동원하여 자사 아파트를 선전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아파트 판매를 위해 대대적인 광고 행위를 하는 것은 금융화 시대의 현상으로, 과거에는 드문 일이었다. 부동산 광고는 “이미지 생산과 마케팅을 통한 회전시간 가속화”(Harvey, 1989: 290) 노력의 일환으로, 오늘날 아파트 광고가 늘어난 것은 이제는 주택이 주거공간 즉 사용가치로서보다는 금융적 자산 성격을 더 많이 띰으로써 생긴 일일 것이다.

공간의 금융화는 이처럼 경제적 문제인 것만이 아니라 동시에 정치적이면서 문화적이기도 한 문제가 되었다. 공간의 금융화를 통해 문화와 정치와 경제는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아래에서는 공간의 금융화를 문화적 정치경제, 경제적 문화정치, 정치적 문화경제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3.1 공간의 금융화와 문화적 정치경제

안면성을 강조하는 거대 경관의 조성은 오늘날 금융화 흐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고덤이 지적한 대로, “MBS, SIV, CMO, CDO 등이 만들어져 활용되면서 부동산 개발은 지역적 축적망을 벗어나서 지구적 자본시장과 연결되었다”(Gotham, 2009: 363). 금융공학을 기반으로 하는 부동산 개발이 이루어지면, ‘금융적 매개’로 인해 ‘개발의 세계화’와 함께 개발 사업의 거대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Theurillat, 2011). 박근혜 후보의 대선 당선 뒤 1주일간 한국 뮤추얼펀드에 6억5천만 달러가 유입된 것이 그 한 증거다(이투데이, 2012.12.27). 박근혜 정권은 출범 초기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 임대주택 리츠 및 펀드 등의 활성화 조치를 취하며 부동산 증권화 정책을 강화했다(미디어스, 2013.4.2). 이런 일이 박근혜 정권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물론 아니다. 이미 1990년대 말에 IMF 구제금융을 수령하는 과정에서 금융 자유화를 더 한 층 강화하게 되면서, 외국 자본의 국내 부동산 시장 유입 허용, MBS 및 리츠 및 뮤추얼펀드 제도 도입이 이루어졌다. 이 결과 한국 부동산 시장은 국제 금융체계와 긴밀하게 연계되었고, 무산되기는 했지만 용산역세권 사업, 에잇시티 사업 등 각종 대규모 지역개발 사업이 추진된 것이다. 이런 점은 경관 형태의 대규모 건조 환경 건설이 국내외 금융자본 흐름을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짐을 말해주며, 금융자본의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경제적 연계가 오늘날 공간 모습을 규정하는 지배체계의 일환으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이 지배체계는 신자유주의 축적 체제로서, 지난 수십 년간 한국사회 지배블록이 구축해온 것이다. 2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은 1987년 개현 이후 권위주의 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이 경쟁적 공존을 통해 지배블록을 형성한 가운데 신자유주의 축적체제를 관리해왔다.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에 개발 독재를 두고 상반된 입장을 취하던 두 세력이 이제는 서로 적대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은 여전하더라도, 신자유주의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정권 쟁취를 위해 경쟁하는 공존관계에 들어선 것이다. 이 결과 1980년대 말, 특히 문민정부가 출범한 1990년대 초 이후 한국에서 정권을 획득한 세력은 모두 신자유주의자가 되었고, 금융화 또한 그에 따라 일관되게 강화되어 왔다. 이처럼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는 것은 이 시기가 통념과는 다르게 ‘민주화’보다는 ‘자유화’의 지배를 더 많이 받았다는 말이 된다.

공간의 정치경제는 이 맥락에서 어떻게 작용하는 것일까?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진행되면서, 국가, 자본, 노동의 권력관계로서의 정치경제는 한국을 위시한 많은 나라들에서 자본의 축적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국가가 노골적으로 나서는 형태를 띠었다. 앞서 살펴본 대로, 공간의 금융화를 추동하는 도시의 금융화, 부동산의 증권화는 부동산시장과 금융시장이 연계됨으로써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등 정부지원기관(GSE)이 1980년대 초부터 리츠 상품을 개발하며 부동산 2차 시장을 만들어낸 것은 단순히 새로운 부동산 시장이 등장한 것이 아니라, 그런 시장을 등장시키는 정치적 세력이 나타났다는 것, 따라서 새로운 정치경제적 질서가 만들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공간정책에서 작동한 정치경제는 그리하여 ‘기업가형 도시’, ‘경쟁 도시’를 출현시켰고, 노동자들과 여타 사회적 주체 다수를 부동산 개발 지지자로 만들었다. 노동자계급이 자본 축적을 위한 정책의 지지자가 된 것은 신자유주의 축적 체제가 노동권을 약화시키고 사회적 혜택을 줄인 가운데 민영화 등으로 국가의 공적 부문 사유화를 촉진하고, 특히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금융화 촉진을 위한 금리인하 정책으로 개인들로 하여금 저축보다는 대출에 의존하도록 만든 결과로 해석된다. 금융화는 각종 노동자계급의 노후 복지를 위해 쌓은 연기금도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노동하는 개인들은 대거 부동산을 위시한 금융자산 투자자로 전환되었다.

한국에서 공간의 금융화가 빚어낸 정치경제의 지배적 모습은 발전주의가 종식된 뒤에도 공간 개발을 더욱 가속시킨 ‘신개발주의’다. 신개발주의는 “겉으로는 보전과 환경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개발을 더 부추기”는 현상, “경제를 여전히 팽창시키고 있는 우리 사회의 ‘발전 관성’이 새로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현상으로 그 특징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시장논리에 따라 환경을 이용·활용하는 데 있다”(조명래, 2003: 50).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개발 강화 경향이 개발주의의 신자유주의적 변형이라는 점이다. 신개발주의는 개발주의의 신자유주의적 변형으로서, ‘환경 보호’, ‘지속가능한 개발’, ‘녹색 성장’, ‘삶의 질 향상’ 등을 내걸고 ‘협치’를 바탕으로 추진되곤 한다. 신개발주의를 추진하는 세력은 ‘개발동맹’, ‘성장연합’, ‘토건마피아’ 등으로 불리며, “정치가, 건설자본, 관료 및 공무원, 언론, 개발주의 학자, 부동산 업계, 금융기관 등의 연합세력”이다(강수돌, 2007: 129???). 개발동맹 또는 성장연합이 영향력을 행사하며 오늘날 한국의 공간 환경을 새롭게 바꿔내는 것은 한국에 새로운 정치경제적 질서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해주며, 이는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공간정책으로 발현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화정치경제’의 문제설정을 환기해보면, 이와 같은 정치경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문화가 그와 연동하여 작동해야 한다는 점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신개발주의’가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에서 지배적인 공간의 정치경제 체제로 작동하려면 어떤 형태의 문화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개발동맹’, ‘성장연합’, ‘토건마피아’ 등 특정한 경제 세력이 대대적인 개발사업을 진행할 수 있으려면 한편으로는 새로운 정치적 조건을 필요로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와 성행한 ‘협치’가 그런 중요한 요건에 해당한다. 정치인, 고위관료, 도시공학자, 자본가, 법률가 등 소수의 전문가 집단이 수조, 수십조 원이 소요되는 기획금융 사업을 민주적 통제를 우회하여 추진하려면 오늘날 정치적 의사결정이 새로운 형태를 띠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신개발주의가 반드시 정치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필요로 함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신개발주의는 다른 한편으로, 담론적, 이데올로기적, 수사학적 환경을 중심으로 하는 특유한 문화 구성체를 바탕으로 하여 작동하는 것이다. 강수돌에 따르면 신개발주의가 한국에서 작동하게 된 데에는 강력한 ‘교육효과’가 작용했다. 즉 IMF 긴축재정 과정을 거치며 “사상 초유의 ‘폭력적 경험’이 작용했다는 것이다(강수돌, 2007: ???). 이것은 당시의 충격, 심리적 효과로 환경을 경제적으로 경영한다는 관념, ‘지속 가능한 개발’, ‘녹색 성장’과 같은 담론이 형성될 수 있게 되고, 이로 인해 신개발주의가 작동했다는 것으로, 신개발주의의 정치경제가 문화적 차원을 전제하며 작동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한국의 신개발주의는 1960년대, 70년대 이래 ‘개발주의’ 담론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아울러 지역개발 세력의 헤게모니가 작동하는 가운데서 추진되었다고 할 수 있다(박배균, 2008).

나는 이런 점 이외에 우리가 이 장 앞에서 본 ‘경관화’와 ‘안면화’의 작동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싶다. 경관의 조성은 기본적으로 시각적 경험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따라서 지각과 감각의 변화를 초래한다. 새로운 경관의 조성은 새로운 지각 및 감각의 조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 5장 9.2절에서, 그리고 이 장 앞 절들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리벽면을 주된 외관으로 가진 오늘날 도시경관을 지배하는 고층건물들은 유한이 사람들 시선 끄는 일에 몰두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속에 속해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즉 그들로 하여금 경관세계와 동일시하게 하는 효과가 매우 크다. 이 효과의 구체적인 인간형태가 다음 장에서 살펴볼, 오늘날 크게 늘어난 ‘투자자 주체’다. 공간의 금융화가 강화될 수 있었던 데에는 앞서 살펴본 대로 금융적 매개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지만, 이런 활동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대규모 연금과 같은 노동자들의 복지기금이 국내외 개발사업에 투자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계급 상당 부분이 ‘금융 자본가’로 전환함으로써 공간의 금융화를 지원하는 세력으로 바뀌었다.

3.2 공간의 금융화와 경제적 문화정치

공간의 금융화로 일어나는 가장 큰 시각적 변화는 경관이 곳곳에서 조성된다는 것이고, 이로 인해 도시의 안면성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안면성의 강화는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스펙터클이 확산하여 시각경험을 지배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스펙터클은 상품논리에 따라 만들어진 ‘추상공간’을 지배하는 시각적 경험 대상으로서,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진행되면서 더욱 더 큰 중요성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들어와서 도시경관이 새로운 건조환경의 조성으로 유난히 안면성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스펙터클의 확산을 오늘날 도시공간에서 지배적으로 떠오른 경관이 극장 또는 무대의 성격을 띠며, 오늘날은 이 무대가 대거 화면screen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과 관련시켜 볼 수 있을 것 같다(Lukinbeal, 2005). 도시가 극장, 무대, 화면이 된다 함은 추상공간의 한 특징을 띤다는 것이고, 특히 화면으로 전환된다는 것은 오늘날 추상공간이 무엇보다도 금융화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말이다. 화면은 이때 금융거래를 가능케 하는 디지털기술과 긴밀하게 연결된 표현 매체, 삶의 변동성이나 휘발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은 주사법走査法을 자신의 표현기술로 작동시키는 매체인 듯싶다. 화면의 중요성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작용한다는 데서도 비롯된다. 오늘날 극장이나 무대보다는 화면이 중요해진 것, 그것도 디지털화면이 중요해진 것은 정체성 형성의 한 기반으로서 매체나 기술이 변동했다는 말이다.21

근대사회는 기본적으로 푸코가 지적한 대로 ‘훈육사회’였다. 훈육사회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이동을 할 수 있는 조건에서, 그들을 범인, 학생, 노동자 등으로 분류하여 학교, 공장, 군대, 감옥, 병원 등 ‘감금장치’에 사람들을 배치하고 이들에게 습속을 각인시킴으로써 생산적 활동을 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20세기 말로 접어들며 훈육사회는 들뢰즈가 지적한 것처럼 ‘통제사회’로 전환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Deleuze, 1995: 174). 통제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지속보다는 흐름이며 이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훈육사회는 비교적 장기로 지속할 습속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는 편이라면, 통제사회에서는 필요에 따라 정체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더 요구된다. 지배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흐름 즉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각종 변동(시차에 따라 달라지는 차량행렬의 모습과 공간에 따른 유동인구의 크기 변화나 환율 및 주가 변동 등)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외환딜러를 포함하여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환율이나 주가 변동을 보여주는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빅 데이터big data’가 핵심 사안으로 떠오르고, 대도시에 CCTV가 설치된 곳이 늘어나는 것이 그 증거라 하겠다.

오늘날 경제적 문화정치와 이런 변화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표현, 재현, 담론을 통해 권력이 행사되고, 또 권력의 쟁취를 둘러싼 갈등과 투쟁이 어떻게 표현되느냐가 중요함을 전제하는 것이 문화정치의 문제라면, 안면성을 강조하는 경관이 만들어지면서 스펙터클이 연출되면, 어떤 종류의 권력이 행사되고 또 어떤 표현방식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일까? 기 드보르Guy Debord에 따르면, “스펙터클은 역사와 기억을 마비시키고 역사적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어떤 역사도 억압하는 지배 사회의 방책으로 간주되며, 시간의 허위의식을 표상한다”Debord, 2002: para. 158). 이처럼 스펙터클을 시간 소외 현상으로 보는 문제의식에서는 ‘시간 해방’이 중요한 과제로 설정되어 있는 것 같다. 드보르와 상황주의자들이 ‘전용détournement’ 전략을 중시했던 것은 시간의 스펙터클화에서 벗어나고자 했기 때문이다.22 오늘날 대규모로 조성되어 있는 도시경관, 고층건물 유리벽면과 CCTV, TV, 컴퓨터, 나아가서 스마트폰 등의 형태로 만연한 화면들로 구성된 스펙터클을 M-M' 순환의 강화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면, 그런 스펙터클은 자본의 회전시간을 더욱 단축하려는 자본의 시간 전략에 사람들을 포획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전용’ 전략은 반면에 “자본주의 체제와 그 매체문화의 표현을 자본주의 체제에 등을 돌리게 하는 것”으로 전복적인 성격을 갖는다(Holt and Cameron, 2010: 252???). 맥도널드사의 상표 M을 거꾸로 그려놓고 그 아래에다 노동을 뜻하는 ‘work'를 그려 넣음으로써, 이 전략은 스펙터클을 지배전략으로 활용하는 자본주의적 문화정치에 대한 저항하는 것이다.

스펙터클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지배에 종속된 시간 논리만 반영하지는 않는다. 르페브르에 따르면, 오늘날 시간의 소외는 공간의 소외에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봐야하고, 스펙터클은 추상공간의 영향 하에 구축된 것으로 봐야 한다(Ross, 1999). 이렇게 볼 경우 오늘날 사람들이 집적된 상품과 스펙터클에 매료되어 있고, 외환딜러가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환율의 출렁임을 그래프로 나타내는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밤마다 축제가 벌어지는 듯 화려한 야경이 펼쳐지는 것 등은 시간이 허위의식으로 변한 결과인 것만이 아니라, 공간이 자본에 의해 포획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정치는 어떻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공간의 금융화와 와 함께 어떤 종류의 담론이나 수사, 재현 양식 등을 통해 의미 생산이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권력관계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묻는 것과 같다. 이 장 6절과 7절에서 나는 경관화와 안면화를 공간의 금융화 과정을 반영하는 두드러진 특징들로 꼽았다. 대규모 경관의 조성, 이렇게 조성된 경관에서 나타나는 안면성에 대한 강조는 오늘날 중대한 의미생산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스펙터클을 중심으로 하는 시각적 경험임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미 생산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그와 함께 어떤 종류의 문화정치가 작동하는 것일까. 경관의 ‘의미’는 경관의 무엇임, 그 정체로서 ‘명백함’이라는 형태를 띠어야 한다. 이 명백함은 “하나의 단어로 하여금 ‘어떤 사물을 지칭하거나’ ‘어떤 의미를 갖게’ 만든다.”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가 지적한 것처럼, 이런 명백함은 “이데올로기적 효과, 기본적인 이데올로기적 효과다.” 이때 이데올로기는 우리로 하여금 “그건 명백해!, 그게 맞아! 그게 사실이야!” 하고 말하도록 한다(Althusser, 2008: 45-46). 경관은 우리로 하여금 “바로 그거야, 그래 저게 내가 원하는 거야” 하도록 만드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갖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사실 자신을 경관의 일부로 만들고자 하는 경향이 아주 높다. 지금은 평범한 사람들도 화면에 등장하는 것이 거의 일상화된, 대중적 배우의 시대다. 결혼식 등 대부분 사람들이 치르는 통과의례에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데서 셀카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계속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23

이런 문화정치가 어떤 경제적 의미를 갖는지 가늠하려면, 화면에 등장하기 위해 사람들이 어떤 투자를 해야 하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스크린에 등장하기 위해 자신의 소득, 아니 자산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문화정치에서 경제는 이제 개인들이 자신을 창의적인 존재로 만들기 위해 행하는 투자행위로 나타난다. ‘투자자’로 전환된 개인들은 그 무엇보다 경제적 주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투자자, 경제적 주체야말로 경관과 스펙터클이 공간을 지배하는 오늘날 신자유주의 금융화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인간형일 것이다.

3.3 공간의 금융화와 정치적 문화경제

‘경제’의 구성에는 반드시 문화적 과정이 작용하고, 문화 또한 경제와 무관하지 않게 작용한다는 것이 ‘문화경제’의 문제설정이라면, 오늘날 공간의 금융화로 조성되는 문화경제는 어떤 모습과 방식으로 작동하는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치적 실천은 어떤 변동을 겪는 것일까? 이런 질문과 관련하여 강조할 점이 있다. 즉 공간의 금융화에는 금융적 매개가 핵심적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금융화 시대의 공간 생산에는 파생상품, (부동산)기획금융, ABS, ABCP, MBS, 리츠 등의 참여가 대규모로 이루어짐을 확인한 바 있다. 공간의 금융화와 관련하여 정치적 문화경제 변동이라는 문제를 생각해보려면, 따라서 무엇보다도 금융적 매개가 어떻게 일어나며, 이로 인해 어떤 사회적 변동이 발생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오늘날 도시경관을 지배하는 새로운 건조환경 조성에 금융적 매개가 핵심적 작용을 한다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공간 생산을 위한 새로운 문화경제가 구축되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문화가 경제적 기능을 강화하고, 경제가 문화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식이 오늘날 새롭게 등장했다는 것이다. 문화경제를 문화의 경제화, 경제의 문화화가 융합된 현상으로 본다면, 예컨대 최근 들어 부동산 개발 만연 현상은 문화경제의 어떤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우선 문화가 일상생활과 긴밀하게 관련된 문제이기도 함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상생활에는 관행과 습속, 전통이 깃들어 있고, 대중이 이들 후자를 중시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그들이 소중하다고 보는 의미와 가치가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금융적 매개의 확산과 더불어 새로운 문화경제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오늘날 일상생활이 변화하고, 거기 깃들은 전통과 습속, 관행이 수정되면서 새로운 의미와 가치가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금융적 매개의 만연은 공간을 통해 영위되는 일상적 삶을 경제화하는 경향을 강화시킨다고 할 수 있다. 삶의 터전으로서의 주택을 자산화하고, 투자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그런 경우다. 오늘날 사람들이 부동산을 담보로 잡혀 은행에서 대출한 부채는 대부분이 채권으로 바뀌어 있고,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파생상품을 통해 거래된다. 최근 들어와서 부동산 시장이 자산 시장으로, 자산 시장이 자본 시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이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런 시장의 작동은 전통적으로 ‘경제’만의 문제로 치부되어왔다. 하지만 앞에서 본 것처럼 부동산 소유가 만연한 데에는 담론지형의 새로운 형성으로 작동하는 ‘소유권 사회’ 이데올로기의 역할이 작지 않다. 소유권 사회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방식은 개인들의 욕구와 욕망, 교육, 사적 이력―가족사, 유년시절의 경험, 애정관계 등―이 얽혀서 만들어내는 복잡한 양상이며, 신자유주의적 경제적 가상이 지배하는 문화적 지형의 영향권 안에 놓인다고 할 수 있다.

각종 금융상품 거래가 확산되고, 정책적으로 부동산 시장 활성화가 이루어진 2000년대에 들어와서 사람들은 그리하여 대거 투자자로 전환되었다. 주택이 사용가치보다는 교환가치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면, 경제와 문화의 구분도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의미 있는 것, 좋은 것, 바람직한 것의 의미도 그래서 바뀌었다. 탤런트 김정은이 유행시킨 BC카드 광고 문안(“부자 되세요!”)대로, 이제는 돈 버는 일이 멋있고 좋은 것이 되었다. 삶의 터전으로서의 주택이 자산으로 전환되는 것이 문화적인 것의 경제화를 의미한다면, 돈 버는 일을 멋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경제적인 것의 심미화를 의미한다.

공간의 금융화와 함께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주택을 자산으로 간주하게 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은 투자자로 즉 자본가로 행세하기 시작했다. 랭글리에 따르면, 영국의 미불 임대용 주택담보 대출금은 1998년 말 20억 파운드에서 2004년에는 470억 파운드로 늘었고, 미국에서는 2004년 구입된 모든 주택구매의 23퍼센트가 투자 목적으로 이루어졌다(Langley, 2007: 21???). 2014년 현재 유럽연합에 1100만 채의 빈집이 있는 것은 부유한 투자자들이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대하여 주택을 사놓고 방치한buy to leave 결과 생긴 현상이다(Neate, 2014.2.23.). 다주택자로 임대용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주거용 주택구입자 또한 투자를 겨냥한 경우도 없지 않으며, 이들은 단타 매매자flippers가 된다. 오늘날은 이리하여 유례없이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투자자로 전환되었고, 한국에서도 특히 2000년대 들어와서 금리 인하와 함께 투자 또는 투기 목적의 부동산 구입이 크게 늘어났다.

새로운 문화경제가 형성됨으로써, 다시 말해 부자로 사는 것이 멋있는 삶이라는 인식이 팽배함으로써 사람들의 정치적 태도 또한 바뀌게 되었다. 공간의 금융화 또는 부동산 증권화와 함께 나타난 개인들의 부동산 투자에의 관심 증가가 가져오는 정치적 효과는 명백하다. 한국에서 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게 된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부동산시장을 더욱 더 활성화시킬 것으로 기대한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을 보면 공간의 금융화로 인해 형성되는 문화경제의 기본적인 정치적 효과는 보수적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각주

1) 맑스가 지적하듯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화폐소유자는 상품시장에서 자유로운 노동자를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화폐소유자와 자유로운 노동자의 만남 즉 자본과 노동력의 조우는 “자연사적 관계도 아니며 또한 역사상의 모든 시대에 공통된 사회적 관계도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과거의 역사적 발전의 결과”다(맑스, 2001a: 221). 이 발전을 야기한 것이 16세기 이후 진행된 원시적 축적이다. “임금노동자와 함께 자본가를 탄생시킨 발전의 출발점은 노동자의 예속상태였다……시초축적의 역사에서는, 자본가계급의 형성에 지렛대로 역할한 모든 변혁들은 획기적인 것들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획기적인 것은, 많은 인간이 갑자기 그리고 폭력적으로 그들의 생존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무일푼의 자유롭게 의지할 곳 없는 프롤레타리아로 노동시장에 투입되는 순간이었다”(맑스, 2001b: 982-83). 블라우트J. M. Blaut는 유럽에서의 자본 형성에 대해 맑스와는 다른 설명을 제공한다. “16세기의 식민지 사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본을 만들어냈다. 하나는 금과 은 채굴이었다. 둘째는 주로 브라질에서의 플랜테이션 농업이었다. 셋째는 아시아와의 향신료, 직물 등 교역이었다. 넷째이자 절대 사소하다 할 수 없는 것이…아메리카에서의 다양한 생산 및 상업 활동으로부터 유럽 투자자들에게 돌아온 이윤이었다. 다섯 번째는 노예매매였다. 여섯째는 해적질이었다. 이 모든 것이 정상적인 자본축적이란 점에 주목하라. 그 어떤 것도 ‘원시적 축적’으로 불리는 신비로운 사안은 아니다”(Blaut, 1993: 188).

2) ‘규범경제학’, ‘도덕경제학’을 두둔하자는 것이 이 글의 취지는 아니다. 신고전주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양의 시간선호를 바탕으로 미래를 희생시키는 경향이 있다면, 도덕경제학은 현재를 희생시키는 경향을 드러낸다. 이 글은 신자유주의 지배 국면에서 확산되어온 미래할인 관행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지만 그렇다고 도덕경제학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현재시간 선호가 문제라고 해서 현재의 욕망을 억압하고 욕망의 충족을 미래로 연기(또는 차연(差延))할 경우 자본축적 전략의 한 형태인 청교도적 요구에 굴복하는 셈이 될 것이다.

3) 이 점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질서를 구상하는 브레턴우즈 협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케인스가 사실 크게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사실로써 확인된다. 당시 협상은 미국과 영국이 주도했다고 하지만 영국의 입장을 대표한 케인스보다는 미국의 입장을 대표한 누가 더 큰 발언권을 행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4) 파생상품의 경우 미래노동에 대한 기대에 대한 투자로만 볼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브라이언과 래퍼티에 따르면 파생상품은 ‘노동’을 통해 설계되고 생산되는 상품이기도 하다(Brian and Rafferty, 2006: ???).

5) 전두환 정권 하에서 예컨대 해방 이후 실시되어오던 통행금지제도를 해제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루 24시간 가운데 밤 4시간은 통행을 못하게 함으로써 시간 사용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한 관행을 결정적으로 바꾼 조치로서 한국인의 시간사용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6) 자크 비데Jacques Bidet에 따르면, 자본주의 권력 구도는 부 생산과 역능 생산 전문가들의 협조와 갈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대 사회에 대한 ‘메타구조적’ 접근에 따르면, 지배계급은 두 개의 ‘계급 요인들’에 상응하는 두 ‘기둥’ 즉 소유를 지배하는 시장전문지식을 지배하는 조직(생산적, 행정적, 그리고 문화적)을 포함한다”(Bidet, 2013: 3. 원문 강조).

7) C-M-C 순환의 경우 물론 당연히 사라진 것은 아니나 M-C-M' 순환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고 하겠다.

8) 시티그룹은 이런 법적 지원을 받은 지 10년도 되지 않은 2008년에 금융위기가 발발했을 때 미국정부로부터 3천억 달러에 해당하는 보증을 받고, 현금 450억 달러를 투입 받았다(홍석만·송명관: 80).

9) ‘대금이월자’는 한 신용카드로 대출받은 돈을 다른 신용카드로 갚으며 대금을 이월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미국인이 평균적으로 소지한 신용카드 장수는 1989년 7장에서 1999년 11장으로 늘어났다(Clayton, 2000: 90; Langley, 2005: 18에서 재인용). 한국인의 경우 2010년 현재 평균 5장 정도의 신용카드를 소지하고 있다.

10) 골드만삭스, 리먼브라더스 등의 투자은행들은 자신들의 대출위험 부담을 줄이고자 주택담보부증권(MBS)를 만들어 판 뒤, 이것을 다시 부채담보부증권(CDO)로 만들어 팔았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들 상품을 대상으로 신용부도스와프(CDS)까지 개발해 팔아먹었다(홍석만·송명관: 88). 4장 3절에서 언급한 내용을 반복하면, CDS는 2005년 6월에 10조 1,100억, 2005년 12월 13조 9,080억, 2006년 6월 20조 3,520억, 2006년 12월 28조 6,500억, 2007년 6월 42조 8,500억 달러로 규모가 급증했고(Lapavitsas, 2009: 136),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CDS는 58조 달러 규모였다(Duménil and Lévy, 2011: 107).

11) 지배블록에는 투자은행 등만 아니라 FRB, 미국정부, 의회, 페니메이, 프레디맥과 같은 준정부기관, 그리고 신자유주의 이론을 전파한 경제학자 등이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

12) 이미 위기가 분명해진 2007년에 비우량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의 수도 720만 명이나 된다(홍석만·송명관: 87).

13) 2000년대에 들어와서 부채에 기반을 둔 자산 팽창과 함께 부동산 거품이 일어난 나라는 미국, 아일랜드, 스페인, 한국 등이다. 일본은 1990년대에 같은 경험을 한 뒤 ‘잃어버린 20년’을 맞게 되었고, 유로존 위기 이후 프랑스와 독일에서 부동산 경기의 이상 활황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관련 논의는 홍석만·송명관(2013)의 3부 참고.

14) 미래 제거는 여기서 현재시간선호에 따라서 발생하는 미래할인 행위를 통해, 100년이나 500년 후 세대가 특정한 자연환경, 특정한 도시 구역 등의 모습 등을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행위를 가리킬 수 있다.

15) 마르스든이 언급하는 ‘가상조직’은 어느 한 지점에 존재하지 않고 인터넷상으로만 존재하는 조직을 말한다. 가상기업, 가상사무실 등이 있다.

16)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속도의 경제’와 ‘느림의 미학’이 공존하는 현상에 주목하는 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삼성경제연구소, 2010.7.7).

17) 사용가치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면 적어도 한동안 같은 욕구가 생기지 않지만, 욕망은 충족을 모른다는 것이 특징이다.

18) 연예인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최근에 연예인 지망생을 뽑는 오디션 절목이 부쩍 늘어난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연예인들이 동종 직종 안에서 결혼하고, 특히 연예산업 내에서 직업을 상속하는 사례가 는 것은 연예인의 사회적 지위가 그만큼 상승했다는 말일 것이다.

19) ‘15분의 명성’은 팝 예술인 앤디 와홀Andy Warhol이 “누구라도 15분의 명성은 누린다”고 한 데서 나온 표현이다.

20) 스스로 자율적 실천임을 주장한 한에서 근대 미학은 자본주의 비판에 속한다. 뷔르거Peter Bürger에 따르면, 사회로부터 분리된 독자적인 예술제도는 그 자체로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었다(Bürger, 1986). 물론 이 비판의 실질적인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는 또 다른 비판도 있다. 볼탄스키Luc Boltanski와 시아펠로Ève Chiapello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등장한 새로운 자본주의” 즉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행위, 사람, 사물들의 정체성과 그들 간의 관계를 조직하는 새로운 규범과 가치”를 매개한 것은 “바로 1968년의 혁명이었다”(서동진, 2008: 208). 그들은 1968년 세계 혁명은 처음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예술적 비판의 결합 형태를 띠었으나 결국 예술적 비판으로 축소되고 말았고, 이로 인해 신자유주의적 논리를 강화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고 본다.

21) 무대와 극장이 처음 정체성 형성의 주요 기반이 된 때는 영국 르네상스 시대임을 기억하자. 이때 사람들은 인클로저 운동의 시작으로 장원의 구속된 삶으로부터 벗어나 대거 타지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출신과 신분에 의해 정체성이 규정되던 장원을 떠난 사람들의 정체성 형성 방식은 크게 달라진다.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연출하느냐가 이제 더욱 중요해지며, 정체성도 그런 연출의 효과로 새로 형성되는 것이다. 르네상스시대 영국에서 연극이 주요 장르로 떠오른 것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대거 고향을 떠나 새로운 ‘인생의 무대’로 나서는 일이 많아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22) ‘전용détournement’은 ‘기존 미학적 요소들의 전용’의 준말이다. 국제상황주의자들의 정의에 따르면 그것은 “현재 또는 과거 예술적 산물의 더 우월한 환경 구성으로의 통합”이다. “이런 의미에서 상황주의적 회화나 음악은 있을 수 없고, 그런 수단에 대한 상황주의적 활용만 있을 뿐이다. 좀 더 기본적인 의미에서, 구 문화영역들 내에서의 전용은 선전의 방법, 즉 그들 영역의 중요성 소진과 상실을 드러내는 방법이다”(Situationist International, 1958).

23) 옥스퍼드 사전은 ‘셀카’의 영어 표현인 ‘셀피selfie’를 2013년 올해의 국제어로 선정한 바 있다(Australian Associated Press, Nov. 1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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