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폭탄, ‘복지 증세’ 논쟁 새 국면 열렸다

담배세·지방세 인상...‘증세 없는 복지’에 이은 ‘서민 증세’?

정부가 담뱃값을 내년부터 2000원 인상해 4500원으로 하겠다는 안을 내놓으면서 때 아닌 ‘증세’ 논쟁이 촉발되었다.

정부는 지난 11일 “현재 우리나라 담뱃값은 2004년 이후 10년째 동결되어 담배실질가격이 하락하고 있으며, OECD 34개국 중 최저 수준으로 상당 폭의 가격 인상이 필요하다”면서 이와 같은 인상안이 담긴 금연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번 금연종합대책 추진으로 담뱃값을 500원 인상한 2004년 보다 더 큰 폭의 흡연률 하락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면서, 현재 43.7%인 성인남성 흡연률을 29%까지 줄이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이처럼 정부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흡연률 감소’와 ‘국민건강 증진’이지만, 즉각 본질적인 의도는 ‘세수 확보’에 있다는 반론들이 제기됐다.

지난 며칠간 SNS를 통해 많이 퍼진 SBS 하현종 기자의 12일 자 <담뱃값, 3500원도, 5500원도 아닌 하필 4500원일까>라는 기사는 이 문제를 직접 겨냥했다. 이 기사는 주로 지난 6월 조세재정연구원이 발표한 <담배과세의 효과와 재정>이라는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정부가 명분과 속내가 다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사는 우선 담배가 중독성이 강한 ‘가격 비탄력적 상품’이기 때문에 “담뱃값이 오르면 소비는 줄지만 단기적으로 세수는 늘어난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러나) 담배가 아무리 중독성이 있어도 너무 비싸면 안 피우거나 못 피우는 상황이 벌어진다. 가격을 계속 올린다고 해서 세수가 계속 오르는 것은 아니”라고 짚었다.

이에 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는 담배 가격 상승 폭에 따른 추가 세수 규모를 추정하는데, 담배 가격을 2500원에서 조금씩 올리면 세수가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정점을 찍고 줄어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 정점이 정부가 제시한 가격인 4500원이라는 것. 보고서의 추정치에 따르면 담뱃값이 4500원 일 때, 세수는 총 2조7천억 원이 된다.

이러한 의혹은 정부가 담뱃값 인상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 주민세와 영업용 자동차세 등을 대폭 인상키로 발표하자 더욱 커졌다. 안전행정부가 12일 발표한 지방세기본법·지방세법·지방세특례제한법 등 지방세 관련 3법 개정안에 따르면, 전국 시군구 평균 4620원이 부과되는 주민세는 향후 2년간 1만 원 이상~2만 원 미만으로 대폭 인상된다. 또한, 법인의 주민세는 2년에 걸쳐, 자동차세는 3년에 걸쳐 100% 인상키로 했다.

  정부는 담뱃값이 내년부터 2000원 올린 4500원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담뱃값에 국세인 개별소비세도 추가되었다. ⓒKBS

‘증세 없는 복지’는 지고, “돈 낸 만큼 받아라”?

이처럼 연달아 나온 정부 발표에 즉각 ‘서민증세’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담배세와 주민세, 자동차세 등은 소득과 무관하게 부과되는 것이어서 서민에게 더욱 부담을 준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인상안이 이명박 정부와 현 박근혜 정부 초기 단행된 각종 ‘부자감세’ 조치에 뒤따르는 것이란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정권 초기부터 ‘증세 없는 복지’를 내걸어왔던 박근혜 정부가 결국 증세로 돌아섰다는 점을 지적하며, 새롭게 복지를 위한 ‘증세 논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대선 당시부터 무상보육, 기초연금 확대 등 복지 확대 공약을 내걸어오면서도 이를 위한 재정 방안에 대해선 명확하지 않았다. 그나마 지금까지 내놓았던 대책이란 것은 ‘세출 구조조정’, 즉 잘못 쓰이고 있는 세금 구멍을 막겠다는 것뿐이었다. 이는 ‘복지 재원 확대’와는 문제의 진단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정부가 지난해 5월 발표한 ‘공약가계부’에서도 세입 확충 계획은 고작 50조7000억 원으로 제시한 반면, 세출 절감 계획은 84조1000억 원을 제시했다. 그나마 제출된 세입 확충 계획도 직접적 증세가 아니라 비과세, 감면 정비 및 지하경제 양성화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세출 절감 계획은 그간 보건복지부·국민권익위원회 등이 앞장서 복지 수급자를 도덕적으로 낙인찍어왔던 ‘부정수급자 색출’ 공세가 주를 이뤄왔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발표로 인해 논의 지형 자체가 ‘증세’ 쪽으로 확 기울었다. 이런 분위기는 보수언론이 먼저 감지하고 나섰다.

먼저 동아일보는 15일 자 사설 <서민층 부담 큰 ‘꼼수 증세’로 복지비용 메울 참인가>에서 “지난 총선과 대선 때 여아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달콤한 복지 공약만 내세웠다. 무상급식 기초연금 무상보육을 국민에게 거저 주는 것처럼 선심 쓰다가 이제 청구서를 본격적으로 내밀기 시작한 것”이라며 “증세를 해야 한다면 정부가 정직하게 밝히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지적했다.

또한, 중앙일보는 같은 날 <복지비 재원 마련 방안 공론화하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증세에 대한 편협한 해석을 내세워 편법으로 이런저런 세금을 찔끔찔끔 더 걷는 식으로는 늘어난 복지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다”며 “복지비를 지금처럼 계속 늘려갈 것인지, 늘린다면 그 재원을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를 국민에게 다시금 물어야 할 때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앙일보는 “국민이 세금을 더 못 내겠다면 복지를 더 늘릴 수 없는 것이고,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점을 국민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답을 구하라”며 복지 논쟁의 불을 놓았는데, 이런 언급은 사실 일반적으로 복지국가가 추구하는 소득 누진적인 세금에 대한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복지를 포기하던지, 돈 낸 만큼 받던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박으로, 오히려 ‘수혜자 부담 원칙’에 더 가까운 것이다.

  담뱃값 인상을 풍자하는 한 네티즌의 글 (페이스북 캡쳐)

“‘담뱃값 인상 반대’ 주장 넘어, ‘사회복지 목적세’ 도입 주장해야”

이번 담뱃값 및 지방세 인상 등 소득 역진적인 조세 방안도 이런 주장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최근 복지비 부담으로 재정 파탄 위기에 처해 있는 지자체의 짐을 덜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취한 ‘고육지책’이라는 설명이지만, 당장 지방정부가 나서서 반론을 제기했다.

전국 시도지사 협의회(협의회장 이시종 충북지사)가 15일 정부의 담뱃값 인상 계획에 대해 열악한 지방재정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협의회는 특히 담배세에 국세인 개별소비세를 추가한 것에 대해 “개별소비세는 사치성 물품의 소비억제를 위해 도입된 특별소비세의 이름이 바뀐 것인데 서민이 소비하는 담배에 개별소비세를 부과하는 것은 조세 성격상 부적절”하다며 “지방재원의 배분비율을 줄이고 개별소비세 신설 등 국가재원을 늘리는 담배가격 인상안에 대해 반대 한다"라고 밝혔다.

정의당 건강위원회 김종명 정책교육팀장도 13일 정의당 누리집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지금 정부의 방안은 오히려 그간 MB정부 시절의 감세와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확대로 인한 세수부족을 메우기 위한 방편”이라며, 증세의 혜택은 지방세가 아닌 국세, 그 중에서도 개별소비세(1조7800억 원 증가)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김종명 팀장은 정부의 담뱃값 인상에 대한 단순한 ‘반대’ 입장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조건 반대’라는 입장은 담배가격 인상 폭만 줄이는 것으로 귀결되고, 결국 국세 확보를 노리는 정부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 정부의 인상안에 반대해야 할 지점은 ‘인상 자체’가 아니라, 이에 따라 늘어나는 세금의 ‘용도’라는 지적이다. 김 팀장은 담배가격 인상으로 인한 세수확보는 전액 건강증진기금으로 쓰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통해) 2조 원이 넘는 세금이 마련되면, 서민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비 지원이나 저소득층 건강보험료 지원뿐 아니라, 공공의료 인프라를 마련하는데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복지확대로 인한 세수부족은 MB정부의 감세정책을 정상화하는 것으로, 그리고 누진적인 직접세에 부과하는 사회복지 목적세를 도입하는 증세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면서 “서민증세와 부자증세의 대립구도는 비현실적이며, 단지 증세에 대한 반감만을 키우는 부작용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말

하금철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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