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1천여 사내하청 ‘정규직’ 판결, 어떤 파장 일까

직접계약 관계 아닌 ‘2차 하청’도 정규직...제조업 전반에 영향 미칠 듯

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1천여 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1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부장판사 정창근)가 현대차 사내하청 9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인정한 데 이어, 19일에는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부장판사 마용주)가 20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지위를 인정했다.

판결에 따르면 법원이 현대차 전 공정에서 불법파견이 이뤄져 왔다는 점과,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이라는 점을 모두 인정한 셈이 된다. 현대차 내부뿐만 아니라, 자동차 업종을 비롯해 제조업 전반에 파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난 2010년 겨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법원 불법파견 판결 이후 즉각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현대차 울산공장을 25일 동안 점거했다. 그로부터 4년여가 지나서야 법원 1심 판결이 나왔다. [참세상 자료사진]

현대차 전 공정이 ‘불법파견’... 고용노동부, 10년간 뭘 했나
직접계약 관계 아닌 ‘2차 하청’도 ‘묵시적 근로자 파견’으로 정규직 인정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다양한 공정과 업무특성, 고용의무·고용의제 해당 여부를 뛰어넘어 모든 사내하청이 현대차와 직접고용 관계에 있다고 판결했다.

실제로 승소한 원고들은 프레스, 차체, 도장, 의장, 엔진, 변속기, 시트, 트럭버스 등 전 공정에 걸쳐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다. 19일에는 직접생산 공정뿐 아니라, 생산관리, 품질관리, CKD, PDI 등 간접생산 공정 사내하청 역시 정규직으로 판결했다.

구 파견법에 따라 2년경과 시 정규직 전환으로 간주되는 ‘고용의제’ 적용 노동자를 비롯해, 개정 파견법에 따라 2년경과 시 사측에 직접고용 의무가 주어지는 ‘고용의무’ 적용 노동자들 모두 정규직으로 인정받았다. 18일, 재판부는 “근로자지위확인청구를 한 원고 전부에 대해 피고인 현대차 사이에 실질적인 근로자 파견 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현대차 사내하청을 ‘도급’이 아닌 ‘파견’ 근로 관계로 인정한 근거는 업무 특성상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별할 수 없고, 현대차의 직접 지시가 이뤄졌다는 점 등이다. 원고 측 법률대리인인 김태욱 금속법률원 변호사는 “단순반복 업무의 특성상 도급업무로 특정했다고 보기 어렵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를 구별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현대차의 직접 지시가 있었다는 점 등이 근거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이 2차 하청 노동자들까지도 현대차와 근로자 파견 관계로 인정한 점도 중요하다. 원청과 2차 하청 사이에 직접 계약 관계에 없더라도 ‘묵시적 근로자 파견 계약’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현대글로비스 등 현대차 자회사들은 현대차와 도급 계약을 체결한 뒤, 또 다른 하청업체와 계약을 체결 해 왔다. 이와 함께 원청은 2차 하청 노동자들과 직접 계약 관계 또는 법률적 관계가 없다며 근로자 파견 관계를 부인해 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현대차-현대글로비스’간의 계약 내용과 ‘현대글로비스-2차하청’ 간의 계약 내용이 다르지 않고, 2차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현대차의 직접 업무 지시가 있었다는 점을 들어 ‘묵시적 근로자 파견 계약’에 해당된다고 봤다. 사용주들이 불법파견 논란을 피해가기 위해 직접계약 관계에 있지 않은 2차 하청을 양산하는 관행에 제동을 건 셈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고용노동부 등 행정기관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04년 현대차 사내하청의 공정 대부분을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적극적인 시정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고용노동부가 2004년 당시 현대차 불법파견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2006년 합법 도급이라고 판단해 정몽구 회장 등을 불기소 처분했다.

현대차 1천여 사내하청 ‘정규직’ 판결, 어떤 파장 일까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구 파견법에 따라 ‘고용의제’ 적용을 받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간주된다. 개정 파견법에 따라 ‘고용의무’ 적용을 받더라도 확정판결 시 회사 측에 직접고용 의무가 발생한다. 만약 회사가 직접 고용을 하지 않을 경우, 노동자들은 회사에 직접고용 시까지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현재 현대자동차는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짓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차가 10년간 불법파견 논란에 휩싸여 왔고, 법원이 현대차 전 공정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한 만큼 항소할 경우 사회적 지탄을 피해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1심 선고가 4년 만에 나온 판결이라, 대법원까지 가게 될 경우 노동자들은 다시 기약 없는 법정 싸움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김태욱 변호사는 “(회사가 항소하는) 상황이 오지 않길 바란다. 정상적인 경영자라면 법원의 취지를 받아들여 밀린 임금을 지급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그동안 손 놓고 있던 행정부도 문제다. 단지 사법부에 맡길 것이 아니라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강제했어야 할 문제다. 검찰은 현대차의 불법행위를 확인해 관련자들을 빨리 기소하고, 고용노동부도 의무 불이행 과태로 조치 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정규직화 투쟁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현대차와 8.18 사내하도급 특별합의를 체결한 현대차 아산, 전주비정규직 지회 조합원 중 소송을 취하하지 않은 이들도 모두 승소했다. 그동안 불법파견 인정여부가 불확실했던 공정 모두가 불법파견으로 인정되면서, 8.18합의 이후 또 다른 투쟁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된 셈이다.

8.18합의에서 빠진 울산 비정규직지회는 정규직화 판결을 받은 만큼, 향후 회사와 직접교섭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김성욱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장은 “정규직 판결을 받은 만큼, 이제 회사와 직접 교섭을 요청하겠다”며 “8.18합의는 원천 폐기해야 하며, 이제 회사가 법원 판결에 따라 이행하는 문제만 남았다. 회사는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 전환을 이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회사의 특별채용 작업 역시 다소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현대차는 8.18합의에서 울산지회는 제외한다고 합의했음에도, 현장에서 울산지회 조합원 개개인에게 특별채용 지원 작업을 벌여와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16일 400명의 특별채용 인원 중 울산지회 소속 조합원도 약 40명이 포함돼 있었다.

김성욱 지회장은 “선고 이후 신규채용 된 사람들이 많이 아쉬워하고 후회하는 분위기다. 재판에서 승소한 만큼, 회사가 특별채용 작업을 하더라도 조합원들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대차 울산 비정규직지회는 오는 22일, 쟁대위 회의를 개최하고 향후 투쟁 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

한편 불법파견의 범위를 넓힌 이번 판결은 현재 유사한 소송이 진행 중인 제조업 등의 사업장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기아차와 쌍용차 등 완성차 공장을 비롯해 삼성전자서비스, 포스코, 현대하이스코, 금호타이어 등에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