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금융화의 전개와 초이노믹스의 본질

[주례토론회]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주택 금융화에 관한 연구1


I.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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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금융화의 전개와 초이노믹스의 본질 토론 녹취파일(클릭)

1. 문제제기

현대사회에서 주거는 ‘사회적 권리’로 인식되며, 따라서 주택은 필수적인 생활수단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택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다. 게다가 주택은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소득을 창출하는 한편, 소비하는 과정에서 가격이 상승하면서 부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자산’이기도 하다. 이는 주택의 ‘상품화’를 심화하면서 ‘주거권’의 실현을 더욱 어렵게 한다. 그래서 주택은 ‘부동(자)산’으로 분류된다. 이로 인해 주택시장은 항상 ‘거품’(bubble)이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한다. 이것은 주택의 구매를 어렵게 하고 임금상승 압력을 발생시켜 기업에 부담을 준다. 따라서 현대 자본주의 국가는 주택가격을 안정시킴으로써 자산으로서 주택의 성격을 약화시키는 것을 주택정책의 목표로 삼았다. 이에 주택정책은 주택소비보다 주택공급의 확대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임대주택을 보급했다. 따라서 주택금융도 주택구입보다는 주택건설에 집중되었다.

한국의 경우 주택가격은 더욱 불안정했다. 급격한 산업화와 그에 따른 도시화에 의해 만성적인 주택부족 문제가 발생했고, 주택공급의 경우 특수한 금융억압, 즉 국가가 금융을 지배하여 산업부문에 신용을 우선 배분하는 이른바 ‘관치금융’으로 인해 더욱 제한적으로 이뤄졌으며, 임대주택을 보급하는 사회정책도 미미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으로 인해 주택의 자본이득(시세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주택투기’가 발생하게 되었다. 또 ‘관치금융’으로 인해 공식적인 주택금융이 사실상 부재한 가운데 전세제도와 선분양제도라는 비공식적인 제도가 발달했는데, 이는 주택부족 문제에 얼마간 기여했지만, 각각 분양권 프리미엄(premium)과 전세금을 매개로 주택투기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정부는 주택의 자산적 성격을 약화하기 위해 주택가격의 안정이라는 일반적인 목표와 주택투기의 규제라는 특수한 목표를 주택정책에 포함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상황이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진행된 ‘IMF 구조조정’ 과정으로 급격하게 변화했다. 정부가 ‘금융자유화’로 급속도로 추진하고 주택담보대출을 본격적으로 활성화하면서 주택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2 이는 이전 시기와 달리 정부정책에 의해 주택의 자산적 성격이 강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택담보대출을 매개로 형성된 주택가격의 거품은 결국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붕괴위기를 맞기 시작한다. 주택가격의 하락은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을 야기했고, 이에 따라 이른바 ‘하우스 푸어’(house poor) 문제가 촉발되었다.3 이에 이명박 정부가 주택거래를 활성화하고 주택담보대출의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의 규제를 완화했다.

이 문제를 계기로 주택가격의 거품과 주택담보대출의 부실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사회과학적인 비판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이들 연구는 대체로 문제의 원인이 노무현 정부의 주택투기 규제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던 ‘투기세력’의 주택투기에 있었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는 주택투기를 다시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한다. 또 주택시장에 대한 규제완화를 근거로 이명박 정부를 ‘시장만능주의’로 이해되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정부, 심지어 ‘투기정부’로 비판한다. 이들은 주로 이명박 정부에게 노무현 정부처럼 주택투기를 규제하고 주택담보대출의 건전성을 강화하여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시장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들의 주장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i) 통상적인 이해와 달리, 이명박 정부의 주택정책 목표는 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주택투기를 규제하고 ‘실수요자’의 주택거래를 촉진하는 것이었다. (ii) 핵심적인 정책수단 역시 노무현 정부와 같은 것이었음. 두 정부 모두 주택투기와 관련된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의 확대를 억제하고 실수요자의 주택거래와 관련된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하는 주택금융정책을 핵심적인 정책수단으로 채택했다. (iii) 이와 같은 주택금융정책은 궁극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securitization)을 통해 주택담보부증권(Mortgage Backed Securities, 이하 MBS)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증권을 발행하기 위한 것이고, 이것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증권시장을 부양하기 위한 거시경제정책의 일부로서 일관되게 추진된 것이다. 그리고 증권화를 위해서는 증권화에 부적합한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이 아니라, 증권화에 적합한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이 활성화되어야 하기 때문에 주택투기를 규제하는 것은 두 정부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였다. (iv)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규제완화가 아니라 새로운 규제도입을 포함하는 일련의 ‘제도화 과정’이기 때문에, 규제완화만으로 신자유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음. 보다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의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제도화되었는지를 분석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주택문제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정부에 의해 지속적으로 추진된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를 분석의 중심에 놓아야 함. 그리고 증권화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증권시장을 부양하겠다는 정부의 거시경제정책과 분리하여 이해될 수 없음. 그러니까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는 한국 자본주의의 거시적 변동으로서 이른바 ‘금융화’(financialization)의 산물이며, 주택을 증권시장 부양에 적합한 자산으로 변모시키는 ‘주택의 금융화’(financialization of housing)로 개념화될 수 있을 것임(주택문제라는 미시적 현상의 거시적 기초). 또한 MBS는 2008년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subprime mortgage) 부실을 계기로 시작된 금융위기를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금융상품이기도 했음. 따라서 이와 비슷한 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절실함.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주택이 증권시장을 부양하기 위한 자산으로 변모되는 현상의 원인, 과정, 효과를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를 중심으로 구조적·역사적으로 분석하고자 함. 이는 분석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i)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는 어떠한 거시역사적 조건 속에서 추동되었는가? (ii) 국가는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를 위해 어떠한 정책적 노력을 했으며, 이것이 주택금융제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iii)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는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성장했는가? 그 과정 속에서 어려움은 없었는가? 있었다면 무엇 때문인가?

2. 연구대상: 주택의 금융화

본 연구의 대상으로서 ‘주택의 금융화’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 자본주의의 ‘금융화’ 과정 속에서, 주택이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를 매개로 증권시장을 부양하는 자산으로 변모되는 현상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발행되는 증권이 바로 MBS다.

‘주택의 금융화’는 다음과 같은 변수들로 구성된다. (i) 주택의 금융화를 규정하는 거시역사적 조건으로서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 자본주의의 ‘금융화’다. 그것은 국가의 거시경제정책 변화에 의해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와 제도가 변화하는 과정으로서, 산업화와 금융억압이 금융화(증권시장 부양)와 금융해방(금융자유화)으로 전환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ii) 금융화에 따라 주택이 증권시장을 부양하는 자산으로 변모되는 ‘주택의 금융화’다. 그것은 주택금융규제가 완화되고 증권화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주택담보대출이 활성화되고, 이를 기초자산으로 MBS의 발행이 증가하면서 증권화가 활성화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iii) 주택의 금융화에 따라 주택수요자의 행위가 변화하는 과정, 즉 ‘주택 금융화의 사회적 효과’다. 그것은 증권화에 적합한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의 확대에 의해 단기적인 주택의 자본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주택수요자들의 ‘주택투기’ 행위가 장기적인 주택의 거주 및 임대소득을 목적으로 하는 ‘주택투자’행위로 전환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거주 목적의 주택구입이 ‘투자’인 이유는 그것이 거주뿐만 아니라 주택가격의 상승을 통한 간접적인 소득의 증대, 즉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주택가격의 상승이 주택의 시가와 주택담보대출 잔금의 차액인 주택지분(home equity)을 증가시켜 가계의 소득수준을 간접적으로 높이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4 여기서 주택투기는 오히려 증권화에 부적합한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을 활성화함으로써 오히려 증권화를 지체하는 요인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다른 한편, 임대의 측면에서 볼 때, 실수요자들의 주택투자 행위는 직접적인 임대소득을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사실상 주택투기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전세제도를 약화시키고, 대신 월세제도를 강화한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즉 ‘전세의 월세화’도 진행된다.



II. 선행연구 검토 및 이론적 자원 (생략)

III. 주택 금융화 이전: 1997년 경제위기 이전 (생략)

IV. 주택 금융화의 과도기: 1998-2002년


1. 한국 자본주의의 전환: 금융화

1) 브레턴우즈체제의 붕괴, 금융세계화의 전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변화

1997년 경제위기로 한국 자본주의는 본격적으로 금융화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이전 시기 급격한 산업화를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의 변화로부터 시작되었다. 브레턴우즈체제는 이를 지탱했던 미국 자본주의가 이윤율 하락으로 구조적 위기를 맞자 붕괴되었다. 유럽에서도 경제위기가 발생했다.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세계화폐인 달러의 지위가 의문시 되면서 프랑스와 영국을 시작으로 금태환 요구가 증가했다. 1971년 닉슨 정부가 금태환을 일방적으로 중지하고 1973년 고정환율제가 폐지되면서 금-달러 본위제는 해체되었다. 게다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이 인플레이션에 자극을 받아 유가를 인상하면서 1973년 석유위기가 발생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결국 순수달러본위제에 기초한 변동환율제가 도입되었다.

화폐의 질이 악화되는 상황에 가장 반발했던 것은 대규모 화폐보유자였던 ‘금융자본’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특권을 회복하기 위해 금융에 대한 규제를 철폐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이른바 ‘자본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금융세계화가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1979년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 볼커가 미국의 이자율을 급속하게 인상하면서 금융세계화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해외로부터 미국으로 달러를 흡수하고 금융자본의 손실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또 케인즈주의에 입각했던 금융억압이 철폐되었다. 1980년 「예금기관 탈규제와 화폐통제법」의 제정으로 금융혁신을 통해 금융적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다양한 금융상품들의 개발이 허용되면서 금융자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소득분배가 재편되었다.

하지만 고금리 정책은 법인자본의 차입기피를 낳고 신흥공업국의 외채위기를 야기함으로써 은행의 수익성을 악화시켰다. 또한 고금리 정책으로 과잉달러를 미국으로 흡수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신용긴축을 동반하여 달러유동성 부족을 야기했기 때문에 순수달러본위제를 지탱하는 데에 적합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곧 화폐정책은 고금리 정책에서 저금리 정책으로 전환되었고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으로 구성되는 ‘증권시장’이 금융세계화의 중요한 장소로 부상했다. 증권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운동하기 때문에 저금리 정책을 통해 달러유동성을 확대하면서 증권시장을 부양할 수 있었다. 이제 증권시장에서 최대한 단기간에 최대한 많은 이자, 배당금, 자본이득을 금융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기업들도 산업적 투자보다는 시가총액과 주가 상승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구조조정이 단행되면서 관리비용과 노동비용이 감축되기 시작했다(주주가치경영). 이와 같이 증권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세계화는 전세계적으로 확대되었다. 다른 중심부 국가는 미국을 벤치마킹했고, 주변부 국가는 외채위기의 해법으로 부채-증권 전환을 통해 금융시장을 개방·육성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브래디 플랜’(Brady Plan)을 강요받음으로써 금융세계화에 편입되었다(신흥공업국의 신흥시장으로의 전환). 이와 같이 증권시장이 성장하면서 금융투자자들의 엄청난 소득을 올렸다. 하지만 동시에 금융의 성장은 자본주의의 가공성을 증대했고 거시경제적인 불안정이 증대시켰다. 이른바 ‘거품’은 금융위기를 반복적으로 촉발시켰다.

금융세계화가 전개되면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도 변화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양보를 철회하고 경제적 수익을 중시하게 만들었다. 역개방정책은 철회되고, 보호주의 정책이 실행되었으며, 시장개방에 대한 압력이 나타났다. 한국에게도 비슷한 조치들이 취해졌다. 특히 상품시장 개방과 동시에 금융시장 개방에 대한 요구가 커지기 시작했다. 미국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막대한 대미흑자를 보면서도 금융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특히 1979-80년 한국이 경제위기로 IMF로부터 대기협정을 지원받게 되자 이를 조건으로 금융개방을 개방하고 금융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것을 요구했다.

2) 경제위기로 인한 발전국가의 위기

발전국가도 경제위기로 인해 위기를 맞았다. 위기는 두 차례 있었는데, 1979-80년의 위기와 1997년의 위기였다. 두 위기는 근본적으로 재벌의 과잉투자로 인해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발생했다.

먼저 1979-80년 위기는 1970년대 재벌중심적 중화학공업화 과정에서 이뤄진 과잉투자가 이윤율 하락으로 야기하고 이것이 외채위기의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상황에서, 이른바 ‘3고’(고금리, 강한 달러, 고유가)라는 국제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외채위기가 촉발되면서 발생했다. 3고는 앞서 지적했던, 고금리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세계화의 전개와 ‘석유위기’로 인한 것이었다.

경제위기로 발전국가의 경제성장 모델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발전국가의 정당성이 약화되었다. 이로 인해 발생한 정치적·사회적 갈등 속에서 기존의 발전모델을 해체하고 금융화를 추진하고자 하는 금융관료들이 부상했다.5 하지만 한편으로 금융화에 대한 기존 관료들의 반발, 재벌의 저항, 시민사회의 저항이라는 정치사회적 갈등과, 다른 한편으로 ‘3저 호황’(저금리, 약한 달러, 저유가)으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감소하고 재벌이 오히려 부분적으로 개방된 금융시장을 통해 과잉투자를 확대하면서 1980-90년대 동안 금융화는 제한적으로 진행되었다. ‘3저’는 앞서 지적했던, 저금리 정책을 중심으로 증권시장을 부양하는 금융세계화가 전개되고 제3세계 외채위기로 인해 OPEC이 약화되면서 석유위기가 완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확대된 과잉투자는 이윤율 하락을 심화시키면서 금융시장에서 자본유출을 야기하면서 1997년 경제위기가 촉발되었다. 발전국가는 위기는 더욱 심화되었다.

3) IMF 구조조정: 화폐정책의 부상과 금융해방

결국 김영삼 정부는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그 조건으로 IMF 구조조정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한국 자본주의의 전면적인 금융화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했다. 총체적 위기로 인식되었던 1997년 경제위기는 금융화를 제한했던 발전국가의 관료들, 재벌, 시민사회를 약화시켰다. 발전국가의 관료와 재벌은 ‘정경유착’과 ‘도덕적 해이’의 온상으로 지목되었다. 재벌은 부도를 맞거나 그에 준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시민사회는 분열했다. 한편에서 시민사회는 김대중 정부의 수립을 ‘최초의 민주적 정권교체’로, 재벌에 대한 구조조정을 ‘권위주의의 악습을 철폐’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나라 살리기’에 동참했다. 다른 한편에서 정리해고에 저항하는 노동운동의 급진적 분파는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되고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 이데올로기적이고 도덕적인 비난이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을 대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관료들이 미국의 재무부와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IMF의 지원을 받으며 정국의 주도권을 잡았다.

금융화가 진행되면서 한국에서도 증권시장이 부상하였다. 경제정책의 목표는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에서 증권시장을 부양하여 금융투자를 유치하고 투자자들에게 높은 수익을 돌려주는 것으로 변화했다. 경제정책의 중심이 수출·산업정책에서 화폐정책으로 이동했고, 한국은행은 산업화를 위해 통화를 수동적으로 공급하던 모습에서 탈피하여 화폐정책을 통해 증권시장 부양에 유리한 조건을 적극적으로 마련했다. 수출·산업정책은 화폐정책의 목표에 종속되었다. 장기적인 자본축적보다는 단기적인 경상수지 흑자를 증가시켜 외환보유고를 확충하고 신용등급을 높여 외국인 증권투자를 유지하는 한편, 증대된 외환보유고를 통해 해외증권투자를 확대하고자 했다.

처음에 거시경제적 조건을 안정화하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중심으로 운용되던 화폐정책은 환율이 안정되고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되고 인플레이션이 억제되자 1998년 5월 이후 저금리 정책으로 전환되었다. 낮은 인플레이션을 바탕으로 한국은행은 금리를 서서히 낮추면서 증권시장 부양과 증권투자 유입에 유리한 조건을 형성했다.

동시에 ‘4대 부문 구조조정’, 즉 금융·기업·노동·공공부문의 ‘개혁’이 실행되었다. ‘금융부문 개혁’은 (i) 금융기관의 건전성 강화와 대형화 (ii) 금융기관의 겸업화 (iii) 금융기관 대형화·겸업화에 맞춘 금윰감독체계의 통합 (iv) 금융기관의 자율성 강화 (v) 증권시장으로 중심으로 한 모든 금융시장의 개방을 주요 내용으로 했다. 이렇게 진행된 금융억압이 완전히 철폐되면서 금융해방이 급격하게 진전되었다. 이 시기의 금융화는 1980-90년대와 비교하여 ‘빅뱅’이라고 불릴 만큼 전면적인 것이었다.

한국경제에 대한 금융자본의 지배력은 이렇게 전면적으로 자유화되고 개방된 금융시장을 통해 형성되었다. 금융자본의 중심에는 특히 미국인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자, 그 중에서도 투자회사·연금기금·증권회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있었다. 또 이들은 압도적으로 포트폴리아 투자에 집중했는데, 이것은 이들의 투자 목적이 경영권 획득보다는 단기적인 투자수익률의 최대화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증권시장에서 한국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금융기관과 재벌을 중심으로 주식을 매수하면서 지배력을 높여갔다.

금융자본의 지배력 속에서 ‘기업부문 개혁’은 금융적 논리, 즉 ‘주주가치 최대화’의 원리에 따라 진행되었다. 기업은 장기적인 산업적 성장보다는 단기적인 시가총액과 주가의 상승을 통해 자본이득과 배당금을 돌려주는 능력을 그 가치가 평가되었다. 이들은 이윤을 재투자하기 보다는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을 최대화함으로써 단기적인 현금 흐름을 증대하여 ‘재무적 건전성’을 높이는데 집중하였다(주주가치경영). 정리해고 및 노동조건과 임금의 신축화가 진행되었다. ‘노동부문 개혁’은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를 도입함으로써 이를 지원했다. ‘공공부문 개혁’도 민영화를 통해 공기업을 증권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자산으로 변모시켰다. 뿐만 아니라 김대중 정부는 증권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벤처산업을 육성함으로써 한국판 IT 투자 붐을 일으켰고, 이후에는 신용카드 발급을 확대함으로써 부채경제를 조장했다.

이에 따라 증권시장은 실물경제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그림 9). 외국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금융헤게모니가 강화되면서 기업의 주주가치경영도 시작되었다. 이는 단기적인 시가총액과 주가의 상승을 목표로 ‘재무적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기업의 행태는 극단적인 ‘유동성 선호’로 나타난다. 쉽게 말해 ‘보수적인 경영’을 한다는 것이다. 먼저 재무적 차원에서 현금흐름을 증가시키기 위해 부채비율(debt ratio)을 감소시키고 당좌비율(quick ratio)을 높이게 된다. 실물적 차원에서는 기계·설비를 포함하는 유형자산(tangible assets)을 늘리기보다는 현금·예금·유가증권으로 구성된 금융자산(financial assets)을 늘린다. 이와 같은 변화는 금융화로 인한 기업의 가공적 성장을 의미하는데, 이는 ‘주가-순자산비율’(price book value ratio, PBR)의 상승으로도 나타낼 수 있다. PBR은 기업의 시가총액과 장부가격으로 측정되는 순자산의 비율인데, 이 값이 1보다 크면 주식시장에서 기업의 순자산이 과대평가되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측정결과 실제로 1997년 경제위기 이후 PBR 값은 1보다 커졌다.

2. 주택금융의 활성화와 증권화의 지체

1) 유동화증권시장의 육성과 주택의 자산화·금융화

이렇게 진행된 금융화에 따라 증권시장의 부양이 경제정책의 중요한 목표가 됨에 따라, 장기적으로 증권시장에 편입될 수 있는 새로운 자산시장의 지속적인 창출과 금융혁신이 중요해졌다. 단기적으로도 경제위기로 인해 발생한 기업과 금융기관의 대규모 부실자산을 매각하여 ‘자산 디플레이션’ 현상을 해결할 필요도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동화 증권시장’이 육성되었다. 이 시장은 대출채권(loan)·부동산·기타재산권 등 매매가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자산을 증권화라는 금융혁신을 발행되는 ‘유동화 증권’이 거래되는 시장이다. 이런 유동화 증권을 포괄적으로 지칭하여 자산유동화 증권(Asset Backed Securities, ABS)라고 한다. 초기에 유동화 증권시장은 주로 성업공사(현 한국자산관리공사, KAMCO)가 부실채권(non performing loan)을 기초자산으로 발행되는 NPL-ABS가 주를 이루었다.

이 과정에서 경제위기 이전 정부정책에 의해 자산적 성격이 규제되었던 주택이 중요한 자산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있는 금융억압으로 인해 제한적으로 운용되었던 공식적인 주택금융을 활성화시켰다. 특히 주택도 증권과 마찬가지로 가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그 가격 결정 메커니즘이 유사하기 때문에 금융화에 매우 적합한 자산이었다. 이는 주택이 토지에 부착되어 있다는 특징으로 인한 것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상품화된 토지는 노동생산물이 아니면서 그 소유만으로도 지대라는 소득을 창출한다. 따라서 지가는 미래의 소득인 지대의 총합, 경제학적으로 지대를 현재가치로 환산한 가격으로 결정된다. 즉 상품화된 토지도 증권처럼 미래의 소득에 대한 청구권을 나타내는 것이다. 주택을 포함하는 부동산 가격은 건물의 감가상각이 추가적으로 고려되어야하지만, 본질적으로 이와 같은 가격 결정 메커니즘을 따른다. 이를 식으로 나타나면 다음 수식과 같다. 여기서 분모의 할인율은 부동산 소유에 따른 기회비용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 이자율은 부동산 소유에 따른 이자소득의 상실을, 리스크 프리미엄은 부동산을 소유함으로써 발생하는 유동성 제약을 의미한다.


가격결정의 유사성은 증권시장을 부양하기 위한 화폐정책의 효과가 주택시장에도 동일하게 타나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경로는 다음과 같다. (i) 저금리 정책->분모의 이자율 하락->부동산 가격 상승 (ii) 금융자유화로 인한 부동산 금융의 활성화->활발한 부동산 매매로 유동성 제약 완화->리스크 프리미엄 하락->부동산 가격 상승 (iii) (i)과 (ii)를 통한 부동산 가격 상승->부동산 소유로 발생하는 미래의 소득에 대한 주관적 기대 상승->부동산 가격의 상승 가속화. 이 모든 것은 부동산에 대한 금융투자를 증가시키는 호조건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부동산시장의 성장이 증권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대출을 증권시장에서 발행·유통되는 증권으로 가공해야 한다(증권화).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금융투자가 부동산시장과 증권시장으로 분산될 수 있다. 특히 부동산의 가공성으로 인해 부동산시장에는 투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럴 경우 부동산 시장에 자금이 몰리면서 증권시장이 쇠퇴할 수도 있다.

따라서 ‘주택의 금융화’는 주택시장이 금융화의 중심인 증권시장과 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지만, 본 연구에서 ‘주택의 금융화’란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주택시장은 최종적으로 유동화 증권시장과 연결된다. MBS는 바로 주택담보대출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유동화 증권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ABS의 일종이다. 특히 그 기초자산은 장기간 안정적인 원리금 상환을 특징으로 하는 10년 이상의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이다.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는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다. (i) 주택금융기관이 장기간 고정금리로 원리금을 분할 상환해야 하는 주택담보대출을 운용함에 따라 발생하게 되는 다양한 위험을 회피할 수 있게 한다. ① 유동성 위험은 단기부채인 예금을 조달하여 장기자산인 주택담보대출을 운용할 경우 발생하는 만기불일치 때문에 발생하지만, 증권화로 자산을 즉각 회수됨으로써 감소된다. ② 금리위험은 원리금 상환 기간 동안 금리변동으로 발생하는 위험인데, 이 역시 증권화로 자산을 회수하면 감소된다. ③ 마찬가지로 채무불이행 위험도 감소한다. (ii) 주택금융기관의 BIS 자기자본비율(=자기자본/위험가중자산)을 충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주택담보대출을 증권화하면 위험가중치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iii) 자금회수로 주택금융기관의 주택담보대출 능력이 확대됨으로써 더 많은 주택구매자들이 주택금융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iv) 유동화 증권을 통해 증권시장이 활성화 된다.

(v) 특히 중요한 것은 MBS 도입으로 이전의 주택투기 문제가 해결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MBS의 발행하는 장기간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발생하는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의 활성화가 필요하고, 이것은 주택의 장기적인 거주나 임대수익을 목적으로 이뤄지는 실수요자의 주택투자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주택의 단기적인 자본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주택투기는 MBS에 발행에 부적합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을 활성화하기 때문에 MBS 발행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주택투기에서 주택투자로의 변화를 자본이득(capital gain) 모델에서 소득이득(income gain) 모델로의 전환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주택시장의 ‘선진화’의 지표로 사용된다.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를 주택시장 ‘선진화’의 맥락에서 보는 부동산학계의 인식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렇지만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는 이와 같은 이점에도 불구하고, 거시적인 수준에서는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문제가 있다. (i) MBS 발행과 투자의 증가는 그 기초자산인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하기 때문에 주택가격의 거품이 확대된다. (ii) MBS는 주택에 대한 투자를 소액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주택거래를 활성화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것은 리스크 프리미엄을 하락시켜 주택가격을 상승시킨다. (iii) MBS는 금융혁신에 의해 또 다른 증권으로 가공될 수 있다. (iv) 차입자의 미래의 소득이 MBS 투자자의 수익으로 이전되면서 소득격차가 증가하고 금융자본의 헤게모니가 강화된다. (v) 거품의 형성은 거시경제적 불안정을 높이면서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높인다.

2) 주택금융규제 완화로 인한 주택담보대출의 활성화와 증권화 제도의 도입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는 정부가 주택금융규제를 완화하고 주택담보대출을 본격적으로 활성화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주택금융규제 완화는 1997년 경제위기 이전 제한적으로 진행된 금융화의 흐름 속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1994년 단계별 금융자유화의 일환으로 주택금융의 여수신금리가 자유화되었고, 1996년에는 주택할부금융이 도입되어 비은행금융기관의 주택금융업무가 자유화되었으며, 상업은행의 장기주택금융 역시 허용되어 주택담보대출업무도 자유화되었다. 또 1997년 7월에는 한국주택은행이 민영화되면서 주택금융부문에서 금융기관 간 경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주택담보대출이 활성화된 것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부터였다. 경제위기 이전 재벌의 지속적인 투자로 산업대출의 수익성이 여전히 안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여전히 부동산금융은 한국은행의 「금융기관여신운용관리규정」에 의해 제한되어 있었다.

경제위기로 인해 산업대출이 부실화되고 기업들이 차입비율을 축소하게 되자 비로소 은행이 가계대출의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주택을 담보로 잡아 상대적으로 대손위험이 낮은 주택담보대출을 경쟁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1998년 「금융기관여신운용관리규정」이 폐지되어 부동산에 대한 여신제한과 주택대출대상 규모제한이 폐지됨에 따라 부동산금융이 전면적으로 자유화되었다.

정부는 경제위기로 폭락한 주택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매우 파격적인 주택거래활성화 정책을 내놓았다. 이는 주택담보대출의 활성화와 주택가격 반등의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부동산시장 개방도 시행되었다.

그리고 1998년 6월 IMF와의 합의에 따라 「자산유동화에관한법률」 제정되어 유동화 증권시장과 ABS가 도입되었다. 이 법은 MBS를 포함하여 모든 유동화 증권화를 관리하는 매우 포괄적인 법이었다.

그러나 이 법은 명목회사 형태의 유동화전문회사(SPC)나 신탁(trust)에 한정하여 MBS 발행을 허용했기 때문에 MBS를 발행할 때마다 SPC의 설립과 해체를 반복해야하는 문제를 발생시켰다. 따라서 정부는 1999년 1월 IMF의 권고에 따라서, 안정적으로 MBS를 발행하기 위한 회사형 유동화전문회사의 설립을 규정하는 「주택저당채권유동화회사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의해 한국 최초의 유동화전문회사인 한국저당채권유동화주식회사(KoMoCo)가 설립되었다. KoMoCo는 2000년 4월 국민주택기금의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을 기초자산으로 MBS를 발행함으로써 국내 MBS 시장을 선도해나갔다.

3) 주택담보대출의 본격적인 활성화와 주택금융체계의 변화

이와 같은 법적·제도적 변화는 주택금융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i) 이전까지 한국주택은행과 국민주택기금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취급되었던 주택담보대출이 금융기관 전체로 확장되면서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민간금융기관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성장하였다. 특히 2001년 한국주택은행이 국민은행과의 합병을 통해 주택금융전문기관에서 완전한 상업은행으로 변모하면서 은행 간 주택담보대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그 결과 GDP 대비 주택담보대출의 비율이 급증했다. (ii) 1980년대 들어서도 주택건설금융이 치중하던 국민주택기금도 주택소비금융의 비중을 대폭 늘렸다. (iii) 증권화 제도의 도입에 따라 주택금융시장 모델이 복합해졌다. 이전의 단순한 발행 후 보유(OTH)에서 발행 후 판매(originate-to-distribute, OTD) 모델로 변모한 것이다. (iv) 주택담보대출의 여력이 확대되면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경제위기 이전 20% 수준에서 2002년 6월 66.4%로 상승했다.

(v) 그런데 이 시기 활성화된 주택담보대출은 전통적인 방식의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방식이 아니라, 3년 이하의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이런 상황은 이 시기에 주택담보대출 활성화에도 불구하고 증권화가 지체된 핵심적인 이유였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자.


4)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의 활성화로 인한 증권화의 지체

2002년 말 주택담보대출의 약 77%가 비전통적인 10년 이하, 그 중에서도 3년 이하의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이러한 방식의 주택담보대출은 주택을 담보로 하는 대출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일반대출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는 다음과 같은 특징 때문에 MBS 발행에 매우 부적합했다. (i) 3년 이하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자만 지급하다가 만기에 원금을 일시상환하는 구조는 만기시 상환부담이 매우 크다. 따라서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다. (ii) 그래서 보통 만기 때마다 차환(rollover)을 시도하여 새로운 주택담보대출로 갈아타게 되는데, 이 경우에는 차환위험도 발생한다. 즉 차환할 때 금리가 상승하거나 급기야 차환이 불가할 경우 위험이 발생하는 것이다. (iii) 변동금리 방식은 금리가 인상될 경우 채무불이행 위험을 높인다. 변동금리는 금융기관이 금리가 변동함에 따라 발생하는 금리위험을 회피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차입자에게 이를 전가하는 것이다. 대신 초반에는 고정금리 방식보다 낮은 이자율을 적용한다.

이와 같이 MBS 발행에 부적합한 주택담보대출이 활성화되면서 증권화는 지체되었다. 이 시기 MBS 발행은 매우 적었고, ABS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낮았다. KoMoCo를 통해 증권화할 수 있는 기초자산은 국민주택기금의 주택담보대출에 한정되었다.
이것은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주택담보대출의 활성화가 유동화 증권시장의 부양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대신 유동화 증권시장은 부실채권, 회사채, 신용카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다른 ABS였다.6

3. 주택담보대출과 전세금을 이용한 주택투기의 대중화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의 활성화는 이 시기에 주택투기가 대중적으로 확산되었음을 의미한다. 대중적인 주택투기가 가능했던 것은 증권시장을 부양하기 위한 저금리 정책, 정부의 주택규제 완화, 증권화 제도의 도입으로 주택담보대출이 활성화되면서 주택의 자산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주택가격이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폭락했던 주택가격은 반등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상황은 이전 시기 주택소유주들의 전세금을 통한 주택투기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었던 주택수요자들의 투기 심리를 자극했다.

주택투기가 수월한 상황에서는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보다는 단기·변동금리·주택담보대출이 유리했다. 주택수요자의 입장에서는 (i) 주택투기를 통해 단기간에 자본이득을 취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10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상대적으로 많은 원리금을 분할 상환할 이유가 없었다. (ii) 변동금리는 금리위험을 차입자가 모두 부담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초기엔 고정금리보다 이자율이 낮았다. 게다가 금융기관들의 주택담보대출 경쟁으로 인해 변동금리 이자율은 더욱 낮았다.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동화 증권시장의 도입이 얼마 되지 않아 MBS에 대한 수요가 한정적이었고, 그 결과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 운용으로 인해 발생하게 될 유동성위험과 금리위험을 해결하기 힘들었다. 대신 금융기관은 저축과 양도성 예금증서(CD) 발행을 통해 단기로 자금을 조달하고 단기로 주택담보대출을 판매함으로써 유동성 위험을 해결했고, CD금리와 연동되는 변동금리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금리위험을 차입자에게 전가했다. 이렇게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은 운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차환위험과 상대적으로 더 높은 채무불이행 위험은 주택투기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따라서 금융기관은 이를 안전한 자산으로 인식했다.7

주택투기는 (i) 상대적으로 표준화 정도가 높아 거래가 용이한 아파트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ii) 지역적으로는 지방보다는 수도권, 특히 서울이 주택가격 상승을 주도했다. 서울은 이전 시기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주택투기를 주도하던 지역으로서, 이것은 주택투기의 지역적 연속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iii) 규모별로는 대형아파트를 시작으로 중·소형아파트까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다른 한편, 주택투기의 대중화는 주택의 자가점유율을 높이고 전세제도를 유지시켰다. 자가점유율이 높아진 것은 이전시기와는 다르게, 주택담보대출이 활성화되어 주택소유주가 아닌 사람도 주택을 구매하기 수월해졌기 때문이었다.

본래 전세제도는 제도권 주택금융이 제한된 상황에서 그 역할을 대신했던 사금융이었기 때문에 증권화제도와 주택담보대출 등 주택금융이 활성화되면 약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또한 저금리 정책은 ‘목돈’으로서 전세금의 유용성을 약화시켰다. 하지만 주택투기의 대중화로 인해 주택투기의 레버리지 수단으로서 전세금의 유용성이 강화되었다. 이에 따라 전체 임차가구에서 차지하는 전세가구의 압도적인 비중이 계속 유지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주택시장이 소득이득 모델로 이행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본이득 모델에 머물렀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일종의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으로서 이후 주택의 금융화가 독특한 경로로 진행되는 데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V. 주택 금융화의 재편기: 2003-2007년

1. 1.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을 통한 금융화의 심화

증권시장의 성장으로 상징되는 금융화는 그 가공적 성격으로 인해 거시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결국 금융위기를 유발했다. 위기는 1999-2000년 IT투자 붐의 붕괴로 미국의 증권시장이 위기를 맞으면서 시작되었다.

2003년 집권한 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과제는 이로 인해 위기를 맞은 코스피·코스닥 시장을 재부양하는 것이었다. 2000년 들어 급락한 주식시장은 2002년까지도 회복되지 못했다. 더욱이 취임 직전 국제신용평가 무디스(Moody’s)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positive)에서 ‘부정적’(negative)로 하향 조정했고, 2003년 3월 SK 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을 계기로 2002년 하반기부터 부실화되기 시작했던 신용카드채 및 신용카드 ABS 시장이 위기를 맞자 거시경제적인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또한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한 주택투기의 대중화는 주택시장과 증권시장 간의 단절을 야기하여 증권시장 부양의 장애물로 작용했다.

증권시장의 재부양을 위해서는 증권시장에 더 많은 행위자를 끌어들임과 동시에 금융혁신을 통해 새로운 증권을 가공함으로써 증권투자를 증대시켜야 했다. 이와 같은 금융화의 외연적·내포적 확장을 위해 노무현 정부는 ‘IMF 구조조정’을 적극적으로 계승하는 ‘동북아 금융허브론’을 마련했다.8

2003년 12월 완성된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전략’은 기존 제조업·수출중심의 산업구조를 ‘금융산업’ 중심으로 전환하여 한국을 2020년 ‘아시아 3대 금융허브로 도약’시키겠다는 비전을 내놓고 그 7대 과제로 (i) 자산운용업을 선도산업으로 육성, (ii) 금융시장의 선진화 (iii) 지역 특화 금융수요 관련 주도권 확보 (iv) 금융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 (v) 한국투자공사(KIC) 설립 (vi) 금융규제·감독시스템 혁신 (vii) 금융관련 경영·생활환경 개선을 제시했다.

중요한 몇 가지만 살펴보자. 먼저 자산운용업의 육성은 증권시장에 대한 개인들의 간접투자(집합투자)를 획기적으로 증대하겠다는 의도였다. 연기금 증권시장 참여 확대,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통한 기관투자자의 증대, 비공개로 자산규모가 큰 투자자를 모집하여 인수·합병(M&A) 시장에서 활동하는 사모펀드(PEF)의 활성화, 그리고 이른바 ‘펀드’(fund) 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더 많은 행위자들을 증권시장에 참여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조성된 이른바 ‘펀드붐’은 전통적으로 저축을 해온 가계를 증권시장의 투자자로 변모되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금융시장 선진화는 채권시장·주식시장·외환시장을 더욱 활성화하겠다는 방안이었다. 여기에는 다양한 방안이 포함되었는데, 특히 MBS 발행의 활성화가 채권시장과 관련된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이에 대해서는 2항에서 자세히 다룬다).

셋째, 한국투자공사(KIC)의 설립은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증대된 외환보유고를 통해 해외증권투자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 SWF)라고 하는데, 이른바 ‘수출달러’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세계화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경제위기 이후 금융화에 종속된 수출의 성격이 더욱 강화되었음을 의미했다.

넷째, 금융규제·감독 시스템 혁신은 금융기관의 대형화·겸업화를 더욱 진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핵심은 규제체계를 열거주의(positive system)에서 포괄주의(negative system)으로 전환하는 것에 있었다. 포괄주의는 열거된 금융상품만 제외하고 모두 허용하는 것으로서 금융혁신과 금융기관 간 경쟁을 촉진한다.

노무현 정부는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면서, 이와 같은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을 시행했다. 증권시장 부양되고, 주주가치경영을 추구하는 기업구조조정이 가속화되었으며, 노동비용 감축을 위해 변형근로제가 도입되었다. 특히 2007년 8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이하 자본시장통합법)의 제정은 금융기관의 대형화·겸업화가 가속화하면서 금융화를 더욱 촉진했다. 또한 2007년 4월의 한미 FTA는 금융세계화를 주도하는 미국과의 경제적·정치적 통합을 강화함으로써 미국의 하위파트너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그 결과 증권시장의 성장이 재개되었다. 외국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하는 금융투자자들의 지배력도 강화됨에 따라, 기업의 주주가치경영이 심화되고 가공적 성장이 재개되었다

2. 주택금융의 재편과 증권화의 전개

1) 증권시장 부양을 위한 주택투기 규제와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의 확대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을 통해 금융화를 지속하는 과정에서 유동화 증권시장의 활성화도 중요한 목표 중 하나로 추진되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MBS 발행이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주택투기를 규제하는 일이었다. 주택투기는 투자자금을 주택시장에 편중시킴으로써 증권시장 부양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증권화에 부적합 단기·변동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을 활성화함으로써 증권화를 지체시켰다. 또한 이 주택담보대출은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높아 건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즉 주택투기 규제는 부동산시장의 자본이득을 축소함으로써 부동산 시장에 몰린 투자자금을 증권시장으로 유인하고, 주택투기의 수단인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의 확대를 억제하고, 실수요자의 주택투자 수단인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하여 MBS를 본격적으로 발행함으로써 유동화 증권시장을 활성화하고자 함이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이미 2002년 김대중 정부 집권 마지막 해에 이미 시행되고 있었다. 2002년 1월 8일 「주택시장안정대책」은 “기본적으로 주택경기를 활성화해 나가면서 일부지역의 투기조짐을 차단하여 부동산시장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안 강구”를 기본방향으로, (i) 공공주택·택지 공급 확대, (ii) 아파트 재건축시기 분산, (iii) 일부지역 투기적 수요 억제 및 부동산 거래질서 확립, (iv) 국민주택기금 지원 및 MBS 발행 확대를 정책수단으로 채택했다. 이후에도 같은 맥락에서 수차례 주택시장 안정대책이 발표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이를 계승하여 주택투기 규제와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의 확대를 주택한 주택정책의 목표로 삼았다. 다음과 같은 2003년 2월 김진표 재정경제부 장관 내정자, 변양호 금융정책국장, 신제윤 금융정책과장의 첫 대면 업무보고 대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9

“외환위기 이후 시중은행들이 앞 다퉈 주택담보대출에 뛰어들면서 주택금융 이용도는 현격히 높아졌지만 대부분 3년 만기 변동금리대출이다 보니 안정성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금리 상승이나 집값 하락으로 가계의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아지면 또 다른 금융위기로 이어질 우려가 있습니다.”(국정브리핑 특별기획팀, 2007: 169)

“3년 위주로 되어 있는 주택담보대출을 20년 이상 장기 고정금리대출로 전환해 가계의 채무상환능력을 높이고 또 급증한 금융권의 주택저당채권을 시장에 원활히 유통시켜(유동화) 금융기관의 위험도를 줄여줘야 합니다.”(국정브리핑 특별기획팀, 2007: 170)


이러한 위기의식 하에서 2003년 정부는 다음과 같은 정책을 폈다. (i) 주택투기 규제 및 투자금의 증권시장으로의 유도, 그리고 모기지 제도, 즉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의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주택정책을 발표했다. (ii) 국민주택기금 근거법인 「주택건설촉진법」을 「주택법」으로 개정하여 기금의 목표를 주택공급 확대에서 ‘주거복지 향상’으로 변경함으로써 실수요자의 주택투자에 적합한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의 확대했다.10 (iii) 부동산 펀드(REF) 도입을 통한 부동산 간접투자의 활성화와 MBS에 대한 투자기반을 확대했다.

2003년 12월 11일 최종 발표된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에 MBS 발행이 7대 과제 중 하나인 ‘금융시장 선진화’에 포함되었다. 여기서 정부는 “내년에 설립되는 주택금융공사에서 발행예정인 주택저당채권을 가급적 20년 만기의 장기채로 발행”하고, “향후 5년 간 70조 원가량의 MBS 발행을 목표”로 삼는다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여기서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설립’은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의 확대와 증권화를 담당하는 핵심적인 기관의 출범을 알리는 것으로서, 주택금융제도를 재편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2) 한국주택금융공사 설립을 통한 ‘보금자리론’의 보급과 증권화 기능의 강화

2003년 12월 31일 「한국주택금융공사법」의 제정으로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출범했다. 공사는 기존 유동화 중개기관인 KoMoCo의 증권화 기능과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의 신용보증 기능을 통합하고, 여기에 증권화에 적합한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 공급 기능까지 추가한 새로운 유동화 중개기관이었다.11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주택담보대출 시장과 증권화 시장 양자 모두에서 활동했다.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는 모기지론을 공사와 협약한 금융기관을 통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직접 공급했고, 증권화 시장에서는 KoMoCo가 맡았던 주택담보대출의 양수와 MBS 발행을 계속해서 담당했다.12

2004년 3월 25일 모기지론은 ‘보금자리론’이란 이름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대환(일명 ‘갈아타기’)을 허용함으로써 기존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의 대환을 유도했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하는 MBS는 공사가 금융회사로부터 주택담보대출을 양도받아 이를 신탁하고 수익증권인 MBS를 증권시장 투자자에게 발행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또 공사는 이 증권의 원리금 지급을 보증하여 MBS의 신용위험을 낮춤으로써 MBS에 대한 투자를 초진했다. 국채금리에 일정한 금리를 가산하여(spread) 발행되어 국채보다 수익성이 높았고, 증권거래법상 유가증권으로 지정되어 증권거래소에 상장되기 때문에 매매가 자유롭다는 점도 투자를 촉진했다.

노무현 정부는 계속해서 주택투기 규제,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의 확대를 통한 실수요자의 주택투자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주택정책을 시행했다. 특히 2006년에는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 확대에 유리한 총부채상환비율(debt to income, DTI) 규제를 새롭게 도입했다.13

3) 주택담보대출 구조변화에 따른 본격적인 MBS의 발행

노무현 정부의 주택정책은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를 위해 주택투기를 규제하는 대신 실수요자의 주택투자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증권화를 지체시키는 주택투기의 수단인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의 확대를 억제하고자 한 것이지, 주택담보대출의 확대 자체를 억제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LTV와 DTI 규제도 투기지역을 중심으로 적용된 것이었다. MBS 발행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실수요자가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하여 주택투자를 해야 했다. 따라서 주택담보대출의 규모는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급증했다.

그리고 주택담보대출의 만기·금리유형·상환방식이 증권화에 보다 적합한 형태로 변화하고, 이에 따라 MBS 발행 실적이 증가했다. 본격적인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가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증권화의 진전 속도는 여전히 더뎠다. 무엇보다도 주택담보대출의 대부분을 취급하는 예금은행 주택담보대출의 압도적인 변동금리 비중이 문제였다. 게다가 혼합형을 제외한 순수 고정금리의 비중은 오히려 하락했다. 단기와 일시상환 방식의 주택담보대출의 비중도 여전히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이는 결국 한국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를 제외한 거의 모든 주택담보대출이 MBS 발행에 부적합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 이 기간 동안 발행된 MBS의 기초자산은 모두 ‘보금자리론’이었다.

3. 주택투자의 증가와 주택투기의 지속

결국 노무현 정부의 주택정책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었다. 실수요자의 주택투자를 증가시켜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를 본격화했지만, 주택투기 심리를 완전히 약화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주택가격 거품의 붕괴로 인한 주택담보대출의 광범위한 부실을 경험하지 못했던 역사적 상황 때문이었다. 주택투기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존속된 것이다.

이 시기에 주택가격은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와 MBS의 본격적인 발행 속에서 상승세를 이어갔다. 주택투기 규제로 2003년 말과 2004년 사이 소폭의 가격지수 하락이 있었지만, 이후 주택투자 증가와 주택투기 지속의 효과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2005년부터 주택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유형별로 아파트라 여전히 가격 상승을 주도했다. 지역별로는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수도권이 가격상승을 주도했다. 이것은 주택투자가 증가했지만, 전통적으로 주택투기를 주도했던 서울을 중심으로 주택투기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주택투기와 주택투자 모두 주택가격을 상승시키지만 단기적인 거래를 특징으로 하는 주택투기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상승률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주택투자의 증가 속에서도 주택투기가 존속되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주택투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대형아파트의 가격상승률이 상대적으로 주택투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중·소형아파트의 가격상승률을 상회하는 현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대형아파트는 절대가격이 높기 때문에 같은 상승률이라고 절대적인 자본이득이 많이 발생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주택투기는 대형아파트에 주로 집중되고, 그 결과 가격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한 주택투자의 증가와 주택투기의 존속은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자가점유율을 증가시켰다. 이것은 주택담보대출 이용가능성이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실수요자의 주택투자를 활성화하는 정부의 정책은 무주택자들의 주택구매를 촉진했다.

이전 시기와 달라진 점은 전세제도가 월세제도로 전환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한 실수요자의 주택투자의 증가가 했기 때문이다. 원리금을 장기적으로 다달이 분할납부 해야 하는 주택담보대출의 특성상 임대인의 직접적인 임대수익이 발행하지 않는 전세제도보다 월세제도를 선호했다. 지속적인 저금리도 전세금의 유용성을 약화시켰다.14 이와 같은 ‘전세의 월세화’는 주택시장이 자본이득 모델에서 소득이득 모델로 전환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했다.15

VI. 주택 금융화의 성장기: 2008-2012년

1. 미국발 금융위기와 금융선진화 전략을 통한 재벌중심의 금융화

증권시장 중심의 금융세계화는 가공적 성장을 야기하면서 또 한 번의 금융위기로 귀결되었다. 위기는 2006년부터 미국에서 시작, 2007년에 폭발하여 전세계로 전염되었다. 위기의 중심에는 2000년대 동안 미국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활성화된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에 있었다.

이는 1990년대 증권시장을 부양했던 IT투자붐이 1999-2000년 위기에 처한 후 진행된 것이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의 역사가 길고 1980년대 이후 이미 증권화가 시작되고 있었기에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가계의 자가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함으로써 실수요자들의 주택구입을 촉진했다. 이렇게 확대된 주택담보대출을 기초자산으로 MBS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다. MBS는 다시 부채담보부증권(CDO)와 같은 재증권화 상품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주택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MBS에 대한 투자수요도 증가했다. 2004년부터 프라임(우량) 주택담보대출 공급 여력이 소진되자 금융기관은 급기야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을 판매했다.

하지만 2006년 6월 이후 주택가격의 거품이 붕괴하면서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상승했다. MBS나 CDO 등의 증권가격이 하락하면서 이에 투자한 금융기관들이 위기를 맞게 되었다. 위기는 증권시장을 매개로 전세계로 전염되었다.

한국에서도 금융위기의 징후들이 나타났다. 증권시장은 2007년 말부터 하락한 후 잠시 반등했으나, 2008년 하반기부터 다시 하락했다. 이명박 정부는 단기적으로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가운데, ‘금융선진화 전략’을 통해 금융화의 외연과 내연을 확대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정부는 금융산업을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육성하여 ‘글로벌 금융 강국’을 건설하는 것을 정책목표로 삼고, 이를 위해 (i) 과감한 금융규제 혁파 (ii) 글로벌 플레이어 출현기반 마련 (iii) 금융시장 인프라 선진화 (iv) 금융감독 기구 체질 변화 (v) 금융시장 안정화 기반 마련을 발전전략으로 채택했다.

(i)은 금융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함으로써 새로운 금융행위자의 진입과 금융상품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자, 2009년부터 시행되는 「자본시장통합법」에 맞춰 규제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ii)는 금융기관의 대형화·겸업화를 통해 증권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iii)은 국제적인 기준에 맞게 금융시장 관련제도를 정비함으로써 국제 증권시장과의 통합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iv)는 금융건전성을 강화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증권투자를 유입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부와는 다르게 ‘친재벌적’이라고 평가되는 ‘금산분리 완화’를 추진했는데, 이것은 금융화를 중단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재벌을 금융기관의 대형화·겸업화에 참여시킴으로써 ‘재벌중심의 금융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많은 재벌들이 10년 동안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주회사로 전환함으로써 주주가치경영에 적응했고, 보험업과 증권업에 진출하면서 금융적 수단에 대한 의존을 확대하면서 금융화에 적응했기 때문이었다.

2008년 말 금융위기가 더욱 고조되자 이명박 정부는 ‘금융위기 극복 및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를 발표하여 금융선진화 전략을 더욱 발전시켰다. 이는 (i) 우량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및 부실기업에 구조조정 (ii) 금융시장 안정 (iii) 금융회사 건전성 제고 (iv) 정책금융기관 역할 강화 (v) 글로벌 협조체제 및 해외 투자설명회 강화 (vi) 금융을 통한 사회안전망 강화로 구성되었다.

특히 여기에는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택담보대출의 장기화 및 고정금리로의 전환, ‘보금자리론’ 공급 확대, 한국주택금융공사를 통한 증권화 확대가 그것이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주택정책으로 구체화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2항에서 더 자세하게 논할 것이다.

이와 같은 ‘금융선진화 전략’을 통해 증권시장이 부양되었다. 한국은행은 지속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하여 저금리 정책을 더욱 강화하면서 증권시장 부양에 유리한 거시경제적 조건을 마련했다. 2009년 2월 4일에는 노무현 정부가 제정한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됨으로써 금융기관의 대형화·겸업화, 금융혁신, 금융투자의 유입이 가속화되었다.

그 결과 금융위기로 인한 2008년의 위기가 봉합되면서 증권시장의 성장, 외국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하는 금융투자자들의 지배력 강화, 기업의 주주가치경영의 심화와 가공적 성장 등 이전의 추세가 다시 나타났다.

2. 주택금융의 성장과 증권화의 확대

1) 금융위기로 인한 주택가격 거품 붕괴와 주택담보대출의 부실화

미국발 금융위기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주택담보대출이 활성화되고 증권화 제도가 도입되면서 발생한 주택가격의 거품이 붕괴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8년부터 금융위기의 여파로 주가 급락, 채권 스프레드 상승, 환율 상승 등이 발생하자 주택가격은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주택거래량도 급감했다. 이것은 2007년 하반부터 심각해진 미분양 주택 문제를 악화시키면서 건설사의 자금압박과 부도위험 증가로 이어졌다. 또한 금융시장에서의 신용경색과 주택시장의 위기로 인해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금리 결정의 기초가 되는 CD 금리가 상승하면서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상승했다.

주택가격 하락과 주택담보대출 금리인상은 결국 주택담보대출 건전성 위기로 이어졌다. 이른바 ‘하우스 푸어’ 문제가 촉발된 것이다. 그런데 위기에 상대적으로 더 취약했던 것은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주택가격의 하락은 주택의 자본이득 감소, 심지어는 자본손실을 야기함으로써 원리금을 단기간에 일시상환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이는 채무불이행 위험이 증가시켰다. 또 담보가치의 하락은 주택담보대출의 차환을 어렵게 함으로써 차환위험도 증가시켰다. 특히 변동금리는 금리인상 분이 고스란히 차입자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채무불이행 위험을 가중시켰다. 결국 ‘하우스 푸어’ 문제는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의 부실화를 중심으로 하는 주택투기의 위기, 즉 ‘부동산 불패 신화’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2) 주택거래 활성화와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를 통한 주택시장 위기의 봉합

이와 같은 상황은 오히려 노무현 정부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던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의 활성화와 MBS 발행 증대에 유리한 조건을 형성했다. (i) 주택투기가 지속불가능해지면서 부실화된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의 채무불이행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만기연장, 변동금리의 고정금리화, 일시상환 방식의 분할상환 방식으로의 전환이 추진되었다. (ii) 주택가격 하락을 최소화하기 위해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한 실수요자의 주택거래활성화가 추진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주택시장 규제완화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단순히 규제강화와 규제완화만을 기준으로 이명박 정부의 주택정책을 이전 정부와 단절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두 정부 모두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한 실수요자의 주택투자를 활성화함으로써 MBS 발행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규제강화와 규제완화는 두 정부가 처한 상황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주택투기로 인해 증권시장 부양과 증권화에 장애가 되는 상황에서 주택투기를 규제하기 위해 규제강화를, 이명박 정부는 주택가격의 급락으로 인해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된 상황에서 실수요자들의 주택거래를 촉진하여 주택시장을 연착륙시키기 위해 규제완화를 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주택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를 보다 명확하게 할 수 있다. 2008년 6월 「현 지방 미분양 상황평가 및 정책 대응방향」은 주택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금융·세제에 관한 기존 규제를 완화했는데, 그 적용대상은 지방 비투기지역에 한정된 것이었다. 즉 투기를 다시 부추기려는 것이 아니라, 실수요자들의 주택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방향은 2008년 8월 「주택공급 기반강화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에서 보다 명확해진다. ‘부동산 시장의 안정 및 실수요자 중심의 시장여건 조성’을 목표로, 공급측면에서는 중장기적 공급확대 기반의 구축을, 수요측면에서는 실수요자 중심의 거래 촉진을 중점과제로 설정한 것이다. 특히 과도하게 설정된 인위적 수요 억제 장치를 선별적으로 완화하지만, 투기적 거래를 차단하고 투기적 이익을 철저하게 환수한다는 기존의 방침을 재확인했다. 또 장기 주택담보대출의 활성화를 통해 서민들의 주택구입을 촉진한다는 방안을 명시했는데, 이는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자본금을 확충하여 30년 장기 ‘보금자리론’을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구체화되었다.

2008년 후반기 주택시장 위기가 폭발한 이후 발표된 주택정책부터는 부실화된 주택담보대출의 만기연장·고정금리화·분할상환 방식으로의 전환과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 확대 및 증권화의 활성화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를 가속화한 것은 2012년 은행권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인 ‘적격대출’(conforming loan)이 출시되면서 부터였다. 이는 2011년 6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하우스 푸어’ 문제에 대한 추가적인 대응책으로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추진되었다. 적격대출은 증권화를 위해 한국주택금융공사에 주택담보대출을 양도할 것으로 조건으로 은행권에서 판매하는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이로써 증권화의 토대가 더욱 확장되었다. 주택시장의 위기도 봉합되었다.

3) 주택담보대출의 구조변화의 진전에 따른 MBS 발행의 성장

이명박 정부의 주택정책으로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이 다시 활성화되었다. 따라서 위기 이후에도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오히려 성장세를 이어갔다. 이것은 주택가격 거품의 붕괴가 지연되고 주택가격이 반등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주택담보대출의 구조도 증권화에 적합한 형태로 보다 더 진전되었다. 특히 이전 시기 하락했던 순수 고정금리 비중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혼합형까지 포함할 경우 그 비중은 훨씬 더 높아졌다.

여기에는 ‘보금자리론’과 ‘적격대출’의 판매 증가가 큰 영향을 미쳤다. (i) 보금자리론 판매 증가는 정부의 정책뿐만 아니라, 2007년 금융위기 영향으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결정하는 CD 금리가 상승하면서 보금자리론의 금리경쟁력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2010년부터 대환의 비중이 높아졌다. 다른 주택담보대출에서 보금자리론으로 갈아타는 사람들의 비중이 확대된 것이다(표 24) (ii) 적격대출은 ‘금융권 3대 히트 상품’으로 불릴 정도로 높은 판매량을 보였다. 출시 한 해에만 14.2조원이 판매되었다. 특히 대환 비중은 2012년 11월 21일 기준 63.8%로 보금자리론보다 더 높았다. 많은 사람들이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로 갈아타기를 시도한 것이다.

그 결과 MBS 발행 및 잔액 규모가 급증했다. 특히 2012년 급증세는 ‘적격대출’ 출시 때문이었다. 2012년 발행된 MBS의 48.5%가 적격대출을 기초자산으로 한 것이었다(그림 42). 이제 MBS는 ABS 시장을 주도하면서 새롭게 떠오르는 투자 상품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3. 주택투기의 위기와 주택투자의 정착

금융위기로 단기·변동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과 전세금을 이용한 주택투기는 위기를 맞았지만, 대신 정부의 주택정책을 통해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한 실수요자의 주택투자는 확대되었다. 이로써 주택투자가 정착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 주택가격은 잠시 하락세를 보이다가 금세 상승세로 반등되었다. 다만 금융위기의 여파로 상승세는 매우 완만했고, 2012년 말에는 정책효과의 소진으로 다시 소폭 하락했다.

유형별로는 아파트가 시장을 이끌었다. 지역별로 보면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는데, 위기 이후 지방이 주택가격의 상승을 주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수도권은 하락했다. 이것은 ‘하우스 푸어’ 문제가 주택투기 중심의 위기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수도권, 특히 서울지역은 주택투기를 주도했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 충격은 이후 수도권 실수요자들의 주택투자 증가 효과를 상쇄했다. 즉 ‘하우스 푸어’ 문제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발생했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주택투기의 위기와 주택투자의 정착은 아파트 규모별 매매가격지수 상승률 추이를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이전 시기와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주택투기와 관련된 대형 아파트가 아니라 실수요자의 주택투자와 관련된 중·소형 아파트가 가격 상승을 주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한편, 자가점유율은 하락했다. 이는 주택투기의 위기로 인한 주택의 매각이 주택투자 정착으로 인한 주택의 구매보다 더 활발하게 이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가점유율 감소폭은 2010-12년 사이 감소하는데, 이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에서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의 비중 증가, 보금자리론 판매 증가, 적격대출의 출시가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 시기 실수요자들의 주택투자가 증가하면서 자가점유율 하락을 어느 정도 상쇄했기 때문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다음으로 전세제도의 더욱 약화되었다. 주택투기 위기가 주택투기의 수단으로서 전세금의 유용성을 더욱 약화시켰고, 주택투자의 정착으로 임대시장에서 전세보다 월세가 유용해진 것이다. 게다가 증권시장 부양을 위해 저 강화된 저금리 정책도 전세금의 유용성을 약화시켰다. 즉 ‘전세의 월세화’가 한층 더 진전된 것이다. 이는 주택시장의 패러다임이 자본이득 모델에서 소득이득 모델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에 심각해진 소위 ‘전세대란’은 전세제도의 약화를 이런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전세금의 유용성이 급격하게 약화되면서 임대시장에서 전세공급이 줄어들고 임대인이 전세금 운용 수익의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전세금을 인상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의 비율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VII. 박근혜 정부의 주택정책: 현황과 전망

박근혜 정부 역시 전임 정부와 마찬가지로 ‘하우스 푸어’ 문제 해결을 정책목표로 삼고,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의 확대를 통해 MBS 발행을 활성화하는 것을 정책수단으로 채택했다.

한 가지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적기금인 국민주택기금과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의 역할을 확대했다는 것이다. 전자는 수익공유형·손익공유형 모기지를 운용하여 전세수요를 구매수요로 전환하려 했고, 후자는 부실 주택담보대출을 매입하여 상환조건을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으로 조정해주었다. 이것은 정부가 부실화된 주택담보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종의 ‘구제금융’을 단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2013년에도 보금자리론과 적격대출의 인기가 이어졌다. MBS 발행도 20조원 대를 유지했고, 잔액 규모는 더욱 확대되어 거의 50조원이 되었다.

2014년 들어서도 같은 맥락의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국민주택기금의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과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우대형 보금자리론’이 ‘디딤돌 대출’로 통합됨으로써, 국민주택기금의 주택담보대출이 MBS 발행의 기초자산으로 편입되었다. 증권화의 토대가 더욱 넓어진 것이다. 또 거시경제의 불안정 속에서 보금자리론과 적격대출 판매가 감소하고 MBS에 대한 투자가 주춤하자, 정부는 4월 MBS를 한국은행 공개시장 조작 대상 증권(금융회사의 RP 매매시 담보 증권으로 편입)으로 편입시켰다. 이것은 중앙은행이 MBS 투자에 나서겠다는 의미이다. 하반기 시작된 이른바 ‘초이노믹스’에는 주택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LTV·DTI 규제완화 등 관련규제를 대폭 손질하여 이러한 흐름을 더 강화하고자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출처: 재경부]

이와 같은 일련의 정책적 노력을 통해 실수요자의 주택투자가 증가하게 되면 MBS 규모가 더 확대되고 주택가격의 거품은 더 커질 것이다. 또 가계의 소득은 계속해서 금융투자자들에게 이전될 것이다. ‘초이노믹스’ 발표 이후 이미 시장이 반응하고 있다. 이후 가격상승세가 안정화된다면 망설였던 무주택자들이 주택구입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과학적 비판은 규제완화=주택투기의 도식에 갇혀 ‘부자들을 위한 정부’, ‘투기정부’ 등의 문제제기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대체로 이런 인식 하에서 그 해결책으로 투기규제와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시장을 만들 제안하지만, 이는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이다. 금융화라는 한국 자본주의의 거시적인 변화 속에서 일관되게 추진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에 대한 광범위한 문제제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1) 본 발제문은 발표자의 석사학위논문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주택 금융화에 관한 연구: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를 중심으로”를 요약한 것이다.

2) 이전에도 주택담보대출이 제한적으로 존재했었지만,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증권화 제도의 도입에 의해 활성화되었다는 의미에서 ‘본격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3) ‘하우스 푸어’는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대출금리가 상승하여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상환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4) 특히 미국의 경우 주택지분을 담보로 추가적인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주택지분대출’(home equity loan, HEL)이 발달되어 있어, 많은 가계가 소비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음.

5) 금융관료들은 주로 1970년대 미국에서 화폐주의 경제학을 전공한 후 귀국하여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경제기획원에 자리를 잡은 자들로 구성되었다.

6) 부실채권은 1997년 경제위기로 발생한 것이며, 신용카드채권은 증권시장의 활황이 미국발 IT투자붐의 위기(이른바 ‘닷컴위기’)로 종료된 이후 김대중 정부가 신용카드 발급을 급격하게 확대함에 따라 발생한 것이었다.

7) 이와 같은 상황은 20세기 초 미국의 대공황 이전과 유사하다. 그러나 대공황으로 인해 주택가격이 급락하고, 금리가 인상되고, 차입자의 소득 감소가 발생하면서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에 따라 대공황 이후 미국 정부는 연방주택청(Federal Housing Administration, FHA)을 설립하여 주택금융을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주택담보대출의 표준적인 형태로 자리 잡는다(모기지).

8) ‘동북아 금융허브론’의 수립에는 금융투자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서울파이낸셜포럼’의 역할이 컸다. 이 단체는 세계 3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의 국제고민은 김기환 회장을 중심으로, 전·현직 금융관료, 주요 금융기관장(외국계 포함), 금융전문가 및 학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9) 변양호 금융정책국장은 앞서 살펴본 서울파이낸셜포럼의 회원이기도 했다.

10) 근로자·서민주택구입자금대출과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대출이 확대되었다.

11) 한국주택금융공사는 미국의 대표적인 유동화 중개기관인 연방저당금융공사(Federal National Mortgage Association, Fannie Mae)를 모델로 설립되었다.

12) 한 공사는 주택담보대출을 담보로 하지만 수익증권이 아닌 회사채 형태로 발행되는 주택담보부채권(MBB)와 학자금대출을 기초자산으로 하여 발행되는 학자금대출담보부증권(SLBS)도 취급했다.

13) 기존 LTV 규제는 장기적인 원리금 상환능력보다는 채무불이행시 주택담보대출 채권확보를 위해 담보비율을 규제하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반면 DTI 규제는 소득에서 매년 갚아야 할 원리금을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채무자의 장기상환능력을 중시하는 것이었다. 또한 LTV 규제는 주택가격 상승기에는 소용이 없었다. 주택가격이 상승하면 대출가능금액이 오히려 증가하기 때문이었다. 반면 DTI 규제는 정의상 주택가격 상승과 크게 관련이 없고 대출만기를 장기로 하면 할수록 대출가능금액이 증가하기 때문에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 확산에 유리했다.

14) 다만 한국의 경우 순수월세가 아닌 전세제도와 월세제도의 중간 형태인 보증금 있는 월세의 비중이 높다. 이것은 오랫동안 전세제도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으로 한국 월세제도의 특수성을 보여준다.

15) 한편 이는 부동산투자회사(REITs, 이하 리츠)나 부동산펀드(REF)와 같은 부동산 기관투자자들의 성장과도 관련된다.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부동산으로부터 지속적인 현금흐름, 즉 임대소득이 발생해야하기 때문에, 전세보다 월세가 선호되기 때문이다. 실제 2001년 리츠가 도입되고 2003년 부동산펀드가 도입된 이래로 이 둘의 자산규모는 계속해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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