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다르고, 살아온 이력 달라도 함께

파업 100일 맞는 청소노동자

울산지역연대노동조합 울산과학대지부의 파업이 23일로 100일차를 맞았다. 노조 결성 이후 전원해고 문제로 76일동안 진행된 2007년 파업은 일찌감치 넘어섰다. 비교가 민망한 수준이다.

최정현 씨(69)와 김영석 씨(67)는 2007년 파업이 끝나고 울산과학대 동부캠퍼스 청소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다른 남성 노동자 3명과 캠퍼스 내 노상을 청소한다. 학교 내 쓰레기장 압착기도 담당한다. 이번 파업은 이들이 청소노동자가 된 후 처음 겪는 장기 파업이다.

최씨는 “오늘로 100일이다. 이제는 투쟁을 끝내려고 해도 끝낼 수 없다. 끝까지 이길때까지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며 장기파업이 조합원의 의지를 더 강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전라도 고흥에서 20여년전 울산으로 흘러왔다. 오랫동안 현대중공업 하청에서 일했다. 도장 일을 했지만, 페인트 냄새가 너무 심해서 기술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용접사가 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배우기가 수월한 샌딩일을 배웠다. 일당 3만원을 받으며 일했다. 친구가 하는 업체였다. 다른 업체로 옮겨가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마음이 너무 좋아. 의리 때문에 그렇게 못했재” 최씨는 웃었다.

김씨도 울산 출신이 아니다. 경주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경주 풍산금속 공장에서 일했다. 105mm 탄피를 만드는 일이었다. 정밀한 기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함께 일하는 동료의 실수로 손가락을 잃었다. 오른손 검지부터 약지까지 손가락 두 마디가 없다. 정리해고 기간에 가장 먼저 해고 대상이 됐다. 1년치 임금을 퇴직금으로 받고, 그 길로 울산으로 내려왔다.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말 못할 사연이다.

고향도, 살아온 이력도 다른 두 사람은 이제 형님, 동생하며 함께 70줄을 바라보게 됐다. 파업 농성 중간 중간 같이 담배를 태우는 담배 친구이기도 하다.

노조는 이날 파업 농성 100일을 맞아 ‘노동자 한마음 운동회’, ‘청소노동자들의 수상한 글쓰기’ 등 문화마당을 준비했다. 최씨는 노동자 한마음 운동회에서 세월호 리본 브로치를 상품으로 받았다.

최씨는 브로치를 내보이며 “일이 힘들진 않아. 이것보다 더 힘든 일도 했는데 뭘. 사람대우 받고 싶은 거지”라고 말했다. 김씨는 “저기 저 사람이 우리를 가장 못살게 군다”고 때마침 지나가던 학교 관리자를 손가락질 했다.
덧붙이는 말

이상원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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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과학대 , 청소용역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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