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가 말하고 싶은 것들 VS 말하지 못한 것들 (1)

[주례토론회] 1부 : 피케티가 말한 것들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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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이 인기다. 원래 프랑스어로 쓰인 이 저작이 처음 나온 것이 작년. 올초 영어판이 번역 출간되었고, 그 뒤 일사천리로 작업이 진행돼 마침내 한글판도 이제 볼 수 있게 되었다. 번역과 출간 과정에서 다소 잡음은 있었지만, 이 책은 현재 말 그대로 국내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 때마침 저자인 피케티 교수는 지난 주 한국을 방문, 한바탕 '인기몰이'를 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한글판 초판 3만부가 순식간에 다 나갔다는 얘기도 들린다.

주지하다시피 <21세기 자본>은 불평등에 관한 책이다. 불평등이라.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불평등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언제 불평등을 느끼는가? 나보다 못생긴 재벌집 아들놈이 내가 평소 좋아하던 여자 연예인이랑 스캔들 났을 때? 나보다 업무능력은 떨어지지만 사장이랑 '특수관계인'이라는 이유로 승승장구하는 입사동기를 볼 때? 매년 서울의 명문대 입학생 중에서 강남 출신의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 혹시 우리 애도 강남에 살았으면 공부를 잘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또는 지금 여러분들의 머릿속에는 비정규직, 쪽방촌, 여성들이 직장에서 흔히 맞닥뜨리는 유리천장, 파키스탄 출신 외국인노동자, 성소수자, 팔레스타인 등의 단어들이나 이미지들이 맴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양태의 불평등들이 자본주의 하에서는 결국 '소득 불평등(income inequality)'으로 귀결된다. 피케티의 논의가 시작되는 것도 바로 여기다. 그는 줄잡아 1970년대 중반 이후 소득 불평등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을 보고,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나아가 이를 완화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 다룬다.

자본소유의 불평등이 소득불평등의 원인

왜 불평등이 발생하는가? 피케티가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자본소유의 불평등이다. 이 대목에서 마르크스를 떠올리실 분들이 계시리라. 그 또한 자본의 소유여부를 기준으로 자본가와 노동자, 곧 자본주의의 양대계급을 구분하니까.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피케티가 마르크스를 포함한 고전경제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본(capital)을 정의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과 부(wealth 또는 asset)를 구별한다. 그가 말하는 자본이란 잉여가치를 낳는 것을 본질로 하며, 잉여가치를 낳기 위해 자본은 반드시 노동을 고용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본이 아니고, 바로 이것이 마르크스가 "자본이란 단순히 사물이 아니라 인간관계다"라고 한 까닭이다. 따라서 똑같은 액수의 돈이라 해도 생산활동에 투입되지 않으면 자본이 아니다. 여기서 보듯,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에게 자본을 소유한다는 것은 곧 노동자를 고용해 생산을 조직하고 나아가 잉여가치를 얻는다는 것을 뜻한다. '자본주의'라는 용어도 자본의 이러한 성격을 반영한다.

반대로 피케티는 일반적인 부와 자본을 구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에겐, 공장을 돌리기 위해 원자재 구매에 쓰는 돈도, 노후를 위해 시골에 마련해둔 땅도, 금고 속에서 잠자고 있는 금덩이도 모두 자본이다. 이에 대해, 명망있는 마르크스주의 학자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ry)는 피케티의 자본 개념이 틀렸다고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비판은 정당하지 않다. 개념의 정의(definition)란, 그 해당 개념이 구사되는 '맥락'에 따라 어느 정도는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자본이라는 개념을 생산과 관련해 쓰지만, 피케티는 분배의 차원에서 논의를 전개한다. 즉 이렇게 맥락이 상이한 한, 일단은 양자의 차이를 옳고그름의 문제라기 보단 단순한 정의의 차이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자본소유의 불평등이 소득불평등을 야기한다는 것은 직관적으로는 이해하기 쉽다. 소득은 크게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으로 나뉘는데,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부)은 대개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다른 조건이 같다면 자본을 가진 소수가 노동만 하는 대다수의 사람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는 것은 당연하다(심지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자본소득만 챙겨도 그럴 수 있다). 또한 이 자본소유자는 그러한 소득 중 일부를 재투자해 자신의 자본을 늘려갈 것이므로 다음 기 그의 자본소득은 그만큼 더 늘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한 해 동안의 총국민소득 중에서 자본소유자가 차지하는 몫이 점점 더 커질 것이며, 마침내는 국민소득 전체를 소수의 자본소유자들이 독차지할 수도 있다. 요컨대 불평등이 극에 달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국민소득의 대부분을 소수의 자본소유자들이 차지하는 상태, 그리하여 한 개인의 경제상황을 결정하는 데 있어 그의 능력보다는 앞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더 큰 역할을 하는 상태를 피케티는 '세습 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라고 부른다. 흔히 자본주의를 그 이전의 봉건제 등과 비교해 능력 본위의(meritocratic) 사회로 여기곤 하나, 1백년 전만 해도 자본주의는 세습적인 성격이 강했다. 특출난 능력으로 성공해봐야 예컨대 돈많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만 못했음을, 피케티는 발자크(Honore de Balzac)나 오스틴(Jane Austen)의 소설을 참조해 흥미롭게 보여준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이런 성격은 20세기를 거치면서 상당히 약화된다. 가장 큰 원인은 전쟁. 전쟁은 기존의 사회적 부의 상당량을 파괴함으로써 자본소유자들의 소득기반을 약화시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극도로 누진적인 소득세제의 도입은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을 아예 '몰수'하는 효과를 냈다. 이러한 사정들의 결과 자본소득자의 소득이 극적으로 줄었고, 경제 전체의 불평등도 적지 않게 완화되었다.


  <그림 1> 불평등의 다양한 양태들 : 피케티는 주요 선진국들을 대상으로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 20세기에 존재했던 불평등의 양태를 단계별로 크게 세 가지로 유형화한다. 또한 현재와 같은 불평등 심화 추세가 계속될 경우 도달할 수 있는 극심한 불평등 상태를 추가적으로 상정한다. 이러한 유형화에서 그가 가장 중요한 변수로 꼽는 것이 바로 소득순위 최상위 10% 및 1%의 소득비중이다. 여기서 사용된 소득은 근로소득과 자본소득을 합산한 것이다. [출처: 피케티, 21세기 자본]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추세가 다시금 역전되고 있다. 자본을 파괴할 1930-40년대와 같은 '세계대전'은 다시 일어나지 않고 있고, 해외자본의 유치와 자본수익성의 보장을 위한 각국간 조세인하경쟁 때문에 자본에 대한 세제도 약화되고 있다. 대기업의 고위임원들과 대규모 자본을 소유한 소수가 다시금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 끔찍한 불평등이 심화되고, 이러다간 우리는 19세기 식의 '세습 자본주의'로 돌아갈 수 있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자본수익률 낮추기 위한 세제 개혁

대략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피케티는 현재 극심해지고 있는 불평등을 완화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논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가 내놓는 해법은 세제개혁이다. 즉 흔히 말하는 '부자 증세'. 그러나 피케티에게 이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그는 먼저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해석해 자본주의 발달의 일반적인 법칙들을 도출하고, 이러한 법칙들이 실제 역사에서 어떤 식으로 드러났는지를 확인한 뒤, 그 나름대로 21세기 불평등 악화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대응책으로서 자신의 세제개혁안을 내놓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거쳐온 역사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피케티가 가장 중요한 변수로 내세우는 것이 바로 자본수익률(r)이라는 개념이다. 그는 특히 이를 총국민소득의 성장률(g)과 대비시키는데, 그에 따르면 역사를 통틀어 r이 g보다 거의 언제나 컸다(<그림 2>). 그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역사에서 국민소득성장률은 0.5% 미만에 머물렀고, 2% 이상으로 높아진 것도 최근에 있었던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반면 자본수익률은 대체로 4~5%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림 2> 자본수익률(세전) 대 국민소득성장률 : 이 그림에서 주의할 점은 하나의 점이 주어진 기간의 연평균값을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1820~1913년 사이에 자본수익률(r)은 연평균 5%이다. [출처: 피케티, 21세기 자본]

이렇게 자본수익률이 국민소득성장률보다 높은(부등호를 써서, 'r>g'인) 까닭이 뭘까? 영리하게도, 피케티는 이를 논리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그는 보통의 경제학자들처럼 일정한 조건이 달린 모형을 세워 이 부등식을 증명하는 대신에, 즉 그가 <21세기 자본>에서 이 부등식을 내놓았을 때 이를 증명하려 했던 몇몇 다른 경제학자들과는 달리, 역사적 자료로부터 이를 관찰하기만 할 뿐이고 그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한 해석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첫째, r>g라는 것은 경제가 전체적으로 성장하는 것보다 자본이 더 빠르게 커짐을 의미한다. 둘째, 자본이란 그 소유자에겐 소득의 원천인데, 자본이 빠르게 증가한다는 것은 곧 자본소유자의 소득이 경제전체의 성장속도보다 빠르게 증가한다는 뜻이다. 셋째, 이 경우 국민소득 대비 자본총량의 비율이 높아지고 총국민소득 중에서 자본소유자에게 가는 몫도 점차 커지는 게 당연하다.

그러므로 피케티가 보기에 r>g 부등식이 계속해서 작동한다면 궁극적으로는 한 해에 발생한 모든 소득을 자본소유자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고,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자본주의가 존속될 수 없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이런 일이 극에 달한 것이 1910년대 초반이었다. 이른바 '아름다운 시대', 벨 에포크(Belle Epoque)의 절정기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피케티는 자신이 고안한 r>g 부등식을 일컬어 '자본주의의 핵심 모순(the central contradiction of capitalism)'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림 3> 상위 10%의 소득비중 [출처: 피케티, 21세기 자본]

  <그림 4> 자본-소득 비율 [출처: 피케티, 21세기 자본]

그러다가 전쟁이 터졌다. 주무대는 서유럽. 엄청난 양의 자본이, 즉 최고 부자들의 소득원천이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그들의 총국민소득 대비 소득 몫이 줄어든 것은 물론이다. 이는 위 두 개의 그림에 잘 나타난다. 또한 전비마련을 위해 주요국들은 보편적 소득 세제를 도입했고, 차츰 그 누진성을 강화해 끝내는 최고 부자들의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은 거의 몰수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몇몇 나라에선 최고 소득세율이 90%를 넘기도 했다(<그림 5>). 아울러 상속에 대해서도 꽤 엄격한 규제가 도입되었다(<그림 6>).

  <그림 5> 최고소득세율 추이 [출처: 피케티, 21세기 자본]

  <그림 6> 최고상속세율 추이 : 20세기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개인소득세와 상속세는 누진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위 그림들은 그러한 누진성의 가장 높은 단계의 세율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최고소득세율은 38%(1억5천만 원이 넘는 소득에 적용)다. [출처: 피케티, 21세기 자본]

피케티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그의 r>g 부등식과 연관 짓는다. 자본주의의 핵심 모순인 이 부등식이 계속해서 작동할 경우 매년의 소득이 자본을 소유한 소수에게 점차 몰리게 되는데,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강력한 누진세제(progressive taxation) 덕분에 자본수익률이 크게 떨어졌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경향도 역전되었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 7>은 위에 제시한 <그림 2>에 세제와 전쟁 등의 효과를 추가적으로 고려한 것이다. 1913~1950년, 1950~2012년 기간 동안 r과 g의 관계가 역전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7> 자본수익률(세후) 대 국민소득성장률 : 이 그림에서 주의할 점은 하나의 점이 주어진 기간의 연평균값을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1820~1913년 사이에 자본수익률(r)은 연평균 5%이다. [출처: 피케티, 21세기 자본]

글로벌 부유세

바로 이러한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피케티는 오늘날 극심해지고 있는 불평등에 대한 해법을 도출해 낸다. 피케티가 보기에, 줄잡아 1970년대 중반 이후 불평등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핵심 원인은 세제를 통한 자본통제가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과 해외투자 유치를 명목으로 각국 정부들이 경쟁적으로 조세를 인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본수익률(r)이 높아졌고, 막대한 자본을 축적하는 것은 물론 그렇게 축적된 자본을 별다른 비용을 들이지 않고 세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r을 떨어뜨리는 자본에 대한 강력한 과세뿐이다. 단순히 자본으로부터 얻는 수익에만 세금을 물리지 말고 자본보유 자체에 대하여 세금을 매겨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자본소유자들의 자본보유 행태는 그야말로 '글로벌'하다. 엄청난 자본을 조세도피처에 숨겨놓는 것은 그들에겐 통상적인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따라서 오늘날 자본과세도 '글로벌'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피케티가 '글로벌 자본세(부유세)'를 제안하는 배경이다. 물론 이러한 세제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부의 소유현황에 대한 포괄적이고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따라서 각국의 조세당국과 금융기관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협력의 결과 정말로 글로벌한 차원의 과세 인프라가 갖춰진다면, 그것은 단순히 세금을 걷는 것 이상의 용도를 갖는다. 즉 그것은 세계 자본주의의 움직임 자체를 아주 미세한 수준에서까지 통제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피케티는 글로벌 자본세의 도입은 단순히 세금을 걷는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한편 현재 불평등 심화는 소득세제의 누진성 약화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앞서 소득은 크게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이 있다고 했으므로, 소득불평등은 무엇보다 이 양측에서 파악할 수 있다. 자본소유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자본에 대한 과세가 약화되면서 자본소득 면에서의 불평등이 극심해지고, 과거엔 대기업 임원들에게 연봉을 많이 줘도 모두 세금으로 나갔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연봉이 오르는 일이 없었는데 이제는 세금을 조금만 내도 문제되지 않기 때문에 천문학적 수준의 보수를 챙기는 대기업 임원의 수도 급증했다. 결국 이런 식의 불평등을 완화하려면 소득세의 누진성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피케티는 구체적으로 현재 세계적으로 35~40% 안팎으로까지 떨어진 최고소득세율을 80% 수준까지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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