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밴드 등 무차별 ‘사이버 사찰’, 압수수색과 감청 넘쳐나

[사이버 사찰 토론회] 당사자는 압수수색 정보 알 수 없어,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무력화

검찰이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 카카오톡을 압수수색해 3천 여 명에 달하는 개인정보 및 메신저 대화 등을 사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권력의 사이버 사찰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13일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와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사과에 나섰지만, 전 국민적 불안감을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이전에도 카카오톡, 밴드 등 사이버 상에서 공권력의 무분별한 사찰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민변과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인권단체연석회의, 진보네트워크 센터 등 8개 인권, 법률 단체들은 15일 오전 10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 및 긴급토론회를 열고 사이버 정치사찰 대응 방법을 논의했다.


카톡, 밴드 등 무차별 ‘사이버 사찰’, 압수수색과 감청 넘쳐나

정진우 부대표에 대한 카카오톡 압수수색 논란 이전에도 경찰의 사이버 사찰은 무분별하게 이뤄져 왔다. 검, 경은 지난해 12월 철도노조 파업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의 카카오톡과 네이버 밴드 계정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압수수색 대상 및 범위는 양성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유기수 사무총장, 이상진 부위원장 등이 2013년 12월 19일~25일간 이용했던 카카오톡 대화내용 및 네이버 밴드 대화 내용 등이다.

양성윤 수석부위원장은 “수사당국은 철도 지도부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지도부 3명의 카톡과 밴드를 압수수색했다”며 “누구나 당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압수수색 이후 스스로 검열을 하게 되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SNS를 하지 않고 있다. 마치 공권력 앞에서 발가벗겨진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당시 파업에 참여한 철도노조 조합원들을 상대로도 카카오톡 메신저 내용과 네이버 밴드 내용, 대화상대 정보 및 송수신 내역 등을 무차별적으로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피해자인 박세증 조합원을 상대로 네이버 밴드 및 밴드 대화 상대방의 가입자 정보, 송수신내역, 카카오톡 대화 내용 등에 대한 압수수색 집행을 통보했다.

특히 지난 9월 경찰의 압수수색 집행 처리 결과 통보에 따르면, 경찰은 박 조합원이 밴드에 가입한 시점부터 2013년 12월까지 기간의 내용들을 모두 사찰했다. 박 조합원이 가입한 밴드는 철도노조 관련 모임이 5개, 시민사회 관련 단체 모임이 2개였고, 심지어 가족 모임과 2개의 친목 모임도 있었다.

박 조합원은 “9월에 경찰에서 통보한 자료를 보면, 밴드가입 시점부터 2013년 말까지 모든 내용을 압수수색했다”며 “철도 파업의 합법, 불법 여부는 아직도 재판 중인데, 그럼에도 수사당국은 일방적으로 불법이라 규정하고 조합원 및 간부들의 소통 공간을 모두 들여다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서 “나와 밴드로 연결된 사람들은 약 800명 정도 됐다. 이들도 잠재적인 수사 대상자다. 친목밴드에는 일면식도 없는 500명의 사람들이 가입돼 있는데 나 때문에 가입자 정보가 수사당국에 넘겨지는 것이 말이 되나. 이런 상황이 갖는 효과는 자기 검열을 하는 것”이라며 “만약 친목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 이를 인지하게 된다면, 스스로 검열을 할 것이고 그 공간은 죽은 공간이 된다”고 비판했다.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 카카오톡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정당활동, 사회운동, 가족 및 지인과의 대화, 친목도모 등 수십 개의 채팅방에 포함돼 있는 3천 명의 대화 내용과 아이디 및 전화번호, 수발신 내역, 이미지 파일 등이 모두 압수 대상이 됐다.

시민 이요상 씨는 “시민들 500명이 모여서 여러 소식을 공유하는 단체 카톡방이 있는데 누군가가 정진우 부대표를 초대했다. 정 부대표는 이 방에서 딱 한번 정도 글을 올렸는데, 경찰이 500명의 정보를 모두 털어갔다는 데 경악했다”며 “다음카카오가 아무런 검토도 없이 일반 시민들의 정보를 내어준 것이 인권침해 요소가 없는지를 비롯해 모든 피해보상 및 재발방지 대책 등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압수수색, 감청의 법적 구분 모호해져...압수수색 요건 강화 요구
당사자는 압수수색 정보 알 수 없어,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무력화


다음카카오 측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회사를 상대로 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영장 요청 건수는 2013년 상반기 983건에서 하반기 1,693건으로 대폭 늘어났다. 2014년에는 상반기에만 무려 2,131건의 압수수색 요청이 들어왔다. 이 중 회사가 수사에 협조하는 비율은 약 77~88% 정도다. 또한 수사기관이 회사에 감청영장으로 요청한 정보는 2013년 상반기 36건, 하반기 50건, 올 상반기 61건으로 늘어났고. 처리율은 91~95% 정도로 높은 편이다.

이번 사태 이후, 다음카카오 측은 수사기관의 감청 요청은 거부하겠지만, 압수수색에는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감청과 압수수색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점이다. 이미 카카오톡은 147건의 감청영장을 받고 집행에 협조했는데, 그것은 대화를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감청’ 방식이 아닌, 며칠 분의 대화내용을 수집했다가 수사기관에 제공하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화 내용이 서버에 저장되고 일주일 후에야 사후적으로 정보를 제공했다면 감청이 아닌 사실상 압수수색으로 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메신저 서비스가 발전해 감청과 압수수색의 구별이 모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법 제도적으로 감청과 압수수색을 구별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압수수색을 감청에 준하는 요건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형사소송법상 피의자 또는 변호인이 압수수색영장 집행에 참여할 권리가 보장돼 있지만, 관행적으로 이를 무시해 온 것도 문제다. 정진우 부대표의 경우, 압수수색의 대상이 된 카톡방 및 대화내용, 지인들의 정보가 어떤 것인지 지금까지 전혀 통보받지 못했다. 정 부대표는 “당사자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방어권을 갖지 못한다. 경찰이 보관 중인 원본이 관서에서 어떻게 이용될지, 어떤 방식으로 내부 조회가 가능한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며 “이 정보가 또 다른 정보기관으로 재전송되고 아예 빅데이터처럼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호중 교수 역시 “나의 어떤 정보를 어떻게 보관하고, 누구에게 제공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사적인 내용, 정당 활동 내용, 개인의 신용카드 비밀번호 등 민감한 대화내용도 빠져나가지만, 직접 당사자는 전혀 파악할 길이 없다”며 “헌법상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조차 수사 과정에서 완전히 무력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서 “압수수색 즉시 대화내용을 봉인하고, 피의자가 참여해 범죄와 관련 없는 정보를 추려내고, 범죄와 관련 있는 것만 압수수색 하는 방식으로 남용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며 “아울러 사후통지는 압수수색이 있은 후 기본적으로 ‘즉시통지’ 규정을 두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조영선 민변 변호사는 “카카오톡 압수수색의 가장 큰 문제는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현재 가입자가 1천 만 명인데, 한 명당 대화상대는 수백 명이다. 몇 명의 정보만 모아도 모든 카카오톡 사용자의 정치적 성향, 일정한 동선, 지향점을 차악할 수 있고 축적될 수 있다”며 “이 같은 정보를 국가에서 관리하게 되면 적지 않은 탄압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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