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 위기 및 붕괴논쟁 평가

[주례토론회] 정성진, 윤소영, 김수행의 자본주의 위기분석에 대한 비판


김성구 교수 발표 녹취파일(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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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009년 위기 이후 5년, 자본주의는 구조위기를 극복하진 못했지만, 경기순환상으로는 회복국면을 넘어가고 있다. 2010년을 전후로 미국 자본주의는 회복국면으로 넘어섰고, 지금은 호황 초기국면으로 진입하였다. 유로존은 그 사이 더블딥을 겪었지만, 미약하나마 다시 회복국면에 있다.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지배도 재건된 상태다. 경기회복과 함께 2013년 이래 국제금융시장도 각종 비관론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났다. 지난 위기에 대해 여러 좌파 논자들이 더블딥이나 신자유주의의 종말 또는 케인스주의의 복귀, 심지어 자본주의의 붕괴까지 전망했지만, 이들의 전망은 점점 더 명백하게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 케인스주의 좌파든 마르크스주의 좌파든 이들의 이론적 결함이 심각하다는 말이다. 이들의 위기론과 붕괴론의 오류를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것 없이는 위기 이후의 자본주의에 대한 올바른 전망을 가질 수 없다.

지난 위기에 대한 필자의 테제

“필자는 당시[김성구, “신자유주의 금융위기와 주기적 공황”,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제17호, 2010] 이 위기를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과잉생산공황론에 입각하여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에 고유한 금융위기와 주기적 과잉생산공황의 결합, 중첩으로서 설명하였다. 또한 이 위기에 대한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개입을 케인스주의의 복귀가 아니라 위기에 빠진 신자유주의를 구원하고 재편하는 신자유주의적 개입주의로 파악하고, 따라서 세계자본주의는 대위기의 폭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자유주의의 틀 내에서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위기는 경기순환적으로는 이미 새로운 순환을 시작하여 2010년을 전후해서 경기회복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는 루비니, 크루그먼, 스티글리츠 등 일각에서 줄기차게 주장하는 더블딥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었다. 물론 신자유주의적 국가개입은 모순에 찬 것이고 구조위기를 결코 극복하지 못할 것이며, 국가개입의 모순이 이제는 심각한 채무위기로 발전하는 상황에서 이 새로운 순환은 매우 불안정하고 취약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김성구,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와 주기적 과잉생산공황”, 김수행•장시복 외, <정치경제학의 대답>, 사회평론, 2012, 74쪽.)

이렇게 위기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전망이 가능했던 것은 필자가 마르크스의 위기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개입주의와 신자유주의 분석에 기반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구미권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이를 추종하는 국내 논자들에 있어서는 마르크스 위기론은 올바로 수용되지 못했고,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거부에 따라 개입주의 국가 분석이 공백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위기 분석과 전망의 오류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필자의 테제는 지난 위기가 주기적 공황과 신자유주의 금융위기의 중첩으로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명시적으로 서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올바로 이해되지 못했다. 정성진조차 내 입장을 과소소비론에 입각한 주기적 공황이라고 평가하고 이런 이론으로는 구조위기와 대위기를 설명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정성진, “2007-2009 글로벌 경제위기와 마르크스주의 공황론”, 김수행•장시복 외, <정치경제학의 대답>, 38-44쪽.) 필자가 신자유주의 구조위기를 그렇게 강조했는데도 말이다. 더군다나 마르크스의 주기적 과잉생산공황론을 필자가 과소소비론으로 이해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정성진은 과잉생산공황론과 과소소비론이 어떻게 다른지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강조하건대 지난 위기의 다른 측면은 신자유주의 금융위기다. 마르크스주의의 일각에서는 통상적으로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탓으로 돌리는 위기론은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과 위기의 결과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가 아닌 다른 자본주의라면 위기를 면할 수 있다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이런 비판은 케인스주의 좌파의 주장에 대해서는 타당할 수 있지만, 마르크스주의 좌파에 대해서는 합당한 비판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론은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과 추상적 법칙만을 주장하면 되는 게 아니고, 자본주의의 상이한 발전단계에서 나타나는 위기의 구체적 형태와 성격을 규명하는 데까지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금융위기는 구조위기의 관점에서 보면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의 관철과 케인스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모순이 결합하여 발생한 1970-80년대의 현대불황에 대한 독점자본의 대응책으로서 신자유주의적 전환(세계화와 금융화)이 가져온 직접적 결과이다.

위기 이후의 전개과정과 금융시장의 충격

위기 이후 전개과정


금융시장의 충격


금융시장은 기본적으로 경기순환을 따라 변동한다. 공황과 불황을 지나 회복국면으로 넘어간 이래 다우존스 지수는 상방운동으로 전환했다. 금융시장에서 비관론의 충격이 가할 때마다 이 지수는 폭락했지만 빠르게 교란을 극복하고 경기순환을 따라 상방으로 운동, 역대 최고치를 계속 갱신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3차에 걸친 연준의 양적완화도 큰 역할을 하였다. 실물경제의 성장과 비교해서 더 가파르게 상승하는 주가지수는 이런 효과의 표현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건 경기순환을 반영한 운동이다.


위기 이후 경기순환

경기순환의 국면들, 대부분 논자들이 이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경기회복 국면과 관련한 논란도 일어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경기순환의 계량적 정의/경기순환의 개념적 정의에 대해서는 長島誠一,『経済と社会』, 桜井書店, 2004, 103쪽의 그림 참조. 아래 그림)


미국경제 사이클


2014년 8월 실업률은 6.1%다.(전 사이클 최저 실업률은 2007년 5월 4.4%, 현 사이클에서 최고 실업률은 2009년 10월 10.2%였다.) 실업률은 대표적인 경기후행 지표다. 따라서 2009년 10월 이래의 여전히 높은 실업률을 근거로 당시 경기회복을 부정하고 공황과 위기를 주장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실업률이 연준 목표치 6.5%에 근접함에 따라 2013년 12월부터 3차 양적완화는 축소, 2014년 10월 완전히 종료될 예정이다. 그런데도 낮은 인플레율과 함께 초저금리가 지속되는 상황(2008년 말 이래 거의 6년 간)이라 이 순환은 분명 이례적으로 취약한 것이다.(전 사이클의 경우 2001년 공황이후 3년간 저금리 기조 유지, 2004년 6월부터 단계적으로 금리 인상.) 2015년부터 단계적 금리 인상이 예상된다.

유로존 사이클


2014년 2/4분기 유로존의 GDP 성장률은 0%, 유로존은 2014년 2/4분기에도 아직 전 사이클의 고점(2008년)을 회복하지 못했다. 실업률은 2014년 7월 11.5%다.(전 사이클의 고점에서 최저 실업률은 2008년 7.5%). 그러나 채무위기의 중심이었던 그리스, 스페인은 실업률이 아직도 25%를 넘나드는 수준이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완고한 신자유주의와 긴축이 더블딥을 유발했고, 채무위기 중에 신재정협약으로 긴축정책이 오히려 강화되었다. 최종 대부자로서의 유럽중앙은행의 역할도 마찬가지로 제한되어있다. 필자는 2012년 이미 유로존이 더블딥 경계에 와 있음을 지적하였고, 유로존이 더블딥으로 빠진다면 신자유주의 교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김성구,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와 주기적 과잉생산공황”, 75쪽.)

이렇게 보면, 세계경제의 회복은 불안정하고 불균등하게 진행되는 상황이다. 미국경제는 호황 초기국면으로, 유로존 경제는 취약한 회복국면에 있다. 좌파 논자들은 미국경제를 중심으로 세계자본주의가 경기회복 국면에 있을 때 뿐 아니라 회복국면을 넘어 호황 초기국면으로 진입하는 상황에서도 공황과 더블딥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루비니는 2010년 이래 경기회복은 금융버블이라고 줄기차게 더블딥을 주장하고, 2010년부터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와 유로존 붕괴를 전망하고, 2011년부터는 2013년에 퍼펙트 스톰이 온다고 했는데, 어느 하나 맞은 게 없다. 심지어 지금도 공황과 파국을 운운하는 논자들이 존재한다. 성장률 7%가 넘는 중국경제에 대해서도 공황을 말하는 자도 있다.

마르크스 좌파는 경기순환상 경기회복 국면 변화에 관계없이 항상 위기와 붕괴를 말하면 되는가? 순환상의 호황은 어차피 새로운 공황으로 끝날 것이니까! 나아가 장기번영과 장기침체의 국면 변화에 관계없이 위기와 파국만 주장하면 되나? 이윤율의 저하법칙의 관철과 함께 결국 장기침체와 파국을 맞이할 것이므로! 그 때가서 내 주장이 맞았다고 할 수 있나? 역사적인 사회구성체로서 자본주의도 언젠가는 종말을 고할 것인데, 그 때가 언제든 지금 자본주의가 붕괴한다는 내 전망이 맞다고 할 것인가? 마르크스 좌파의 현실분석의 과제는 결코 그런 게 아니다. 경기순환과 공황이 10년 주기로 반복한다고 해도, 또 자본주의가 장기적으로 성장과 침체를 동반한다 하더라도, 또 언젠가는 자본주의가 붕괴한다 하더라도, 시도 때도 없이 공황과 장기침체 그리고 붕괴만 주장하는 것은 경제정세 분석의 무능력을 표현할 뿐이다. 문제는 당면한 국면이 경기순환 상의 어떤 국면인지, 장기발전 상에서는 어떤 단계인지, 경기순환적으로 또 중장기적으로 어떤 국면으로의 변화가 전망되는 지 분석하고 이에 대한 좌파적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국가개입 프로그램의 성격

지난 위기에 자본주의 국가는 중앙정부의 재정투입과, 중앙은행의 초저금리 및 유동성 공급을 통해 크게 보면 경기부양과 유가증권 매입 및 보증 그리고 은행 및 기업주식 인수를 도모했다. 이는 한편에서 주기적 과잉생산공황에 대처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금융위기에 직면한 금융자본을 회생하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임기말 부시 행정부 이래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 투입액은 1조4500억 달러, 중앙은행의 세 번의 양적완화만도 4조 2300억 달러(1-2차 2조3500억 달러, 3차 양적완화 현재까지 1조8800억 달러)에 이른다. 이러한 국가개입은 오바마 민주당 정부로의 교체와 맞물려 언론에서도 또 학계에서도 국가의 귀환 또는 케인스주의의 복귀로 이해되거나 그런 전망이 쏟아졌다. 그러나 국가개입 프로그램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이는 케인스주의와는 별로 관계가 없고, 실은 신자유주의 재건 프로그램이었다. 케인스주의로 평가할 수 있는 건 재정확대와 경기부양 정도인데, 그러나 이건 소득재분배와 사회보장이 없는 경기부양, 즉 신자유주의 정권으로서도 위기 시에 어쩔 수 없는 일종의 고육지책일 뿐이었다.

케인스주의 좌파든 마르크스주의 좌파든 신자유주의 재건 프로그램을 케인스주의의 복귀로 간주하게 된 건 신자유주의가 국가개입주의의 한 형태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한 형태, 반동적 형태임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폐기하거나 거부한 필연적인 귀결이다.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폐기/거부와 함께 국가개입주의와 경제정책을 분석할 이론적 수단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 위기에서 누구나 국가가 위기에 개입한다는 건 말한다. 공적자금을 운운하고 양적완화를 말한다. 그건 누구 눈에도 보이는 주목할 만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인스주의 경제정책론은 말할 것도 없고 마르크스주의 이론 내에서도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외에는 국가가 왜 공황과 위기 시에 금융자본과 독점자본을 구제하기 위해 개입하는가를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도대체 어떤 좌파 이론이 공적자금 투입과 손실의 사회화를 통한 금융자본의 회생과 국유화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나? 장기파동론? 네오마르크스주의 이론? 조절이론? 역사적 자본주의론? 세계체제론? 포스트 케인스주의론? 어떤 이론에도 이런 개입주의를 설명하는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들 이론에 입각한 논자들이 이론적 논거 없이 직접 정부와 중앙은행의 개입정책을 분석한다고 나서는 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통상 신자유주의를 국가개입의 철폐로 이해하고 있지만, 1980년대 초 신자유주의 정권의 등장 이래 국가개입주의는 철폐된 게 아니라 반동적 형태로 강화되었다. 1980-90년대 저축대부조합 파산, 1998년 LTCM 파산, 2000-2001년 신경제 붕괴 등 위기 때마다 공화당 정부든 민주당 정부든 미국 정부는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과 중앙은행을 통해 금융자본을 구제하였다. 그렇게 보면, 지난 금융위기 때의 국가개입은 새삼 놀랄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서야 국가의 귀환을 운운하고 케인스주의의 복귀를 말한 것이 놀랍기만 하다.

주기적 공황과 구조위기의 혼란

지난 위기 논쟁에서 많은 논자들이 주기적 공황과 구조위기를 올바로 구별하지 못하고 혼동하였다. 김수행(『세계대공황』, 돌베개, 2011)은 지난 위기를 20세기 세 번째 ‘세계대공황’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세계대공황이 주기적 공황인지 구조위기를 말하는 건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우리가 말하는 구체적인 세계대공황은 반복하는 경제순환 상의 수많은 공황 국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축적양식의 변화를 포함하는, 특별하고 드물며 구체적인 공황 국면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20세기 이후의 세계대공황을 세 시기 -1930~1938년, 1974~1982년, 그리고 2008~현재-로 국한하고 있습니다.”(『세계대공황』, 40쪽). 자본주의 구조변화를 가져오는 주기적 공황이 세계대공황이란 말인데, 김수행의 주장과 달리 1930~1938년은, 1974~1982년과 마찬가지로 주기적 공황이 아니라 주기적 공황을 포함한 1산업순환이며, 각각 구조위기 국면을 구성하는 특정시기인 것이다. 자본주의 역사상 제2차 구조위기는 1930년으로부터 1938년을 넘어 제2차대전 기간을 포함하고(또는 넓게 잡으면 1914-1945년이고), 제3차 구조위기인 현대불황은 논자에 따라 1970-1985년 기간, 또는 1970/1974년 이래 현재에 이르는 시기까지 포함한다.(마르크스주의 공황론사에서 제1차 구조위기는 1873-1895년의 대불황을 말한다.)

뒤메닐과 레비를 따라가는 윤소영의 혼란도 마찬가지다. 윤소영(『이윤율의 경제학과 신자유주의 비판』, 2001)은 미국경제가 1969-70년은 순환적 위기, 1973-75년은 구조적 위기, 1980년은 순환적 위기, 1981-82년은 구조적 위기, 1990-91년은 순환적 위기라 하는데, 이는 이윤율 추세선이 하락할 때 이윤율이 급격히 하락하면 구조위기고 추세선이 상승할 때 그 아래로 하락하면 순환적 공황이라는 주장에 근거한 것이다. 이는 한 마디로 이론적 근거가 없는 잘못된 것이다. 1973-75년 위기도, 더블딥으로 특징지워진 1980-82년 위기도 모두 순환적 위기며, 현대 구조위기란 1970-80년대 이래의 자본주의의 장기침체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기적 공황과 구조위기를 혼동하면, 2007-2009 위기가 주기적 공황인지 구조위기인지 그 성격 자체도 규명할 수 없고, 나아가 이 위기로부터 어떤 국면으로 변화하는 건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김수행도, 윤소영도 이 위기가 주기적 공황과 신자유주의 구조위기가 결합된 위기라는 것, 신자유주의 구조위기 하에서도 주기적 공황은 회복국면으로 전환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김수행은 신자유주의 축적체제가 지속되는 한 현재의 세계대공황은 계속된다고 주장하고(신자유주의하 경기회복을 부정하고) 근거 없이 축적체제의 전환을 전망했는가 하면, 윤소영은 아예 자본주의 체제의 최종적 위기와 붕괴 ‘년도’까지 예언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달리 필자는 신자유주의 하에서도 산업순환의 전개와 회복국면으로의 전환을 주장했고, 국가의 위기극복 프로그램은 금융자본의 구제와 회복을 목표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며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 축적체제가 대체되는 게 아니라 재편되는 것이어서 대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위기를 자본주의 역사상 제4차 구조위기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제출하였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과 주기적 공황 그리고 구조위기의 관계

주기적 공황과 구조위기의 혼란은 이론적으로 보면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와 관련되어있다.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는 장기적 축적둔화를 설명할 뿐이고 직접적으로 주기적 공황이나 금융위기를 설명하는 게 아니다. 장기위기(장기침체)는 ‘생산가격=시장가격’의 전제 위에서 구성된 (생산가격)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에서 비롯되는 것인 반면, 주기적 공황은 현실경쟁과 불균형 그리고 과잉생산에 따른 시장가격 이윤율의 하락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산업순환과 그에 따른 현실의 시장가격 이윤율 변동의 평균적인 경로를 따라 운동하는 게 생산가격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이다. 앞서 본 김수행과 윤소영을 비롯해서 대개의 논자들은 장기위기와 주기적 공황의 관계 및 그 원인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데 실패했다.

브레너[<붐앤버블>, 아침이슬, 2002; 로버트 브레너·정성진, “대담: 세계대공황의 전망과 대안”, 정성진 편, <21세기 대공황과 마르크스주의>]는 신자유주의 금융위기의 근저에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가 자리잡고 있다면서 장기적 저하의 원인을 시장경쟁에 따른 과잉설비, 과잉생산으로 파악하는데, 이는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이 시장문제를 추상한 전제 위에서 구성된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은 이런 전제 위에서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와 잉여가치율의 변화 등이 (생산가격) 이윤율에 미치는 장기효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브레너는 1970년대 이래 이윤율의 장기저하를 주장하면서 그 하나의 주요 요인으로 1930년대 대공황 직전 수준으로 떨어진 최악의 소득불평등을 들고 있는데, 노동소득분배율의 악화 즉 그에 따른 자본가계급의 잉여가치율 증대는 이윤율 저하 요인이 아니라 상승요인이다. 그럼에도 이윤율이 저하된 건 과잉생산과 과잉설비 즉 총수요의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브레너의 설명은 이렇게 뒤죽박죽이다. 정성진은 브레너에 대한 하먼 같은 국제사회주의 그룹의 비판을 언급하면서도 그래도 브레너는 탁월하다고 이를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정성진, “2007-2009 글로벌 경제위기와 마르크스주의 공황론”).

또 하먼이든 정성진이든 장기위기에 대한 설명에서나 주기적 공황에 대한 설명에서나 모두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들이대는데,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것 역시 이 법칙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정성진은 정치경제학 비판 체계에서 세계시장으로까지 상향하는 과정에서 주기적 공황을 세계시장공황으로 분석한다고 하지만, 이런 상향의 과제에서 비로소 이윤율의 경향적(장기적) 저하법칙이 현실경쟁과 주기적 공황을 통해 관철되는 게 서술될 뿐이지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가 주기적 공황의 원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나아가 정성진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장기파동론으로 각색하는 데, 마르크스의 이 법칙이 장기파동의 형태를 취한다는 건 이론적으로도 실증적으로도 합당한 근거가 전혀 없다. 장기파동론은 이론적으로도 실증적으로도 이미 변론의 여지없이 파산한 것인데도 정성진은 트로츠키파의 전통에 따라 맹목적으로 이에 집착한다. 정성진(“21세기 세계대공황”)에 따르면 현대 장기불황은 197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콘드라티에프 파동의 B국면(하강국면)에 있다. 그러면 이미 40여년의 장기하강 국면이 진행되는 상황이고, 또 정성진에 따르면 지난 금융위기와 함께 앞으로도 이 장기불황이 극복될 전망이 당분간 없다고 한다면, (20-30년의 장기번영과 20-30년의 장기하강으로 구성된다는) 50-60년 주기의 장기파동론은 현대불황에 비추어 이미 명백하게 파산한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장기파동론은 장기불황 이후에 새로운 장기번영을 상정하는 이론이다. 월러스틴은 현대불황에 이어 2000-2050년의 새로운 장기파동을 주장한 바 있고, 이에 따르면 2000-2025년의 현재 시기는 장기성장 국면인데, 지난 금융위기로 이런 기계적인 장기파동론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론인가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정성진은 지난 금융위기에서 케인스주의로의 전환과 위기의 봉합을 전망하였지만, 케인스주의에 의해서도 위기가 봉합되기 어렵고 자본주의의 붕괴와 지양이 불가피하다고 하였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장기번영을 상정하는 장기파동론을 주장하고 있어 그의 자본주의 분석은 무엇이 진실인지 신뢰하기 어렵다. 정성진의 이론체계는 세계체계론과 네오마르크스주의, 트로츠키주의, 사회적 축적구조론, 그리고 장기파동론 등 서로 이질적이고 화합불가능한 이론들의 절충적인 혼합물이며, 그 위에서 장기위기와 주기적 공황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론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이윤율 실증분석의 문제

이윤율의 실증분석을 통해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으로써 자본주의의 위기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여러 논자들에서 볼 수 있다. 지난 금융위기 분석에서도 이윤율의 실증분석이 이들 의 위기론의 주요한 논거가 되었다. 실증분석을 근거로 해서 위기론을 전개하기 때문에, 실증방법의 논란이야 있지만 그래도 신뢰성을 갖고 이들의 이론적 설명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윤율 실증분석에는 부르주아 통계에서 마르크스의 개념과 비율을 어떻게 가공, 계산할 수 있는가 뿐 아니라, 탈세와 분식회계가 일반화되어있는 기업관행에서 이윤통계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근본 문제가 제기된다. 지난 금융위기의 원인과 관련하여 실증분석 논자들 간에 1980년대 이래 정말 이윤율이 저하했느냐 아니냐 논란이 벌어지는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이 때문이다.

여기서는 이런 문제를 검토할 자리가 아니고, 다만 이런 근본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케인스주의 좌파 또는 마르크스주의 좌파 논자들이 실증분석에서 사용하는 이윤율 개념이 마르크스의 것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히 하고자 한다. 뒤메닐/레비, 山田銳夫, 브레너, 정성진, 윤소영 등 이론적 입장이 다른 논자들이 실증분석에서는 하나같이 이윤율을 다음처럼 정의한다: 이윤율=이윤/자본스톡=(이윤/산출량)× (산출량/자본스톡)=이윤몫× 자본생산성. 반면 마르크스의 이윤율은 주지하다시피 잉여가치/(불변자본+가변자본)이다. 두 개념, 두 비율은 서로 다른 것이어서 전자의 이윤율 변동으로써 후자의 변동 즉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실증적으로 논증했다고 할 수는 없다. 이들은 또한 이윤율을 구성하는 두 부분 즉 이윤몫(자본소득분배율)과 자본생산성을 마르크스의 잉여가치율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대용변수로 간주하지만, 이윤율 개념과 마찬가지로 이것들도 마르크스의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의 실증 수치를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의 비율이라 신뢰할 수 없는데도, 이들은 실증분석의 결과를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저하법칙의 현실적 운동으로 각색해서 경제위기와 금융위기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해석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자의적인 개념구성과 비율측정 결과로 1930년대 세계대공황이 미국 자본주의 이윤율의 장기상승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뒤메닐/레비, 윤소영 같은 황당한 주장이 나올 수 있었다. 1914-1945년 시기는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심각한 체제위기를 겪던 시기였고, 실제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나아가 사회주의 체제가 성립하는 시기였다. 뒤메닐/레비는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심각한 공황이었던 세계대공황이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장기성장 시기에 발생한 일종의 에피소드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모순되게도 이 위기를 구조위기로 규정하고 케인스주의적 체제의 확립을 말하지 않는가?(Duménil, G./Lévy, D., The Economics of the Profit Rate, 1993.)

논란을 불식하기 위해 비판을 보충하고자 한다. (다음 지적은 토론참석자였던 송명관의 <윤소영의 로지스틱 자본성장모형에 대한 비판>에 근거하고 있다. 이 비판은 수년전 <사회진보연대> 회원게시판에 실린 바 있다.) 윤소영은 이러한 이론적 곤란을 아리기가 제시하는 헤게모니 축적체계의 이동으로 대체 설명한다. 대공황을 거치면서 영국에서 미국으로 헤게모니가 이동하여 축적체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축적체계의 순환을 ‘이윤율의 이론적 궤도’라 명명하는 자신만의 이윤율 이론으로 설명한다. 이 종 모양의 ‘이론적 궤도’는 여러 단계의 자의적이고 비약적인 전개를 통해 나온 결과이다. 먼저 축적체계의 순환을 호황기와 불황기로 나눠 이를 각각 ‘이론적 이윤율’의 상승과 하락이라 설정한다. 그리고 불황기의 고정자본의 축적을 S자 성장곡선이라 불리는 로지스틱 함수로 가정한다. 그 다음 이를 자본성장 방정식에 대입하여 ‘불황기의 이윤율’ 식을 구하고, 이를 다시 좌우 대칭시켜 ‘호황기의 이윤율’ 식을 만든다. 이렇게 도출된 식을 이어 붙여 전체 ‘이론적 이윤율’의 함수식을 만든다. 여기서 그는 현실의 불규칙한 통계적 이윤율의 궤도가 결국 그가 만든 ‘이론적 궤도’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이론모형은 그가 자주 인용했던 뒤메닐/레비의 이윤율의 실증분석과도 전혀 관계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뒤메닐/레비와 아리기를 접목하여 독창적인 이론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후에 언급하겠지만 이것이 바로 그가 그토록 주장하고 있는 2012-13년 혹은 2010년대 자본주의 최종적 위기설의 이론적 골격이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2012-13년이라는 숫자는 풀리지 않는 방정식에 임의로 숫자를 넣어서 도출한 결과일 뿐이다. 어떤 숫자를 넣는가에 따라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가 망한 세상에 살 수도 있고, 1000년이 지나야 자본주의 종말을 볼 수도 있다.

마르크스의 붕괴론, 마르크스주의 붕괴론

마르크스의 이론에 붕괴론이 있느냐 여하가 논쟁이긴 하지만, <자본> 제3권 제3편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은 자본주의의 경향적 위기를 서술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와 붕괴론의 토대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또한 <자본> 제1권 제24장의 마지막 절에서 보다 분명하게 자본의 독점화와 지양을 자본축적의 역사적 경향으로서 총괄하였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이론에 붕괴론이 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마르크스의 붕괴론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하는 문제가 핵심이다.

마르크스는 초기에는 공황과 혁명 그리고 붕괴라는 단선적인 붕괴론을 나타냈지만, 후기에는 이런 붕괴론적 관점을 지양하고 공황이론도 산업순환론으로서의 공황론으로 나아갔다. 주기적 공황의 반복 속에서 공황이 심화되고 급기야 자본주의가 1873년 이래 대불황의 시기에 들어가면서 마르크스도 이 시기 공황의 만성적 성격에 주목한 바 있다. 물론 대불황의 와중에 생애를 마감한 마르크스는 만성적 위기론을 용인하지 않았지만, 공황과 공황을 통해 심화되는 자본주의의 경향적 위기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저하하는 국면에서는 주기적 공황은 격화되거나 만성화되고, 자본주의는 심각한 구조위기에 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란 말 그대로 단선적 저하와는 달리 반대적으로 작용하는 내적 상쇄력을 내포한 것이어서 이윤율의 장기상승도 배제하지 않는다. 이윤율의 장기성장은 자본주의의 장기성장의 근본적 토대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는 상쇄력의 작용에도 불구하고 저하경향이 관철한다고 했지만,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법칙을 둘러싼 정치경제학 논쟁 속에서 이 법칙의 수학적 논증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윤율 저하가 관철되는가 여하가 자본주의의 붕괴 여하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어서 수학적 논증은 경제학자들의 지적 관심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 법칙의 핵심은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란 자본주의의 체제위기와 관련된 것이며, 저하경향이 관철되는 국면은 자본주의의 장기위기를 가져오고, 이 국면에서 제제의 존망과 재편을 둘러싸고 정치, 경제, 사회적 대변혁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실로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세 번의 구조위기를 겪었고, 구조위기 속에서 자본주의는 새로운 발전단계로 이행했으며, 또 이 위기 속에서 사회주의 혁명도 일어났던 것이다. 마르크스의 붕괴론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 하에서만 말할 수 있는 것이지, 이 법칙의 수학적 논증을 통해 최종적으로 이윤율의 저하를 확인해야 자본주의가 붕괴하고 논증에 실패하면 자본주의가 붕괴하지 않는 게 아니다.

마르크스 이후 마르크스주의의 붕괴논쟁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이 아니라 주로 공황과 재생산표식에 근거해서 전개되었다. 19세기 말 수정주의 논쟁에서는 공황의 심화 또는 격화와 관련하여 붕괴논쟁이 벌어졌다.(市原健志, 『資本主義の發展と崩壞』, 中央大学出版部, 2001.) 또 20세기 초 이래는 투간-바라노프스키와 룩셈부르크의 표식을 둘러싸고 조화론-붕괴론이 대립하였다.(유승민, 『자본주의 발전 및 붕괴와 공황에 관한 연구 - 재생산표식 논쟁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경제학 박사학위 논문, 2013.) 재생산표식은 마르크스가 가치와 사용가치 측면에서 사회적 총생산물이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 것으로서, 여기에는 방법적 전제로서 표식의 균형이 가정되어있어 표식의 균형 여하로 자본주의의 붕괴 여하를 논증하려는 시도는 모두 오류가 아닐 수 없다. 투간-바라노프스키와 바우어의 조화론도, 룩셈부르크의 붕괴론도 모두 마르크스 표식의 의의를 이해하지 못한 잘못된 주장이며, 투간-바라노프스키와 바우어 표식뿐 아니라 이를 비판한 룩셈부르크의 표식도 마찬가지로 “종이 위의 수학 연습”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 붕괴논쟁의 토대로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에 주목한 것은 1929년 그로스만의 공헌이지만, 정작 그로스만 자신도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에 근거해서 자본주의의 붕괴를 논증한 것은 아니었다. 그로스만은 바우어의 표식에 입각해서 붕괴법칙을 주장한 것이고, 결국 그도 당대의 다른 논자들처럼 재생산표식에 근거해서 자본주의 붕괴를 논했던 것이지만, 그로스만은 이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으로 덧칠을 함으로써 통상 이윤율 저하로 붕괴를 논한 인물로 잘못 알려져 왔다. 뿐만 아니라 바우어의 표식은 균형표식이 아니라 실은 불균형표식이고, 따라서 가치와 잉여가치의 실현을 전제할 수 없는 것인데도, 그로스만은 이런 오류에 대한 인식 없이 바우어를 따라 이를 균형표식으로 상정하고 표식의 제35년도에 축적할 잉여가치가 부족해서 자본가가 아사하고 자본주의 축적이 붕괴한다는 해괴망측한 결론을 제출했던 것이다.(김성구, “바우어-그로스만 표식의 혼란과 오류”, <마르크스주의 연구>, 2014년 봄호.)

그로스만의 오류는 붕괴논쟁 만이 아니라 주기적 공황과, 또 주기적 공황과 자본주의 붕괴의 관계에 대한 설명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로스만은 자본주의 일반의 법칙과 현실경쟁에서의 그 관철에 관한 마르크스의 방법론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 결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과 주기적 공황의 관계에 대해서도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김성구, “바우어와 그로스만의 공황론 비판”, <마르크스주의 연구>, 2014년 겨울호(예정).] 뿐만 아니라 그로스만이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에 근거해서 자본주의의 붕괴와 주기적 공황을 설명했다는 통상적인 평가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로스만은 기본적으로 바우어 표식에 입각해서 붕괴론과 공황론을 전개했을 뿐이다. 로스돌스키, 마틱, 야페, 정성진, 윤소영 등 이런 평가를 따라가는 논자들은 그로스만과 마찬가지로 그로스만 표식의 오류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그의 붕괴론과 공황론 설명이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과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의 관철과, 그에 따른 구조위기와 자본주의 단계이행에 따라 자본주의 붕괴는 보다 구체적인 범주에서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말 20세기 초 독점자본주의 단계로의 이행과, 제2차대전 이후 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성장전화와 함께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사멸단계로 들어섰다. 자본의 사적 소유와 시장조절에 대한 자본주의 틀 내에서의 부정형태인 독점과 국가독점은 사회주의의 맹아형태, 사회주의로의 이행형태로서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이론적, 역사적 범주다.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제국주의/독점자본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최후의 단계로서 파악하고,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독점자본주의 단계 내의 소단계로 위치 지운다. 그리고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두 가지 형태(변종), 즉 케인스주의 형태로부터 신자유주의 형태로의 전환을 통해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현대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역사 단계의 이행과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형태변화는 자본주의의 대위기와 장기불황을 매개로 하여 설명하기 때문에,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단계이행과 형태변화는 자본주의의 위기론과 이행론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렇게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신자유주의 반동이 휩쓰는 시대라 해도 현대자본주의가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것, 이행기의 사멸해가는 자본주의라는 규정은 여전히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있다.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사멸하는 자본주의라는 것, 국가개입에 의한 구제와 관리를 통해서만 자본주의가 연명해갈 수 있다는 것은 지난 금융위기에서 보는 바처럼 자본주의의 위기가 더욱 심화되는 현실에 의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2008년의 신자유주의 금융위기는 1970년대 케인스주의의 위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화되었다. 국가채무위기에 몰려 자본주의를 지탱해주는 국가개입주의 자체가 위기와 한계에 몰린 상황이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채무위기와 국가개입주의의 위기 심화를 대가로 해서만 재건되었을 뿐이었다.

이와 같은 이행론과 위기론에도 불구하고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자본주의가 경제적으로 언제 붕괴하는가를 예측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 붕괴과정이 부르주아 질서의 정치적 위기로 언제, 어떻게 발전하고 노동자계급에 의해 변혁적으로 전복되는가 하는 문제는 노동자계급의 의식과 조직, 대중운동의 발전 정도, 그리고 부르주아 계급의 대응력에 따라 결정되는 정치적 문제여서 더더욱 자본주의의 붕괴와 종말의 시점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윤소영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과학적인 위기론과 이행론을 근거 없이 청산하고 세계체계론과 그로스만의 경제학으로 넘어가더니 앞서 언급한 ‘이론적 이윤율’ 궤도를 그리면서 예언자적 종말론이나 들고 나왔다. 2012-13년에 또는 조금 늦게 2010년대 말에 자본주의의 최종적 위기가 온다나? 지난 금융위기는 이 최종적 위기 속에 자리매김할 거라고, 자신의 예언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자본주의의 운명은 결코 수학모델로, 그것도 오류투성이의 그로스만 모델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2025-2050년에 자본주의 체제가 끝장난다는 월러스틴의 세계체계론과, 재생산표식의 제35년도에 자본주의가 붕괴한다는 그로스만의 붕괴론은 이론적으로 근거 없는 완전한 난센스다.

다가오는 새로운 공황

미 연준의 금리인상이 금융시장의 초미의 관심으로 떠오르는 건 미국경제가 호황 초기국면에 진입했다는 것의 표현이다. 금융시장에서는 금리인상으로 실물경제 충격과 주가하락을 우려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단기에 그칠 것이다. 금리인상으로 경제가 추락한다면, 자본주의 역사에서 호황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호황국면으로의 진입과 함께 투자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면 금리인상은 자연적인 것이다.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이윤전망이 전보다 높기 때문에 경제의 확장은 계속되어 금리의 점진적 인상과 함께 자본주의 경제는 본격적으로 호황국면이 전개된다.

물론 국가채무위기의 제약조건 하에서 전개되는 현재의 순환이 통상적인 순환처럼 호황다운 호황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마르크스의 위기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의 모순들은 공황을 낳지만 공황은 동시에 공황을 해결하는 일시적 형태이기도 하다. 그래서 새로운 산업순환이 시작하겠지만, 이와 함께 다시 공황도 잉태되고 다가올 새로운 공황은 더욱 심화된다. 주기적 공황을 넘어 구조위기로, 구조위기를 넘어 결국에는 자본주의 붕괴로 발전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경제가 설령 본격적인 호황으로 발전한다 해도, 또 유로존 경제가 경기회복을 넘어 호황으로 진입한다 해도, 세계자본주의가 근원적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호황이란 새로운 공황이 준비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통상 주기적 공황은 7-11년 주기로 일어난다고 하니까 현재의 경기국면을 감안하면 새로운 세계공황은 아마도 2017-18년 쯤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이 시점은 정확한 게 아니라 전후로 약간 변동할 수 있다. 둘째로, 순환적인 호황에도 불구하고 이 순환을 지배하는 신자유주의의 구조위기는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의 신자유주의는 국가개입을 통해 보다 온건한 형태로 재건되었다. 상업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에 대한 재규제(닷-프랭크 금융개혁법)가 도입되었지만, 상업은행의 자기계정 거래에 대한 예외조항과 헤지펀드에 대한 투자 허용 등 볼커 룰은 사실상 무력화되었고, 기본적으로 지난 금융위기의 주범인 그림자은행에 대한 규제감독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전창환, “오바마 정부의 금융규제개혁의 성과와 한계”,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2011 하반기.)

결국 신자유주의의 지배가 다시 확립된 만큼 저성장-금융투기-금융위기라는 신자유주의에 고유한 위기 메커니즘은 앞으로도 작동될 전망이다. 더군다나 금융위기 이전과 달리 이제는 심각한 국가채무위기를 배경으로 신자유주의 위기 메커니즘이 작용할 것이므로, 자본주의 구조위기는 지난 금융위기 이전보다 업그레이드된 셈이다.

따라서 2017-18년의 새로운 공황은 지금 시점에서 그 양상과 형태를 예상할 수 없어도 자본주의 구조위기를 심화시키는 또 하나의 공황이 될 것이다. 국가채무위기로 내몰린 국가재정 상태를 고려하면 위기에 대한 개입능력에도 한계가 주어진 상태다.

물론 이 공황도 자본주의의 종말을 가져오는 위기는 아닐 것이다. 앞서 말한 바처럼 그런 공황은 경제과학의 이름으로 예언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도 자본주의의 최종적 위기와 관련해서 언급한다면, 현재의 자본주의는 아직도 최종적 위기를 말하기에는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여러 개입수단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국가채무위기로 국가의 디폴트를 말하고 자본주의가 절단나지 않을까 기대도 하지만, 이것조차 해결방안이 없는 게 아니다. 우선 국가채무한도를 높이면 채무위기는 일단 해결된다. 또한 증세의 방법도 있다. 만약 국가의 채무가 한도를 높일 수 없을 만큼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채무위기의 전형적인 해결방식도 남아있다. 즉 채무탕감과 손실처리의 방법이다. 미국 국채를 보유하는 금융자본에 대규모 탕감과 손실을 강제하면 미국 재정은 간단하게 건전화된다. 더군다나 미국 국채의 20% 가까이는 연준이 보유한다고 하니까 미국 재무부와 연준 간의 채무-채권을 상쇄처리하면 더욱 간단한 문제다. 물론 국가채무 탕감을 통한 채무위기의 극복방안은 미 국채시장의 마비와 달러가치 폭락 등 국제금융시장에 유례가 없는 충격을 가져올 것이고, 더욱이 미국 밖의 미국 국채 보유자에게까지 적용한다면, 세계자본주의가 또 한 번 뒤집어지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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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한신대 국제경제학과, 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소장)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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