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네스티, 농업 이주노동자 착취 강제노동 실태보고서 공개

인신매매 수준 착취...7-80명이 한 명 공동구매 불법파견도
고용허가제 사업자 이동의 자유 제한이 강제노동 원인

“저는 매주 토요일이 휴일이었지만 4월부터 6월에는 매일 새벽 3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도 휴식 없이 일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사장님 마음대로 휴일이 주어졌는데, 사장님은 제가 다른 캄보디아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토요일에 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제 노동시간이 길다는 것을 알아내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캄보디아 출신 35세 여성

“한국에서 일할 기회를 얻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느니 차라리 부당한 대우를 참고 계속 일해서 돈을 버는 편이 낫습니다. 한번은 사장님에게 나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사장님이 사업장변경 신청서에 서명을 안 해주고 미등록 신분으로 만들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정규 신분으로 법적으로 최대한 가능할 때까지 일하고 싶습니다. 만약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가 있다면 저는 당장 여기를 떠날 것입니다” - 캄보디아 출신 29세 남성


국제엠네스티가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강제노동 실태가 담긴 보고서를 공개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20일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2년여의 실태조사 결과물인 ‘고통을 수확하다: 한국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착취와 강제노동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앰네스티가 조사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 대다수는 인신매매 상태와 강제노동에 노출돼 있었다. 이외에도 이주노동자들은 과도한 노동시간, 시간외 근로수당 미지급, 휴일 및 휴게시간 미부여, 협박, 폭행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런 인권유린 사태는 고용노동부 관리 감독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한목소리로 나왔다. 이주노동자들이 새로운 일을 찾고 싶어도 고용주가 고용허가제에 따라 사업장변경 신청서로 사실상 강제노동을 시키고 있었지만,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현행법을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발표한 노마 강 무이코(Norma Kang Muico) 국제앰네스티 아시아태평양 이주인권 조사관은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신매매 체계의 출발점은 네팔, 캄보디아 등 송출국에서 시작하고 있으며, 속아서 잘못된 계약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오고 있다”며 “착취를 목적으로 기만해서 채용하는 것은 국제법상 인신매매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 63조, 농업노동 예외조항이 착취 근거

노마 강 무이코 조사관에 따르면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의 근로 계약에 따른 노동시간은 매달 226시간에서 364시간으로 나타났으며, 하루 10시간 이상, 월 28일 이상 노동을 하고 있지만, 통상 근로계약에 명시된 것보다 최소 50시간 더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이코 조사관은 “이 같은 장시간 노동은 농업분야에 특정해 유급휴일과 휴게시간을 제외시킨 한국의 근로기준법 63조가 원인”이라며 “근로기준법 63조의 예외사항은 내국인과 이주노동자에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장시간 저숙련 노동을 이주노동자가 대부분 맡고 있어서 사실상 차별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또 앰네스티가 면담한 이주노동자 대다수는 농한기인 11월에서 2월 사이에 불법적으로 파견을 나간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농업 이주노동자는 불법파견이 적발되면 체포와 강제출국을 당해 고용주의 불법 파견이 이주노동자에게는 치명적인 행위가 된다.

무이코 조사관은 “한 캄보디아 남성은 7-80명 고용주가 공동구매하기도 했으며, 또 다른 캄보디아 남성은 매일 6개의 다른 인삼재배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일을 해야 했다”며 “이렇게 일하던 캄보디아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하루 휴가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고용주는 이를 거절하고 농장에서 내쫓은 후 근무지 이탈자로 신고해 미등록 노동자로 전락시켰다”고 전했다.

이주노동자가 과도한 노동시간과 임금체불, 휴게시간 문제에 항의할 경우 대부분 고용주는 폭언과 폭행. 해고, 신고 협박으로 대응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증언은 국가인권위 보고서와 이주노동자 지원노조, 이주노동자 인권 단체에서도 나오고 있다.

일부 고용주 1~2천 달러 뇌물 받은 후에 사업장변경 신청서에 서명

무이코 조사관은 “이주노동자의 절대다수가 자신들이 동의하지 않는 노동조건하에서 노동을 강요받고 강제노동 조건에서 일을 하고 있다”며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기 때문이며, 사업장 변경의 자유 제약은 오랫동안 유엔과 ILO가 제기한 문제지만 한국은 무시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용주는 자기 의지에 따라 이주노동자와의 계약을 마음대로 해지할 수 있다”며 “일부 고용주는 새 직장을 구하려는 이주노동자에게 1~2천 달러의 뇌물을 받은 후에야 사업장 변경 신청서에 서명해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렇게 고용허가제를 통한 이주노동자 착취가 지속되는 근본 이유는 노동부가 농업분야에서 특히 적절한 감시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앰네스티에 따르면 각 지역 고용센터는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변경 문제 등의 민원을 지원할 책임과 의무가 있지만, 안산, 목포, 담양, 평택, 서산 등의 고용센터에서는 적절한 지원을 받은 이주노동자들이 없었다. 무이코 조사관은 “심지어 일부 센터에서는 사업장 이동 절차에 고용주가 서명해달라고 구걸을 해보라는 말만 한 곳도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실태 보고서에 따라 국제 앰네스티는 한국 정부에 △고용허가제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횟수 제한 폐지 △고용주의 사업장 변경 신청서 서명 없이 사업장 변경허용 △근로기준법 63조 폐지 및 시간 외 근무수당, 연차휴가 조항 모든 노동자 확대 △모든 농장에 대한 적극적이고 정기적 근로 감독을 통해 근로기준법 조항 준수 등의 조치를 요구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근로시간 실태파악도 안 해”

기자회견에 참가한 김이찬 지구인의 정거장 대표는 “지난 3년여 동안 농업 이주노동자 상담을 해오면서 알게 된 사실은, 한국의 감독기관인 고용노동부 관리 중에 농업 이주노동자의 노동시간이 몇 시간인지 확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비난했다.

김이찬 대표는 자신이 상담한 이주노동자의 근로계약서를 사례로 보여주며 “이 노동자의 근무시간은 오전 6시에 시작해 18시까지이며, 휴게시간은 1일 60분, 휴일은 격주 토요일로 돼 있다”며 “그러면 제 산수는 하루 11시간에 한 달 28일을 일하게 돼 있어서 11시간 곱하기 28일을 하면 월 근로시간이 나온다. 그런데 (총) 근무시간 란에 월 근로시간을 226시간으로 해 놨다. 한 달에 이틀만 쉬고 하루 11시간을 일하는데도 226시간이 나왔는데 노동부 산수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이찬 대표는 “한 노동부 고용센터에서는 이주노동자가 320시간을 일한다고 하자 직접 증명을 하라고 했다”며 “증명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매일매일 CCTV가 없다면 증언을 인정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정부는 근로계약서에 암시된 바와 같이 농업 이주노동자의 근로시간이 엄청나다고 짐작은 하지만 얼마나 일하고 있는지 데이터가 전혀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며 “기본적인 산수를 못하고, 문제를 판단할 수도 없으니 인권을 구제할 수도 없다”고 비꼬았다. 김 대표는 “농업 이주노동자는 고용허가제에 묶어 두면 강제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며 고용허가제 폐지를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후원한 장하나 새정치연합 의원은 “10월 7일 국정감사에서 더 이상 고용허가제 안에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게 하지 말고, 자기의 권리와 인권을 지킬 수 있는 H2 동포방문 취업비자를 가진 분들이 농축산업에서 일하도록 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얘기했다”며 “오는 24일 마지막 국정감사 날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이 보고서를 제안하고, 강력한 대책을 주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이 보고서를 기반으로 이주노동자 인권을 확보할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우선 보고서의 요구사항을 한국 정부가 이행하도록 한국 농업 이주노동자의 상황을 전 세계로 알려나갈 예정이다. 이를 위해 앰네스티 국제 홈페이지에서 보고서를 다루고, 국내 생협 단체 캠페인, 국제식품노련과 함께 5개 국어 교육자료 번역 등을 통해 먹거리 생산 과정 전반을 소비자에게 알려 나갈 예정이다.

또 고용노동부와 법무부, 외교부와 미팅을 통해 보고서를 전달하고, 고용노동부 장관에게는 전세계 팩스 항의와 탄원서도 전달할 예정이다. 국내 농업 노동에 종사자 수가 많은 국제 앰네스티 네팔지부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보고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김희진 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이주노동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농산물을 재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한살림, 아이쿱생명, 슬로우푸드 등 전국 생협 매장에서 동시에 캠페인을 진행한다”며 “소비자도 이주노동자도 행복한 인권밥상을 만들자는 것이 이번 캠페인 제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보고서는 2013년과 14년에 걸쳐 한국 전역에서 농업 이주노동자 28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담 조사를 통해 작성됐다. 또 국가인권위가 161명을 취합한 자료에 의해 뒷받침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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