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눈길도 안주고 레드카펫 지나가자 유가족들 통곡

“대통령님 살려주세요. 특별법 약속 하셨잖아요”...5.16 이후 처음 봤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유가족 앞을 지나간 시간은 채 20초도 되지 않았다. 29일 ‘2015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정부 시정연설’을 위해 박 대통령이 국회 본청 현관 앞에 도착한 시간은 9시 41분이었다. 박 대통령은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과 간단히 악수를 나누고 곧바로 본청 현관으로 향했다.


10여 미터 길이의 현관 입구 레드카펫 양 옆엔 세월호 유가족 50여명이 피켓을 들고 경찰과 경호원들에게 겹겹이 둘러싸여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통령이 본청 현관 입구에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하자 유가족들은 “대통령님 살려주세요”를 외치기 시작했다. 50여개의 목소리는 처음엔 애절함으로 들리다 이내 울음 섞인 목소리가 됐다. 대통령은 유가족에게 눈길 조차 주지 않고, 특유의 미소만 입가에 머금으며 본청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울음 섞인 목소리는 곧 원망 섞인 통곡으로 바뀌었다. 한 유가족은 피켓을 든 손을 내리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이 들어가 버린 자동유리문을 향해 “눈도 한 번 안 마주치고, 어떻게 저렇게 지나갈 수 있느냐” 흐느꼈다. 유가족들의 통곡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다른 유가족은 “약속 했잖아요. 유가족이 참여하는 특별법을 해 주시기로. 진상규명을 해 달라는 거잖아요. (죽은 사람을) 살려내라는 거 아니잖아”라고 울부짖었다. “특별법을 제정해주기로 약속했다”라는 통곡은 더 크게 번져나갔다.

  피켓을 들고 통곡하는 유가족들

10여분이 지나자 국회 본회의장을 향하는 여야 의원들이 그 앞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피켓을 놓고 눈물을 훔치던 유가족들은 다시 피켓을 잡고 일렬로 섰다. 경찰과 경호원들은 여전히 유가족을 에워싸고 있었다. “의원님 여기 봐주세요. 살려주세요. 의원이면 똑바로 보세요”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여당 의원들은 대부분 눈길조차 주지 않고 박 대통령의 속도와 비슷하게 지나갔다. 야당 의원들은 안타까운 눈길을 보내며 잠시 멈춰 섰다 본청으로 들어갔다. 지난 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가족 앞에 멈춰서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문재인 의원은 “그냥 손을 한 번 잡아주시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의원들이 모두 들어가자 전명선 가족대책위 위원장의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전 위원장의 구호에 따라 후렴 구호를 외치는 유가족 목소리는 더욱 악이 받쳐 있었다. “성역없는 진상규명, 특별법을 제정하라”, “성역없는 진상규명, 책임자를 처벌하라”, “대통령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목소리가 들리길 바라는 마음이 목소리에 섞여있었다. 유가족 목소리는 본청을 떠받치는 엔타시스 양식의 거대 돌기둥을 휘감고 울려퍼졌다. 유가족들은 지난 5월 16일 청와대 항의방문에서 대통령을 만난 후 이날 처음 얼굴만 간신히 봤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심정을 묻자 대통령이 달리기 하듯 빨리 들어갔다고 했다. 유경근 대변인은 “살려달라고 외치는 유가족들에게 잠깐 눈인사라도 할 줄 알았다”며 “경호상이란 건 알겠지만 설사 여기에 경호원들이 없어도 가족 중에 달려들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폴리스라인만 쳐도 되는데, 사람으로 벽을 겹겹이 쌓은 것은 마음속으로 느끼는 거리감이 너무 큰 것 같다. 참 나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공무원연금 개정안 연내 처리, 규제개혁, 각종 FTA 비준동의 등을 국회에 요청했지만, 세월호 특별법 관련한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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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청이 엔타시스 양식이었군요. 귀중한 정보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