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단체조차 무관심했던 나홀로 소송

[인터뷰] 원전 주변 암 발병자 이진섭 씨

“우연하게 소송을 준비했어요. 난 소송을 제기할 때 반핵운동에 적극적이지 않았거든요. 승소 판결나던 날도 기자나 환경단체 등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지난 10월 17일 부산동부지원이 내린 ‘원전 주변과 갑상선 암과의 연관성 인정’ 판결은 언론에 크게 나왔지만 시작은 조용했다.

  이진섭 씨는 부산장애인부모회 사무실에서 소송 과정 이야기를 들려준 뒤 아들 균도(22)와 포즈를 취했다. ©용석록 기자 [출처: 울산저널]

이진섭 씨(50)는 2011년 우연한 기회에 건강검진을 받게 됐다. 당시 동남권원자력의학원(부산시 장안읍 좌동길)은 개원 기념으로 기장군 일광면과 장안읍 주민 가운데 65세 이상인 사람들에게 80만원짜리 무료 암 검진권을 줬다. 기장군과 함께 진향한 ‘건강증진사업’ 일환이었다. 이씨는 2008년에 기장읍으로 이사해 살고 있었기에 검진대상 지역에 들지 않았다. 나이도 검진 대상이 아니었는데 원자력의학원은 이씨에게 무료검진을 받으라고 연락해왔다. 이씨는 공짜라니까 건강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직장암 판정을 받았고, 아내 박 모씨는 2012년 초에 같은 원자력의학원 건강검진으로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 이진섭 씨는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서 암 치료를 받던 중에 고리원전 주변 기장군 사람들 다수가 암 치료를 받는 걸 목격한다.

이씨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 건강검진 하려면 돈이 몇 십만원 드는데 멀쩡하게 기장읍으로 이사해 사는 사람까지 연락한 이유가 뭘까. 고리원전이 생긴지 30년이 지났으니 한수원은 의학원을 통해 데이터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씨가 의학원이나 한수원에 “기장에 암 발생자가 명 명이나 되느냐”고 물어도 그들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는 ‘방사선의학, 암연구의 임상적용 및 실용화 연구’를 담당하는 연구센터가 있다.

“뭘 알아서가 아니라 몸으로 느꼈어요. 내가 암 치료를 받는데 암 병동에 동네 사람이 너무 많이 보이는 겁니다.”

이씨는 속으로만 의구심을 키우있다가 서울대 의대 의학연구원 원자력영향·역학연구소가 2011년 12월에 발표했던 ‘원전 5km 내 주변지역 여성의 갑상선암 발병률은 다른 지역의 2.5배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를 접했다. 이씨는 2012년 7월 2일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17일 갑상선암 소송에서 승소한 박모 씨(49)는 1987년부터, 이진섭 씨는 1990년부터 기장군 장안읍에 살았다. 두 사람은 결혼해 1991년에는 기장군 장안읍 좌천마을에 살다가 1995년부터는 기장군 일광면 이천리에 살았다. 좌천마을과 일광면은 고리원전으로부터 반경 5~10km 이내에 있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들 이균도 씨(22)는 1993년에 기장군 좌천에서 1급 자폐성장애라는 발달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이씨는 소송을 통해 보상금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소송에 이길 가능성이 많지 않았고 패소하면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도 짐이다. 이씨는 부인만 소송(2억원)을 진행하고 자신과 아들은 빠지겠다고 했지만 한수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수원측은 소송을 취하해 달라고 한 번도 이씨를 찾아오지 않았다.

지난 10월 17일 부인은 승소했고 이씨와 아들은 패소했다. 한수원은 즉각 항소했다.

“법정에서 승소 판결 났는데 판사가 판결문 읽을 때 너무 떨리고 믿기지 않아 법정 밖으로 나왔어요. 기자나 환경단체 등 아무도 재판에 오지 않았죠.”

이씨가 소송을 진행했던 2년여 동안 세상은 소송에 관심 갖지 않았다. 그러나 판결 이후 세상은 ‘진실 밝히기’에 나섰다. 법원은 ‘암 발생이 법적 기준치 이하의 방사성물질 방출로 인한 것이라 하더라도 법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씨 휴대폰에는 공동소송 관련 문의가 빗발친다. 문 모씨는 “제 동생이 고리원전에 근무할 때에 엄청남 피폭으로 인해 갑상선암에 걸려 얼마전에 수숭를 했고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통 받아 왔는데 이번에 싸움을 해보려고 한다”고 알려왔다.

이씨 가족 소송으로 고리원전 인근 주민뿐 아니라 원전 내에서 일하는 노동자 피폭 문제도 수면 위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진섭 씨는 2007년부터 부산장애인부모회에서 일하고 있다. 이씨는 아들 이균도 씨(22)와 국토대장정 ‘균도와 세상 걷기’를 하면서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요구해 왔다. 이씨는 앞으로 탈핵운동과 장애인운동을 같이 할 생각이다.

핵발전소 주변주민 갑상선암 공동소송

핵발전소(원자력발전소) 주변에 오랫동안 살다가 갑상선암에 걸렸다면 원전 측에 일부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결(2014. 10. 17) 이후 원전 주변 주민과 환경단체가 집단소송인단을 모집하고 있다.

부산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보건·환경시민단체가 ‘원전 주변지역 갑상선암 피해자 공동소송 원고 모집’에 나섰다. 이들은 핵발전소 방사능비상계획구역(8~10km 이내) 내에 3년 이상 거주했던 주민 가운데 갑상선암 발병자 공동 원고인단을 모은다. 원고 신청 기간은 11월 30일까지다.

지난 17일 부산동부지방법원 민사2부(최호식 부장판사)는 박 모씨(49·여·부산 기장군 일광면) 등 일가족 3명이 한국수력원자력(주)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한수원은 원고 박씨에게 1,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소송 당시 박씨와 박씨 남편 이진섭 씨(50), 아들 균도 씨(22)는 각각 갑상선암, 직장암, 선천성자폐증을 앓았다. 이들 일가족은 고리원전 주변 10km 이내에 살았던 주민이다.

박모 씨가 1심에 승소하자 원전 주변에 살다가 갑상선암에 걸렸다는 시민 제보와 문의가 이들 줄을 잇고 있다. 한수원측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1심 판결을 준비했던 박씨의 남편 이진섭 씨는 시민단체 등과 공동소송에 힘을 모을 계획이다.

소송 당사자였던 이진섭 씨 페이스북과 휴대폰에는 ‘동생의 갑상선암 문제로 법적인 문제를 고민해 오던 중 선생님 기사를 접하게 됐다.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이메일 주소를 남김다’는 등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집단소송은 부산환경운동연합, 경주환경운동연합, 서울대학교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 영광핵발전소안전성확보를위한 공동행동, 핵으로부터 안전하게살고싶은 울진사람들, 핵없는세상을위한 의사회,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이 함께 준비한다.

고리원전 주변 주민 갑상선암 발생율 일반지역보다 8배

동남권원자력의학원과 기장군은 공동으로 2010년 7월부터 2013년 연말까지 3년 6개월 동안 기장군민 건강증신사업을 통해 94명에게서 97건의 암을 발견했다. 94명 가운데 갑상선암은 41명, 위암 31명, 대장암 6명 등으로 나타났다. 기장군민 3,031명은 3년 6개월동안 원자력의학원 건강증진센터에서 종합건강진단을 받았다. 2009~2013년 조사결과는 원전주변지역 주민 갑상선암 발생율은 일반지역보다 8배 높고, 1992년부터 누적한 자료는 2.5배 높다.

이진섭 씨는 소송을 진행하는 중에 ‘원전과 암 발병 연관성’을 밝히는 게 쉽지 않았다. 2011년 12월에 서울대 의대 의학연구원 원자력영향·역학연구소가 발표한 자료 외에는 없었다. 연구소는 원전 주변 주민 암 ‘발병율’과 ‘발견율’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같은 연구에 참여했던 연구자들은 같은 사안을 두고 한쪽은 ‘연관 있음’, 다른쪽은 ‘연관 없음’으로 의견을 달리했다. 한수원도 이씨와 마찬가지로 같은 연구팀이 발표한 자료를 인용해 항소에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덧붙이는 말

용석록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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