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위기논쟁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들 (2)

[기고] 1970년대부터 시작된 구조적 위기?

일부 사람들은 지금의 위기가 1970년대부터 지속되어왔던 문제가 누적되어 터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이 주장은 특히, 마르크스주의라고 자신을 부르는 사람들 중 일부에게 진실처럼 여겨지고 있다. 다시 말해 1970년대 이미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경제체제는 그 비효율성을 나타냈으며, 근근이 금융투기 등으로 연명해오다가 그 참담한 결과를 맞이했다는 내용이다. 현재 자본주의는 능력도 없고, 기생화 된 체제일 뿐.

이러한 내용은 다양한 형태로 번역되어 이야기되고 있다. 설사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래도,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가 침체경향이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침체 경향이 이번 위기의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케인스주의라고 부르는 사람들 일부가 이런 식으로 현대 위기를 해석하며, 이번 위기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경쟁에 의해서든 어떤 것에 의해서든 자본주의경제는 과잉설비를 갖는 경향이 있으며, 게다가 경제의 불평등의 증가는 소비수요를 위축시켜 이 과잉설비 경향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들의 이야기가 전부 성립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과잉설비경향과 불평등의 증가가 국내수요의 감소를 이야기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대체로 두 가지 변수가 연루되어 있다. 하나는 가동률, 또 다른 하나는 임금 몫이다. 이 문제는 자본주의 경제는 장기적으로 불균형 경향을 갖는다는 것으로 인간이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는 논쟁을 넘어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근본적 비판의 일부이다. 문제는 그러한 현상이 실제로 있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 라는 것일 테다.

1. 거시경제의 활동성은 1970년대 이후로 줄곧 축소되었나?

최소한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부터의 장기침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나 그 외 비주류경제학자들의 대부분이라고 판단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고, 이것이 자본주의 비판의 근본적/급진적 측면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듯 싶다. 1970년대부터의 장기침체를 부정하면, 그것은 자본주의 논리를 승인하거나 그 지속성을 의심치 않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물론 이 장기침체 자체를 구조적 위기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어 잠시 혼란해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통칭해서 1970년대 이후로 자본주의 경제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는 의미로 장기침체라는 말을 사용하고, 그것을 구조적 위기라 부르던 어떻게 부르던 의미는 같다.

금융과 구조적 위기를 해석하기에 앞서 이 글에서는,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 변수의 흐름을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가동률과 임금몫(즉 부가가치 중 임금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라는 변수이다.





<그림1>은 우리가 이미 이전 글에서 보았던 가동률의 변동을 이야기하는데, <그림2>는 <그림1>로 가공하기 전의 데이터를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이는 경제의 활동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잠재생산능력에 대비해서 실제로 얼마 정도의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지표이다. 다시 말해 이 지표는 경제 내에 존재하고 있는 실질적 수요를 대표하는 변수일 것이다. 실질적 수요에 대한 예상이든 현재수준이든 이 지표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먼저 <그림2>로부터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은 실제가동률이 70년대부터 줄곧 하락하는 추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동률의 장기 하락을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번 위기가 역사상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지 짐작해볼 수도 있다. 이번 위기의 ‘깊이’와 ‘지속성’을 짐작할 수 있고, 따라서 순환적 변동과는 다른 ‘무언가’가 이번 위기에 내포되어있는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림2>의 1990년대 묘사 부분에 있다. <그림2>에 따르면 1990년대의 미국경제 활동성 수준이 상당히 낮게 평가되어 있다. 실제로 미국경제의 경제성장률을 비교해보면, 1970년대 연평균 3.24%이고 1990년 연평균 3.23%일 뿐이다. 이 가동률 자료는 이러한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을까? 그렇지만 이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1970년대 이후로 줄곧 경향적 침체기로 받아들이기를 쉽지 않다.


지난 번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2000년대 이후 위기들을 추상해보면, 우리는 가동률의 두 가지 중기적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70년대 하락국면과 80-90년대의 상승국면, 80-90년대 80년 초반, 90년대 초반의 작은 규모의 경기후퇴가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이 시기를 침체 국면이라 단언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80-90년대 경제 활동성이 경향적으로 축소되고 있었고, 그것이 이번 위기의 원인이 되었다는 판단을 하기 어려우며, 70년대 경제 활동성의 위축이 80-90년대로 계속 이어졌다는 판단도 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만약 1990년대 말에 살고 있었다면 미국경제에 2000년대 경제의 활동성이 축소되는 경향이 나타나리라곤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며, 실제로도 그랬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우리(Classical-Marxian)는 <그림1>을 단기/중기적 흐름을 보기 위한 경제활동성 지표로 재가공한다. 추세는 전반적 수요 축소라기보다는 기술-조직적 변화에서 기인한다고 판단한다.

2. 임금몫은 하락추세에 있었는가?

임금몫은 총부가가치 중에서 임금의 비중을 뜻한다. 물론 이 지표는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으며, 이론적 입장에 따라 논란이 있지만, 여기서는 대체로 합의된 노동보수라는 지표를 사용하기로 한다. 어떤 이들은 이를 불평등의 지표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만약 이번 위기 전에 임금몫이 꾸준히 하락했다면, 이는 불평등이 증가한 것이며, 또 이러한 불평등의 증가는 소득 증가에 대한 소비지출 성향이 강한 이들(즉 소득이 낮은 사람들)의 소비수요를 축소시키고, 이에 따라 경제활동성이 하락하여 경제가 위기로 진입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영국 킹스턴 대학의 스톡햄머(Engelbert Stockhammer)라는 사람은 이러한 스토리를 아주 보기 좋게 다듬어내고 이를 통해 ‘임금-주도 성장’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는 임금몫의 하락이 불평등의 증가이며, 이에 따라 국내수요가 위축되고, 이러한 상황에 대한 두 가지 성장모형이 생겨났다고 한다. 하나는 부채-주도 성장이고, 또 다른 하나는 수출-주도 성장이다. 스톡햄머의 이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보다시피 ‘성장’이라는 말에서 상징되듯이, 이른바 장기적 경향으로 이를 증명해낼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임금몫의 장기적 하락경향이 관찰되는가라는 문제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지루하게 몇 가지 그림을 볼 것인데, 바로 위의 것이 그 첫 번째 그림이다. 1967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 법인부문의 임금몫이다. 우리는 저 그림을 통해 하나의 확실한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대체로 이 변수는 근 50년 동안 일정하다는 것이다. 0.7, 즉 부가가치 중에 70% 정도를 임금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그림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 잘못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즉 왼쪽 축의 범위를 바꾸면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그림이 등장하였다. 사실 <그림4>에서는 축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그림5>와 같은 변동분이 사라진다. 하지만 축의 범위를 좁히면 새로운 그림이 등장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이유로 통계는 믿기 어렵다라거나 조작하는 사람의 이론적 의지가 상당히 반영된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지만, 거꾸로 이야기해보면 축의 범위가 넓을 때 저런 <그림5>와 같은 변동이 관찰되지 않는다는 것은 변동의 범위가 너무 작다라는 말이기도 하다. 어쨌든 저 변동을 고려하여 보자. 1) 2000년대 이전, 즉 미국에서 발생한 큰 위기 이전 미국 임금몫의 경향은 오히려 상승추세이다. 2) 하락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2000년대 이후, 즉 위기들의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


법인부문이 아니라 전체경제로 임금몫 전체를 확장한다면, <그림6>과 같은 형태를 볼 수 있는데, 추세가 1980년대부터 하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가 그려지는 것은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완만한 상승추세를 90년대 후반 이후의 위기들이 완전히 상쇄해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위의 임금몫 데이터들로부터 미국경제 전체의 임금몫과는 달리 법인부문(비금융/금융법인) 임금몫은 1990년대 후반 충격에 그리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너무 많은 그림이 등장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했지만 미국 경제 임금몫에서 법인부문과 전체경제가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정부부문과 민간경제 중 비법인부문 임금몫이 1990년대 후반 상당히 하락하였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상식적으로 상상할 수 있듯이 정부부문 및 비법인부문의 변화가 미국경제 전체의 불평등의 척도가 될 수도 없고 성장 양식의 변화를 일으킨다고 판단할 수도 없다.

따라서 적어도 우리가 지금까지 평가한 임금몫은 불평등 증가의 지표도 될 수 없고, 그에 따라 만들어진 두 가지 성장모형(부채-주도, 수출-주도)이 형성된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그림4>, 즉 법인부문 임금몫의 변화를 임금몫의 변동 또는 추세를 판단하는 지표로서 사용한다. 게다가 변동폭이 아주 작은 변수임으로 그것을 추상할 수 있는 축의 범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림5>와 <그림6>은 임금몫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짐작하고, 게다가 현실적으로 느끼고 있듯이 불평등이 증대했다는 점은 (토마 피케티에 의해서건 누구에 의해서건) 상식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개인적인 상식이 그보다 넓은 범위의 거시적 흐름과 달랐던 것일까? 잘 알고 있듯이 프랑스의 경제학자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는 토마 피케티가 유명세를 떨치기 이전, 그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다음과 같은 새로운 데이터를 제시하였다.


<그림7>은 우리의 <그림4>와 같은 데이터이다. 기간이 보다 길지만 최근 데이터까지 업데이트되진 못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관찰할 수 있듯이 달라진 점은 크게 없다. 대신 90%(90-100), 95%(95-100) 임금소득자들이 받고 있는 임금몫과 전체 임금몫을 비교하고 있다. 즉 화살표로 표시된 부분은 상위 10%와 상위 5% 임금소득자들이 받고 몫이 1980년대 이후로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경향적으로 하락추세에 있는 임금몫이 있다면 그것은 대다수 임금소득자의 임금몫이고 그 하락분을 상위 임금소득자들이 모두 채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임금몫과 관련된 미스터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위기 이전 미국 하위 임금소득자들의 구매력은 하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위소득자들의 구매력은 또한 상승했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이른바 금융규제완화와 대출증가가 이 두 세력에 미쳤을 영향과 그에 따른 효과 또한 상당히 상이한 형태로 나타났을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스톡햄머 또한 이와 같은 사실을 반영하려고 노력하였다. 그의 이론을 단순히 평가하기는 힘들며, 이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직접 그의 글을 접해보길 바란다. 하지만 하나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것은 우리는 스톡햄머처럼 불평등의 증가와 부채증가를 연결고리로 삼고 있지는 않다. 프랑스에서도 불평등의 증가는 다른 나라에 비해 약하지만 관찰된다. 하지만 이러한 불평등이 증가하였다고 프랑스에서 미국만큼의 개인부채의 증가가 발생한 것도 아니며, 위기의 원인이 된 것도 아니다. 게다가 불평등 증대를 금융규제완화의 고리로 삼을 수 없다. 인과관계의 역전이다.

종합적으로 우리는 70년대 이후로 미국자본주의경제의 불균형이 경향적으로 확대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긴 힘들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관찰에 의한다면 불균형이 있었다면, 그것은 과소의 문제가 아니라 과잉의 문제였을 것이라 판단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과잉의 영향과 효과는 소득 계층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나타났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3. 이윤율은 경향적으로 하락하였나?

마르크스경제학을 논의하는 사람들이 주로 구조적 위기라는 말을 쓰고 있다. 구조적 위기를 진단하는 핵심에는 이윤율이라는 변수가 있다. 어떤 사람은 자본주의가 시작했을 때부터, 또는 적어도 19세말부터 이윤율은 꾸준히 하락했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을 관찰할 수도 없고, 설사 그런 것이 있다면 구조적 위기라는 말은 그 의미를 잃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19세기말부터 꾸준히 위기일 것이다. 왜냐하면 19세말보다 지금 더 낮은 수준의 이윤율을 기록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은 자본주의는 이미 19세기말에 끝났고 계속 위기 중이라 말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이윤율의 흐름을 면밀히 관찰한 사람들은 그러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 이윤율에 따라 우리는 자본주의경제가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여러 모습을 가지며 변모해왔다고 주장한다. 이윤율에 대한 끊임없는 추적은 마르크스 경제학이 자본주의 경제의 거대한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는 열쇠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이러한 연구를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한 상태이다. 19세기말 20세기 초의 마르크스주의 거장들의 작업으로 모든 이론적 작업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개념들의 정당성과 유효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새롭게 해석되어야만 한다.

다음의 기고가 실현된다면 그것은 바로 이윤율과 구조적 위기에 대한 논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글과는 달리 약간의 기술/통계적 설명이 추가된다. 하지만 그 설명은 경제학과 학부 수준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최대한 짧게 그리고 쉽게 이번 위기의 쟁점들을 설명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이지만 필요이상으로 길어지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갖고 있는 연구대상의 복잡성 때문이다.

<첨언>

지금까지 보아온 모든 데이터는 미국경제분석국(www.bea.gov)의 데이터를 기초로 구현해낸 것이다. 미국경제분석국은 데이터 시리즈에 대한 대부분 설명을 제공한다. 추가적으로 OECD의 매뉴얼들과 데이터는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들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이다. 필자는 이 글과 이러한 사족들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여기 나온 것보다 훨씬 심도 있는 연구가 나올 것이라 확신한다. 필자보다 훨씬 진지하고 능력 있는 연구자들, 그렇지만 항상 의심을 품고 전진해나가는 연구자들을 주변에서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젊은 연구자들이 기존의 선험적 구도에 자신을 내던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부족하고도 면목 없는 글을 쓰게 되었다. 필자가 경험하고 있는 프랑스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과 관련된 연구는 예상보다 활발하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이름들, 쉬잔 드 브뤼노프, 프랑수아 세녜, 사미르 아민,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 등은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이고 브뤼노프를 제외하고는 활동도 왕성하고, 몇몇 젊은 연구자들이 있지만 그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다른 조절이론과 같은 집단에 비해서는 위축되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프랑스에 있는 젊은 연구자들보다 훨씬 능력 있고 진지한 사람들이 많다고 본다. 문제는 이들의 연구를 어떤 식으로 뒷받침할 수 있느냐 선배연구자들이 이들을 위해 어떤 기반을 마련할 것인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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