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민족주의를 상상하는가?

[주례토론회] 민족주의의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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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가 지구를 다 점령한 세계화 시대에 국경 없는 자본 앞에서 민족주의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은 민족주의는 근대 국가를 만들기 위한 발명이었기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또 한편에는 강대국과의 불공정한 무역협약 등을 통해서 보듯이 한국은 억압받는 입장에 있으므로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이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민족주의의 유효성을 검토할 것일까?

1.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민족주의가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하기 전 우선 민족주의가 무엇인가 질문을 먼저 해야할 것이다. 논쟁의 참가자들이 자의적으로 정의한 민족주의 개념들을 가지고 민족주의가 유효한가 아닌가 논쟁들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나빴던 논쟁의 사례를 들자면 조선시대 의병장의 ‘민족주의’를 예로 들면서 ‘민족주의는 파괴다.’로 나간 것이다.1 조선시대의 민족주의와 지금의 민족주의는 동일하다는 전제 하에서 조선시대 의병장의 민족주의가 한계가 있었으니 지금의 민족주의가 파괴해야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조선에 민족주의가 있었다면 임금을 중심으로 한 양반들의 민족주의였다. 고종은 의병을 소집하라고 이강년에게 밀지를 보냈는데2 “종묘 사직과 만백성을 생각하니 이것이 애통”하다고 적었다. 만백성은 사실 유교전통에서 오랫동안 내려오던 명분이었고 “종묘 사직”이 실제 이유였다. 조선이 어떤 사회였던가? 임금이라는 한 개인이 도장을 찍으니 나라가 일본에게 넘어가는 사회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일본군의 절반은 조선 인민들이었다.3 가혹한 조선 왕조와 양반들의 수탈 때문이었다. 우리의 논쟁에서 의병장의 민족주의가 등장할 이유가 있는가?

조선의 의병장에게 민족주의를 찾는 것과 똑 같은 것은 서구 역사 서술에도 있다. 절대왕정/ 상업 자본주의 시대에 민족주의의 기원을 찾는 것이다.

그리하여 로마 카톨릭의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에 참석한 잉글랜드 대표단은 "민족이 다른 사람들과 혈연이나 관습, 언어에서 구분되는 사람들로 이해되든 말든, 또 민족이 프랑스 민족의 영토와 마찬가지로 영토로 이해되든 말든 잉글랜드 민족은 진정한 민족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 민족 개념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혈통, 관습, 언어, 영토 같은 요소가 다 망라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민족은 아직 잉글랜드인 전체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략 전체 인구의 5% 정도인 교육받은 엘리트 집단만이 민족적 정체성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서는 그리하여 16세기 전반에는 왕의 중앙집권도 강화되었다. 이는 프랑소아 1세가 시작한 관직이나 귀족 칭호의 판매 때문이다. 그래서 귀족의 권력이 약화되며 전문 관료집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이를 싫어했으나 막을 수는 없었다. 국가(état)라는 단어도 그 이전의 '신분(身分)'이라는 뜻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정부'나 '정치영역'으로 점차 바뀌어 갔다.4

혁명기 프랑스 민족과 민족주의의 한계도 분명하다. 실제로 민족은 부르주아지를 중심으로 하는 일부 계층에만 한정되었다. 프랑스에서도 민족감정이나 민족주의가 전체 국민으로 확산되는 것은 제3공화국 시대인 19세기 말에 가서이다.5


이 신분라는 의미의 국가가 인민의 국가 되어가는 과정이 지금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민족주의의 성장과정이었다. 국가(état)가 신분이라는 뜻이었던 이유는 귀족들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이 당시 귀족들의 민족 감정은 조선시대 양반들이 “종묘사직”을 중심으로 신분사회가 유지되어야 믿는 것과 차이가 없다. 이 것은 인민이 주권을 가진 민족주의가 아니다. 지금 누가 5%만이 주권을 가진 이들의 민족주의를 민족주의라고 생각하는가? 이 것은 인민이 평등하게 살기 위해서 상상하는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민족이 아니다.

민족주의가 논쟁이 되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 민족주의가 유효한가를 묻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근대를 맞이한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이 시대에 맞는 민족주의에 대해 논쟁을 해야 한다. 민족의 본질이나 민족 의식에 대한 아카데믹한 논쟁이 중점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운동이라는 것이 현재도 유효한가를 중심으로 논쟁이 되어야 한다.

맑스가 민족주의론에 기여한 것은 특정 민족에 대한 연구가 아니다. 사회적 존재와 의식 형태의 일반적 관계에서 출발해서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특정한 의식형태로 민족주의가 출현하고 이 민족주의를 이데올로기로 진행되는 민족 운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맑스와 엥겔스는 무조건적인 민족 독립의 원칙을 지지하지 않았다. 민족 운동의 결과가 어떤 진보적 결과를 나을 것인가에만 관심을 가졌다. 1848년 헝가리 반란은 귀족들이 주도했고, 1863년 폴란드 봉기도 귀족들이 이끌었으며, 아일랜드의 페니언 단원들도 가톨릭 교회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절대왕정 국가들의 영향력을 끝내고 자본주의 발전을 이끌어낸다는데에서 긍정적으로 보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8~49년 혁명기에 체코와 남슬라브인들의 민족주의 운동을 지지하지 않았는데, 범슬라브주의를 다음과 같이 보았기 때문이다.

범슬라브주의는….오스트리아에 사는 독일인, 마자르인,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터키인들에 대항해 싸우기 위해 소 슬라브민족 전체와 오스트리아 민족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터키가 맺은 연합(CW 8.233 [Magyar Struggle, first published 1849 E]). 존재하지 않는 슬라브 민족을 보호한다는 이름 하에 이루어진 정치적 협잡 (CW 35.371「1882년 2월 7일 카우츠키에게 보낸 편지, E」)

맑스가 주로 논하는 민족주의는 봉건 질서를 몰아내면서 나오는 것이였다. 1648년 혁명과 1789년 혁명을 평가한 맑스의 글을 읽어보자.

1648년 혁명과 1789년 혁명은 영국의 혁명도 프랑스의 혁명도 아니었다. 그것들은 유럽형 혁명들이었다. 그것들은 낡은 정치 질서에 대한 사회의 한 특정 계급의 승리를 대표하지 않았다. 그 혁명들은 새로운 유럽 사회의 정치 질서를 선언했던 것이다. 이 혁명들에서 부르주아지가 승리했지만, 그 당시에는 부르주아지의 승리는 곧 새로운 사회 질서의 승리, 즉 봉건적 소유권에 대한 부르주아적 소유권의 승리, 지방주의에 대한 민족주의의 승리, 길드에 대한 경쟁의 승리, 장자 상속권에 대한 토지분배의 승리, 토지를 통한 지주의 지배에 대한 토지 소유자의 지배의 승리, 미신에 대한 계몽의 승리, 가문에 대한 가족의 승리, 영웅적 게으름에 대한 산업의 승리, 중세적 특권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승리였던 것이다(CW 8.161 [Bourgeoisie and Counter-Revolution ] 밑줄, 강조 - 필자).

맑스에게 민족주의는 지방주의에 대한 승리였다. 그 중점은 “새로운 유럽 사회의 질서” 에 있었다. 맑스에게서 민족은 부르주아 사회에 같이 사고되는 것이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 후반 이후 ‘인민주권’의 주장과 함께 국가란 군주의 소유물이 아니라 전체인민의 것이라는 자각이 널리 퍼져 나갔으며, 이는 당연히 민족으로서의 자각을 고양시켰다. 부르주아는 왕과 귀족들의 국가가 아닌 인민들의 국가를 명분으로 걸었다. 맑스는 부르주아가 주도하는 시민 사회를 민족으로 외연화되고 국가로 내포화된다고 하였다.

더 이상 각자의 개별성에 의해 서로 서로 고립되어 있지 않은 모든 개인들의 타자에 대한 투쟁, 그리고 모든 특권의 속박에서 해방된 기본적인 생활력의 보편적이고 무제한적 인 운동(CW 4.116 [Holy Family]).

시민 [부르주아]사회는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 단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개인들 사이의 물질적인 교통 전체를 포괄한다. 그리고 그 사회는 일정한 단계의 산업적 및 상업적 생활을 포괄하며, 그런 한에서는 국가와 민족을 넘어선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는 사회는 자신을 그 외연적 관계들 속에서 민족으로 밖에 실증할 수 없으며, 내포적으로는 국가로 조직될 수밖에 없다. ‘시민 사회’라는 용어는, 소유관계가 고대적 및 중세적 공동체로부터 이미 벗어난 시대인 18세기에 등장했다. 이러한 것으로서의 시민 사회는 오직 부르주아지와 더불어서만 발전한다. 그렇지만 모든 시대에 국가 및 그 밖의 관념적 상부구조의 토대를 이루는 생산과 교통에서 직접적으로 진화한 사회적 조직은 언제나 같은 이름으로 표시된다(CW 5.89 [German Ideology] 강조 - 필자).


고대 및 중세의 5% 특권 신분의 민족주의와 “민족은 이제 인민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구성체”로 사고되는 민족주의는 같은 민족주의로 논의될 수 없다. 민족주의는 “민족은 이제 인민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구성체”로서 내포적으로 국가로 조직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이미 자본주의의 발전 그 자체가 타민족의 억압을 의미한다는 조건이 형성되고 있어(가장 큰 계기는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이었다. ) 이 외연적 관계들 속에서 민족주의는 대항 이데올로기였다. 맑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모택동, 베네딕트 앤더슨이 논하는 민족은 후자의 민족이다. 중세 귀족의 민족주의와 조선의 의병장의 민족주의는 여기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

2. 민족 – ‘종족성’과 ‘상상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보기

반란(Bidrohi, 1921년)
- 까지 나즈룰 이슬람(Kazi Nazrul Islam)6 -

나는 입 밖으로는 낼 수 없는 비탄
나는 떨리는 처녀의 첫 감촉
나는 그녀의 첫번째 도둑맞은 키스의 떨리는 부드러움
나는 가리워진 사랑의 흘끗 보기
나는 그녀의 지속되는 몰래 엿보기

나는 지구의 가슴속 불타는 화산


베버는 [경제와 사회]7에서 종족공동체 및 민족, 국민국가에 대해서 혈연공동체-언어공동체-정치단체의 세 측면을 검토한다.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공통적인 것을 나누고 있다는 공감이다. 그런데 공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혈연공동체나 언어 공동체가 아니라 '정치적 기억’이다. 이 정치적 기억과 유사한 것 같지만 좀 더 과학적인 개념이 베데딕트 앤더슨이 사용한 ‘상상’이다. 베네딕트 애너슨은 [상상의 공동체] 에서 민족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 상상에 대해 논한다.

우리가 민족주의를 ‘자유주의’나 ‘전체주의’보다는 ‘친족’이나 ‘종교’와 연관되는 것으로 취급했다면 문제는 더 쉬워졌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인류학적 정신에서 다음과 같은 민족의 정의를 제안한다. 즉 민족은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이다. 민족은 가장 작은 민족의 성원들도 대부분의 자기 동료들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며 심지어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도 못하지만, 구성원 각자의 미음에 서로 친교(communion) 의 이미지가 살아있기 때문에 상상된 것이다. 르낭(Renan) 이 “민족의 핵심은 전 소속원들이 많은 것을 공유한다는 사실이며, 동시에 전 소속원들이 많은 것을 망각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라고 썼을때 그는 그의 유쾌한 화법으로 이 상상함(imgining)을 언급한 것이다. 겔너 (Gellner) 가 “민족주의는 민족들이 자의식에 눈뜬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는 민족이 없는 곳에 민족을 발명해낸다” 라고 얼마간 잔인하게 규정했을 때 위와 유사한 논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화의 결점은 민족주의가 잘못된 구실 아래 가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너무 애쓴 나머지 ‘발명’을 ‘상상’이나 ‘창조’보다는 ‘허위날조’와 ‘거짓’에 동화시킨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민족과 병치될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들이 존재함을 암시한다. 사실 면대면(面封面)의 원초적 마을보다 큰 공동체는 (그리고 아마 이 마을조차도) 상상의 산물이다. 공동체들은 그들의 거짓됨이나 참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상상되는 방식에 의해서 구별되어야 한다. (상상의 공동체 p. 25, 강조, 밑줄-필자)


겔너와 베네딕트 앤더슨을 서구 중심의 근대주의자로 묶는 것은 부당하다.8 겔너와는 다르게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an imagined political community- and imagined as both inherently limited and sovereign9)”로 정의하였다. 여기서 주권은 민족의 자결권으로 다른 국가나 민족에 의해 간섭 받지 않는 주권이다. 하나의 종족이 하나의 국가를 구성할 경우 이는 간단하게 이해된다. 그러나 다종족 국가 – 일반적으로 다민족 국가라 불리는 - 에서의 민족의 주권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각 종족이 자신의 종족성을 뛰어넘어 하나의 국가 내에서는 하나의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상상하는 상상의 공동체가 가지는 주권이고 두 번째는 소수종족이 한 국가 내에서 정치, 경제, 문화 등등의 영역에서 스스로 결정할 권리로서의 민족자결권으로서의 주권이다. 티벳 혁명가인 푼왕10이 요구했고 달라이라마가 지금 중국에게 요구하는 것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한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민족자결권이다. 티벳은 달라이 라마를 정점으로 하는 신정일치의 봉건왕조로 승려귀족계급만의 민족주의가 달라이 라마가 환생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정점으로 부르주아 민족주의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이 민족자결권 문제가 나왔다면 팔레스타인은 종족으로 존재하고 있다가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인해서 민족을 상상하게 되었고-1948년 팔레스타인으로 우리가 부르는 - 이젠 그들만의 민족국가를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민족 주권은 근대국가로서의 주권이거나 근대 국가 내의 민족으로 자결권을 갖는 주권이다. 그렇다면 IS는 어떠한가? 종교공동체도 상상의 공동체이라고 볼 수 있지만 국가의 주권이나 한 국가 내의 소수민족의 자치권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슬람주의에서는 종교공동체와 정치공동체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데 이럴 경우 이슬람주의가 상상하는 것은 종교 공동체가 아니라 정치공동체로 보아야 한다. 이슬람주의는 국가를 이슬람 율법에 따라 주권이 행사되는 상상의 공동체를 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자유주의’나 ‘전체주의’라는 틀이 아니라 ‘친족’이나 ‘종교’와 연관 지어 취급할 것을 권하는데 그 것은 거짓이나 참이라는 틀에 의해서 공동체를 구별 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이 이미 가지고 있는 친족이나 종교 등의 종족성을 객관적 분석의 대상으로 하고 공동체를 구별하자는 것이다.

막스 베버는 ‘정치적 기억’을 강조하기에 아리안 혈통을 강조하는 히틀러와는 다르게 보인다. 이는 막스 웨버의 시대를 고려해야 한다. 막스베버의 생애는 1864년에서 1920년까지였는데 이는 독일제국의 역사인 1871년에서 1918년과 거의 일치한다. 수많은 봉건 국가들로 흩어져 있던 독일이 통일된 것은 1871년이었고 독일 통일의 주도세력은 비스마르크와 귀족이었다. 독일의 통일은 독일의 근대화의 시작이었고 시민 계층의 활동할 공간을 넓혀주는 것이었지만 비스마르크와 귀족은 통일 후에 귀족 계급의 영향과 지배를 유지하고 있었다.11 이에 대해서 베버는 비판적이었지만 베버와 시민계급들은 정치적으로는 비스마르크의 아들들이었다. 유럽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억울한 점이 있더라도 그가 속한 시민 계층은 독일 통일의 수혜자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베버의 학문적 목표는 독일 통일 이전 흩어져 있던 종족으로서의 다양한 정치적 기억들을 통일독일국가의 정치적 기억으로 모으고 바꾸는 것이었다. 여기에서는 통일독일국가의 이념인 자유주의가 중요하다.

베데딕트 앤더슨이 민족주의를 '자유주의'나 '전체주의'가 아니라 친족이나 종교와 연관해서 취급하고 민족을 이루는 공동체들을 거짓이나 참이 아니라 그들이 상상하는 방식으로 구별하자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민족주의가 자유주의나 전체주의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일방적인 판단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이 형성되기 전에 이미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요소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1) 친족이나 종교는 종족성(Ethnicity)의 범위에 들어가 있다. 종족성은 민족이 형성되기 전부터 민족이 되기 위한 맹아들로 이미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2)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꿈꾸는 종족이나 개인은 허공에서 공허하게 상상하지 않는다. 끊임 없는 노동 속에서 살아갈 상상의 공동체를 상상한다. 특정한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놓인 특수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들이 노동하고 투쟁하면서 그들이 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이 해야만 하는 상상들이 있다. 그들의 상상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다른 공동체와 구별해야지 미리 가지고 있는 선입견, 거짓이나 참으로 미리 재단을 해서는 안된다.

민족주의 논쟁에서 어네스트 겔러와 베네딕트 앤더슨과 에릭 홉스봄을 근대주의자로 하나로 묶고 이들 모두를 서구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민족주의를 악으로 본다고 정의해버리는 것은 무리수가 너무 많다.

포스트모더니즘 사가들은 ‘상상’이나 ‘창조’와 ‘허위날조’와 거짓’를 구별하지 않았지만 앤더슨은 분명히 겔러와 선을 그었다. 에릭 홉스봄과 베네딕트 앤더슨은 관제 민족주의를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묶을 수는 있겠지만 둘의 관제 민족주의는 강조점과 사례가 다르다. 홉스봄의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12는 관제 민족주의는 동유럽 민족주의를 중점에 둔 것이었고 부정적으로 본다. 베네딕트 앤더슨도 [상상의 공동체]에서 관제 민족주의의 예로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러시아화 정책을 예로 들기는 하지만, 앤더슨의 중점은 동남아의 민족주의이다. 동남아의 민족주의는 민족해방운동을 통해 나타났고, 식민지에서의 해방을 맞이하고 이후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관제 민족주의이다. 이 관제 민족주의가 다 나쁜 것인가?

수카르노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에서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두 지역을 하나로 합쳐서 말레이어를 공용으로 쓰는 해방된 이슬람 국가를 꿈꾸다가 제국주의와 수하르토에 의해 갇힌 채 쓸쓸하게 죽어간 것을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에서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도 알고 있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Benedict R. O'G Anderson(1972) - Java in a Time of Revolution Occupation and Resistance, 1944-1946]의 작업을 한 것 때문에 수하르토에 의해 쫓겨났다. 수하르토가 물러난 후 인도네시아에서 한 연설을 보면 그가 민족주의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가 알 수 있다. 이 연설에서 그는 베트남전을 미국인들이 반대한 이유는 인도차이나에서 대량 살상을 하는데 미국이 참가하고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민족주의로서의 수치심 때문이라고 했다.13 그가 민족주의를 ‘허위날조’와 ‘거짓’으로 보았다면 이런 연설이 가능했겠는가? 또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에서 동남아시아를 주사례로 들었는데 서구의 역사에만 기반을 해서 적었다고 어떻게 말 할 수 있는가?

앤소니 스미스는 앤더슨의 연구 자체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것은 아니지만 민족을 해체시켜야할 담론이라는 생각을 유포했다고 지적했다.14 앤소니 스미스는 앤더슨은 민족이 담론일 뿐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앤더슨은 유물론을 바탕에 두고 [상상의 공동체]를 적었지만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 역사가들은 이를 완전히 무시를 해버렸다. [상상의 공동체] 제 3판 서문에서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가 “사적유물론과 이후에 담론 분석이라는 것을 결합하려는 시도” 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포스트 모더니즘 연구자들은 담론 분석만 가져가고 역사적 유물론은 버렸다. 그들은 민족주의가 단순히 고안된 것 뿐이라고 주장를 하기 위해 앤더슨을 인용하였다. 앤더슨의 주장을 직접 들어보자.

민족부르주아 계급’이라는 말에 나오는 형용사의 적합성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어떠한 진지한 시도도 없이 1세기 이상이나 그 개념을 사용해 온 것을 그외의 어떤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생산관계라는 점에서 본다면 세계적 계급인 부르주아를 이렇게 분할하는 것이 왜 이론적으로 중요한가? (상상의 공동체 p.22)

긍정적 의미에서 새 공동체들을 상상할 수 있게 한 것은 생산체계와 생산관계의 상호작용(자본주의),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인쇄술), 그리고 숙명적인 인간언어의 다양성 간의 어느 정도 우연적이면서도 폭발적인 상호작용이었다. (상상의 공동체 p. 71)


앤더슨이 각국 민족주의를 하나로 묶을려고 인쇄자본주의를 너무 과다하게 강조한 것은 무모한 시도였지만15 적어도 ‘생산체계와 생산관계의 상호작용(자본주의)’를 민족 형성의 출발점에서부터 사고하고 있다. 에릭 홉스봄도 민족주의 서술에서 포커스는 달랐지만 이 점은 같았다. 그러니 어네스트 겔러와 이들을 하나의 근대주의자로 묶는 것은 너무 심한 무리수다.

앤쏘니 D. 스미스(Anthony D. Smith)는 [민족들의 종족적 기원들(The Ethnic Origins of Nations)]16에서 이를 명확하게 구분하고자 했다. 국가의 발전에 있어서 스미스는 근대학파의 주장인 민족이 전적으로 근대적이라는 가정에 도전을 한다. 스미스는 민족이 근대에 형성된 것이라는 것을 반박하지는 않지만 민족은 많은 학자들이 인정할 수 밖에 없듯이 아주 오랜 발전 과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스미스가 주장하는 것은 근대 민족들은 아주 오래된 문화적 그룹에 기반을 두고 있는에 이 오래된 문화적 그룹을 그는 종족(ethnie)라고 부른다. 스미스에 따르면 종족은 근대 국가가 형성될 수 있는 영역을 규정해준다. 종족은 “보다 영구적인 문화적 속성(more permanent cultural attributes)”로 구성되는데 이 속성들은 기억, 가치, 신화와 상징이다. 이 책의 반을 종족의 발전에 대해서 논한 후 후반부에서 그는 전근대적인 뿌리에서부터 민족이 발전해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가 이 발전과정에서 강조하는 것은 기억이다. 이는 베버의 정치적 기억, 르낭의 의지, 앤더슨의 상상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스미스가 강조하는 것은 민족은 제도적 필요에 의해서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전근대적인 뿌리에서 나오고 종족들의 기억들을 무시하면서 민족을 형성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베네딕트 앤더슨도 전근대적인 뿌리에서 민족을 형성시키는 것을 인정하는데 그가 극단적인 나쁜 예로 드는 것은 박물관 건축과 고대 유적 발굴이다. 앙코르 와트의 발굴에서 식민지 관리들이 중점을 둔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신비에 싸인 콤인(khom)이 앙코르 와트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콤인들은 경멸받는 캄보디아인들과는 무관하다. 지금의 원주민들은 그들의 가상적인 조상의 업적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세속적인 허무주의를 보여주어서 식민 통치자들이 과거의 콤인의 위치에 서서 원주민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영국이 인도의 과거 유산들을 발굴하면서 취했던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과거 인도 문명이 이룩한 것과 현재의 인도인들이 구질구질한 미신이나 믿으면서 과부를 불에 태우는 사티나 하는 미개인이라는 이미지를 대비시켜서 그들의 통치를 정당화한 것과 같다. 그러나 제국주의자들이 전근대적인 뿌리를 악용한 것을 이렇게 밝히는 것이 전근대적인 뿌리에서 민족이 형성되어간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 것은 제국주의가 기억을 왜곡하는 것에 대한 것에 대한 비판일 뿐이다. 크메르루즈 또한 자신들을 앙코르 와트 문명의 계승자로 자리 잡으려고 했다. 제국주의 던지 크메르루즈 던지 없던 것에서 무엇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역사 속에서 ‘주권’의 담지자들로서의 정통성을 가져가려고 했다.

민족주의 형성의 내적 기반이 되는 것은 전근대적인 뿌리인 종족이다. 종족은 친족, 종교, 언어, 풍습 등의 다양한 요소들로 얽혀 있다. 그러나 종족성의 다양한 요소들이 동시에 모두 민족을 구성하는 요소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일부만이 근대국가를 형성하는 민족의 주요 요소로 ‘상상’되고 ‘창조’된다. 종족성의 어떤 일부가 어떻게 민족의 주요 요소가 되는냐는 민족이 형성될 때의 정치경제적 상황과 거기에 대한 종족들의 대응 즉 상상의 공동체를 어떻게 상상하고 구현하는가에 달려 있다. 종족성에서 주요 요소가 되지 못하는 요소는 계속 영구적인 문화적 속성으로서 잠복해 있다가 민족의 발전에 따라 어떤 특정한 시기에는 다시 주요 요소로 등장할 수 있다.

민족주의를 논할 때 민족주의와 민족을 근대국가 건설을 위해서 발명하거나 조작한 것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상상의 공동체를 상상하면서 민족이 형성되었다는 것과 민족은 발명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르다. 종족성의 다양한 요소 중에서 민족 형성의 기반이 되도록 결정된 요소들은 그 종족이 놓여 있는 특수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 종족의 활동에 따른 의식적인 결단 즉 그들의 상상에서 나왔다. 이는 주어진 역사적 조건에서 민족주의를 발전시켜가는 것이다. 그들의 주체적 대응은 그들이 어떤 상상의 공동체를 상상하는가에서 출발한다. 이 때문에 민족주의의 유효성을 묻기 이전 어떤 민족주의를 전제로 하는지, 즉 어떤 상상의 공동체를 상상하는지를 먼저 밝히고 들어가야한다.

베데딕트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 에서 민족국가의 형성을 ‘상상의 공동체’라는 개념으로 설명을 한다. 이 책에서는 민족의식 형성의 중요한 요인으로 인쇄 자본주의의 발전을 들고 있다. 동일한 인쇄물에 있는 언어를 읽고 있는 다른 독자들도 자신과 같은 공동체 즉 ‘가상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고 상상하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를 거칠게 요약해서 인쇄술의 발달이 민족의식을 발전시켰다라고만 앤더슨이 주장했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민족주의는 인쇄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진행되는 문제만은 아니다. 물론 인도네시아어에서 인도네시아어가 국어로 된 것은 인쇄산업의 발달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어라는 각국어는 어릴적부터 익히는 모국어와 다르다. 인도네시아나 인도와 같이 여러 모국어가 있는 나라는 한국과 같이 모국어 지키기 운동을 통해서 민족주의를 발전시킬 수가 없다. 인도네시아의 공용어인 인도네시아어는 모국어(Mother tongue)로서 인도네시아라는 민족국가를 형성시킨 것이 아니다. 수십개의 모국어가 있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어를 각국어(vernacular)로 의식적으로 선택한 이후에 인도네시아어를 민족국가 형성의 기반으로 만들수 있었다. 2억 4천만의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의 언어들 중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는 8천5백만명이 모국어로 쓰는 자와어(Basa Jawa)이다. 인도네시아의 공용어인 인도네시아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는 이들은 3천만명으로 자와 사용자의 절반도 안된다. 그러나 자와 지방에서는 학생들은 자와어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수업은 인도네시아어로 한다. 인도네시아어는 말레이어의 방언으로 말레이어와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정서법도 공통으로 사용한다.

인도네시아어를 민족 언어로 수용하게 된 것은 네덜란드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던 민족주의 운동기에 1928년 10월 27일부터 28일까지 개최된 제2회 인도네시아 청년 회의에서 청년의 맹세가 하나의 민족, 하나의 조국과 더불어 하나의 언어인 인도네시아어를 선언한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부분은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에서 언급한 부분이다.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에서 말하지 않은 부분은 그들이 자와어가 아닌 말레이어의 방언인 인도네시아를 선택한 이유가 영국이 지배하는 말레이지역과 네덜란드가 지배하는 인도네시아지역에서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하나로 통일된 조국을 꿈꾸었다는 것이다. 이 계기로 자와어를 국어로 하자는 운동이 시작되지 않았다. 식민지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던 민족주의자들이 인도네시아 정체성 형성을 위해서 선택한 인도네시아로 말하게 되는 것과 인쇄물의 보급과정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양자의 상승작용으로 인도네시아어는 일제 시대 한국의 한국어와 같은 모국어 수준으로 올라서게 되었고 인도네시아 민족국가 형성의 기반이 되었다. 나는 앤더슨이 이를 몰라서 적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말레이지아는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하고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국경이 그어지면서 처음의 상상의 공동체가 가졌던 상상들은 뒤틀리기 시작했다. 앤더슨의 글에서 이 예를 볼수 있는 것은 다음 부분이다.

수마트라의 동해안에 사는 사람들 중 일부는 말라카(Malacca) 의 좁은 해협을 건너 말레이 반도의 서해안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신체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종족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의 말을 이해하며 공통의 종교를 갖고 있다. 이 수마트라인들은 동쪽으로 수천 마일 떨어진 섬에 있는 암본인(Ambonese)들과 언어나 종족성, 종교를 공유하지 않는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 이들은 암본인들을 동료 인도네시아인으로 말레이인들을 외국인들로 이해하게 되었다. (상상의 공동체 p. 157- 158)

[상상의 공동체]에서 이 부분과 관련되는 사건들을 지도를 보면서 추적해보자.


위 지도 설명: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와 암본17, 표시는 필자.

암본인들은 식민지 시절 억압적인 식민지 군대로 충원되었기에 반 모옥이 지휘한 인도네시아 혁명공화국과 대항해 싸웠다.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인정한 후 그들에게는 불유괘한 미래를 기대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18 이런 서로간의 쓰라린 상처 이외에도 언어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다. 수마트라는 90%가 이슬람을 믿지만 암본은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에 기독교 선교의 대상이 된 곳이라 대부분 주민이 기독교를 믿는다. 수하르트가 이슬람인인 자와주민들을 정책적으로 암본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펼친 후 암본에서는 종교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수마트라인들은 말도 잘 안 통하는 암본인들은 동료 인도네시아인으로 말이 잘 통하는 말레이인들은 외국인들로 생각한다. 말레이지아는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하고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이 모든 것들이 구체화되었다. 말레이어와 말레이어 방언인 인도네시아를 국어로 사용하고 이슬람이라는 공통된 종교적 기억을 바탕으로 하여 하나의 민족이 되지 못 했다. 독립 이후에는 서구가 점령했던 식민지의 분할선대로 신생국가가 형성이 되고 그 신생국가 안에 사는 이들은 같은 국경 안에서만 ‘상상의 공동체’를 상상하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상상의 공동체에서 중요한 것은 이제 언어가 아니라 ‘주권’이라는 정치경제적 역학관계에 의해 정해진 국경이다. 다종족 민족국가 내 종족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 하면 분리주의 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3. 민족의 기원인 종족성 중 무엇이 주도적이 되는가는 선험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종족성은 민족을 형성하는 뿌리이기는 하지만 종족성의 요소들 중 어느 것도 선험적으로 주도적인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역사적 상황에 따라서 또 상상의 공동체를 상상하는 주체들에 의해서 중심되는 것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1913년 스탈린이 쓴 [맑스주의와 민족 문제]19는 2가지 교훈을 준다. 하나는 민족일반에 대한 이론을 만들려는 시도는 무모하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민족에 대한 논의는 구체적인 상황에서만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탈린은 언어를 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보았다. 유태인들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는데 어떻게 민족임을 주장하냐고 스탈린은 분트를 공격하였다. 당시 러시아에서 유태인들은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유태인들이 그나마 가장 많이 사용하던 이디쉬어 사용 운동을 통해서 유태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고자 하였다. 스탈린이 주장한 언어가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은 이스라엘 건국을 통해 생각해보면 틀렸다. 이스라엘은 건국이 되면서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던 이디쉬어가 아니라 죽은 언어였던 구약의 언어인 헤브라이어를 국어로 정했다. 그러나 이 언어를 선택한 것은 종족성에서 언어의 중요성인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종교를 민족의 가장 중요한 기원으로 잡았기 때문에 유대교 경전의 언어인 헤브라이어를 선택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헤브라이어를 국어로 사용하면서 이디쉬어는 사어가 되어가고 있고 이디쉬어로 된 유대인들의 전통 문화는 점점 파괴되고 사라져가고 있다. 디아스프라 이후 민족성으로 형성되어 온 것은 거의 사라졌다. 스탈린이 민족 일반을 논하면서 언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 것은 틀렸다.

그러나 노동운동을 분열시키려고 했던 유대인 성직자들 중심으로 흘러가던 유대인 조직인 분트를 비판하는 목적에서 이 글이 적힌 것은 민족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교훈을 준다. 러시아 내 다양한 종족들마다 민족주의를 내걸면서 분열되어가면 짜르에 대항하는 노동 운동은 성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글은 적혔다. 1913년이라는 시대를 감안한다면 당시 볼세비키의 기본입장이다.

천년 동안 내려오던 종족성이 있고 거기에서 민족이 형성된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조작’과 ‘발명’만으로 민족주의가 형성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형성될 때 가장 중요한 종족성의 요소는 무엇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역사적 상황과 주체들의 대응에 따라서 기존 내려오던 종족성의 요소들 중 필요한 것을 부각시켜서 민족주의를 형성하는 것은 각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만이 보편적인 사실일 것이다. 민족 일반에 대한 논의는 공허하다. 오직 특정 시기의 특정 민족만 우리는 논할 수 밖에 없다. 영원히 내려가는 종족성은 없다.

천년을 가야만 종족성의 하나인 전통이 되는가? 동티모르는 5백년전 포르투갈이 포르투갈어와 가톨릭을 가져 오기 전인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지금 인도네시아 지역과 마찬가지로 힌두교와 불교를 믿던 종족이었다. 인도네시아 지역이 힌두교, 불교에서 무슬림으로 종교를 바꾸던 시기에 그들은 가톨릭을 받아들였다.

새로운 것이 종족성의 요소 중 하나인 문화에 들어올 수 있다. 그것이 이전에는 없던 상징이 생겨나고 새로운 문화로 형성되면 민족성을 상징하는 일부가 되는 것이다. 종족성 내부에는 없더라도 이식된 것이라도 종족성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

홉스봄이 편집한 [만들어진 전통]20에서 휴 트레버 로퍼(Huge Trevor-Roper)가 '발명된 전통'21의 예로 드는 것이 스코틀랜드인의 킬트, 체크무늬 치마이다. 이 치마는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중에 인위적으로 발명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로퍼가 강조한 것은 체크무늬 치마로 민족주의를 조작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체크무늬 치마가 왜 전통이 되었는가에 대한 역사적 상황의 추적이다. 그 역사적 상황은 우발적으로 생겨난 것은 아니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에서 나온 민족주의에서 만들어진 전통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만들어진 전통 그 자체가 아니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와의 통합이다.

[사례 1] 인도의 예를 들어보자.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백파이프를 부는 스코틀랜드인의 이미지는 인도 히말라야 지역에 이식되었다.22 영국에 의해 이식된 전통'이다. 이렇게 인도는 영국에게 배운 백파이프를 군대와 결혼식에 사용하였다. 인도인들의 백파이프 사용은 몇몇 동영상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다.

  위 사진은 1976년 출시된 인도 위스키 백파이퍼 광고이다. 인도 터번을 쓰고 체크 무늬 치마를 두르고 백파이프를 연주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월드컵 때 보여준 붉은 악마는 ‘한국성’ 이 무엇인가 보여주는 사례였다.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축구를 한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축구가 우리 속에 이식되어 우리 문화가 되지 않았는가?

어네스트 겔러와 베네딕트 앤더슨과 에릭 홉스봄를 서구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민족주의를 악으로 보는 근대주의자로 하나로 묶는 것은 과다했다고 본다.

[사례 2] “우리 민족끼리” 왠 일인가? 홍콩 사례
주윤발의 [감옥풍운 2]는 홍콩 감옥 내에서 “홍콩 본토인(!)”의 갱들과 본토에서 온 이주민들 갱과의 싸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주윤발은 여기에서 어디에서 가담하지 않을려고 한다. 그가 하는 말은 "다 같은 중국인들끼리 왜 싸우나"이다. 감옥 밖에서는 이주민들은 약자 이지만 감옥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는 거의 팽팽한 세를 이루어 있어서 원초적인 감정적인 대립을 잘 보여준다.
[첨밀밀]은 약혼녀와 행복하게 살기 위해 홍콩에 돈을 벌러온 여명이 본래 목적을 잃어버리고 장만옥에게 정신 없이 빠지고, 장만옥 역시 마음이 잠시 혹했으나 가난한 여명 보다는 조폭을 택했다는 이야기다. 뭐 그래도 둘 사이에는 그래도 아련한 것들은 이후의 팍팍한 삶 중에서도 남아 있기는 한다는 건데.(뭐 아름답게 정리한 줄거리야 많으니 그냥 팩트로만 정리하자) 여기에서도 본토에서 온 이주민들은 하천민이다.

순박한 바람둥이 촌놈 여명과 우리 굳센 금순이 장만옥의 [첨밀밀]에서 나오는 홍콩 보기.(->클릭)

홍콩인들이 가진 '본토인'의 개념은 바뀌었다. [감옥풍운 2]과 [첨밀밀]에서는 자기들은 홍콩인이고 대륙에서 온 이들이 '본토인'이었다. 지금 홍콩의 우산 혁명은 대륙에서 온 '이주민들'에 대한 ‘홍콩 본토인'들의 반격이다. 지금 홍통인들을 홍콩을 “홍콩 본토”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홍콩이 현재 스스로를 홍콩 본토인이라 부르는 것은 90년대 말의 홍콩 영화속의 홍콩인들의 정서가 아니다. 대륙인들을 가난하다고 업신여기면서 바라보던 정서는 이제는 없다. 주윤발처럼 "다 같은 중국인들끼리 왜 싸우나"라고 말할 상황도 더더구나 아니다.
중국이 홍콩을 반환받은 후, 홍콩인들이 홍콩 민족주의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가를 볼 수 있는 역사적 추적을 이렇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미국이 이 분쟁에 개입해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티벳 사례 초고 적은 것과 연결해서 적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례 3] 민족주의적 자부심은 유효한가? 말콤 X와 대동아 공영제국의 우생학
위대한 이슬람 성직자인 말콤 X는 "Black is beautiful"란 슬로건을 통해서 억압 받는 흑인들의 자긍심을 이끌어내었고 이 자긍심을 매개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공동체 의식을 고취시키었다.
소울의 황제 제임스 브라운은 "크게 말해, 나는 흑인이고 그게 자랑스럽다"라고 말콤의 메시지를 전하는 복음송을 불렀다. 무릎 꿇고 살기 보다는 서서 죽겠다고.23

이와 반대되는 사례는 일본에서 정치학과 우생학을 결합하여 민족의 내재적 우수성의 개발과 민족개량의 상상이 지식계의 담론을 통하여 대중화 시키는 것이다. 많은 일본의 잡지들은 대륙으로의 진출은 일본인의 우수한 유전자를 정복지의 여성에게 심어서 인종개량을 통한 대동아 공영권을 성취하는 것이라는 환상을 유포했다.

이 두 사례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듯이 민족 국가 건설을 위해서 종족적 자부심을 고양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다. 문제는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민족국가를 같이 상상하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형식논리로 민족주의를 선이냐 악으로 단정해버릴 문제도 아니다. 민족주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공유해야 할 문제이다.

글의 서두에서 맑스를 언급하였다. 다시 이야기해보자. 맑스가 민족주의론에 기여한 것은 특정 민족에 대한 연구가 아니다. 사회적 존재와 의식 형태의 일반적 관계에서 출발해서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특정한 의식형태로 민족주의가 출현하고 이 민족주의를 이데올로기로 진행되는 민족 운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4. 결론

민족주의, 민족주의 운동이 지금도 필요한가는 질문은 ‘주권’을 가진 ‘만인이 평등한 공동체’라는 민족주의의 이상이 아직도 유효한 것인가는 질문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떠한 역사적 상황에 있으면 어떠한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억압 받는 국가라면 민족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민족주의가 종족에 근거를 둔 사실이다. 그러나 종족성의 일부인 “혈연”, “언어”를 중심에 두고 낭만적인 민족주의 운동이 나오는 것은 경계를 해야 한다.

민족주의는 조작되는 것이나 발명되는 것은 아니고 종족성의 요소에서 나오지만 지금 우리가 처한 역사적 상황에서 주체적 대응에 따라 강조되는 종족성의 요소에서 민족을 형성하는데 주도되는 요소들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주체적 대응은 어떠한 계급적 입장이냐에 따라 달라지고, 그 입장에 따라서 강조되는 종족성의 요소는 달라지는 것이다. 민족주의 운동은 현실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입장이냐, 현실보다 변하지 않는 종족성이 우선한다는 입장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계급적이고 후자는 몰계급적이다. 종족성을 고정된 것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한 낭만적인 민족주의 운동은 현실의 변화를 놓칠 수 있다. 낭만적인 민족주의 운동이 가진 긍정성을 모두 부정해서는 안 되지만 현실의 변화를 놓치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고 연대를 해야 할 것이다.

5. 몇 가지 생각해 볼 문제들

가. 강대국의 민족주의와 억압 받는 국가의 민족주의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노동조합이 없어질 수 없듯이 지금의 세계화 시대에서 민족주의는 없어질 수 없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본관계에서 임금 인상을 원하고 보다 나은 복지를 바라지만 기본적으로 노자관계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노동조합 자체가 노자 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또한 국가간의 불평등이 있는 시대에서 국가 간의 대등한 관계를 원해서 나온 것이지만 국가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민족주의 특히 근대 이후의 민족주의는 주권 국가가 생기면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주권을 가진 국가들간의 분쟁으로 민중이 고통을 받는다면 억압하는 국가에 대해서 민족주의는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이 민족주의는 인민이 주권을 가지는 것을 전제로 성립된 나라라는 뿌리를 가지고 있기에 인민을 억압하는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민족의 배신자’라는 명분을 걸고 대항을 할 수도 있다. 노동조합의 한계는 있으나, 노동조합은 노자 과계가 있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필요하다. 민족주의 또한 한계는 있으나 억압하는 국가와 억압 받는 국가 있는 한, 만인이 평등한 주권국가라는 이상이 있는 한 무조건적인 부정을 할 수는 없다.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계급이 후진국의 지배계급과 연합하여 민중을 억압할 때, 촛불의 사례로 보이듯이 민족감정은 일어날 수 있다. 이를 부정할 필요가 있는가?

억압 받는 국가의 저항적 민족주의와 강대국의 민족주의를 같은 민족주의로 보는 것도 문제이다. 한스 울리히 벨러는 [허구의 민족주의]에서 민족주의는 스스로 설정한 이중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한 것 같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민족주의는 내부적으로 평화로운 시민공동체와, 외부적으로는 민족국가들끼리 협력하는 평화로운 시스템 둘 모두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과거를 오만하게 찬미하고, 모든 민족에게 그것을 위해 싸우거나 심지어 죽을 만큼 가치 있는 세계사적 사명을 주는 민족주의 프로그램은 깊은 불신을 받게 되었으며, 따라서 이제는 민족주의 개념을 걷어내고, 대신 헌법국가, 법치국가, 사회복지국가라는 새로운 토대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통일을 이룬 유럽 최대 강국인 독일에서의 이 논의를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시원을 전전하는 비정규직과 농민에게 쌀을 둘러싼 민족주의는 무엇인가? 2000평(10마지기)에 농사를 지으면 1년에 500~700만원의 수익을 올린다. 우리는 20kg 쌀을 오만원대에 먹고 있다. 쌀 개방 문제는 민족적인 문제이다. 왜 비정규직과 농민은 연대를 하지 않는가? 이 문제가 민족주의 문제로 풀 수 있는가? "비정규직이 스스로 조직하지 못하고 계급내 단결을 이루지 못 하는가"가 먼저 논의가 되어야할 것이다. 민족 운동이 계급 운동과 뗄 수 없는 부분은 여기에 있다.
오늘의 논의는 민족주의 무용론 비판에 집중이었다. 민족 문제와 계급 문제의 중첩 부분은 별도로 논의가 더 진행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 경계해야 할 담론 – 다문화주의

이주 노동자는 늘어나고 있다. 2000년 전체 결혼건수의 3.5%에 불과하던 국제결혼이 2012년에는 8.7%에 이르렀다. 다종족으로 구성된 민족이 세계 민족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같이 단일 종족으로 구성된 민족은 드문 현상이다. 순혈통주의는 신화일 뿐이다. 그러나 억압과 착취에 대한 논의는 가려진 진행되는 담론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각주

1) [한겨레기획] 우리시대 지식논쟁 IV :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임지현, 자본의 강고한 네트워크 ‘민족’ 사유로 뚫지 못한다 한겨레 신문 2007년 11월 23일

2) 고종의 밀지를 받은 운강 이강년 http://mpva.tistory.com/1902

3)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5. 임란 때 왜군 절반이 조선 백성이었다. 2014. 9.24 시사저널

4) [강철구의 '세계사다시읽기']<67>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프레시안

5)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70>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프레시안

6) 까지 나즈룰 이슬람은 인도 독립 운동 시기에 타고르 만큼의 영향력을 가졌던 벵갈의 시인이었으나 인도에서 파키스탄 분리로 방글라데시인들에게만 남겨진 시인이다.

7) 막스 베버, 몸젠 마이어 지음, 박성환 옮김( 2009년), 경제와 사회: 공동체들, 나남

8)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65>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③ 프레시안 기사입력 2008-11-28 오후 2:57:55

9) Benedict Anderson(2006, 1983), Imagined Communities :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 Verso. P. 6

10) 골드스타인, 셰랍, 지벤슈 지음 이광일 옮김(2009) - 티베트의 별 푼왕 자서전, 실천문학사

11) 김덕영(2008), 막스 베버, 이 사람을 보라 - 학문과 지식은 세계를 어떻게 바꾸는가?, 인물과 사상사

12) E. J. 홉스봄, 강명세 옮김(1998) -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창비신서 125) 창작과비평사

13) Benedict Anderson(1999) - Indonesian Nationalism Today and in the_NLR23101.1-235).

14) Smith, Anthony, 1998, Nationalism and Modernism: A Critical Survey of Recent Theories of Nations and Nationalism(Routledge). P.142

15) [베데딕트 앤더슨 지음, 서지원 번역(2009), 세 깃발 아래에서- 아나키즘과 반식민주의적 상상력, 길]은 유선과 만국우편연합의 출범으로 세계화를 설명한다. 이 것은 민족주의를 설명하기 위한 인쇄 자본주의 모티브를 세계화를 논의하는 것으로 무리하게 확장한 것 같다.

16) Anthony D Smith(1998, 1986), The Ethnic Origins of Nations. Oxford: Blackwell Publishers

17) http://ko.wikipedia.org/wiki/%EC%9D%B8%EB%8F%84%EB%84%A4%EC%8B%9C%EC%95%84

18) 상상의 공동체 p. 172

19) Stalin collected works vol. 3, pp. 300-381, 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Moscow, 1954
이 글의 부분번역은 스탈린, 서중건 번역(1990), 스탈린 선집 1, 전진에 있다.

20) 에릭 홉스봄 외, 박지향, 장문석 번역(2004) - 만들어진 전통, 휴머니스트

21) 에릭 홉스봄 외, 박지향, 장문석 번역(2004) - 만들어진 전통, 휴머니스트

22) A reminder for the Scots: India has a thriving bagpipe tradition too, Mridula Chari Sep 16, 2014
http://scroll.in/article/665319/A-reminder-for-the-Scots:-India-has-a-thriving-bagpipe-tradition-too

23) James Brown,say it loud i'm black and i'm proud 보기: http://www.youtube.com/watch?v=2VRSAVDlp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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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지난 2012년 8월 23일 정보통신법상 인터넷실명제에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공직선거법은 선거 시기에 인터넷 언론사 게시판 등에 여전히 실명확인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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