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이 무슨 노조하노 했지만, 이제 우리는 하면 된다"

[여성노동자, 말하다] (1) 경북대 청소노동자

웬만한 대학생보다 이른 시간 학교에 간다. 건물 더러운 곳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하는 이들. 아침 8시 출근해 학생들이 수업 듣는 강의실부터 청소하고, 수업이 시작한 9시 이후에는 복도 청소를 한다. 청소하는 일이라고 해서 전혀 기죽을 필요 없다. 이들의 자부심은 여느 고위직 못지않다. 바로 경북대학교 미화노동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당당한 것은 아니었다.

15년 전 경북대학교 미화노동자로 취직한 조모 씨(62)는 “월급 주면 그냥 받고 적다 많다 말도 안 했다. 처음에 들어와서 한 달에 40만원 받았다. 보너스도 없고, 추석 명절에 식용유 주면 고맙고 안 주면 말도 못하고...”라며 처음 입사했을 때를 떠올렸다.

30년째 경북대에서 미화노동자로 일하는 김모 씨(63)는 “경대 문 앞에 살았는데 옆집아저씨가 경대 다녔다. 경대에서 청소 용역을 뽑는다고 해서 그때부터 일했다. 일 많은 사회대, 인문대, 도서관부터 일을 시작했다”며 “처음 들어오면 월급이 얼만지 몰랐지. 남자 여자 임금 차이가 나는지도 몰랐다. 옆에 있는 사람이랑도 월급이 얼마 받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신모 씨(61)는 “옛날에 데모할 때 사회대, 인문대 일거리 많았지”며 17년 전 경북대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다. 이어 “처음 할 때는 30만 원도 받고 그랬다. 노조라도 있어났디 많이 올랐지. 노조를 하니까 사람대우를 해주지. 자기들 마음대로 쫓아내고 그랬는데, 밑에 있는 사람들을...”라고 말했다.

  아침 수업(9시) 시작 전 강의실 청소를 끝낸다. [사진=여성노조 대구경북지부 제공]

처음 경북대에서 청소를 시작했을 때, 월 급여는 최저임금이 채 되지 않는 평균 40만 원 정도였다. 같은 일을 하는 남성 노동자 임금보다 약 10만 원 정도 적었다. 정년도 남성은 63세, 여성은 58세로 남성 노동자보다 5년 더 짧았다.

2001년 8월, 이들은 임금 인상과 남녀 고용 차별을 없애고자 노조(전국여성노조 대구경북지부 경북대 미화원분회)를 결성한다. 노조의 시작부터 함께한 이들은 노조를 통해 권리를 알고, 세계을 알았다고 한다.

김 씨는 “나는 이런 거를 안 해봐 가 내 권리 찾은 것만 해도 뿌듯하지. 옛날에 우리가 권리가 먼동 알았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발언권도 좀 있고 하니까 확실히 학교에서 잘 해주고. 초창기에 학교에서 노조하면 안 된다 그래서 힘들었지. 길 닦아놓으니까 좋더라”고 말했다.

조 씨는 “나도 이 청소하러 안 왔으면 이 세계가 어떤가 몰라. 집에 살림만하고 살았지. 누가 해주길 바라면 10년, 20년 간다. 노조를 하면서 이 세상에 알려야지. 위에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안 바꾸면 밑에 있는 사람들이 힘들다. 밑에 사람들이 이걸 알고 이렇게 해야 된다. 어느 국회의원이 와가 이렇게 해주겠나”고 말했다.

남성과 여성의 고용 차별을 없애는 6년의 싸움

노조를 만들고 나서는 남성노동자와 정년 차이, 임금 차이를 없애는 싸움부터 시작했다. 이들은 노조를 결성할 당시 58세로 정년이 다 된 도재금 분회장의 희생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김 씨는 “노조 할 때 하나도 모르고 시작해가, 노조하면 붙들어가는 줄 알고 숨고 그랬다. 자꾸 인식이 되가. 우리 도재금 분회장 얼마 애를 묵고, 분회장하고 거기서부터 하고 나서 인식이 점점 좋아져가. 노조하면 좋다는 거 알고 노조를 잘 이끌어왔다”고 말했다.

조 씨는 “처음에 노조할 때만 해도 용역이 무슨 노조를 하노. 사람들이 인정을 안 해줬지. 노조를 해가지고 싸우면서 그 바람에 해고도 되고, 6개월 처음에 힘들었어. (도재금 분회장이) 자리도 없이 보수도 없이 근무했다”고 말했다.

  [사진=여성노조 대구경북지부 제공]

당시 58세로 정년이 다 됐던 도재금 초대 분회장은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해고되기도 했다. 약 6개월간의 법정 투쟁 끝에 도재금 분회장은 다시 복직되고, 남녀 정년 차이를 문제제기 하면서 그 해 남녀 모두 정년이 65세로 늘어 도재금 분회장은 7년 더 일할 수 있었다.

임금 차이를 없애는 투쟁도 쉽지 않았다. 고용에 있어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한다는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지 20여 년이 지났을 때였지만, 여전히 남성과 여성의 임금 차이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조 씨는 “그 시절에는 그게 먹어줬지만, 여자들 월급 깎아가 남자들 주는 거 아니가. 같은 일하는데 왜 남자라고 더 주고 여자라고 적게 주냐. 동일노동 동일임금 하는데 거의 7~8년 싸웠다. 그때는 여자들이 뭉쳤지”라고 말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한 이후, 2004년 남녀 임금 격차가 19,000원까지 좁혀졌다. 2005년에는 남녀 임금 차이가 15,000원 이상 날 경우 그 차액을 여성에게 지급하도록 했다. 노조를 결성하고 학교와 싸운 지 6년이 되던 2006년, 드디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여성들만의 노조가 아니다, 전체 미화노동자의 처우 개선

여성노조 경북대 미화원분회는 약 6년 동안 남성과 여성의 고용 차별을 없애는 투쟁을 했다. 그러나 여성노조라고 해서 여성 조합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여성 조합원만 있었지만, 점차 남성 조합원도 가입하기 시작했다. 노조를 만들고 투쟁하면서 남녀 고용 차별 폐지 뿐 아니라 임금인상, 근로조건 개선 등 경북대 내 미화 노동자의 처우가 많이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조 씨에게 임금인상 투쟁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난생 처음 법원을 가보게 된 조 씨는 “법원 아무것도 아닌거 머라고 그렇게 떨었노. 서류만 내고 접수하고 오면 되는데. 끝나고 오뎅국물 먹고 그랬던 거 기억난다”며 웃음을 지었다.

조 씨는 “매년 임금 협상 할라면 6~8월 점심시간에 땡양지에 본관 앞에 가서 많이 싸웠다”며 “최저임금도 안 주는데 시중노임단가 달라고 본관하고 싸울 때는 안면 까는거지. 그게 이루어지가 오면 그 성취감. 아, 우리는 하면 된다 뿌듯함이 있다. 막 뒤에서 궁시렁하고 해도 갈길 꼭 가면서 하면 된다 이렇게 했다”고 말했다.

  2007년 경북대 본관 앞 시중노임단가 요구 [사진=여성노조 대구경북지부 제공]

2008년부터 경북대 미화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이 아닌 시중노임단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 2007년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공공부문 외주 노동자에게 시중노임단가를 적용하도록 했다. 노조도 경북대를 상대로 시중노임단가에 맞춰 임금을 줄 것을 요구했다.

조 씨는 “시중노임단가도 대번에 안 해주잖아. 시중노임단가 하는데도 힘들었는게 한 3년 걸렸다. 그나마 노동부에서 경대는 나라거잖아. 시범으로 해보라 그랬다. 투쟁도 많이 했고, 국회 소회의실가서 회의도 많이 했다. 노동부, 최저임금 관련 당사자, 다 나와서 회의했다”고 말했다.

당시 대구지역 미화원 노조 중에서도 원청을 상대로 시중노임단가를 받아 낸 것은 경북대 미화원분회가 최초였고, 전국여성노조 내에서도 최초였다.

김 씨도 임금인상 투쟁 할 때를 떠올렸다. 김 씨는 “임금투쟁이나 이런 거 할 때, 학교랑 싸울 때, 학생들이 많이 협조해줬지. 본관 앞에 할 때 학생들이 많이 오니까 우리가 힘도 났다”며 “시중노임단가 받는 기간이 힘들었는데, 요즘은 시중노임단가 받으니까 이제는 쉽지 뭐. 정부에서 정하는 단가가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조 씨는 “앞으로 (다른 사업장도) 최저임금이 없어지고, 시중노임단가로 다 흘러가야 안 되겠나”고 말했다.

경북대 미화원노조가 결성된 지 14년, 여성 고용 차별을 없애고자 시작한 싸움은 경북대 내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 조건과 환경을 개선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미화노동자의 노동 조건과 환경이 개선될 때마다 자연스럽게 경북대 기숙사 미화노동자, 조리 노동자, 급식실 노동자들의 처우도 개선되어야 했다. 이제 경북대 미화원노조는 전국의 미화노동자들에게 롤모델이 되어, 근로 조건을 상향평준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여성노조 대구경북지부 제공]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이들에게도 한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다. 바로 매년 재계약해야하는 용역 계약 문제이다. 10년 이상 경북대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비정규직이다.

신 씨는 “용역 계약하는 거 귀찮아 죽겠다. 맨날 사진 찍고 이력서 써야 되지. 신체검사 해야되지”라며 재계약의 불편함을 이야기했다.

김 씨는 용역 계약을 하는 학교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했다. 김 씨는 “학교에서 말만하면 용역이 다 해주는데, 직고용하면 사람 100 사람 다 관리해야 되지. 돈도 더 줘야 되지. 우리도 다 아는데”고 말했다.

조 씨는 “같은 자리에서 10년 이상씩 일하는데 12월31일 사표내고 1월 1일 다시 입사한다. 경대에서 일해도 사장은 맨날 서울, 경기도 사람들이다”며 “직고용하면 그나마 최고 밑에서 일해도 경대인이 되는거지”라고 말했다.

이어 “들어온 지 1년 된 사람이랑 15년 된 사람이랑 월급은 똑같다. 암만 청소라도 노하우가 있다. 그런 것도 법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직고용만 해도 연도 차이를 1년에 1만 원 씩해도. 호봉제를 두든가. 앞으로 발전도 있어야 안 되겠나”며 직고용의 필요성을 말했다.
덧붙이는 말

김규현 기자는 뉴스민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뉴스민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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