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 노동자 되다

[주례토론회] 한국의 가사서비스노동의 역사와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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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본 글은 사적공간인 가정 내에서 여성의 역할로 규정된 가사노동을 대리하여 노동을 수행했던 가사노동자들의 노동주체와 노동성격변화 과정에 대한 분석 글이다. 여기서 노동주체란 하녀로서의 식모노동, 임시주변부 파출노동 그리고 직업으로서의 가사노동자의 노동수행의 변화과정을 말한다. 그리고 노동성격 변화는 24시간 종속노동, 시간제계약노동, 전문적가사노동으로의 이행과정을 말한다. 특히 이러한 이행과정을 생계유지 생산노동의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Werlh0f, Bennholdt-Thomsen, Maria Mies, (벨로프, 벨홀트-톰젠, 마리아미즈,1987:223)연구에 따르면 가사노동자들의 노동은 생계유지생산노동이다. 생계유지생산노동이란 “가족 구성원의 직접적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인간의 재생산에 관계된 모든 형태의 노동”을 말한다. 이러한 생산을 자가 생산(self-production)이라고 부르며 이를테면 가장의 저임금을 보충하기 위하여 수입을 목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고 획득한 임금으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Ilse Lenz(일제렌쯔1) 가 주장하는 ‘생계유지 생산노동’이 가사노동자들의 노동의 성격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식모, 파출부, 가사노동자의 공통적 특징이 가사노동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첫 출발에 ‘빈곤’이 있고 그 빈곤을 극복하기 위하여 가사노동자들은 가사노동을 자신의 직업으로 선택하여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지속적인 생계유지생산노동을 통하여 가족을 빈곤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도록 기초를 만들었고 그 노동을 통해 획득된 수입으로 교육투자를 통한 빈곤탈출 및 신분상승의 중요한 요인을 제공했다. 2000년 이후 가사노동자들은 법 개정운동, 사회인식 개선활동, 직무표준화를 통한 직업안정을 진행하고 있으며 노동권 확보와 삶의 질 개선 그리고 이미지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전재로 문제제기를 시작한다. 

첫 번째 가사노동자들은 생계유지생산노동을 했다. 그렇다면 생계유지생산 노동의 형태는 어떻게 변화했는가?
두 번째 생계유지생산 노동자들의 신분적 조건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세 번째 생계유지생산 노동을 수행하면서 변화시킨 노동의 형태와 신분변화가 가지는 함의는 무엇인가?

Ⅱ ‘식모’ 노동자 주체등장: 가사노동자의 초기적 형태 (1960년대-1970년대)

1. 산업화 과정과 농촌 가족의 빈곤


1960년대 초부터 진행된 한국에서의 산업화 추진은 노동집약적 산업의 성장을 촉진시켰고 도시 중심의 개발을 진행함으로써(정동익, 1985:45) ‘이촌향도’ 현상과 농촌에서의 소작농몰락이 가속화 되는 결과를 발생시켰다. 이로 인한 도시 빈곤층의 대량 발생2과 중산층 이하의 빈곤계층의 끊임없는 도시빈민으로의 전락(정동익,1985:46)은 빈곤층의 궁핍함을 더욱 확산시켰다. 국가는 국민에게 국가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 이라는 국가발전이데올로기와 선 성장 후 분배의 논리에 기초한 사회보장정책미비의 합법성을 유도하였고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결과적으로 ‘빈곤’ 문제를 ‘개인’이 해결하는 기제로 이용되었다. 이처럼 구조적 빈곤이 가정과 그 안의 개인에 떠넘겨 지면서 가족의 생존 탈출전략이 시작되었다. 빈곤가족의 경우 두 가지 ‘전략적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른바 ‘계급상승 전략’과 ‘한입덜기 전략’ 이다.
 
우선 계급상승 전략의 경우, 남성을 중심으로 한 교육투자방법으로 빈곤가정이 생존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최소한 식비 다음으로 ‘교육비’를 우선 선택했다. 그 이유는 한국사회에서 ‘배움’만이 신분상승의 지름길이며 가문의 영광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빈곤가정의 가족 중 남성들에 대한 교육투자는 계급상승을 위한 당연한 전략적 판단이었다.

두 번째 빈곤탈출 방법은 ‘한입덜기 전략’이다. 이것은 대체적으로 여성들의 책임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구체적인 책임자로 여성이 선택된 이유는 ‘가부장제’와 ‘가족의 집단주의적 관념’ 그리고 ‘개인의 선택’에 기인한다. 첫 번째 가부장제의 경우 “여자와 아이를 포함한 가족구성원이 가장인 남성의 감독권 아래 놓이며 여성들의 생산노동이나 재생산 노동 역시 가장에게 전유되는 것”(うえのちずこ 1990:85)으로 가족 안에서 여성과 아이의 위치는 ‘제2인간 계급’3이었다. 따라서 가족 유지와 가문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남성(아버지)에게 결정권이 주어지고 이러한 상황에서 빈곤문제에 직면했을 때 해결의 주체가 여성이 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가족의 집단주의적 관념’(Scott. Tilly. 2008.:24)으로, “가족은 타산이나 공리가 끼어들 수 없는 사심 없는 공동체이고 성원 누구나 고락을 함께 나누는 참으로 평등하고 초개인적인 단위”(うえのちずこ.1990:68)로 규정되었다. 즉 가족단위는 공동생산, 공동분배, 공동책임의 단위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것은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가부장적 자본주의사회가 한 가정의 여성의 위치를 남성다음 으로 규정시키는 배제의 과정을 거쳤고, 가정이 경제적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가문을 유지 발전시키고 계급상승 전략을 취해야할 상황일 때 자연스럽게 그 가정의 희생대상은 여성이 선택될 수 밖 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어떠한 가정도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사회의 사적영역의 배제의 과정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하였을 때 가족의 ‘집단주의적 관념’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가족의 ‘집단주의적 관념’는 여전히 한국사회에 현존하고 있으며 ‘빈곤가정’ 에서 더욱더 구체적인 현실로 존재한다. 세 번째, 빈곤문제 해결 주체의 무게중심의 변화이다. 즉 가문중심의 가부장이데올로기와 집단주의적 가족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나’ (딸, 여성)는 가족빈곤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재정의함으로써 가족 내 빈곤문제 해결이 가장(오빠 혹은 남편)에서 여성(딸)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한다. 여성들이 가족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린나이에 가족을 떠나 식모살이 선택을 하도록 한 동인은 “나의 고생이 가족의 생계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며 동생들의 학비도 제공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가족이 잘살게 되는 것은 곧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생각 속에서 ‘나’의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스스로에게 받아들여진다. 이런 집단적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의 내면화와 빈곤가구의 식구 많은 가정에서 한 끼·한입이라도 줄여야 한다는 전략이 결합하면서 어린 나이의 소녀들은 식모살이 등 노동시장으로 진입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2. ‘식모’4주체 형성과정

1) 가사노동수행 경험의 축적
시골 빈농의 농사는 “4살짜리도 거들일이 있다”고 할 정도로 항상 바쁘고 일이 많다. 왜냐면, 논농사와 밭농사는 필요시 수시로 물대주고 피 뽑고 풀도 뽑으며 거름주기 및 논밭의 곡식과 채소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농사일로 획득한 생산물이 많아야 빈농의 곤궁한 삶에 조금 이라도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농사일의 ‘소출’이 가족의 생계와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고 하였을 때, 가정 내 가사노동 해결 담당자는 그게 누구이든 매우 소중한 ‘일손’ 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소중한 ‘일손’의 경험은 대체적으로 집안의 나이어린 소녀(딸)들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산에서 나무해오기 어린동생 봐주기 밥하기 빨래하기 반찬 만들기 나물 뜯어오기 집안 가축 모이주기 등이다. 이러한 어린소녀들의 집안일 돕기는 바로 오늘 저녁반찬으로 요기가 가능한 것도 많았다. 그리고 어린소녀들의 가정에 대한 집안일 돕기는 학교 입학 전에는 동네언니들을 따라다니며 배우게 되고 입학 후에는 학업과 동시에 일손 돕기가 수행되었다. 나이어린 소녀들이 비록 어린나이의 소박한 집안일거리 해결 이었지만 그것은 가족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족을 위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소나무 삭정이들이 오늘 따라 유난히 불땀이 좋은지 타다닥, 소리를 내며 기세 좋게 불꽃을 일으켰다. 일곱 살 언년은 어느덧 능숙하게 밥을 하기 시작했다. 왜들 안 먹어? 엄마 밥 먹어, 엄마는 수저를 들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종이도 바르지 못한 흙바람 벽만 쳐다보았다. 까불이 오빠도 어른들의 침묵에 눌려 차마 밥숟가락을 뜨지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었다. 상 위에서 나는 들 큰 한 향내가 보리의 구수한 냄새와 섞여 묘했다. 어린게. 어떻게 이걸로 밥을 할 생각을 했을까. 엄마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애비가 못나서. 아버지도 결국 울먹였다. 우리 언년이가 식구들 멕일라고 아카시아 꽃을 이만큼이나 따서 밥 했는디 먹어야지. 당신도 어여들어유(김영주 외, 2010:62).5

한 가정의 빈곤은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가족의 빈궁한 생활을 직시하게 하였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2) 개별화6 된 노동공간의 식모주체
“1930년대 전통적 신분의 해체”(정진성, 1988:82)는 기존의 가사노동의 수행자와 노동의 성격을 변화 시켰다. 즉 전통적 사회에 가사노동은 ‘노비’혹은 ‘하녀’가 담당했다면 신분해체 이후의 가사동은 더 이상 종속적 관계로서의 담당자가 아닌 계약관계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직업으로서의 ‘식모’ 전환이다. 그러나 현실은 노동의 성격과 수행주체의 조건 변화에 큰 의미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근대적 의미의 노동계약서 없이 24시간 종속노동을 했기 때문이다. 단 1분의 자유로운 시간을 향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주인집 가족의 모든 수발을 들어야 하며 그 외에 주인집과 관련된 모든 노동을 담당하는 전담자이었다. 또한 12-13살 혹은 그보다 훨씬 어린나이에 식모살이 선택은, 그 나이로는 감당할 수 없는 힘겨운 노동이었다.

000 이 애가 시집갈 때까지 딸같이 맡아 기르죠. 시집도 보내주고 잘해 줄 터이니 염려마세요” 그런 말을 하고 너는 우리 집 식구가 되었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니 형편은 달라졌다. 연탄(煉炭)을 넣을 줄 몰랐다. 시간(時間)이 늦어서 꺼뜨렸다. (....)너는 울었다. 다음에는 너무 일찍 바꾸어서 반(半)밖에 타지 않은 것을 버리게 되었다. 또 야단이었다. 연탄을 떨어뜨려서 부스러뜨렸을 때는 더 했다. 연탄(煉炭)을 모르니 거기서 밥이 잘될 이(理)가 없었다. 생쌀이기도하고 떡이 되기도 했다. 아주 태워버린 일도 있었다. (....)너는 아침 다섯 시면 일어나야 했다. 불을 보고 쌀을 안치고 마당을 쓸고 마루를 닦고 국을 끊이고 상 을보고 그 때쯤 해서 모두 일어나면 너는 세숫물을 대령해야했다. 아침 식사 때면 한상에서 같이 먹으라고는 하지만 너는 가만히 앉아서 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한술 뜨고 심부름 두술 뜨고 심부름이었다. (......)빨래를 해놓고 방에 들어오면 고단해서 소르르 잠이 왔다. 대문 흔드는 소리에 놀라 깨어 뛰어나가서 대문을 연 너는 온갖 욕설을 들으며 뚜드려 맞았었다. 도둑놈이 들어오면 어쩌겠느냐 일은 안하고 낮잠만 자느냐고 궁둥이도 맞고 다리도 맞고 대가리고 맞고 너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울고 있었다. 밤이면 식구들은 모두 안장에 모여서 쩝쩝거리며 낄낄거리고 즐겁게 노는데 너만은 아랫방에서 까박 까박 졸리는 것을 참으며 떨러진 양말을 찍어매야 했다(동아일보 1956. 05,05 ).

이렇게 어린 나이에 가족의 품을 떠나 실질적인 경제적 가장으로 낮 설고 물선 식모살이 선택의 용기는 나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가족’ 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명절은 온갖 멸시와 천대 눈치를 보며 살아야했던 순간들을 잠시 내려놓고, 비로소 본연의 자신(나이어린소녀/딸/ 누나/동생)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모처럼 엄마가 차려주는 밥도 먹어보고 동생들에게 서울구경 이야기도 해주며 가족들에게 선물도 나누어 줄 수 있는 시간, 가족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고생이 ‘무의미한 희생’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러나 그러한 조그마한 소망조차 최하층 계급의 빈곤한 가정의 식모에게는 허락될 수 없었다. 그리고 TV 영상에서 보여지는 ‘명절’의 행복한 가족 그림은 그저 ‘그들만의 명절’로 기억될 뿐이다.

구정이 다가와도 고향집에 가지 못하는 식모살이를 비관하고 처녀가 음독자살을 하였다. 고향은 경남 충무시에 둔 이정자(22)양은 평소 불우한 신세를 비관타가 구정에 갑자기 고향이 그리워 22일 하고 2시30분 서울 묵정동 1의 2호 주인 정화선씨 집에서 청산가리를 먹고 신음 중 병원에 가다가 차속에서 절명했다(조선일보. 1961. 02 14).

노동공간의 개별화와 수행주체의 조건이 취약한 상황에서 가부장적 문화와 권위주의적 국가 그리고 주인집의 인권유린은 식모들에 대한 일상적 폭력과 착취를 통하여 자신들의 안락과 일상의 편리함을 향유하였다. 그러나 식모들은 이러한 ‘고역’의 노동을 ‘고역’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자신들의 노동능력으로 전환, 주인집이 가사노동에 대해 식모들에게 훨씬 더 의존된 것에 기초하여 자신의 존재를 사회적 존재로 확장시켜 내면서 비로소 전통적 하녀신분의 이데올로기 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신분변화의 중심에 여성(소녀)과 가사노동이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3. 종속적 식모에서 계약제 식모로의 이행과정

1) 식모들의 저항과 식모폐지론
(1) 식모들의 저항
식모들이 고된 노동을 온몸으로 겪으며 견뎌왔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노동능력을 높여내는 과정이었고 자신의 존재를 사회적 이슈로 만드는 조건이 되었다.

주부들이 모이는 곳에 으레 화제에 오르는 것이 식모 얘기다. 그전처럼 마님 아씨하며 죽여줍쇼 하고 붙어있었던 때엔 그래도 주종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애호에 복종이 비져 내는 센치한 분위기도 있었는데 지금 와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식모가 어디 인간인가? 하면서 보따리를 싸며 대분을 박차고 나가면 손에 물을 통기고 않아있던 주부는 분풀이할 대를 잃어버리고 만다. 어쩜 무슨 놈의 세월이 이렇담. 식모를 상전으로 모셔야 한다니 사방팔방으로 수소문을 해서 겨우 맞이한 식모는 전보다 한 술 더 뜬다. 전화, TV, 냉장고 있는 것을 확인한 다음 월급을 결정하고 난 이후에 일을 시작한다.(동아일보 1965.06. 15)

이렇듯 식모들의 개별적 저항은 주인집으로 하여금 결과적으로 식모들 존재의 필요성을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얼마 전 우리 집 식모가 나갔다. (....) 그 뒤로 식모를 못 구해서 쩔쩔맸다. 아침 일찍 도시락을 두세 개 사야하는 집에서는 식모 없이 퍽 곤란하다. 그렇다고 아무나 둘 수도 없어서 고르던 차에 마땅한 사람이 있다고 하여 아는 이가 사람을 대리고 왔다. 월급얼마 달래느냐는 아내의 물음에 서슴지 않고 대답하는 것이다. “월급은 천원 주셔야 합니다.” “천원!!” 아내는 깜짝 놀랐다. 그전사람은 얼마를 주셨는지 모르지만 요새 물가가 오른 뒤로부터는 천원이 시세인걸요. (동아일보 1963 11.01)

식모들은 수동적 존재도 아니었고 자신이 어떤 조건과 처지에 있는지 알고 있었으며, 식모생활을 어느 정도한 경우 협상력도 높여내도 당당하게 자신의 임금도 주장 할 수 있는 존재들로 변화되고 있었다.

(2) 식모 폐지론의 등장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권위주의 사회에서 사적 공간이 배제되고 그 배제된 사적공간의 주체인 여성은 기본적으로 이등신분이다. 이런 이등신분의 주부들이 식모를 두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주부로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특히 책임 방기를 해결해주는 당사자가 ‘식모’로 규정되면서 가부장제 사회의 사회적 여론은 식모존재를 부정하면서 폐지론까지 주장하게 되었다.

당시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진원중7(1967)은 식모폐지론을 이렇게 주장했다. “식모가 필요 없으니 안두는 것이다. 그 까닭은 첫째: 근대적 고용 에서는 정규 샐러리밖에 보너스를 덤으로 주게 되나 서울대학교에는 보너스가 없으니 식모에게 보너스를 줄 수 없다.” 는 주장이다. 식모의 입장에서 ‘임금’은 가족의 생계를 잇는 재생산 비용이다. 그러나 주인집이 식모에게 지급되는 ‘돈’은 임금의 성격을 갖지 못하고 소위 기업사회에서 처리되는 가변자본 즉 비용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비용인식은, 식모의 임금 이외의 것 이를테면 식모 개인에게 필요한 옷, 신발, 가방, 화장품 등 추가적으로 들어갈 비용에 대해서 더 이상 지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식모들의 월급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지급되었고 이것마저 대체적으로 모두 가족에게 송금되었던 상황이다. 따라서 임금 이외에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 주인집에서 책임져야 하는데 그 책임 부분에 대한 불편함을 주장한 것이다. 두 번째 왜식에도 양풍에도 없는 식모바람이 ‘치맛바람’ 과 ‘곗 바람’ 춤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근본사회구조이고 가정파괴와 청소년 악화의 기본온상인 것이다. 맞벌이 가정을 빼고 식모를 그만두고 허식을 빼고 정직하게 잘 살아봐야 한다.” 는 주장이다.

식모폐지론의 두 번째 주장이 ‘진원중’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지 모르겠다. 결혼한국사회의 결혼한 여성이란 모름지기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어야 하나, 집 살림을 식모가 해결함으로써 이러저러한 ‘바람’을 여성들이 일으키고 있음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원중’의 말대로 가사노동을 식모가 전담했음으로 주인집의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을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여성들의 춤바람 곗바람은 당시 산업화로 인한 사회적 변화에 기초한 여성의 사회적 활동의 초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의 결과적 책임을 ‘식모’에게 묻는 것은 식모의 존재와 노동을 ‘군더더기’로 치부시킨 것에 불과하다.

4. 시간제 식모의 대두와 정착화

1967년 YWCA에서 처음 실시한 시간제 식모교육은 식모들의 감소와 주부들의 요청에 의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시간제 식모란 “식모가 없는 집이나 잔치 손님초청 김 장 담그기 등으로 갑자기 일손이 많이 필요한 집 주문을 받아, 나가서 일당을 받고 일을 해주는 출장제 가정부”8를 일컫는 말이다. 시간제 식모의 필요성에 대해 주부들의 요청은 첫째, 식모를 구하기 어렵고, 둘째, 식모들의 저항을 인정할 수 없었으며 셋째, 주거문화의 변화, 핵가족화로 인한 식구들의 축소 그리고 입주식모에 대한 비용부담과 식모들과의 갈등으로 인한 피곤함을 피하고자 한 것에서 기인한다. 또한 YWCA에서 처음 시작된 ‘시간제 식모’ 공급의 시도는 주, 객관적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주관적 변화로 시간제 식모성격은 이전의 전일제∙입주제 식모의 계약관계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시간제 식모에 대한 정의에서 볼 수 있듯 집에 갑자기 손님이 오거나 혹은 김장하기 등 주부 혼자 해결할 수 없을 때 요청되는 것이다. 즉 협의에 의한 계약관계로 입주 식모처럼 ‘저당 잡힌 종속적 계약관계’9가 아니다. 또한 노동수행의 성격도 차이가 있는데 식모의 경우 가사노동전부를 담당하는 24시간 노동력 제공이나 시간제 식모는 ‘출장 가정부’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요청하는 가사노동을 중심으로 제한된 시간 내에 노동력을 제공하면 된다.

객관적 변화는 시간제식모에 대한 주인집으로 대변되는 부인들에 의한 여론형성이다. 위에서 밝힌 주관적 변화를 전제로 집주인은 시간제 식모를 요구했고 이것을 국가가 제도를 만들고 시민단체가 흡수하여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정착시키는 과정을 진행함으로써, 입주제 식모 때 발생했던 많은 문제들이 해결의 가능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즉 인권유린 도둑누명 임금체불 등의 문제들이 점차 줄어들게 되었으며 자신의 역할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직업의식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시간제 식모는 한계를 노정시켰다. 서울 YWCA 시간제 식모의 주된 요구자는 집주인으로 대변되는 부인들의 요구로. 그들의 요구에 기초하여 고안된 것이 시간제 식모 이었기에 그들이 원하는 내용에 기준하여 교육내용이 계획되고 노동 조건이 만들어 졌다.11 12

이상에서 살펴보듯 식모들은 수동적 존재가 아닌 열심히 실천을 통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첫 번째 과정을 만들었다. 특히 자신들의 가사노동의 경험과 능력을 확장시키고 의미화 시키면서 철저하게 주체적 노동을 통해 삶을 재구성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식모들의 저항이 자신들의 언어로 구성되지 못했고 집단적으로 조직화 되지 못하면서 저항의 결과물들이 지배층의 가정집 주인에게 돌아간 것이다.

Ⅲ ‘파출부’ 노동주체의 등장: 빈곤기혼여성 가구주 (1980년대-1990년대)

1. 비공식, 주변부 임시, 빈곤 기혼여성 노동자의 삶의 조건


빈곤한 기혼여성이 주로 수행했던 노동의 성격은 “비공식13, 주변부, 기혼여성 그리고 부정기적이고 일시적인 임시 노동자에 위치해 있다. 빈곤기혼여성들의 삶의 조건은 자기 자신을 제외한 국가 사회 이웃 친척 그리고 때에 따라서 남편도 ‘빈곤’을 해결하는 것에 아무도 기여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선 철저하게 배제∙소외시키면서 빈곤 기혼여성들을 생존의 길 위에 서있게 했다. “우리는 놀지도 먹지고 그렇다고 게으르지도 않으면서 안간힘을 다하는데 가정의 빈곤은”(기사연,1983.121) 더욱 삶의 무게를 가지게 되고 빈곤여성들은 “가난 이외에는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기술이나 학력도 없이”(여성과일, 149) 공식사회 시스템의 혜택을 볼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빈곤기혼여성의 파출노동은 철저하게 소외된 식모 노동과는 다르게 가족을 꾸리며 살아가야 하는 또 다른 힘겨운 삶을 구성하고 만들었다.

그래도 여자는 참 모진가봐, 남편이 일어나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고 자식은 벌써 셋이나 되는데 자식들하고 병든 남편하고 먹고살아야지. 나는 김밥과 도나스를 만들어 막내를 업고 다니며 서울역 등지에서 장사를 했어. 남편이 고생된다고 하지 말하고 해도 당장 약값이라도 벌어야지 어떻게 해. (기사연, 1983,58)
모성이란 저소득 계층에서는 고통 위에 더 많은 고통을 쌓는 그 무엇, 곧 고통의 플러스알파로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고통을 더하는 그러면서도 고통을 이겨내게 하는 그 무엇으로서의 알파이다. 그 알파로 작용케 하는 힘은 생명을 잉태하고 핏덩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모성에 근원한다. (기사연, 1983, 64)


병든 남편과 가족을 위해 빈곤기혼여성들이 생계노동으로 최선을 다해 삶을 이어갈 때 국가는 “100억불 수출 천 억불 소득” 이란 공허한 외침으로 빈곤기혼여성들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만들어갔다.

2. 생계노동으로서의 파출부 노동

빈곤기혼여성들의 조건에서 파출부 노동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가사노동으로 수입을 창출할 수 있으며 노동시간의 탄력적 운영으로 자신의 집에서 수행해야할 가사노동과 보육의 기회를 동시에 진행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은 반대로 파출부를 선택하는 빈곤 기혼여성들에게는 또 다른 힘겨운 삶을 요구한다.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 파출부들의 생산노동으로서의 임금노동인 생계노동은 최소한의 생계만 해결되는 것이며, 그것조차 파출부 자신의 재생산 노동인 가사노동과 양육 노동 등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이중 노동 체계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전재임으로 항상 과도한 노동 속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것이 현실이다.

“견딜 수 없어 돈 벌러 다녔어. 남의 집 파출부로도 나갔지. 돈 있는 여자들 살림은 엉망진창에다 파출부 알기를 소처럼 알아. 그런데 집이라고 와 보면 빨래는 잔뜩 모여 있고 쌀 씻을 물도 한 초롱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지.(기사연. 1883:99)

이런 이중적 노동 부담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기위하여 치열한 노동을 수행하며 생계노동을 이어가지만 구조적 해결 없이 개인의 몫으로 넘겨진 빈곤의 문제를, 배운 것 없고 능력 없는 빈곤기혼여성이 감당하기 에는 ‘버거운’ 현실로 다가온다.

”답답해 미치겠어요. 내가 일 나가는 아파트 여자는 나보다 더 어려요. 똑 같이 여잔데 나는 왜 이렇게 못살고 못 먹고... 그 집 냉장고에 들어가 있는 고기, 쥬스, 아이스크림. (기사연.1983:50)

산업화추진과정에서 배제된 빈곤층의 삶은 단순히 밥을 굶고 추운 곳에서 생활하는 정도를 넘어선다. 빈곤기혼여성의 모성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은 가사노동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생계노동을 통해서 구성된다. 빈곤기혼여성의 경우 자신의 노동의 목적은 생계유지이다. 여기서 생계유지 노동이란,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족의 해체를 예방하고 최소한의 빈곤이하의 삶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에 파출노동이 있고 그것을 여성이 가사노동을 통해 수행했다.

Ⅳ. 가사노동자 주체의 등장: (1997년-현재)

1. 가사노동자의 노동의 성격


(1) 생계유지 생산 노동자
현재 가사노동자들 노동의 성격은 기존의 ‘식모’ ‘파출부’와 같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식모’ ‘파출부’ ‘가사노동자’의 가사노동수행의 공통점은, 생계노동이라는 것, 노동수행 공간이 개별적이라는 것, 그리고 여전히 임시적 노동이라는 것이다.

일주일에 10번은 나가야돼, 그래야 한 달이면 100-120만 원 정도 되겠지, 두 아이 학원비 40만 원, 식비, 아이들 간식비 등 생활비 60만 원 정도를 쓰거든. 간신히 먹고 사는 거지. 그래서 가끔 고객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취소하는 날이 있으면. 그날 수입은 반으로 줄어들 수 밖 에 없어. 그날은 ‘공치는 날’ 이 되는 거지. 어떨 때는 가끔 쉬어서 좋긴 한데 내가 지금 쉴 처지가 아니잖아. 아이들이 둘씩이나 있는데. <사례6>

그러나 가부장적자본주이사회와 정부는 “가사노동의 노동수행 공간이 사적 공간 이며 개별가정에서 발생하는 거래라는 입장”으로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가사노동자들을 공식적 사회의 구성원으로부터 배제하고 생산노동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근거가 된다. 서론에서 밝혔듯, 가사노동자들의 노동은 생계유지노동이다. 이 노동은 이혼 사별 뿐 만 아니라 가사노동자의 배우자가 있다 하더라도, 불규칙한 일로 인한 부정기적인 수입 혹은 실업의 지속 등을 이유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조건에서 가계의 모든 책임이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사노동자들은 가정경제를 담당하는 생계노동담당자로서 생계비를 벌기위한 과중한 업무를 스스로 선택 하게 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벌이가 중단되었을 때, 언제든지 가족해체의 위기와 사회적 안전망의 아래로 떨어질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반면 차이점은 ‘식모’와 ‘파출부’가 ‘개별적 존재’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최근 가사 노동자는 하나의 사회적 노동집단으로서 신분을 변화시키려는 흐름 안에 있다. 개별적 신분과 조직적 집단으로서 노동자 신분차이는 그것이 갖는 사회적 의미나 법적 지위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가사노동자 자신이 스스로 노동자로서 ‘주체적’ 정체성 확립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은 60년대 개별적 존재로서 식모인 ‘종속적 노동’ 과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사노동자도 노동잡니다. 진짜 이게 사회에 꼭 필요한 직업이라고 생각을 해요. 물론 집에서 일을 하니까, 아, 그까짓 [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거라고 생각을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뭐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앞으로 자꾸 사회가 발전을 하면 가사서비스는 필히 진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이기 때문에, 반드시 노동자성 인정을 해주시기 바라겠고요...14

여성에게 있어 가사노동의 경험은 가족이 생존의 위기에 처해있을 때 언제든지 그들을 구출해 줄 수 있는 노동능력으로의 전환이 가능한 생존의 도구가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성의 가구내의 노동과 그 경험들은 단순한 ‘소비노동’ 혹은 ‘비(非)가시적 노동’으로 평가될 수 없다.

(2) 독립적 경제를 계획하는 가사노동자의 출현15
가사 노동자를 선택하게 되는 과정에서 ‘독립적 경제를 계획하는 가사노동자’들은 생계노동자들과는 달리, 가사노동자 자신의 개인적 생활을 좀 더 주체적으로 꾸려가기 위해 노동을 수행한다. 여기서 독립적 경제를 계획하는 가사노동자란, 이혼 후 경제적 독립 혹은 남편이 생활비를 주지 않는 사례는 제외된다. 즉 남편이 지급하는 생활비가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필요한 비용을 쓸 수 있는 만큼의 여유는 되지 않는, 그래서 자신에게 필요한 재화를 가장에게 의지 하지 않고 스스로 ‘벌어서’ 쓰기위하여 선택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이들 학원비 보태기(남편은 학원 종류를 줄이라고 하지만 주부의 경우는 하나라도 더시키려는 입장 이었을 때) 내가 필요한 것 남편에게 허락받지 않고 사서쓰기(내게 필요한 생활용품구입, 해외여행), 친정도와주기 등이다. 그들의 특징은 우선 파트타임 선호다. 이는 집안일과 동시에 가사 일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근무일정을 자신의 집 상황에 맞게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두 번째, 가장이 주는 생활비는 가정과 가족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것으로 본인을 위한 별도의 몫은 생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택한다. 따라서 자신이 획득한 수입은 가능하면 자신을 중심으로 소비하며 심지어 가족(주로 남편)에게 수입금액을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렇기 때문에 독립적 경제를계획하는 가사노동자들은 이 직업을 ‘나이든 여성이 가장이상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적합한 직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가족의 경우(주로남편)는 가정주부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가사노동자로서 활동에 동의 한다 그 이유는 넉넉하진 않지만 생활비를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지’ 부인이 자신의 소비활동을 위해 선택하는 노동임으로 ‘아프다는 소리 하지 말고 밥, 빨래 등 가정 일에 소홀해선 안된다.”는 조건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기혼의 가사노동자들이 ‘독립적 경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가족(주로 남편)의 저항에 맞서야 하며, 독립적 경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가사노동의 공백에 대한 모든 책임 또한 ‘독립경제를 시도하는 가사노동자’들이 져야한다. 이렇듯 독립적 경제를 계획하는 여성노동자들에게 독립경제의 선택과정은 분명한 압력과 부담으로 작용한다. 가정 내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기초로 경제적 생화를 하기위한 최소한의 선택과정 조차,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의 남성(남편)과 협상을 통해 극복해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2. 가사노동자들의 노동전문화 과정

가사노동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항상 공유하고 배우며 현재의 자신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면, 청소를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과 청소시간이 많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시간 줄이기 아이디어 찾기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각종 소모임 혹은 정기모임에서 서로 공유하고 나누며 자신의 것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가사노동자들이 출근 했을 때 제일 먼저 생각 하는 것은 ‘청소의 동선 계획’ 이다. 이러한 계획의 필요성은 주어진 시간 내에 가장 효과적으로 가장 빨리 가장 깨끗하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고안하기 위한 가사노동자들 개인의 두뇌에 입력되어 있는 청소체계라고 할 수 있다. 오랜 경험과 집중적 노동실천 과정을 통하여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험들을 과학적 구조화를 통해 보다 더 체계화될 필요가 있다. 가사노동자들은 노동수행을 통해 생계유지를 하고, 그 과정에서 가족과 가정의 생계(때에 따라서)를 생산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또한 가사노동자들의 상호간의 노동경험의 공유를 통하여 자신의 능력들을 향상시키면서 사회적 노동으로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Ⅴ 결론

과거 식모노동이 노예노동으로 아무런 권리가 없었다면 현재의 가사노동자들은 노동권 확보와 직업으로서 전문성을 확보하고 안정적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선 첫 번째 이용규칙 만들기이다. 이것은 개별 공간에서 수행하는 노동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공식적 계약을 통해 가사노동자와 고객(과거 집주인)과의 관계를 객관화 시키는 것은 물론 ‘내가 필요해서 내돈주고 내가 불렀으니 내가시키는 일은 다해야 한다’는 ‘저당잡힌’ 종속신분과 하녀노동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호칭도 ‘아줌마’‘이모’‘파출부’가 아닌 ‘가사관리사’ 혹은 ‘가정관리사(가사도우미16’로 명명하고 가사노동자 또한 고객에게 ‘00엄마’ ‘애기엄마’ ‘새댁’이 아닌 ‘고객님’ 호칭 사용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업무규칙 부분도 ‘냉장고 청소 시 사전 예고해야 한다. 기본업무 이외 업무 요청 시 사전 고지해야 한다. 업무시간이 늘어날 경우 사전 고지해야 한다. 해외출국 혹은 기타의 이유로 근로를 제공할 수 없을 때에는 반드시 사전 고지해야 한다’ 등 최소한의 업무규칙을 포함하고 있으며 임금지급도 일급, 주급, 월급 계약 시 반드시 이행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2013년 가사노동자 건강을 말하다’17 사업을 통해 가사노동자들이 기본업부 4시간에 27가지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위험지수가 콜센터 다음으로 높은 것이 확인 되었다. 이렇듯 최근 가사노동자들에 대한 직업 안정화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직무 분석 및 업무체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두 번째, 법 개정 활동이다. 여성의 일자리창출 차원에서 가사노동을 직업화, 전문화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시간한 2004년18 이후 2010년 돌봄연대 중심으로 ‘돌봄서비스 노동자 법적 보호를 위한 토론회’ 등 최근까지 돌봄연대 및 가사노동자 관련 개별단체들 중심으로 법 개정 활동이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주된 논의는 ‘돌봄서비스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고용보험, 산재보험을 적용’하도록 근로기준법과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보험료징수에 관한법19등 논의되고 있다. 최근 심상정(정의당), 김춘진(민)20, 은수미(민)의원들이 가사노동자 근로기준법 개정논의와 관련해 방안을 모색했었다. 더불어 가사노동자들은 ‘가사노동자도 노동자다, 근로기준법 개정하라’ 라는 피켓을 들고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노동절 그리고 매년 6월 16일 세계가사노동자의 날21 캠페인을 통해 노동법개정 활동을 펼치고 있고 국제 가사노동자의 날 기념으로 2011년 ILO 가사노동자 “양질의 일자리 협약 채택”에 대한 한국정부 비준으로 정부의 국회 비준 요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세 번째 사회인식개선 활동이다. 가사노동자들의 사회인식 개선활동은 각종 일자리 박람회 등 각종 행사때 그리고 집회, 시위 때 등 필요시 수시로 진행되고 2011년 3월 우렁각시(전실련 소속)는 kbs드라마로 방송예정이었던 '식모들(가제)'에 대한 드라마 제목 수정성명서를 발표하여 드라마 제목이 변경되었으며 전국 가정관리사협회는 2013년 SBS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에 대해 제목변경 요청 공문발송 및 SBS 방송국 앞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진행 제목변경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대폭적인 대본수정의 결과를 가져왔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후 가사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본 글은 역사적 과정에서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하며 소외되었던 가사노동자들에 대한 삶의 자취를 조명하는 것이었다. 가사노동자들은 노동을 통해서 삶을 재구성하였고 자신들만의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의 노동의 역사는 이제 비로소 근대적 의미의 새로운 의미의 노동자로 거듭나기 위해 대장정을 시작한 것이다.

*주

1) Ilse Lenz: 자본가들의 저임금 지급으로 가장(노동자)들이 획득하는 임금수입의 부족분을 보충하기 위하여 부인(기혼여성)들이 추가적으로 수입활동을 진행하는 것을 말하며, 여기서 부인들의 추가적 수입활동은 자본가에게는 공짜 노동으로 제공되고 있음을 밝히는 것으로 자본가들의 이중착취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2) 65년의 빈곤 인구의 64%가 농촌지역 거주자임에 반해 80년의 빈곤 인구는 62%가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대도시 빈곤층의 가구주 중에 농촌을 출신으로 하는 사람이 1972년 80,9% 로 보고되었으며(임희섭,1979: 재인용) 1979년 서울시 조사 63.9% 1981년 KDI 조사에서는 60,0%로 나타나고 1981년의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 조사에서는 68,7%로 나타나고 있다.. (정동익, 1985: 46)

3) 일차적인 경제적 억압위에 제2차적인 성적 억압의 이중적 억압이 맞닿아 내리누르는 최하의 지점 바로 가난한 남편의 가난한 부인이라는 자리 인 것이다. “우리는 꼬래비 중에 꼬래비” 한국기독교사회문제 연구소. 『한국의 가난한 여성에 관한 연구-한국기독교 사회문제 연구소편』1983. 민중사. 63.

4) ‘식모’의 사전적 정의는 1968년 ‘직업사전’에 ‘하녀’(下女)라는 봉건적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규정을 보면 하녀란 개인가정에서 집안을 청소하고 식사를 준비, 제공하고 설거지를 하고 기타의 가사업무를 수행한다. 가사의 먼지를 털고 닦으며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유리창을 닦는다. (김정화,2002 :84 재인용). 그러나 1992년 『우리말큰사전』의 ‘식모’뜻은 ‘남의 집에서 음식을 하여주는 여자’로 되어있다. 두 사전이 공통점은, 기존의 ‘하녀’ 혹은 ‘종’과 달리, 가사노동 중 식생활과 관련한 노동을 중심으로 그 역할이 분명하게 있었다는 것이다. ..한글학회 1992.『우리말큰사전』2575.

5) 차언년,1963년 충남 공주군 장기면의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에서 3남2녀의 맏딸로 태어났다. 지독한 가난으로 초등학교만 졸업한 후 상경하여 1976년 열 네 살의 어린나이로 원풍모방에 입사. 1982년 노동조합 대의원활동, 해고와 복역. 1983년 광복절특사로 풀려남. 그 후로 톰보이, 시대샤쓰에서 일했으며 안양의 노동회관에서 탈춤을 가르치기도 했다. 지금도 원풍이 가장 좋은 하교였다고 생각하며 여전히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6) 여기서 개별화란, 노동자이지만 집단성을 가지지 못하며 가정에서 있는 일인의 존재를 말한다. 즉 조직적 힘을 가질 수 없고 따라서 집단적 힘과 정체성을 구성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노동을 수행함으로써 힘의 논리와 자기의 정체성을 구성할 수 없는 조건의 식모들의 존재 형태를 의미한다.

7) 경향신문 1967 1, 28 -진원중. 식모폐지론

8) 경향신문 1968. 10. 28.

9) 저당 잡힌 계약관계란, 식모 취업의 최초 단계에서 문서화가 아닌 구두(口頭)계약으로 계약의 내용은, “너 우리 집에서 일잘 하면 시집갈 때 한 밑천 해줄게”로 계약이 성립됨으로써 식모입장에서 자신의 노동의 대가는 자신이 노동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의해 추후에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결과가 나타나는 것임으로 그 결과를 좋게 하기 위하여 식모들은 24시간 항상 노력하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조건을 개념화한 것이다.

10) “보사부는 29일 현재 대부분의 가정에 채용하고 있는 식모제도의 불합리한 점을 시정하기 위해 식모의 시간제근무와 철저한 직업훈련을 골자로 하는 가정부 직업훈련 안 을 마련했다. 봉금생활자의 수입으로 현재의 풀타임 식모제는 부담이 과다하다고 지적 이를 시간제로 바꾸고 식모에게도 요리세탁, 육아*청소 등에 관한 전문기술을 철저히 습득시켜 하나의 직업인으로 양성, 인권유린유린을 막고 식모의 권익을 옹호하기위해 이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동아일보 1967 03,29,)

11) 1966년 12월부터 서울 YWCA가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부업을 원하는 초등학교 졸업이상의 학력을 가진 만 18세 이상 45세 이하여성들에 대해 10일간 청소∙요리∙세탁∙ 가정관리 등의 실습훈련을 시켜 파견 했다.YWCA는 가정부훈련생을 모집할 때 신원보증서 2통을 받아 신원을 보증하고 있는데 아직 이에 대한 불상사는 없었다. 현재 YWCA에는 40여명의 가정부가 필요한 가정에 돌아가며 일을 하고 있으며 (...) 평균 5-6건씩, (...)김장철에는 30-40건 이상이 들어와 즐거운 비명을 올릴 정도다(매일경제.1968.04.09.).

12) “달동네 젊은 주부들은 집에서 노는 것보다 한 푼이라도 벌어 살림에 보태려고 애를 쓴다. 기술 없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가사노동의 연장인 파출부의 청소부의 일이다. 그러나 일을 취득하는데도 구비서류가 까다로 와서 어려움을 호소한다. 즉 첫째 한글 해독자, 둘째 보증인 두 사람의 신원보증서(보증인은 집이 자기 소유라야 하며 1년에 이미 일정금액이상의 세금을 낸 자여야 함)등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문맹인과 무주택자만이 모이는 마을에서 구비서류를 갖추는 일은 ‘하늘에서 별 따기’이므로 그냥 주저앉을 수밖에 없노라고 푸념들을 한다(기사연.1983.28).

13) ILO는 2002년 총회 결의문에서 비공식부문을 “공식제도가 법적으로나 관행적으로 관장하지 않거나 충분히 관장하지 못하는 노동자들과 경제 단위들의 모든 경제활동으로 정의하였다. (한국노동연구원, 2011.14).

14) 한국여성노동자회. 2013 『가사노동자건강을 말하다』 토론회 자료집.

15) 기존의 생계노동자가 가족의 가장으로서 ‘수입을 중심으로’ 노동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가부장적 통제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준비하는 여성노동자의 경우, 생계 혹은 가정의 수입은 남편이 담당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자신에게 필요한 재화를 가장에게 의지 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쓰기위하여 선택하는 노동을 말한다. 따라서 수입의 전액은 독립경제를 계획하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쓰여 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들은 중산층의 여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빈곤기혼여성들 보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들의 특성은 자신이 재미있고 잘하는 것인 가사노동을 직업으로 만들어 주체적 경제활동을 하려는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16) 최근 언론을 통해 확산된 호칭으로 온정적 측면에서 접근한 용어로 해석할 수 있다. 가사노동자는 고객이 못하는 가사를 도와주는 것 이아니라 업무의 역할 분담 차원에서 수행되는 노동이다. 따라서 가사도우미란 호칭은 적합하지 않다.

17) 한국여성노동자회 주최 2013년 ‘가사노동자 건강을 말하다’-가사노동자 일과 건강실태조사결과분석 토론회- http://kwwnet2.cafe24.com

18) 2004년에 전실련 우렁각시 사업단과 전국가정관리사 협회가 창립되었으며 여성의 일자리 창출차원에서 가사노동을 직업으로 전환 전문직화 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YWCA는 1997년에 만듬)

19) 전국실업단체연대 http://www.psau.or.kr

20) 김춘진의원 입법발의 주문: 우리나라의 경우 이제껏 가사노동이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져 국가의 개입이 어렵다는 이유로 가사노동자를 노동법령상의 보호 및 관리ㆍ감독의 대상에서 배제시켜 온 탓에 이들은 기본적인 노동복지정책으로부터 소외되어 권리보호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그러나 가사노동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그 가치가 새롭게 평가받고 있는 지금, 우리는 가사노동을 일반적인 노동과 달리 여성의 당연한 임무로만 여기던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 가사노동자의 인권을 새롭게 조명하는 국제적 흐름에 동참하여야 한다. 가사노동자에게 행복추구에 합치하는 적정한 근로조건을 보장하고 고용상의 차별을 철폐하며 양질의 생활조건을 누릴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루속히 취하여야 한다. 이에 대한민국 국회는 정부가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 비준동의안’을 조속히 국회에 제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출처]가사노동자 협약 비준동의안 제출 촉구 결의안 (김춘진의원 대표발의)|작성자 이노무사

21) 2011년 ILO 총회에서 가사노동자들에게 사회권과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협약을 채택한 날을 기념하여 제정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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